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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99화 (399/416)

내 안에 마교있다 399

누군가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늘 그랬듯, 거처로 복귀하는 동안 주의하고 또 주의했었다. 가뜩이나 이곳의 입구는 물속 깊은 곳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기에 찾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여기까지 미행해왔다니.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이곳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공간이기에,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채자마자 즉시 살수를 펼쳤었다. 침입자를 살려둬서는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소비도술과 철비정술을 연계하면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침입자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소비도를 피하더니, 이어지는 철비정 또한 간단하게 피해낸 것이다.

침입자가 고수인 만큼, 그를 제거하는 것보다는 생존이 우선인 상황.

이에 틈을 노려 최대한의 속도로 몸을 튕기며 통로 쪽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침입자가 놀라운 속도로 움직이더니 통로 앞을 막아서는 게 아닌가.

이후에는 침입자의 금나수법에 당해서 결국 사로잡혀 버렸다.

한데 침입자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창천비룡 송유겸이었던 탓이다.

창천비룡 송유겸은 암기술과 강탄술이 강호일절이라고 알려져 있고, 특히 움직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싹수만 보였다 하면 ‘용龍 자’ 붙여주기를 좋아하는 백도인들이 빠르다는 의미로 비룡이라는 별호를 붙여준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창천비룡 송유겸의 그 잘난 속도와 암기술을 직접 한 번쯤 확인해보고 싶었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백도인들은 과장되게 영웅화하기를 좋아해서, 실제로 확인해보면 구 할 이상은 거품이었으니까.

가뜩이나 송유겸은 나이가 겨우 이십 대 초중반에 불과한 청년이다. 약관을 갓 넘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청년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백도인들이 과도하게 영웅화하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를 만나 직접 겪어 보니, 이번만큼은 백도인들의 영웅화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 것 같다.

안 후에는 이미 늦었지만…….

제압당한 후에 겪어 보니 송유겸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싸우는 중에 기운을 통해 자신이 사파인임을 알았을 텐데, 여느 백도인들처럼 무지성으로 멸시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참고로 웬만한 백도인들은 사파인이나 마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본인이 정의로운 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백도의 여러 인간쓰레기처럼 굴지도 않는다.

당장 육체적으로 자신을 욕보이려 하지 않는 모습만 봐도 그가 남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혹 일을 위해서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사내들은 대부분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욕망이 가득 담긴 지저분한 시선을 대놓고 보내는 자들도 많다.

한데 송유겸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욕구를 참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관심이 없는 기색이다.

기관 장치를 해제해가는 과정을 보니 일 처리도 철저하고, 매사에 여유롭다.

이렇듯 송유겸을 관찰해보니 절망스럽다.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후후후. 결국 귀하만 제거하면 저것들을 내가 싹 다 차지할 수 있다는 거로군.”

그 말이 들린 순간 관산영은 시선을 홱 돌려 송유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살기가 가득 담긴,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백도의 어린 청년이, 저 잘생긴 얼굴로, 어떻게 저렇듯 섬뜩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걸까.

두렵다.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만약 송유겸에게 죽게 된다면 저승에 계신 조부를 뵐 면목이 없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서둘러 송유겸에게 말했다.

“혀, 협상해.”

얼떨결에 나온 말이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 내가 이 상황에서 왜 귀하와 협상한단 말이오? 누굴 바보로 아시나?”

송유겸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충 봐도 도난당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보물들 천지잖소. 귀하가 정당한 경로로 얻은 물건들일 리 없지. 그러면 내가 전부 다 꿀꺽해도 아무 상관 없는 거고.”

“여, 여기 말고도 더 있어. 이런 장소.”

“흐음.”

썩 흥미로워하지 않는 눈치다.

하긴, 이곳에 있는 금은보화들만 가져도 손꼽히는 갑부가 된다. 그러니 더 많은 재물에는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있다.

서둘러 말을 보탰다.

“다, 다른 곳에는 영약도 있어.”

그러자 송유겸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풋! 있었으면 이미 귀하가 복용했겠지. 귀하의 무공 경지도 평범한 수준은 아니니 그 영약을 복용했으면 지금보다 더 강해졌을 텐데.”

“정말이야! 조사해보고서 여자가 복용하면 효험이 거의 없거나, 내 개인 체질과는 안 맞는 것들은 굳이 안 먹고 놔뒀단 말이야!”

이런, 억울한 마음에 처지도 모르고 언성을 높였다.

서둘러 송유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역시나 강호인이다 보니 영약 얘기에는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장소는 어디요?”

“강서…….”

“강서어?”

송유겸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 반응은 송유겸 본인이 강서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대꾸했다.

“응.”

“강서의 어디쯤이오?”

“성자현 근처…….”

“성자현이라니, 포양호의 입구 근처란 말이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줬다.

송유겸이 다시 질문해왔다.

“설마 그 장소도 이곳처럼 수중 동굴이오?”

그 질문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시선을 돌렸다.

무언의 긍정이니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송유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하가 방금 한 말들에 책임을 져야 할 거요. 만약 그 장소에 갔는데 별거 없다면 아마도 나는 귀하에게 분노할 가능성이 크오.”

송유겸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또한 그곳까지 이동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모종의 수작을 부리려는 생각이거든, 부디 완벽하게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소. 어설프게 하다가 내게 들키면 귀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목구멍을 타고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지금까지 겪어 본바, 송유겸은 허튼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작을 부릴 계획으로 두 번째 은신처를 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있다가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던 것이다.

어쨌거나 두 번째 은신처에 도착하기 전까지 며칠의 시간은 벌었다. 그러는 동안 송유겸을 더 관찰하며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물론 그조차도 매우 매우 신중해야 하겠지만.

만약 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두 번째 은신처까지 그를 데려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은신처는 실제로 존재하고, 그곳에는 자신이 말한 영약도 있으니까.

그 후에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금으로서는 막막하기만 하다.

자신을 안아 든 채로 한동안 보물들을 살펴보던 송유겸이 말했다.

“신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 그게 귀하의 정체에 대한 내 결론이오. 아마도 사제관계겠지.”

저 안의 보물들을 본 만큼 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송유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관계시오? 신투 관의척과는.”

대꾸하지 않자 송유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귀하와 가까운 관계면 말하는 중에 신투를 모욕하지 않는 정도의 배려는 해주려고 했는데, 딱히 관계가 없는 듯하니 그냥 모욕해도 되겠구려. 사실 백도인인 내 입장에서는 굳이 배려할 필요가 없기도 하거든. 아무리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고 해도 평생 도둑질 잘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런 인간쓰레…….”

“조, 조부야.”

“조부우? 정말이오?”

송유겸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꾸하지 않자 송유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투에게 혈육이 있었다니, 몰랐던 사실이구려. 어쨌거나 말할 때 신경 쓰겠소. 귀하 앞에서 귀하의 조부를 욕보일 수는 없으니.”

송유겸의 얼굴에 만족스러워하는 미소가 걸려 있다.

황급하게 사실을 얘기하기는 했는데, 저 표정을 보니 그의 수에 말려들었음을 알 것 같다.

열 살 가까이 어린 사람한테 계속 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 틈을 노리려는 계획이 잘 될지 모르겠다.

* * *

신투 관의척에게는 혈육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여인이 신투 관의척의 제자쯤 되겠거니 여기고 있었다.

한데 손녀였다니.

놀랍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봤던 관의척의 용모파기와 여인의 이목구비가 어느 정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못 훔칠 게 없다던 인물이 바로 관의척이었다. 괜히 신투라는 별호가 붙은 게 아니다.

그는 백도 내 유명 문파와 세가의 귀중품들을 한두 개씩은 훔쳤으나 신물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훔친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며 지켜야 할 선은 지켜준 것이다.

단, 관의척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문파나 세가의 경우에는 신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래서 보물을 살펴보며 그러한 신물들이 있는지도 살펴봤는데, 적어도 이 공간에는 없는 듯하다.

관의척을 의적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다.

그가 권력자나 부호들의 재물을 훔쳐 인근의 백성들에게 몰래 나눠준 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관의척은 무공 경지가 높기로도 유명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강호 무공서열에서 이십 위 안에까지 들었을 정도로 고수였다.

은잠술 실력은 귀신 같았고, 암기술 실력도 대단했으며 경신법 또한 일절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투는 도둑질할 때만큼은 절대로 공격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철칙이었다. 자신은 도둑이지 강도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아까 여인과 전투를 치르면서 겪어 보니, 그녀도 조부에게서 무공을 잘 배운 듯하다.

웬만한 문파나 세가의 후예들보다 영약을 더 많이 먹었을 가능성이 크니, 저 나이에 저렇듯 경지가 높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아울러 그녀가 왜 어렸을 때부터 사유 증운생과 종종 교류해왔는지도 이해가 된다.

신투는 정사마 중에서 그나마 사파하고만 교류하며 지냈었다. 그로서는 훔친 보물 등을 거래하기에도 사파 쪽이 편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사유 증운생과도 어느 정도는 친분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

여인을 안아 든 채로 공간을 나섰다.

다른 통로에도 가보기 위함이다.

중앙의 넓은 공간을 거쳐 또 다른 통로로 향하자, 길이 살짝 굽어지며 또 하나의 공간이 드러났다.

금은보화가 쌓여 있던 공간보다는 약간 작은 공간인데, 밝기는 더 밝다. 보아하니 그곳보다 야명주가 더 많이 박혀 있다.

공간에는 큼지막한 목제 진열대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그 진열대에는 각종 무기가 거치되어 있었다.

“쓱 봐도 다 좋아 보이는 것들이구려.”

여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진열대 사이를 오가며 더 살펴봤는데, 무기들에 먼지가 쌓인 게 하나도 없이 모두 잘 손질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들이 잘 관리되고 있구려. 귀하가 손질하고 있는 것이오?”

여인이 대답 대신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 이 많은 걸……. 부지런하시구려.”

여인은 이번에도 대꾸가 없었다.

둘러보니 무기들의 질이 모두 중상급 이상은 되어 보였으며, 상급 도검들과 창들도 있었다.

내가 쓸 만한 건 없으니 나중에 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것이다.

이후에도 진열대를 둘러보는데 한 진열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활들이 거치되어 있는 진열대다.

열 개의 활이 걸려 있고, 모든 활에 시위가 없었다. 보관을 위해 시위를 빼둔 것이다.

역시나 먼지가 없는 걸 보니 활들도 잘 관리되고 있었던 듯하다.

다 좋아 보이는데, 그중에서 내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활은 세 개였다.

하나는 갈색, 또 하나는 흑색, 다른 하나는 백색이다.

셋 다 각궁인데, 지금껏 내가 봐왔던 각궁들보다 질이 더 좋아 보인다.

여인을 잠시 바닥에 눕혀 놓은 후 세 개의 활을 차례로 만져보았다.

양손으로 잡고 활대들을 굽혀보니 튼튼하고 탄성도 좋아서 최상급 활임을 알 수 있었다. 송유하가 가진 활도 상당히 좋은 활인데, 방금 만져본 세 개의 활이 그것보다 훨씬 좋다.

“활에 관심이 많은가 봐.”

아래쪽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편이오.”

“고른 것들을 보니 활 보는 안목도 있어 보이고.”

“그래 보이오?”

“거치돼 있던 활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랐으니까. 검은색 활은 북원의 명궁이고, 갈색 활은 고려산 명궁이야. 흰색 활은 과거 발해국 최고의 장인이 만든 명궁이래.”

“아하.”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셋 다 챙겨 가야겠구려.”

여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본인이 가타부타할 처지가 아님을 잘 아는 것이다.

활들을 거치해둔 후, 다시금 여인을 안아 들고 그 뒤쪽 진열대로 향했다.

그쪽에는 딱히 진열된 게 없었고, 길쭉한 끈 몇 개만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보통 끈이 아니다.

“활시위요?”

“응.”

이에 나는 또다시 여인을 내려놓고 끈을 하나씩 만져보았다. 끈의 가운데 부분을 바닥에 놓고 밟은 채로 끈의 양쪽을 잡아당기며 탄성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끈은 총 여덟 개인데 그중에서 두 개는 탄성과 강도가 매우 우수했다. 은룡삭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활시위로서는 최상품이다. 은룡삭의 반 정도 성능은 충분히 낼 것이다.

“활시위는 이 두 개가 좋아 보이는데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아시오?”

“깊은 지하에서 육십 년을 사는 커다란 구렁이의 힘줄로 만들었다고는 하던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어.”

이에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했다.

“이것 두 개도 챙겨야겠구려.”

여인은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다시 여인을 안아 든 채로 중앙의 큰 공간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문이 닫혀 있는 세 곳을 살펴보았다.

침실이 두 개였는데 하나는 여인의 침실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신투 관의척이 생전에 썼던 침실이라고 했다.

문이 닫혀 있는 다른 한 곳은 창고 공간이었다.

모든 공간을 둘러본 후 다시 중앙의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화로 근처에 여인을 눕혀 놓고서 나는 공력을 일으켜 옷을 말렸다.

옷이 다 마른 후에는 화로 옆에 있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여인에게 말했다.

“귀하의 정체까지 알게 됐으니 이제는 가장 궁금했던 걸 물어봐야겠소. 이건 내가 귀하에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답을 얻어내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오.”

여인이 눈을 감은 채로 몸을 살짝 떨었다.

그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귀하는 사유 증운생이 최후를 맞기 전에, 어떤 사내와 같이 동굴에서 빠져나갔었소. 그 사내는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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