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11
남궁찬이 운천흠에게 말했다.
“직접 말씀하시고 싶었으면 그냥 저희를 맹으로 부르시지, 굳이 먼 길을 오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아, 송 공자가 중경에서 이탈했다고 들었거든. 송 공자는 이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서 손꼽히는 활약을 한 당사자인데, 송 공자 없이 이런 자리를 갖는 건 너무 아쉽잖나.”
그러자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우리 송유겸이가 어찌나 잘나가는지, 맹주님마저 멀리까지 행차하시게 만드는군.”
“아하하, 그, 그게, 저도 맹주님의 뜻을 미리 알았다면 중간에 이탈하지 않았을 겁니다. 송구합니다. 아하하…….”
물론 대답만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관산영을 추적했을 테니까.
운천흠이 말했다.
“허헛. 송 공자를 나무랄 일은 아닐세. 덕분에 나도 몇 달 만에 본맹을 벗어나서 바람을 쐬고 있잖나. 이렇듯 송풍장에도 와 보고, 송 장주와 인사도 하고, 다른 선배님들도 뵙고, 파릇파릇한 후배들도 가까이에서 보고.”
그러자 남궁찬이 운천흠에게 물었다.
“한데 이곳에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리고 호위나 수행원은…….”
“아, 남궁 지부장과 같은 배에 타고 왔네. 호위나 수행원은 없이 왔고.”
“예에?”
다들 깜짝 놀라는 가운데, 운천흠이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운천흠의 설명이 끝나자 남궁찬이 물었다.
“선원실에 숨어서 오셨다니……,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불편한 거 없었네. 선원들이 불편했겠지.”
그러자 단목진이 말했다.
“맹주께서 같은 배에 타고 계셨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문숙경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어쨌거나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의 경우에는 최절정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맹주의 존재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때쯤, 연회장의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반가운 얼굴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세 명의 아기 엄마들이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세 명의 애 엄마 중에서 가장 먼저 다가온 이는 윤단영이었다. 아들인 제갈길을 안아 든 채다.
“사숙!”
운천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윤단영을 맞이했다.
“오오, 이게 누구야! 윤 사질이로군!”
공적인 자리가 아니니 호칭이 사숙, 사질이다.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사숙께서 이곳에 방문하셨다니……!”
“허허헛!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다. 그나저나 이 아이로구나?”
“예, 사숙. 길이에요.”
짧게 대꾸한 윤단영이 제갈길에게 말했다.
“길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아, 아영하에…….”
제갈길의 인사를 받은 운천흠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어이쿠! 잘하는구나! 어디, 이리 와 보자, 우리 길이.”
운천흠이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내밀자 윤단영이 제갈길을 건넸다.
곧 제갈길을 안아 든 운천흠이 행복에 겨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어이쿠, 의젓하구나! 대장부가 되겠어! 용모도 다행히 아빠보다는 엄마를 닮…….”
거기까지 말하던 운천흠이 제갈수광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크흠! 허헛, 농담일세.”
“진담이셔도 딱히 상관없습니다.”
제갈수광이 특유의 사무적인 어조로 그렇게 대꾸했다.
운천흠이 제갈길을 천천히 들썩들썩해주며 말했다.
“우리 길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 알았지?”
“우웅…….”
“길아, ‘예’라고 해야지.”
윤단영이 그렇게 말했고 운천흠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어서 이세옥이 아기를 안은 채로 운천흠에게 인사를 건넸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저는…….”
“알고 있네. 당연히 알지. 이세옥 교관 아닌가. 그 아이는 장 교관과의 아이일 테고.”
이세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맹주가 자신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다.
운천흠이 말했다.
“사대지맹 잠룡관 교관들의 이름은 다 알고 있네. 가뜩이나 이 교관과 장 교관은 기동타격조로서도 크게 활약했었는데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 그나저나 이 아이의 이름은 어찌 되는고?”
“조휘입니다.”
그러자 운천흠이 장조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휘. 휘아로구나. 어디, 휘아도 한번 안아볼까?”
이세옥이 장조휘를 운천흠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낯을 좀 가려서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혹여 울어도 괘념치 마십시오.”
곧 운천흠이 장조휘를 안아 들었다.
“너는 휘아로구나. 반갑다, 반가워.”
“으으으으응.”
장조휘는 벌써 울 기세였다.
“어이쿠, 낯선 게냐? 무서운 게야?”
“으애애애애애앵.”
결국 장조휘가 울기 시작하자 운천흠이 달래듯 들썩들썩 해줬다. 그런데도 장조휘는 계속 우는 소리를 내며 이세옥 쪽으로 몸을 비틀 뿐이었다.
“그래, 그래, 그래. 엄마 품이 편할 때지. 허허헛.”
결국 운천흠이 이세옥에게 장조휘를 건넸다.
그제야 장조휘는 울음을 그쳤다.
이세옥이 아쉬워하며 장조휘에게 말했다.
“에구구, 맹주님에게 안겨보는 호사를 그렇게 빨리 걷어차면 어떻게 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다고.”
“허허헛,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 게지, 뭘.”
그렇게 대꾸한 운천흠의 시선이 이번에는 이세옥의 왼쪽 아래로 향했다. 진양옥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송유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 제 부인과 늦둥이 딸아이입니다.”
송천광이 그렇게 말하자 진양옥이 운천흠에게 공손히 예를 취했습니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오, 반갑소, 부인.”
그러자 진양옥이 송유림에게 말했다.
“자, 림아도 인사해야지? ‘맹주님, 안녕하세요.’ 해.”
“맹주님?”
송유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진양옥이 말했다.
“응. 맹주님.”
곧 송유림이 양손을 모아 예를 취하는 자세로 운천흠에게 인사했다.
“맹주님, 안녕하세여어.”
그러자 운천흠이 송유림과 눈높이를 맞춘 채로 구부려 앉더니 말했다.
“어이쿠우, 이렇게 예쁜 아이가 다 있구나!”
저 감탄이 진심임을 나는 안다.
다름 아닌 송유림이니까.
“어디, 림아도 할아버지가 한번 안아줄까?”
다른 아기들도 안아줬으니 저렇게 물은 것이다.
“응!”
송유림이 거침없이 대꾸하자 진양옥이 말했다.
“‘예.’ 해야지.”
“네!”
그러자 운천흠이 송유림을 안더니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웃쌰!”
“꺄아아! 헤헤헤헷!”
송유림이 꺄르르 웃을수록 운천흠의 웃음도 더 환해졌다.
곧 운천흠이 송유림을 내려서 품에 안자, 송유림도 양팔로 운천흠을 감쌌다.
“히히히.”
“허허허헛!”
운천흠의 얼굴에는 완전히 함박웃음이 걸렸다.
그가 송유림을 안은 채로 송천광과 진양옥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다 있구려.”
“허헛, 과찬이십니다.”
“아니, 과찬 아니오, 진심이오. 송 장주께서는 림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겠소이다.”
“허헛, 그, 그렇긴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단목진이 말했다.
“저도 어서 가서 딸아이를 보고 싶군요. 이곳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단목연을 말하는 것이다.
운천흠이 단목진에게 말했다.
“아, 참! 단목 가주에게도 늦둥이 따님이 있다고 하셨었지!”
“그렇습니다.”
“많이 보고 싶으시겠구려.”
“곧 보게 되겠지요.”
운천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또다시 연회장의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유영평과 유진금인데, 나머지 한 명이 청여홍이다.
청여홍이 이 시간에 웬일일까.
곧장 세 사람을 우리 쪽으로 오게 한 후, 유영평부터 소개했다.
“저를 도와주고 계신 유 총관님입니다.”
“오, 반갑소이다!”
운천흠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유영평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유영평이라 합니다. 맹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허허헛, 영광이라니, 별말씀을.”
이에 운천흠에게 말했다.
“유 총관님은 임 선배님의 부군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운천흠이 임려현과 유영평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하! 그랬구려……!”
반응을 보아하니 임려현과 유영평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느낌이다. 운천흠도 임려현이 신룡대의 조장 직을 마다하고 조직을 떠나간 이유에 대해 대강은 아는 게 아닐까 싶다.
“더욱 반갑소.”
운천흠의 말에 유영평이 대꾸했다.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대꾸한 유영평이 유단금에게 말했다.
“너도 맹주님께 인사드리려무나.”
그러자 유단금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매, 맹주님을 뵈옵니다. 유, 유단금이라 합니다.”
“반갑구나. 착하고 예쁘게 생긴 소저로군.”
그러자 유단금이 볼을 붉히며 유영평의 뒤쪽으로 몸을 반쯤 숨겼다.
유영평이 말했다.
“허헛,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라.”
그 말에 운천흠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내가 청여홍에게 손짓하자 그녀가 의미를 알아듣고는 다가와서 운천흠에게 인사했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저는 광동 출신의 청여홍이라 합니다.”
“오호, 소저가 바로 청여홍 소저였군.”
그 말에 청여홍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저를 아시는지요?”
“알지. 광동 연주상단의 장녀 아니신가.”
“그,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저를…….”
광동의 연주상단이 대상단이기는 해도, 무림맹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 장녀의 이름까지 기억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청여홍의 입장에서도 의아할 수밖에.
“소저의 장원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관한 기록, 다 읽어봤으니까.”
청여홍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반응했다.
“아……!”
하긴, 청여홍의 장원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연히 운천흠에게도 보고가 올라갔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사건에 휘말린 인원 중에는 내로라하는 백도 세력의 후기지수들이 많았다. 그러니 운천흠으로서도 더더욱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여홍의 이름도 알게 됐을 테고.
청여홍이 말했다.
“맹주님을 이렇듯 직접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저를 알아봐 주시기까지 하시니 더 영광스럽습니다.”
“허헛, 무슨 영광씩이나.”
“적어도 제게는 더없는 영광입니다.”
“허허헛. 어쨌든 반갑네.”
대강의 인사가 끝났기에 청여홍에게 말했다.
“한데, 청 소저가 이 시간에 오실 줄은 몰랐구려.”
“아, 유 총관님께서 전서를 통해 저희 쪽에 고급주를 대량 주문하셨거든요. 그 덕분에 모두가 돌아오신 걸 알았어요. 그걸 배달하는 길에 저도 같이 온 거죠. 여러분들을 뵙고 싶어서. 겸사겸사 술과 요리 재료들도 조금 챙겨 왔어요.”
그러자 유영평이 말했다.
“이교영 소저의 부탁으로 주문했던 고급주 외에, 다른 고급주들과 요리 재료들을 마차에 가득 싣고 오셨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짐마차가 두 대나 왔습니다.”
“허……!”
내가 놀란 표정으로 청여홍을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감사의 의미예요. 여러분이 싸워주시는 덕분에 저희가 안전할 수 있는 거니까요. 고생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니, 한동안 마음껏 드시면서 기운 보충하셔야죠.”
“그래도 뭘 그렇게나 많이…….”
“잠룡관의 교관님들과 후배들도 이곳에 머문다고 들어서, 맛있는 거 많이 먹여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러자 운천흠이 말했다.
“대상단주의 장녀답게 손이 크시군.”
“모두 목숨 걸고 싸우신 것에 비하면 제가 드리는 건 미미한 수준입니다.”
청여홍이 대꾸하자 운천흠이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대강의 인사가 마무리되자 각자 자리를 찾아서 흩어졌고, 우리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었다.
먹고 마시는 중에도 운천흠은 자신이 보고서를 통해 읽은 여러 전투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상세히 물었다.
보고서를 읽었다고 해도, 당사자들에게서 직접 듣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이에 우리가 상황을 설명해주니, 운천흠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눈동자를 빛내며 경청했다.
그는 때때로 주먹을 꽉 쥔 채 의욕 가득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맹주이기 이전에 무인인 만큼, 전장의 얘기를 들으니 피가 끓어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전투에 관해 대화하며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이후, 운천흠은 외곽의 탁자를 돌아다니며 모두를 챙겼다. 송풍장에 머무는 친우들은 물론, 잠룡관의 교관들과 관도들까지도.
참고로 잠룡관도들을 지키기 위해 참여했던 모승언, 이영소 등의 실전 고수들 여섯 명은 이 자리에 없다. 무창에서 내렸다고 한다.
어쨌거나 맹주인 운천흠이 직접 술을 따라주며 공을 치하하고 격려해주니 다들 감격했다. 특히 관도들은 더더욱.
탁자를 전부 돌고 난 운천흠이 중앙의 탁자로 돌아오더니,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다들 운천흠을 주목하자 그가 말했다.
“단목세가주, 검후 같은 무림명숙들로부터 아직 어린 잠룡관도들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전장에서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소.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오. 이에 고마움을 담아, 맹에서는 고생한 여러분에게 적절한 포상을 드리기로 했소.”
“오오오오!”
다들 환호하는 가운데, 운천흠의 말이 이어졌다.
“그중, 송풍장의 인원들과 동부지맹 특수전투수행반의 공로는 매우 특별하다고 할 수 있소. 그들은 처음부터 광서로 달려가서 온갖 위기 상황을 극복해가며 활약을 펼쳤소. 그 활약이 아니었다면 광서가 수복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오. 그 경우,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겠지. 어쩌면 수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운천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적과 같은 활약 덕분에 광서가 매우 빠르게 수복되었소. 만약 광서를 그렇듯 빠르게 수복하지 못했다면 귀주 수복전단도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연쇄적으로 운남 수복전단 또한 고립되어 패퇴했을 것이오.”
모두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천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활약 덕분에 무림맹이 큰 위기를 모면한바, 해당 인원들에 대한 포상은 더 특별한 것으로 준비했소.”
말을 마친 운천흠이 허죽신을 바라보자, 허죽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헐헐헐, 특별 포상은 소청명단일세.”
그 말에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나도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