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01
“표정을 보니 귀하도 그 부분에 대해 뭔가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구려.”
여인은 여전히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볼 뿐 대꾸하지 않았다.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 여인에게 무공을 전수한 사람은 그녀의 조부인 신투 관의척인데, 그는 이미 고인이다.
신투의 무공을 이 여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익힌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없다면 이 여인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가 어려운 환경일 것이다.
그리고 저 반응을 보니 내 추측이 맞을 듯하다.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여인이 술 한 잔을 천천히 마시더니 내게 물었다.
“직접 시범 한 번만 보여줄 수 있어? 식사 끝나고 나면.”
“으음. 귀하가 궁금해하시는 듯하니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소.”
“정말? 그러면 나야 고맙지.”
이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동굴 중앙의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중앙 공간은 넓다 보니 시연하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여인에게 말했다.
“귀하의 보법은 이런 식이었소.”
말하자마자 천섬무를 일으키며 여인이 펼쳤던 보법의 마지막 부분을 재연했다. 천섬무는 중하 단계 정도로 운용했다.
다다다다닷! 탓! 탓! 탓!
여인이 눈을 부릅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름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재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귀하의 표정을 보니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구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인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각 보폭의 비율과 발의 각도까지 거의 똑같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변형시킨 걸 보여드리겠소.”
여인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에 나는 이전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며 변형된 보법을 선보였다.
다다다다닷! 탓! 탓! 타닷!
시연을 마치고 나서 여인을 보니 눈이 매우 커져 있었다.
딱 봐도 방금 내가 보였던 시연이 더 낫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강 이런 식이라고 보면 되오.”
그렇게 말한 후 식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여인이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보여줘.”
“나는 그저 하나의 예시를 보여드린 것뿐이지, 이대로 하라는 게 아니오. 귀하께서 직접,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개선하시는 게 좋소.”
“알았어. 잘 참고할 테니까, 한 번만 더 보여줘. 부탁이야.”
간절한 표정이다.
이에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변형된 보법을 재차 시연했다.
이후에 식탁으로 돌아와서 앉자 여인이 말했다.
“고, 고마워.”
나를 보는 눈빛에 여전히 놀람이 담겨 있다.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여인이 술을 한 잔 들이켜더니 말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야? 아까 내가 보법을 제대로 펼쳤던 시간은 그야말로 잠깐이었어. 그런데 당신은 그 찰나에, 내 암기를 피하고 나를 막아서는 와중에도, 내 보법을 그렇게 자세히 파악했다는 거잖아.”
내가 대꾸하지 않자 여인이 물었다.
“당신……, 대체 얼마나 고수인 거야?”
“고수라기보다는 눈썰미가 좀 좋을 뿐이오.”
여인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있다.
안 믿는 눈치다.
믿을 리가 없긴 하다.
“나도 나보다 경지가 한참 낮은 이들을 적잖이 상대해 봤어. 하지만 그들의 무공을 당신처럼 금세 파악하고 기억할 수는 없었어. 나만 그럴까? 다들 그럴걸? 즉, 당신이 이상한 거라고.”
여인이 내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한마디를 더 붙였다.
“아, 그,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건……, 특출하다는 뜻이야.”
‘이상하다’라는 표현이 행여 내 심기를 거스를까, 곧바로 말을 바꾼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한 차례 시선을 준 후, 말없이 젓가락질만 했다.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당신을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나는 당신의 명성은 거품이라고 생각했었어.”
이에 내가 무심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자 그녀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그, 그럴 수밖에 없잖아.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한 청년이 그렇게까지 고수고, 그렇게나 대단한 전공을 세웠다는 걸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겠어?”
“귀하가 제대로 보신 거요. 거품 맞으니까.”
내 대꾸에 여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대꾸하리라고 예상치 못한 것이다.
여인이 한동안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북해에서도 더 먼 북해에는 아주 차가운 바다가 있어서, 그 바다에는 커다란 얼음덩어리들이 떠다닌대. 그걸 빙산이라고 하나 봐.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얘기에 의하면, 바다 위로 보이는 빙산의 모습은 그 빙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거야. 해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부분이 훨씬 더 거대하다는 거지.”
여인이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 당신은 거품이 아니라 빙산이야.”
저 정도면 극찬이다.
속내를 감춘 채로 피식 웃어 보인 후에 대꾸했다.
“그렇듯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고 해서 귀하에 대한 처우가 나아질 일은 없소. 지금 이 정도가 내가 귀하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니까.”
“아부하려는 생각, 조금도 없어. 그냥 당신을 직접 겪으면서 느끼는 바를 말해본 것뿐이야.”
여인이 말을 마치더니 술을 한 잔 비우고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요리를 먹었다.
여인이 한동안 조용히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시다가 말했다.
“조금 고민되는 게 있는데……, 무공을 내 마음대로 변형시켜도 괜찮은 걸까?”
내가 대꾸하지 않자 여인이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스승님, 그리고 더 선대의 스승님들이 갈고닦아 놓은 무공일 텐데, 그런 걸 내 멋대로 바꿔도 괜찮은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도 내가 대꾸하지 않자 여인이 물었다.
“조언 좀 해주면 안 돼?”
애원하는 투다.
여인에게 말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귀하가 익힌 무공도 과거 수백 년간 시대에 맞춰 꾸준히 완성도를 높여 온 결과물일 것이오. 그러지 않았다면 귀하의 조부가 근자에 고수의 반열에 오를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대 최고의 무학이라고 해도 후대에서 수정, 보완, 발전시키지 않은 채로 시간이 오래 흐르면 결국 도태되게 되어 있소. 왜냐하면 무학의 평균 수준이라는 건 시대가 지날수록 발전될 수밖에 없거든. 나는 최고의 스승님한테서 최고의 무공을 배웠지만, 내가 익힌 무공 또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 스승님이라면, 저승에서 분명히 청출어람을 바라고 계시리라 믿소. 그렇게 되어 내가 이 무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주기를 기대하시리라 믿소. 그래서 나는 매 순간, 내 스승님을 뛰어넘어 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오. 물론 아직 한참 멀었지만.”
나는 말을 마친 후에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여인은 상당히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인을 다시 점혈하고 나서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마쳤다. 그 후에는 방에서 침구류를 꺼내 와서 중앙 공간의 화로 근처에 이부자리를 폈다.
점혈을 풀어주기 전에 여인을 이부자리 위에 눕히자 그녀가 말했다.
“나, 잠들기 전에 측간에 좀 다녀오고 싶은데.”
“흐음.”
나도, 여인도, 한 번쯤 측간에 갈 때가 되기는 했다. 내가 그녀를 사로잡은 후부터 지금껏, 우리 둘 다 측간에 한 번도 안 갔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의심하는 눈초리로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이 애원하듯 말했다.
“민망하고 해서 계속 참았단 말이야.”
창고 공간의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는데, 그 문을 열면 아래로 경사진 짧은 통로가 나오고, 그 통로의 끝에 측간이 있다.
아까 창고에 갔을 때 측간도 대충 확인했었는데, 기관 장치 같은 건 딱히 없어 보였었다. 참고로 측간에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 볼일을 보면 물줄기를 따라 아래쪽의 좁은 틈새를 통해 흘러 내려가는 구조다. 그곳에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공간은 없다.
여인을 바라보며 일부러 딱 잘라 말했다.
“안 되오.”
여인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다.
내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귀하가 혼자 측간에 들어가서 기관 장치를 작동시킬 수도 있는 거잖소.”
“아냐, 아냐. 거기엔 그런 거 없어.”
이에 완고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소.”
“아니, 정말 없다니까. 하아……!”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하면 지금 바로 측간에 같이 가서 의심스러워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이 잡듯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구려. 귀하를 측간의 통로에 눕혀놓고 내가 일일이 조사할 것이오. 그래도 되겠소?”
만약 측간에 침입자 처치용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면, 그 위치는 측간의 통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여인을 측간의 통로에 눕혀놓겠다고 한 것이다. 내가 측간을 조사하다가 기관 장치가 발동될 경우,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테니까.
어쨌거나 말하는 동안 여인의 기색을 면밀히 관찰했는데, 염려의 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 기색만 봐서는 측간에 기관 장치가 없다는 그녀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여인이 대꾸했다.
“아, 그러시든가!”
짜증스러워하는 투.
이러면 측간에 기관 장치가 없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나저나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여자가 본인 처지를 망각하고 짜증을 부리고 있네?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서둘러 내 눈치를 살피며 변명했다.
“아, 아니이, 그게에……. 기, 기관 장치 같은 거 정말 없다는데도 당신이 너무 안 믿어주니까아. 무, 물론 당신의 입장에서는 안 믿는 게 당연하겠지이……. 근데 내가 소피도 급해지고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이에 잠시 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그럼 가 봅시다.”
말을 마친 후, 여인을 다시 안아 들고는 측간으로 향했다.
측간의 통로에 여인을 눕혔다.
움츠러드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후에 측간의 곳곳을 샅샅이 살피며,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모든 부분을 밀어 보고 당겨 보고 밟아 봤다. 심지어는 볼일을 보는 곳까지도 꼼꼼히 살폈다.
참고로 측간은 매우 청결해서 조사하는 데 딱히 불쾌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측간이 넓지는 않은데, 내가 워낙 꼼꼼히 살펴본 탓에 조사를 완료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사를 마치고 여인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눈매를 살짝 찌푸린 채로 말했다.
“거봐, 없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내가 못 찾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귀하의 측간 이용을 막을 만한 명분은 사라진 듯하구려.”
“그러면 빨리 좀 이용하게 해주겠어? 이제는 정말 참기 어렵단 말이야.”
이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여인의 점혈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문밖에서 이 안의 기척과 기운을 탐지하고 있을 것이오. 만약 귀하가 기운을 일으키거나, 은잠술을 활성화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즉시 진입할 것이오. 또한 쓸데없이 벽 쪽으로 붙는 낌새가 보여도 즉시 진입할 것이오. 그러니 통로의 중앙을 따라서 볼일 보는 곳까지 얌전히 갔다가 그대로 되돌아오시오. 만약 내가 말한 주의 사항을 어길 시에는…….”
나는 잠시 말을 줄인 후, 주머니에서 왼손으로 쇠구슬 하나를 꺼내어 강탄술을 준비했다.
이후, 천섬무를 중상 단계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왼팔을 천장 쪽으로 뻗었다.
천장에는 야명주 하나가 박혀 있는데, 바로 그 방향이다.
여인의 시선도 야명주 쪽으로 향했다.
“야명주 왼쪽으로 두 치 지점.”
말을 마치자마자 쇠구슬을 튕겨냈다.
퓩! 푹!
쇠구슬이 눈 깜짝할 새에 내가 말한 지점에 박혔다.
여인은 눈을 부릅뜬 상태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있다.
여인의 안력으로는 내 쇠구슬의 움직임을 제대로 쫓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팔을 내리며 여인에게 말했다.
“저게 귀하의 몸에 박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소. 내 말, 알아들으셨소?”
“아, 알았어, 알았어.”
여인이 말을 더듬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녀를 향해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나, 오른손잡이요.”
여인의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이에 나는 마지막 혈도를 풀어준 후 측간의 문을 나섰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여인은 내가 말했던 주의 사항을 그대로 지키며 측간에서 나왔다.
그녀를 다시 점혈하고는 나도 소피를 해결했다.
이후에는 다시 중앙의 넓은 공간으로 이동하여 여인을 침구 위에 눕히고 점혈을 풀어줬다.
여인은 눕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 * *
여인은 상당히 오래 잤다.
네 시진(8시간) 넘게 잔 것 같은데도 일어나지 않기에, 나는 조용히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음식 냄새가 솔솔 올라오던 시점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고는 부스스 눈을 뜬 채로 내 쪽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세안 좀 할게.”
점혈을 그 뒤로 미뤄달라는 의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이 한쪽 벽에 있는 우물에 가서 세안했다. 바위가 움푹 팬 지형으로, 지하수가 쫄쫄 솟아오르는 우물이다.
세안을 마친 여인이 침구류를 가지런히 정리하더니 그 위에 반듯이 누워서 말했다.
“자.”
점혈하라는 의미다.
이젠 뭐, 자동이군.
다가가서 점혈을 시작하자 그녀가 말했다.
“참 오랜만이네. 잠에서 깨어났는데 누군가가 밥 해주고 있는 광경.”
누군가를 아득히 그리워하는 표정과 어조.
그녀의 부모나 조부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여인도 미소를 보였다.
“아침 식사는 맑은 조개탕인가 보네?”
“그렇소. 말린 조갯살이 있길래.”
그러자 여인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나 해장하라고 끓인 거야?”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모양이다.
“착각이 지나치시구려. 조개탕이 가장 간단할 것 같아서 끓인 것뿐이오.”
“에이이. 아닌 척하기는.”
“풋! 뭐, 착각은 자유니까.”
“가만 보면 배려심이 많단 말이야.”
“보아하니 굶고 싶어서 용을 쓰시는 것 같구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인이 서둘러 대꾸했다.
“아! 아냐, 아냐, 아냐. 내가 잘못했어. 안 그럴게.”
여인이 애원하듯 그렇게 말했고 나는 또다시 피식 웃어줬다.
점혈을 마치고 나서 일다경쯤 부지런히 움직이며 식사 준비를 마무리했다.
식탁 위에 식사를 차려 놓고는 다시금 여인의 혈도를 풀어줬다.
그 후에는 식탁에 마주 앉아서 같이 식사했다.
여인은 해장이 된다며 좋아했다.
식사를 마치고 여인을 다시 점혈한 후,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던 중에 말했다.
“이제 성자현으로 출발할 거요.”
강서의 성자현에 있다는 그녀의 다른 은신처를 말한 것이다.
“아.”
여인이 그렇게 반응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배편으로 갈 거지?”
“그렇소. 참고로 내가 챙긴다고 말했던 활 세 개와 시위 두 개, 그리고 서너 자루의 도검도 가져갈 거요.”
말하면서 여인의 표정을 살폈는데, 딱히 아까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가져가도 상관없다는 듯한 기색이다.
여인이 말했다.
“그러면 장진현으로 가서 포양호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야겠네.”
“혹시 이 근처의 작은 나루터에서 중경까지 오가는 소형 여객선은 없소? 중경까지 태워줄 고깃배 같은 것도 상관없고.”
“있기야 있는데……, 왜?”
“짐도 좀 있는데, 귀하를 감시하면서 사람마저 많은 여객선을 타고 강서까지 가는 건 여러모로 별로인 것 같아서 말이오.”
그러자 여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중경에 가면 뭐, 다른 수가 있어?”
“있소. 귀하도 만족할 것이오.”
내가 말을 마치며 입가에 미소를 짓자 여인이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중경은 대도시이니 당연히 연주상단의 지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거대 투자자로서, 연주상단의 특급 귀빈증을 소지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