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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410화 (410/416)

내 안에 마교있다 410

“왜 그래?”

옆에서 걷던 관산영의 질문이다. 내가 멈칫했기에 저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식당 안쪽에만 신경을 집중한 채로 대꾸하지 않았다.

곧 식당 안에서 운천흠의 육성이 들렸다.

“나는 일어설 테니 이제부터는 편하게들 먹고 마시게.”

선원들에게 한 말이다.

“아……, 예. 알겠습니다.”

선원 중 한 명이 대꾸하는 소리가 들린 후, 운천흠의 기척이 식당의 문 쪽으로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식당의 문이 열리며 운천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예를 표하기 위해 포권 자세를 취하기 시작할 때쯤, 그가 말했다.

“아, 예는 되었네.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예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거든.”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서의 내 활약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광서 수복전단의 단주인 종리표도, 귀주 수복전단의 단주인 서문범도, 내 활약상을 무림맹에 상세히 보고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니 운천흠은 당연히 내 활약상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 하오나…….”

“내가 되었다면 된 걸세.”

“예…….”

무림맹주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곧바로 운천흠에게 물었다.

“한데 맹주님께서 어찌 이 누추한 곳에 계십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누추하다니? 이렇게 좋은 곳인데.”

짧게 대꾸한 운천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모두를 태우고 온 무림맹의 배에 같이 타고 왔다네.”

“예에에? 하오나, 맹주님께서 같이 오셨다는 얘기를 아무도 안 했는데…….”

무려 맹주가 같이 왔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얘기가 없었겠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예에……?”

“선원실에 숨어서 왔거든. 어쩔 수 없었지.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내 소재도 극비로 관리되어야 하거든. 그래서 결국 우리 편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었던 거고.”

맞는 말이긴 하다.

“한데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시면서 이곳에…….”

“원래 모두를 무림맹으로 초대해서 깜짝 연회를 개최하려고 했었네. 어차피 뱃길에서 금방이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 한데 가장 보고 싶었던 송 공자가 없다는 게 아니겠나. 개인사로 인해 중경에서부터 따로 움직였다지? 그러니 어쩌겠나. 이렇듯 내가 직접 찾아올 수밖에.”

“그, 그런 계획이 있으셨는지 몰랐습니다. 송구합니다.”

“뭐, 미리 알리지 않았었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운천흠이 자상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송 공자를 보고 싶었네. 꼭 직접 보고, 송 공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각 수복 전단 모두 열악한 여건이었음을 잘 알고 있네. 본맹으로서도 전력을 넉넉하게 지원할 수가 없는 형편이어서, 그야말로 회의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이었지. 그 와중에 광서에서 들려오는 소식들만이 우리에게는 위안이었네. 나아가 희망이었고.”

운천흠이 말을 이었다.

“보고받을 때마다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르네. 송풍장의 전력을 믿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주더군. 그리고 보고가 이어질 때마다, 핵심적인 활약을 하는 이가 송 공자임을 점점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네. 나중에 수복전단주들로부터 올라온 최종 보고서를 통해 그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고.”

역시나 종리표와 서문범이 내 활약상을 자세히 써넣은 모양이다.

운천흠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맹주님께서는 매우 바쁘실 텐데, 굳이 직접 이곳까지 오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냥 저를 호출하셨으면 제가 마땅히 본맹으로 찾아뵀을 텐데…….”

“나도 바깥 공기 좀 쐬고 싶었네. 몇 달 전부터 본맹의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몇 달 전이란 아마도 와랄족의 침공 시점 근처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줄곧 본맹 안에서만 머물렀다면, 충분히 답답했을 만하다.

어쨌거나 지금껏 대화를 나눠보니, 나를 대하는 운천흠의 말투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운천흠과 대화를 나눴던 건 몇 년 전, 본맹에서였다.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했을 당시다.

그 당시 운천흠은 내게 편하게 하대했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말을 높이고 있다.

그때는 나를 관도로 대했었다면, 지금은 나를 한 명의 후배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대강의 인사가 끝난 듯하여 운천흠을 연회장으로 안내하려던 순간이었다.

그가 내 옆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관산영에게 말을 걸었다.

“소저, 괜찮소?”

이에 고개를 돌려 관산영을 바라본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산영이 벌벌 떨고 있었던 탓이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운천흠 때문이다.

엄밀히 분류하면 사파인인 그녀가, 백도의 절대자이자 현 강호의 천하제일인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도 단 두 걸음 거리에.

곧장 운천흠에게 말했다.

“아, 제 지인입니다. 투자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소규모긴 합니다만.”

“오호, 그렇군.”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꾸한 운천흠이 관산영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짧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소. 운 아무개요.”

운천흠 정도면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관산영의 내공 이력을 대강은 추측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른 척하며 평범하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관산영이 예를 취하며 대꾸했다.

“매매, 맹주님을 뵈옵니다. 과, 아, 그, 그러니까, 이, 이교영이라 합니다.”

관산영은 방금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본명을 말할 뻔했다. 많이 당황한 모습이라,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다.

“허허, 반갑소.”

“저, 저야말로 바, 반갑고 영광스럽습니다.”

마침 인사도 끝났겠다, 관산영을 도울 겸 해서 운천흠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연회장으로 가시지요. 다들 깜짝 놀랄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러지.”

운천흠과 함께 연회장을 향해 걷고 있자니 문득 송천광 생각이 난다.

오늘도 지나친 저자세에서 남발하는 특유의 ‘아이고’ 소리를 수십 번은 듣게 될 텐데, 그 생각을 하니 벌써 창피해지는 느낌이다.

걷던 중에 운천흠의 전음이 들려왔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네.]

[하문하십시오.]

[방금, 내 존재를 어떻게 알아챘지?]

관산영에 관해 물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하긴, 운천흠의 입장에서는 저게 더 궁금할 것이다.

이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대꾸했다.

[저도 우연히 알아챈 것에 가깝기에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히 조화로운데, 그 조화가 지나치게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점이 오히려 부조화로 다가왔던 듯합니다.]

[허……! 절정의 후반 수준에서 그런 걸 느꼈다고……?]

기가 찬다는 표정이다. 알려진 내 경지가 절정의 후반이다 보니 저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상태로 잠시 나를 보며 걷던 운천흠이 순간적으로 눈매를 좁히는가 싶더니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이에 나도 걸음을 멈췄고, 뒤따라오던 관산영도 걸음을 멈췄다.

운천흠이 놀란 표정으로 전음을 보내왔다.

[자네, 최절정이로군……!]

운천흠은 당대의 천하제일인이자 초절정고수다. 그렇다 보니 남들은 알아채지 못한 것을 알아챈 것이다.

나는 민망함을 담아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운천흠이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언제 최절정에 오른 건가?]

[근래의 일이었습니다.]

[근래라……. 송 공자가 올해 나이가 몇이었지?]

[……스물셋입니다.]

[스물셋? 허! 그 나이에 최절정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운천흠이 이내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허……! 허허허! 허허허헛!”

황당해하는 감정도 읽히고, 신기해하는 감정도 읽히고, 대견스러워하는 감정도 읽힌다.

잠시 그 상태로 나를 바라보던 운천흠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그렇다고 해도 신기하군. 말했듯, 아까와 비슷한 상황에서 내 존재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백도 내에 다섯 명도 되지 않는다네. 즉, 최절정고수라고 해도 비슷한 상황에서 내 존재를 알아채기는 어렵다는 뜻이네. 실제로 단목세가주도, 검후도, 남궁 지부장도, 모두 내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지. 한데 송 공자는 알아챈 걸세.]

[말씀드렸듯 저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느낌이 들었던 것뿐이라…….]

내가 대꾸하자 운천흠은 한동안 신기하다는 듯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잠시 후, 그가 전음으로 물었다.

[자네가 최절정에 올랐다는 사실을 또 누가 아는가?]

[제 입으로 누군가에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아직은 눈치챈 분도 없는 듯합니다.]

그러자 운천흠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던가? 그 어린 나이에?]

[예, 딱히…….]

그러자 운천흠이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잘했네. 이왕 감춰온 것, 앞으로도 감추게. 그편이 송 공자에게도, 나아가 우리 백도에도 더 도움이 될 테니.]

[그리하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운천흠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허! 허허허허!”

더없이 기분 좋아 보이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운천흠은 배의 선원실에서도 본인의 거대한 존재감을 감추기 위해 인근의 모든 기운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한데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은 그 사실을 못 알아챘다.

그 세 사람도 최절정고수고 경지 자체는 나보다 더 높은 무인들인데, 왜 나만 운천흠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던 걸까.

아마도 미약하게나마 정수리를 통해 기운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그 현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래 초절정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 내 경우에는 최절정 단계에서 이미 일어나는 중이니까.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보아하니 중앙에 있는 타원형의 대형 원탁과 그 주변의 원탁들에는 주로 어른들이 모여 있고, 외곽의 원탁들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앞서서 들어서자 중앙의 타원형 원탁에 앉아 있던 송천광과 단목진이 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이제 오느냐? 어서 오너라.”

“오, 얼른 오시게, 송 공자. 다들 기다리…….”

송천광의 옆에서 그렇게 말하던 단목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뒤따라 들어온 운천흠을 발견한 것이다.

이어서 많은 이들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들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와중에도 송천광과 이청오의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인다. 두 사람은 운천흠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보니 사람들의 저러한 반응이 의아한 것이다.

“매, 맹주님……!”

“어, 어떻게 맹주님께서 이곳에……!”

단목진과 남궁찬이 차례로 그렇게 외쳤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 가운데, 남궁찬이 운천흠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가 곧 운천흠의 앞에 반듯하게 서더니 절도 있는 동작으로 주먹을 가슴에 대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충忠!”

큰 목소리로 외친 건 선창의 의미다.

“추웅……!”

역시나 무림맹의 정식 조직에 소속된 나머지 인원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잠룡관도들까지도.

그러자 운천흠도 주먹을 가슴에 댔다가 뗐다. 그러더니 말했다.

“모두 예를 거두시오.”

이에 다들 주먹을 내리자 운천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듯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소.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었으니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리겠소.”

“양해라니,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검후 문숙경이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송천광이 우리 쪽으로 서둘러 다가오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지금껏 송천광이 놀란 모습을 여러 차례 봤는데, 지금이 가장 놀란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뒤따라서 다가오는 이청오도 매우 놀란 표정이다.

운천흠 앞에서 주춤거리던 송천광이 말했다.

“저저저저, 정말……, 매매, 맹주님이신 겁니까?”

저기요, 아버지. 말 좀 적당히 더듬으시라고요.

다소 창피하기는 하나, 송천광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송천광에게 있어 무림맹주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지고한 존재였을 텐데, 그런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거니까.

운천흠이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그렇소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오! 이이이이이, 이런 일이……! 세, 세상에나……!”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이다. 한데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라서, 저러다가 졸도하는 건 아닌지 염려도 된다. 참고로 한순간에 ‘아이고’ 소리가 세 번이나 나왔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

운천흠이 말했다.

“아마 귀하께서는 송 공자의 부친인 송 장주이신 듯한데…….”

내 얼굴이 송천광을 닮았으니 당연히 저렇게 추측할 만하다.

“그그그그, 그러합니다……! 제, 제가 바로 유겸이 애,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제발 아버지, 말 좀 그만 더듬으시라고요. 흥분도 좀 가라앉히시고요.

“누가 있어 송 공자와 같은 대단한 인재를 키워냈는지 궁금했는데, 바로 송 장주셨군요. 이렇듯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아이고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뒷바라지만 조금 했을 뿐, 저 아이가 혼자 알아서 잘 큰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리를 낳아서 키우는 건 이리이고, 범을 낳아서 키우는 건 범 아니겠습니까.”

송천광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퍼졌다.

“버, 버, 범……!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허허헛! 허허허허허헛!”

그러자 송천광의 뒤에 서 있던 이청오가 작은 목소리로 송천광에게 말했다.

“맹주님을 계속 서 계시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어서 자리로 모셔야지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 그렇지, 그렇지.”

이청오에게 대꾸한 송천광이 운천흠에게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맹주님. 어서 자리로 가시지요. 이렇듯 모실 수 있어서 영광스럽습니다.”

“허헛, 영광이라니,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어서 송천광이 운천흠을 중앙의 타원형 원탁으로 안내했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이동하는 길에 운천흠은 허죽신, 원을태, 촉홍결, 정우립과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운천흠이 노인들에게 매우 깍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허죽신과 원을태에게 따로 인사했다. 두 사람 모두 친손자라도 대하듯 매우 반갑게 나를 맞아줬다.

타원형 원탁의 중앙에 운천흠이 자리했고, 그의 왼쪽에 송천광과 이청오가 앉았다. 오른쪽에는 허죽신,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이 앉았다.

운천흠의 맞은편에 앉은 이는 제갈수광이다.

제갈수광의 왼쪽에는 남궁묵, 육화현, 묘청상, 장호산이 앉았고, 오른쪽에는 나와 송유하와 임려현이 앉았다.

운천흠의 맞은편에 앉은 이들은 모두,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서 활약한 특무강습대와 특수전투수행반의 지휘부다. 송유하의 경우에는 가족이기에 같이 자리한 것이고.

운천흠은 먼저, 초면인 이청오와 인사를 나눴다.

이청오도 상당히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첫 대면을 잘 마쳤다. 송천광처럼 말을 더듬는 일도 없었다. 역시나 믿음직하다.

이후에는 운천흠의 시선이 송유하 쪽으로 향했다. 송유하와도 초면인 탓이다.

송천광이 운천흠에게 말했다.

“허헛, 제 딸아이입니다.”

그러자 송유하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더니 운천흠에게 예를 취했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송유하라 합니다.”

“만나서 반갑네, 송 소저. 그래, 이제 앉게.”

송유하가 자리에 앉자 운천흠이 송천광에게 말했다.

“송 공자나, 송 소저나, 부친을 닮아 인물들이 빼어나군요.”

“허허헛. 저나, 저 아이들이나, 조상님 덕분입지요.”

운천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제갈수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송 소저의 활약도 상당했다지? 특히 궁술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던데, 명궁이 보기에는 어떤가, 제갈 교관?”

그 말을 들은 송유하는 놀란 기색이었다. 맹주가 이미 자신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운천흠은 당연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궁술을 통한 활약도를 따지면 송유하가 제갈수광 다음이기 때문이다.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 관련된 보고를 수도 없이 받았을 운천흠이 송유하의 그러한 활약에 대해 모를 리 없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적어도 저를 넘어서는 명궁이 될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극찬이다.

“허어, 그 정도인가……?”

운천흠이 놀라워하며 그렇게 대꾸했고, 그 옆에 있는 송천광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그렇지는…….”

송유하가 그렇게 대꾸할 때쯤, 제갈수광이 말했다.

“아니, 송유하 넌 분명히 그렇게 될 거다.”

확신하는 말투라, 송유하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민망해하며 시선을 내렸다.

운천흠이 미소 띤 얼굴로 송유하를 바라보다가 이내 정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정말 고생 많았네, 제갈 교관. 남궁 반장도, 육 조장도, 묘 조장도.”

거기까지 말한 운천흠이 임려현 쪽으로도 시선을 돌리더니 말을 보탰다.

“임 후배님도.”

임려현이 고개를 한 차례 숙였다가 들었다.

운천흠이 앞에 앉아 있는 우리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모두를 볼 면목이 없네. 결국 극도로 위험한 작전에, 비정규 전력인 자네들을, 별다른 지원도 없이 투입한 꼴이니. 물론, 마음 같아서는 처음부터 전력을 더 탄탄하게 구성해주고 싶었다네. 한데 도저히 그럴 여력이 안 되더군. 그 일에 관련해서 우리를 탓해도 할 말이 없네.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일세.”

“맹에 여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저희라고 몰랐겠습니까.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제갈수광이 대답하자 운천흠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짧게 대꾸한 운천흠이 우리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그 미안함을 내 입으로 직접 전하고 싶었네. 그래서 이렇듯 찾아온 걸세. 아울러 내가 자네들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도 직접 전하고 싶었고…….”

순간적으로 운천흠의 눈에 물기가 많아진 저 모습이, 내 눈에만 보이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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