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97화 (397/416)

내 안에 마교있다 397

모두가 개인 숙소를 배정받았다.

내 숙소로 들어서서 짐을 푼 후 일단 침상에 누웠다.

제대로 된 침상에 누워보는 게 너무도 오랜만이어서인지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몸이 편하니 아무 생각 없이 이대로 잠이나 푹 자고 싶은 욕구가 가득 밀려온다.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잠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귀양지부의 면벽수련동에서 최절정에 오를 때 말고는 진득하게 운기조식을 취할 기회가 없었다. 귀양지부에서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는 더더욱 그랬다.

마침 확인해 볼 것이 하나 있었기에 오랜만에 차분하게 내면을 관조하며 천천히 운기했다.

세 차례의 운기를 마쳤다.

“음…….”

자연스럽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최절정에 오른 후부터 지금까지 긴가민가했던 의문 하나가 방금 확신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호흡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정수리를 통해서도 기운이 유입되고 있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확실하다.

내가 알기로 이건 초절정에 이르러야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내 경지는 초절정이 아니다. 이건 의심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내 경지는 내가 잘 아니까.

이 경지가 초절정이면 이 강호에 초절정만 수십 명 이상이라는 의미니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이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과거에 사부님과 나눴던 대화들을 열심히 되새겼었다.

그러나 최절정의 경지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언급하신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최절정고수인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 등에게도 전음으로 넌지시 물어봤었다.

한데 세 사람 모두 당연하다는 듯, 이 현상은 초절정에 올라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세 사람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하면, 왜 내게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두영산의 약을 복용했던 때의 일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열기와 한기가 융합되더니 그 기운이 뇌리를 강하게 때렸었고, 그 후에 칠채마주의 힘이 개입했었다. 그 일로부터 비롯된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좋은 징후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 현상이 발생한 후부터 머리도 더 맑아진 느낌이고, 눈도 밝아졌으니까. 게다가 운기를 통해 얻는 공력의 양도 눈에 띄게 증가했으니까.

무엇보다 인지력이 좋아졌다는 게 체감이 되어, 그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

늦은 오후 무렵, 제갈수광에게 허락을 구한 후 몇 사람과 같이 무림맹 장진지소의 정문을 나섰다.

나와 같이 나선 이들은 포연월, 원추엽, 명호운, 왕철양, 심산화, 공은림, 하조혁이다.

나를 조교라고 부르는, 내가 잠룡관에서부터 가르쳤던 녀석들이다. 오랜만에 친목도 다질 겸, 녀석들에게 맛있는 저녁 식사를 대접해줄 계획이다.

제갈수광은 외출을 허가해주면서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째는 장진지소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었고, 둘째는 음주를 금한다는 조건이었으며, 셋째는 해시 초(밤 9시)까지는 반드시 복귀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포로들을 본맹에 인계한 게 아니니 우리의 호송 작전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렇다 보니 경계심을 풀지 말라는 차원에서 여러 조건을 내건 것이다.

참고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외출했다. 그들도 제갈수광으로부터 같은 조건을 들었을 것이다.

장진지소로 복귀할 때는 술을 사 갈 계획이다.

포로들에게 줄 술이다.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포로들도 당연히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사엽상은 진작부터 술타령하며 투정을 부려댔고 황호병과 요석평도 표현은 안 하지만 은근히 술을 원하는 눈치였다.

이왕이면 좋은 술로 구해다 줄 생각이다.

곧 그들과 헤어지게 될 테니까.

배가 무창에 다다르면 본맹에서 그들을 인계해 갈 테고, 그러면 한동안은 못 볼 테니까.

장진현은 규모가 제법 큰 현이어서, 장진지소 인근에도 고급 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의 특실로 녀석들을 이끌었다. 다들 크게 환호했다.

녀석들이 먹고 싶다는 요리를 모두 주문하고, 점소이에게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적정량의 돈을 쥐여줬다.

이후에는 다 함께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다들 이런 날 술을 못 마시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중에서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포연월이었다. 포연월도 가만히 보면 술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그녀의 대사형인 백송학이 그러하듯.

식사 중에 녀석들이 쾌류무를 실전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도 질문하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쾌류무의 수정, 보완 작업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들어보니 다들 쾌류무를 실전에서 활용하는 역량이 많이 상승한 모양이었다.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이 매우 치열했던 탓이다.

잠시 측간에 다녀오기 위해 죽립을 눌러쓰고 특실에서 벗어났다. 하조혁도 마침 측간에 가려고 했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이 식당의 삼 층은 특실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층은 네 명 이내의 인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 층은 넓고 탁자가 많아, 일반 손님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측간은 일 층의 넓은 공간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서 뒷마당의 구석으로 가야 한다.

이 층에서 계단을 따라 일 층으로 내려오며 넓은 공간을 내려다보는데, 순간적으로 내 눈길을 끈 광경이 있었다.

먼 쪽 구석에 앉아 있는 여인이 자신의 앞으로 날아다니던 파리 두 마리를 찰나에 이쑤시개로 꿰어버리는 광경이었다.

당연히 무인인데, 손을 움직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아마도 이 넓은 공간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나뿐일 것이다. 무인이라도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는 사실조차 모를 테니까.

여인은 구석에 홀로 앉아 있으며, 평범한 일반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자색 계열의 상의와 녹색 계열의 긴 치마다.

여인도 나처럼 죽립을 눌러 쓰고 있다 보니 용모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못 본 척 일 층으로 내려와서 뒷문으로 나서는 동안에도 내 뇌는 맹렬하게 회전하는 중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인의 기운이 익숙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백도 쪽의 기운은 아니다.

권진란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기운도 아니다. 그녀였다면 내가 먼저 알아봤을 것이다.

하면 대체 누굴까.

기억하려 노력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궁금해 미치겠다.

그렇듯 몰두해서 기억을 되짚어가며 소피를 보고 있는데, 불현듯 그녀가 누군지 떠올랐다.

몇 년 전에 동갑도에서, 사유 증운생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빠르게 동굴을 빠져나갔던 복면 남녀가 있었다.

그중 여인의 기운이다.

이런 우연이 있나.

당시에 여인의 기운은 정사중간의 느낌이면서 다소 중성적인 성질이었다.

상당히 특이한 기운이었기에 그 느낌을 뇌리에 각인시키려 노력했었다. 그 덕분에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나마 기억이 난 것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다 보니 떠올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측간에서 나와서 다시금 식당 일 층의 넓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여인이 일 층 공간의 앞문으로 나서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것이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

그녀에게 궁금한 게 많다.

즉시 하조혁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혁아, 내가 볼일이 있어서 지금 어디에 좀 가봐야 할 것 같거든?]

[예에……?]

녀석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이에 억지로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전음을 보냈다.

[실은 꼭 들러야 할 데가 있었거든. 제법 먼 곳이라서 시일이 좀 걸릴 거야. 그러니 돌아가면 제갈 교관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무림맹의 배가 오거든 내가 없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그냥 출발하시라고 해. 나는 일을 마친 후에 최대한 빨리 송풍장으로 돌아갈 거라고 전해드리고.]

지금부터 여인을 미행할 계획인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떠나라고 하는 것이다.

[예에…….]

하조혁이 얼떨결에 대꾸했다.

녀석에게 빠르게 은자 두 냥을 쥐여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시켜 먹고, 복귀하기 전에 꼭 좋은 술을 몇 병 사서 포로들에게 전해주도록 해. 안주 겸 요리도 좀 사다 주고.]

[아, 알겠습니다.]

녀석이 이번에도 얼떨결에 은자를 받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래. 그럼 장원에서 보자.]

그렇게 말한 후, 일부러 여유로운 척 돌아서서 식당 일 층의 앞문을 나섰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조교님.]

뒤에서 하조혁의 전음이 들려왔고,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만 한 차례 끄덕여 보였다.

식당의 정문을 나선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행을 시작했다.

나는 흑풍대원 출신이기에 미행에도 익숙하다.

마침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있기에 미행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시각이다.

여인은 시장에 들러 식료품들을 사서 큰 행낭에 채워 넣더니, 대로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 후부터는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가 싶더니, 인적이 드물어지자 갑자기 기척을 확 죽였다.

기척을 죽이는 솜씨가 놀랄 만한 수준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딱 이 시점에 미행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정도로 대단한 은잠술 실력이다.

여인은 기척을 죽인 후부터는 음영이 드리운 공간들을 활용해서, 인적이 드문 경로로만 이동했다. 이동하다가 인적이 있으면 은잠술을 펼친 채로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이는 식이었다.

왜 저렇게까지 조심하며 이동하는지 궁금하다.

주의하고 또 주의하며 여인의 뒤를 밟았다.

미행하면서 보니 여인의 이동 방향은 장강 방향이었다.

배를 타러 가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어디로 가려는 걸까.

어쨌거나 여인이 배를 탄다면 이 미행의 난이도는 매우 높아진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등에 멘 전투용 행낭에 인조면구가 하나 있으니, 여인이 배를 탈 경우에는 그걸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시가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왔다.

날은 더 어두워졌다.

강변에는 갈대숲이 펼쳐져 있어, 여인은 갈대숲 사이로 이동하는 중이다.

계속 미행하면서 보니 여인은 나루터로 향하지 않은 채 강변을 따라 상류 쪽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배를 타려는 모양새는 아니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반각 정도 이동했을 때쯤, 갑자기 여인의 기척이 사라졌다.

기척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졌다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고수였거나, 강물 속으로 입수해버렸거나.

내 추측은 후자다.

그녀가 이런 어둑어둑한 시각에 갑자기 헤엄을 치고 싶어서 강물 속으로 입수한 건 아닐 것이다.

물속에 뭔가가 있다는 뜻.

딱 떠오르는 건 수중 동굴이다.

추적자를 피하기 위한 비밀 통로일 수도 있고, 여인이 머무르는 은신처일 수도 있다.

일단 주변부터 살폈다.

근처에 언덕이 있는데, 바위 지형이다.

수중 비밀 통로든 수중 은신처든 저 언덕 아래쪽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확인을 마친 후, 여인이 지나간 흔적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갈대숲이 끝나자마자 물가가 나왔다.

강가의 물 위로 몇 개의 바위가 불쑥 솟아 있어, 장강을 지나다니는 배에서는 시야가 가려지는 교묘한 위치다.

서둘러 전투용 소형 행낭을 벗은 후, 젖어서는 안 되는 물건들을 방수 주머니에 넣었다. 이후에는 다시 전투용 행낭을 등에 밀착시켜서 메고 조용히 입수했다.

물속은 어둡고 흐릿했지만, 지금의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절정에 오르면서 안력도 더 좋아지고 인지력도 좋아진 덕분이다.

어차피 지상에서 방향은 대충 확인했으니 물속에서도 그 방향의 지형만 자세히 살폈다.

전생에는 수중 동굴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특이하게도 이번 생에는 수중 동굴을 몇 차례나 겪었다. 그렇다 보니 수중 동굴에 매우 익숙해졌다.

그래서인지 입수 일 회차 만에 수중 동굴의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역시나 입구도 교묘한 지형이었다.

위치를 기억해둔 후 다시 수면으로 올라와서 호흡을 골랐다. 초행인 만큼 잘 준비해서 가야 한다.

수중 동굴의 공간 안쪽으로 올라서자마자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니까.

다시금 잠수하여 수중 동굴의 입구로 들어서서 헤엄쳤다.

초반부는 자연 생성된 동굴의 형태였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인공적인 형태로 변해갔다.

한동안 이리저리 꺾이며 하방으로 이어지던 동굴은 어느 순간부터 상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계속 헤엄쳐서 올라가자 위쪽으로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수중 동굴 내부 공간의 수면에 다다른 것이다.

불빛이 닿지 않는 벽 쪽의 음영으로 서서히 이동한 후, 돌부리를 붙잡은 채 수면 위로 눈까지만 내밀었다.

물가에 바위로 이뤄진 바닥이 보였고, 그곳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벽에 걸려 있는 작은 유등이 빛을 발하는 중이다.

여인은 유등 옆에서 양팔을 벌린 채로 서 있는 상태다.

옷자락이 펄럭이고 있고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고 있는 걸 보니 내공을 이용해서 젖은 옷을 말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립을 벗은 상태이기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여인의 용모가 보인다.

눈을 감고 있는데, 이십 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용모에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다.

여인이 공력을 일으키고 있다 보니 경지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절정의 중반 남짓이다.

내공 경지로 인해 동안으로 보이는 걸 고려하면 실제 나이는 삼십 대 초반이나 초중반일 것이다.

저 정도면 나이에 비해 경지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 당장 백리탄과 비슷한 경지니까.

경지 파악까지 마친 만큼, 나는 얕은 물가로 조용히 이동하여 수면 위로 몸을 일으켰다.

여인이 움찔하더니 눈을 번쩍 뜨며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헙! 누……! 누구야!”

이에 나는 미소를 띤 채로 그녀에게 대꾸했다.

“아하하, 안녕하시…….”

내 대꾸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한 손을 털어냈다.

슈슈슉!

소비도 세 자루가 내 요혈들을 노리고 매섭게 날아들었다.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네기는 했지만, 당연히 이런 전개가 되리라는 걸 예상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