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406화 (406/416)

내 안에 마교있다 406

눈매를 좁히며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나를 따라온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관산영이 대꾸했다.

“다, 당신의 장원에…….”

하, 어이가 없다.

뭐? 우리 장원에까지 기어들어 와? 오냐오냐해줬더니 이 여자가 정말.

피식 웃으며 대꾸해줬다.

“차라리 생선가게 주인한테 가서 고양이 한 마리 키울 생각 없냐고 물어보시지, 왜.”

말을 마친 후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 테니, 관산영도 더는 그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 후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던 중에 관산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 당연히 나를 못 믿을 거고, 가까이 두고 싶지도 않겠지. 내가 당신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테니까.”

이에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되물었다.

“잘 아는 분이 그런 터무니없는 소릴 하셨소?”

관산영에게서는 또다시 대꾸가 없었다.

개의치 않고 계속 책이나 읽으려 했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왜 갑자기 우리 장원에 오겠다고 한 걸까.

“어디, 이유나 들어봅시다. 왜 우리 장원에 오겠다는 건지.”

내가 관산영을 바라보며 묻자 그녀가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말했다.

“마교, 혈교, 사파가 연합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실제로 그들은 근래 귀주, 광서, 운남을 침공했었고, 무림맹은 겨우 수복했지. 그 과정에서 당신이 크게 활약한 거고. 어쨌거나 그 사안에서 중요한 사실은, 정마가 본격적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강호가 폭풍전야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겠지.”

저 정도는 정보력이 웬만큼만 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산영이 말을 이었다.

“강호의 상황이 이러하니 조만간 사파나 혈교 쪽에서 나한테 접촉해 올 거야. 본인들 편에 서기를 원하겠지. 나 한 사람이 무인으로서는 대단한 전력이 아닐지 몰라도, 군자금 쪽으로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쪽과 교류를 거의 안 했던 거기도 하고.”

전쟁에는 자금이 든다. 막대한 자금이 든다. 그렇기에 관산영이 가진 어마어마한 재산은 큰 도움이 될 게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마 간에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그쪽의 제안을 거절하면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어. 그러니 눈 밖에 나기 싫어서라도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가세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알게 된 만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서 얘기를 꺼내 본 거야.”

얘기를 들어 보니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물론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내게 접근하려는 수작일 가능성도 다분한 만큼, 끝까지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되겠지만.

관산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귀하의 말이 진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역시 귀하를 받아주기는 어려울 듯하오. 우리 장원에서 두루두루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언제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 모를 일이니.”

“뒤, 뒤통수라니……. 그럴 마음 전혀 없어.”

“없긴 뭘 없겠소. 귀하는 내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악감정? 아니야. 그런 감정, 안 갖고 있어.”

“에이. 말이 되는 소릴 하시오. 어떻게 없겠소? 귀하의 입장에서 따져 보면 나한테 잘못한 것도 없이 여태 구속당하고, 영약과 귀한 병장기, 보물 등을 강탈당한 상황인데.”

그러자 관산영이 잠시 시선을 천장에 둔 채로 호흡을 정돈하더니 다시금 내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영약은 알다시피 여자인 내가 먹어봐야 소용없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따로 챙겨 주고 싶은 사내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러니 계속 저곳에 놔뒀을 거고, 그렇게 약효만 점점 떨어져 갔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당신이 먹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해.”

이에 피식 웃으며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후! 내가 먹는 게 낫다니, 웃기는구려. 너무 수가 빤히 보인다는 생각, 안 드시오?”

그러자 관산영이 나를 잠시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시시껄렁한 사내가 먹는 것보다는 미래의 천하제일인이 먹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한 말인데, 그게 그렇게 웃긴가……?”

적어도 현재 그녀의 표정만큼은,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쨌거나 그냥 넘어가면 그녀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니, 한마디는 해줘야 한다.

“미래의 천하제일인은 무슨. 가만 보면 귀하는 지나치게 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구려.”

“당신하고 지내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 근거도 충분한 것 같고.”

이에 내가 또다시 피식 웃어 보이자 관산영이 말했다.

“병장기들은 선대부터 계속 보관돼 온 거라 처분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관리하던 것들이야. 솔직히, 그것들을 관리하면서 드는 감정은 회의감이었어. 이 좋은 병장기들이 누군가에게 쓰이는 일 없이, 이곳에 그냥 진열된 채로 계속 후대에 전해지기만 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것들을 사용할 일도 없거든. 그러던 차에 당신이 가져가게 된 거고.”

관산영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내 보법을 교정해줬잖아. 나는 교정된 보법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연습을 통해 확인까지 했지. 그런 수준의 무공 교정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그 가치도 매우 클 거 아냐. 나는 그냥 그 값이라고 여기고 있어.”

관산영은 연주상단에서 마련해준 쾌속선 안에서 내가 교정해준 보법을 열심히 연습했었다. 그리고 연습하면 할수록 만족스러워했었다.

“그리고 당신은 내 은신처에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잖아. 당신이 그 병장기들을 가져간다고 해도 별로 티도 안 날 정도지.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악감정이 생길까?”

듣고 보니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경계심을 풀 정도는 아니지만.

관산영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소. 그래도 귀하를 우리 장원에 들이는 건, 나로서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오. 최악의 경우 귀하가 우리 장원의 누군가를 납치할 수도 있는 거고, 누군가를 인질로 잡고 나와 협상하려 들 수도 있는 거니까.”

“나, 난 그런 짓 안 해!”

관산영이 갑자기 언성을 높인 바람에 내심으로 살짝 놀랐다.

내가 말없이 시선을 두자 그녀가 이내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다음 대의 신투란 말이야. 신투는 대도일 수 있고 의적일 순 있어도, 강도나 사기꾼이어서는 안 돼. 그게 우리 사문의 철칙이라고. 당신이 내 부탁을 거절해도 상관없는데, 나를 납치범이나 인질범 등과 같은 부류로 여기지는 말아줘.”

울먹이고 있다. 매우 억울하다는 투다.

관산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를 함부로 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어. 나를 인간으로서, 나아가 여인으로서 배려해주기까지 했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 것뿐이라고. 정과 마의 어느 편에든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런 사람의 편에 서자, 하는 생각…….”

말하는 내내 목소리가 일렁이기는 했지만, 관산영은 끝내 울음을 참아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런 관산영을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납치, 인질에 관련된 언급은 사과하겠소. 귀하와 역대 신투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소. 내 입장에서는 매우 방어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보니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소.”

관산영은 내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로 말없이 고개만 한 차례 끄덕여 보였다.

나는 잠시 더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후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는 더 이상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그 후로 한 시진 반쯤 지났을까.

관산영의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앗……, 깜빡 잠들었던 것 같네. 시간 얼마나 지났어?”

실제로 관산영은 점혈된 채로 잠들었었다.

“대화가 끝난 후로 한 시진 반쯤 지난 것 같소.”

“아하……. 근데 여태 책 읽고 있었던 거야?”

이에 나는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참고로 신투들의 기록은 거의 다 훑어본 상태다.

잠시 후에 관산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 배고파.”

“아니, 일어나자마자 말이오?”

그녀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 그러네. 이상하게.”

실은 나도 출출하던 차였다.

관산영에게 말했다.

“아까 선원들한테서 받은 요리들, 데워서 먹읍시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은신처 중앙 공간의 구조는 이전의 은신처와 비슷하여, 나는 신속하게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은 후 관산영의 점혈을 풀어주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의 점혈은 없을 것이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환한 표정을 지어가던 그녀가 이내 눈매를 좁히더니 물었다.

“떠, 떠나려는 거야……?”

“그렇소. 이곳은 집 근처나 다름없어서 나서기만 하면 금방 갈 수 있소.”

“아직 책 다 못 읽……. 아, 당신이라면 다 읽었겠구나.”

“조금 남긴 했소. 그걸 마저 읽은 후에 갈 준비를 할 생각이오.”

“아…….”

아쉬워하는 기색이다. 내가 가면 그녀는 자유인데도.

점혈을 모두 풀어준 후 식탁 앞으로 가서 앉자 관산영도 다가오더니 내 앞쪽에 앉았다.

그녀가 식탁 위에 차려진 요리들을 확인하더니 물었다.

“나, 한잔해도 돼?”

“일어나자마자 그놈의 술타령은.”

“원래는 안 이래. 그냥 지금은 좀……, 땡기네.”

이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안 되오.”

그러자 관산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녀에게 대꾸했다.

“취한 상태로 우리 장원에 첫발을 들이게 할 수는 없잖소. 장원 사람들하고 인사도 나눠야 할 텐데.”

관산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보더니 말했다.

“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렇소.”

“날……, 믿어주는 거야?”

“나는 사람을 그리 쉽게 믿지 않소. 그저, 귀하가 적들의 편에 서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하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플 수 있다고 판단한 것뿐이오.”

“그래도 나를 믿지 않는다면 장원으로 데려갈 리도 없는 거잖아.”

“나는 사람을 그리 쉽게 믿지 않소.”

내가 일부러 같은 말을 반복하자 관산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윽고 내가 식사를 시작하자 관산영도 숟가락을 들었다.

그녀는 식사하는 내내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역대 신투들의 기록물을 거의 다 읽어보니 그들이 추구해온 가치관에 대해서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신투들이 훔치는 행위 외에는 인간으로서든 무인으로서든, 최소한의 상식선을 지키려 노력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가령, 관의척이 납치범으로부터 파사국 대부호의 아들을 구해준 일화도 신투들의 그러한 가치관이 잘 드러난 예 중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도둑질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거지만.

어쨌거나 그런 맥락에서, 아까 내가 납치, 인질 얘기를 꺼냈을 때 관산영이 억울해하던 모습도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관산영을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가뜩이나 그녀는 내게 상당량의 영약을 제공한 셈이니, 그에 대한 보답 차원이기도 하다.

도둑인 그녀도 강도질은 안 한다며 억울해하는데, 내가 강도질 비슷한 걸 하고 그냥 입 닦을 수는 없잖은가.

그리고 어차피 송풍장에는 조만간 정사지간의 무인들이 대거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북해빙궁의 무인들이다. 심지어 천마신교의 인물인 양설진란도 송풍장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기에 정사지간의 무인 한 명 더 추가되는 것뿐이다.

식사가 마무리된 후에 말했다.

“사업 동료라고 합시다. 차기 신투 내정자라고 본인을 소개하실 게 아니면.”

“푸훗! 응.”

“귀하도 귀하가 우리 장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적측 세력에 알리고 싶지 않을 테니, 면구 쓰시고 이름도 가명을 쓰시고.”

“그래야겠지. 혹여 언젠가 그들이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시기가 최대한 늦춰지게끔.”

“그리고 장원에 가면 웬만하면 외부 출타는 자제하셨으면 좋겠소. 귀하가 출타할 때마다 번번이 의심하고 싶지 않소.”

“무슨 말인지 알아. 사실 훔칠 일이 없으면 장물도 없고, 장물이 없으면 출타할 일도 없어. 혹여 필요한 게 있으면 당신에게 말을 할게. 은신처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으면 당신과 같이 움직이든지 할 거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산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의 장원에서 같이 지내게 된다면 사문의 무공을 수정, 보완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전에 당신이 그랬었지. 당대 최고의 무학이라고 해도 후대에서 수정, 보완, 발전시키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내가 익힌 무공도 과거 수백 년간 누군가가 시대에 맞춰서 꾸준히 완성도를 높여 온 결과물이라고.”

관산영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백번 맞는 말이더라고. 그 후에 당신이 교정해준 보법을 수련하다 보니 더 확신하게 됐지. 이제 이렇듯 당신 곁에서 지낼 기회가 생겼으니, 우리 사문의 무공을 다시금 수정, 보완, 발전시키는 일을 내 사명으로 여기려고. 괜히 당신 같은 천재와 이렇듯 인연이 닿은 건 아닐 테니까. 내 후대에도 이런 기회가 오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거, 천재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알았어. 알았어.”

웃으며 그렇게 대꾸한 관산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당신이 시간이 될 때, 당신과 함께 우리 사문의 무공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싶어. 그 결과를 토대로 수련하며 조용히 지낼 계획이야. 폐관수련이라는 느낌으로. 즉, 출타할 일이 딱히 없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거야.”

“그런 식이면 내가 귀하의 독문무공을 다 파악하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은 거요?”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안 하면 우리 사문의 무공은 이대로 정체될 테니.”

“그러다 귀하의 독문무공이 다른 곳에 퍼지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런 걸 의심하려 했으면 애초에 당신을 따라가겠다는 얘기 자체를 안 꺼냈겠지.”

“나를 과하게 믿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시오. 나도 귀하 안 믿으니까.”

“알았어어. 알았다고오.”

관산영이 졌다는 듯 그렇게 대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해.”

“모쪼록 오해 살 일, 하지 마시기 바라겠소.”

“알았다니까.”

또다시 졌다는 듯 그렇게 대꾸한 관산영이 미소 띤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먹은 거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책, 마저 읽어.”

“고맙소.”

관산영은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의자로 향했다.

한 식경쯤 지났을 무렵, 독서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책들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놓은 후 떠날 준비를 했다. 이곳 은신처에서 눈에 담아 두었던 보물 몇 점과 병장기 몇 점을 챙기고, 파사국의 영약인 ‘대지 요정의 눈물’도 챙겼다.

준비를 마치고 나서 잠시 기다리자 관산영이 큰 행낭 두 개를 양손에 든 채로 나타났다. 그런데 용모가 변해 있었다. 면구를 착용한 것이다.

예쁘장한 용모인데, 원래의 미모보다는 한참 못하다. 면구는 정교하게 제작된 최상품인 듯했다.

관산영이 물었다.

“어때?”

바뀐 용모에 관해 묻는 것이다.

“괜찮구려. 못 알아볼 뻔했소.”

내가 대꾸하자 관산영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짐이 많구려.”

“출타하지 않고 장원 안에서만 머문다고 생각하니까 이것저것 더 챙기게 되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산영이 물었다.

“지금쯤이면 새벽이려나?”

“그럴 것이오. 가뜩이나 밤이 긴 계절이니.”

“어떻게 이동할 거야? 배로? 아니면 경공으로?”

“경공으로 갈 것이오.”

“그러면 서둘러 가는 게 좋겠네. 날 밝기 전에.”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갑시다.”

그러자 관산영이 먼저 입수했고, 나도 뒤따라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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