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405화 (405/416)

내 안에 마교있다 405

일 갑자 공력이라는 계산으로 인해 두근거리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대충 계산해서 일 갑자 공력이 될 수 있다는 것뿐이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게다가 관의척이 대지 요정의 눈물이라는 약을 입수한 이후로 제법 세월이 흐른 만큼, 아직 그 약효가 온전하리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물론 관의척은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기 위해 나름대로 냉기를 일으키는 진법까지 동원했지만, 일반적으로 약이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효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최대한 보수적으로, 두 병 합해서 삼사십 년 공력 정도만 얻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약을 먹고 운기조식을 할 때 욕심을 버릴 수 있다.

욕심을 버려야 주화입마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반대로 깨달음에 다가갈 가능성은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

이후에도 관의척의 다른 기록을 빠르게 읽어 나갔다. 관의척의 글솜씨가 좋아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속독 실력이 있다 보니 관의척의 기록물들을 금세 일독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는 전대 신투들의 기록물들도 쭉쭉 읽어 나갔다.

관산영이 한마디 했다.

“그냥 대충대충 훑는 거야?”

“경서도 아니고 무공 서적도 아닌데 한 글자 한 글자, 이 잡듯이 자세히 읽을 필요 있겠소? 대충 훑고 마는 거지.”

굳이 내 속독 실력에 대해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대꾸해줬다.

그러자 관산영이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당신 설마, 그렇게 빨리 읽으면서도 내용을 다 기억하는 거야?”

“하하, 그럴 리가 있겠소.”

“아냐, 아냐. 당신을 일반적인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 되는데 잠시 내가 그걸 간과했던 것 같아. 당신은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올랐을 정도로 천재잖아? 그렇다면 그렇듯 빠르게 훑으면서도 중요한 내용들은 모두 머릿속에 담을 수도 있는 거잖아?”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근래 며칠간 같이 지내며 내 눈치만 살피다 보니 저렇게 된 건가 싶다.

“내, 이런 식으로 훑어보면서도 내용을 다 기억하는 천재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소. 내 역량을 높게 사주는 건 고마우나, 지나친 듯하구려.”

내가 그렇게 대꾸했는데도 관산영은 계속해서 미심쩍어하는 듯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대화가 시작된 김에 관산영에게 말했다.

“아까 봤던 그 마법무구라는 물건에 관련된 내용을 읽는 중이오. 그 구슬이 달린 나뭇가지와 표지에 이상한 문자가 쓰여 있는 두툼한 책 모두, 만졌을 때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고 되어 있구려. 혹시 귀하도 만져보셨소?”

“그것들에 왜 먼지가 안 쌓여 있었겠어?”

하긴, 청소하면서 꾸준히 만져왔을 것이다.

“아, 참. 그랬겠구려.”

“처음에는 그냥 만졌었는데, 그 후부터는 장갑을 끼고 만지고 있어. 장갑을 끼고 만지면 그나마 스산한 느낌이 덜한 편이어서.”

“허어, 정말로 그런 느낌이 난다니, 신기하구려.”

그렇게 대꾸하긴 했지만, 솔직히 아주 신기하지는 않다. 나는 은룡삭을 처음 만졌을 때도, 용마검을 처음 만졌을 때도,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나도 한번 만져볼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관산영이 물었다.

“왜? 만져보러 가게?”

“그렇소.”

그러자 관산영이 농담조로 말했다.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르는 거 아닌지 몰라.”

“기대하고 계시오. 아주 꽥 소리를 질러줄 테니.”

내 대꾸에 관산영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후……. 말로는 못 당하겠다니까.”

그녀를 뒤로하고 석문 앞으로 향했다.

불룩 튀어나온 반구형의 돌을 누르니 석문이 그르릉 소리를 내며 옆으로 열렸다.

냉방 안으로 들어서서 마법무구라는 물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먼저 구슬이 달린 나뭇가지를 들어보았다.

스으으으-

오, 느낌이 있다.

신투들이 왜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그 사실을 모른 채로 만졌다면 제법 놀랐을 것 같다.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책을 들어보았다.

스으으으-

오, 이것도 역시 느낌이 있다. 구슬이 달린 나뭇가지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책에 시험 삼아 공력을 주입해봤다.

고대 서쪽 대륙의 물건이라고 했으니 중원의 무공과는 딱히 관련이 없다. 그러니 반응이 있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주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놀라서 책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내가 주입한 공력을 책이 순식간에 쑥 빨아들여 버렸던 탓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놀란 와중에도 발목을 내밀어 바닥으로 낙하하는 책을 부드럽게 받았다. 그 후에 발을 들어 올려서 손으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일까.

시험 삼아 공력을 주입했더니 책이 그 공력을 곧바로 흡수해버리다니.

다시 한번 약간의 공력을 주입해봤다.

책은 역시나 내가 주입한 공력을 곧바로 흡수해버렸다.

이번에는 책을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고 구슬이 달린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도 공력을 주입했다.

나뭇가지 또한 내가 주입한 공력을 순식간에 빨아들여 버렸다.

참으로 황당한 물건들이 아닐 수 없다. 신기하기도 하다.

이쯤 되니 의아한 점이 있다.

신투들의 기록물에 공력을 흡수하는 현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만졌을 때 스산한 기분이 드는 현상은 기록해뒀으면서, 공력을 흡수하는 현상에 대한 기록은 없다니,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공력을 흡수하는 현상 쪽이 더 특이한데.

관산영도 언급하지 않았었다.

물론 그녀의 경우에는 나를 놀라게 할 생각으로 말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그녀가 이 현상에 대해 모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이번에는 오른손에 나뭇가지를, 왼손에는 책을 들어봤다.

둘 다 마법무구라고 하니, 두 개를 한꺼번에 들고 공력을 주입했을 때 혹시 달라지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이전에는 시험 삼아 공력을 조금씩만 주입했었는데 이번에는 단번에 많은 양을 강하게 주입해볼 작정이다. 그런데도 순식간에 빨아들일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혹시라도 이상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으면 즉시 공력을 끊고 두 물건을 손에서 놓아버릴 생각이다. 그러고는 발을 이용해서 구슬이 달린 나뭇가지만 받아낼 것이다.

책이야 그냥 떨어져도 상관없지만, 구슬은 깨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대 신투들이 오랜 기간 보관해 온 물품을 굳이 내가 깨뜨리고 싶지는 않다.

호흡을 정돈한 후 곧바로 양손의 물건에 회회심공의 공력을 대량 주입했다.

두 물건은 이번에도 역시 내 공력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양이 많아서인지 단번에 흡수하지는 못했다. 초반에 상당량을 흡수하고, 그 후부터는 소량을 일정하게 꾸준히 흡수하는 식이었다.

한데 정작 마법무구라는 물건들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 상당량의 공력을 빨아들였으니 모종의 변화가 있을 법한데 전혀 그런 게 없다. 말 그대로 내 기운만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다.

뭐야, 이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나는 급격하게 눈매를 좁혀야 했다.

눈앞에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투명한 암흑의 소용돌이다.

그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마치 꿈을 꿀 때처럼, 실제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뭔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암흑의 소용돌이는 점점 더 거대해지는 중이다.

소용돌이의 중심부는 아득한 공허의 느낌이라,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곧바로 양손의 물건을 놓을까 했다가 참았다.

당장 신체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도 아닌 데다가, 정신 또한 온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겨지면 천섬무로 즉시 대응하면 되리라.

어느 순간부턴가, 아득한 공허뿐이었던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빛의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의 점들은 계속 추가되며 주변으로 퍼져나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듯했다.

멋진 광경이어서 내심으로 감탄스러운 중에도 의아하다.

이 광경은 분명히 두 마법무구가 만들어내고 있는 광경일 텐데,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후, 반투명했던 암흑의 소용돌이는 점점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두 마법무구 모두, 더는 내 공력을 흡수하지 않았다.

확인 삼아 또다시 대량의 공력을 단번에 주입해봤다.

그러나 역시, 두 물건은 내 공력을 전혀 흡수하지 않았다. 이전에 이 두 물건이 내 기운을 감쪽같이 흡수했던 현상이 거짓이었던 것만 같다.

참으로 해괴하다.

나는 양손에 든 물건들을 들고 잠시 더 바라보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이후에는 황당했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방금 봤던 광경을 천천히 되짚었다. 뇌리에 제대로 담아두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을 마친 후 냉방을 벗어났다.

중앙의 큰 공간으로 나오자 관산영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물었다.

“스산한 기운, 느꼈어?”

“그렇소.”

“아쉽네. 꽥 소리를 못 들어서.”

관산영이 농담조로 말했고, 나는 대답 대신 웃음만 지어 보였다.

“공력을 쓰는 것 같던데, 두 물건에 주입해본 거지?”

“그렇소. 혹시라도 공력을 주입하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는지 궁금해서.”

내가 대꾸하자 관산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게 궁금했었지.”

관산영의 기색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투였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는 공력을 대량으로 주입하는 것 같던데, 그러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어?”

말하는 투를 보니 그녀도 대량의 공력을 주입해봤었던 모양이다. 누구라도 그 정도 시도는 해볼 만하다.

“하하, 혹시라도 공력이 부족했나 싶어서 말이오.”

내가 대꾸하자 관산영이 또다시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의 어조나 태도를 종합하면, 관산영의 경우 마법무구에 공력을 주입하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게 확실해 보인다.

역대 신투들의 기록에도 관련된 언급이 없었고 관산영의 태도도 저러한 걸 보면, 역시나 마법무구라는 물건들은 내게만 반응을 보였던 듯하다.

그래서 더 의문스럽다. 왤까.

회회심공으로 인해 형성된 내 공력이 완전히 중성적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번에도 내 혼에 깃든 칠채마주가 개입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관산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 중 하나겠지. 첫째, 우리가 쓰는 내공이라는 힘으로는 저 마법무구라는 물건들을 작동시킬 수 없다. 둘째,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마법무구들의 효력이 이미 다했다. 셋째, 고대 서쪽 대륙의 마법이라는 힘 자체가 상상 속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뭐, 대충 이 정도?”

그녀가 바로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세 번째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마 당신도 그럴 것 같고.”

안타깝게도 셋 다 틀렸소. 내가 겪어보니 그 마법무구라는 물건들에 뭔가 있긴 있는 것 같거든.

속내를 감추려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야 밝히는 건데, 귀하에게서 마법과 마법무구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미 개 풀 뜯어 먹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관산영이 웃었다.

다시 의자에 앉아서 전대 신투들의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식경 정도 지났을 때쯤 관산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책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이전 은신처에서 당신에게 죽게 될까 봐 두려웠어. 그 위기를 모면하려다 보니 이곳에 영약이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지. 그런 연유로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거고.”

관산영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은신처는 없어. 나한테 당신의 흥미를 끌 만한 패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은 거지. 그래서 앞으로 내 신세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거야. 당신의 손에 달린 일이니까.”

이에 한동안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대꾸해줬다.

“이곳에 영약이 있다는 귀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었소. 그간의 일정에서 귀하가 보여준 태도 또한 충분히 협조적이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내가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귀하는 자유요.”

관산영의 눈이 커지나 싶더니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역대 신투들의 은신처 두 곳을 알게 되고 기관 장치를 해제하는 법까지 알게 되긴 했으나, 이후에 내가 두 은신처에 드나들 일은 딱히 없을 것이오. 굳이 귀하의 재산까지 탐내야 할 정도로 궁색한 형편은 아니거든. 그냥 병장기 몇 점과 내 흥미를 끈 물건들 몇 가지 정도만 챙겨 갈 생각이오.”

관산영은 놀란 표정이었다. 내 말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조만간 헤어질 테니, 부디 그때까지 무모한 시도는 안 하셨으면 좋겠소.”

그러자 관산영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이 정도면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결말인데 뭐 하러 목숨 걸고 무모한 시도를 해? 가뜩이나 다 끝나가는 마당인데.”

이에 나도 그녀를 향해 짧게 두 차례 고개를 끄덕여준 후, 다시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관산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내 은신처 두 곳에 엄청난 재물이 쌓여 있는 걸 직접 봤잖아. 그런데도 그것들이 탐나지 않는 거야?”

“욕심이 아예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내가 가져가겠다고 말한 것들의 가치도 상당한 만큼, 그냥 이쯤에서 만족하려는 것이오.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 너무 부리다 보면 결국 탈이 난다는 게 내 지론이라서.”

관산영은 이번에도 놀란 표정이었다.

저럴 만도 하다. 내가 그녀를 죽이고 두 은신처의 재물을 모두 차지한다고 해도 아무 상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도둑을 죽이고 도둑의 재물을 차지하는 일인데 문제 될 게 뭐가 있겠는가.

관산영에게서 더 이상 말이 없었기에 나는 또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 후에 관산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말인데…….”

이에 내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머뭇머뭇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따라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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