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412화 (412/416)

내 안에 마교있다 412

청명단은 청선곡의 영약이다.

참고로 이전에 내가 많이 복용했던 청심단은 영약이 아니라 양생단이다. 영약은 내공을 증진해주는 약이고 양생단은 기운을 보강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약이다.

물론 청심단의 경우에는 양생단임에도 특별히, 내게는 영약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청명단은 영약인 만큼 청선곡에서도 극소량만 생산되는데, 효능이 소림의 대환단에는 못 미쳐도 성수곡의 대성심단보다는 좋다고 알려져 있다.

청명단의 효능이 대성심단보다 뛰어날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성수곡 측이 재고가 너무 많거나 유효 기간이 다 되어가는 약재들만 사용해서 영약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당장 치료에 필요한 약이 우선이다 보니, 영약이나 양생단의 제조는 후순위일 수밖에 없다.

둘째, 청선곡이 영약과 양생단 제조에 특화된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약재마저도 성수곡보다 훨씬 좋은 걸 쓰다 보니 당연히 약의 효능도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소청명단이 소성심단보다 더 효능이 좋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소성심단을 복용하면 사오 년 공력이 증진된다고 알려져 있고, 소청명단을 복용하면 오륙 년 공력이 증진된다고 알려져 있다.

오 년 전후의 공력이면 최절정고수인 내게는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절정고수들에게는 적잖은 도움이 될 테고, 그중에서도 절정의 중반 이하인 인원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일류고수들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어쨌거나 소성심단이든 소청명단이든, 영약인 만큼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간혹 극소량이 유통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된다.

그런 걸 방금, 특무강습대원 전원과 특수전투수행반원 전원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니 다들 놀랄 수밖에.

운천흠이 말했다.

“들으셨듯 청선곡에서 협조해주셨소. 이 자리를 빌려 허 곡주님과 청선곡의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소.”

소청명단을 받게 될 인원들의 얼굴이 환해져 가는 가운데, 허죽신이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헐헐헐, 덕분에 본곡이 보관하고 있던 소청명단의 재고가 바닥나 버렸지. 한동안은 본곡의 인원 전원이 약초만 캐고 다녀야 할 판국이야. 그래도 소청명단이 자격을 갖춘 주인들을 찾아가게 되어 노부와 청선곡 또한 기쁘게 생각하고 있네.”

그러자 제갈수광이 운천흠에게 물었다.

“그 많은 소청명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맹의 지출도 상당했을 텐데, 우려의 목소리나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습니까?”

운천흠이 대꾸했다.

“맹의 실제 지출은 그리 크지 않았네. 무림맹에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고, 청선곡에서 받아준 덕분이지. 첫째, 무림맹은 대륙 각지와 변방의 희귀 약재들을 적잖이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활용도가 별로 없는 것들을 청선곡에 넘기기로 했네.”

무림맹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희귀 약재라도, 청선곡이라면 충분히 연구하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재 쪽으로는 전문가들이니까.

“둘째, 차후에 무림맹에서 청선곡 제자들의 무공 수련과 훈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네.”

몇 년 전에 사고를 겪었던 청선곡이 자체 무력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는 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다.

물론 현재도 황산파에서 청선곡 제자들의 수련을 돕고 있기는 하나, 무림맹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그렇듯 실제 지출이 그리 크지 않았던 덕분에 잡음도 별로 없었던 게지.”

“그랬군요.”

제갈수광이 납득했다는 듯 대꾸하자 운천흠이 다시 고개를 들더니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잠룡관도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영약을 챙겨주고 싶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음을 널리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소.”

그러자 백리탄이 말했다.

“처음부터 광서 수복전에 투입되었던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전공을 세웠는지는 온 강호가 다 알고 있습니다. 합당한 보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당효광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운천흠이 말했다.

“이해해줘서 고맙군.”

사실, 이 시점에 우리에게 지급되는 소청명단이 단지 포상의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중요한 작전을 수행하게 될 테니, 계속해서 수고해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요한 작전에는 그만한 위험이 따르는 만큼, 미안함을 덜고자 소청명단을 통해서나마 우리의 전력을 강화해주려는 것이고.

비정규 전력 중에서 우리만큼의 작전 수행 능력과 실전 역량을 갖춘 소수 최정예 전력은 없으니,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 높은 투자이기도 하다.

연회가 계속되었다.

해시 초(밤 9시)가 넘은 시점에는 진양옥, 윤단영, 이세옥이 각자의 아기들을 데리고 연회장을 벗어났다.

송풍장의 본채에서 아이들을 같이 재운 뒤, 윤단영과 이세옥은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모양이다. 윤단영과 이세옥도 무인인 만큼, 이 연회를 더 즐기고 싶은 것이다.

운천흠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을 한 차례씩 안아줬다.

송유림은 좋아했고, 제갈길은 의젓했으며, 장조휘는 어느새 낯이 익었는지 울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고 난 후부터는 연회가 더 왁자지껄해졌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다.

원을태, 촉홍결, 정우립 등의 노인들과도 마시고, 백리탄, 당효광과도 마시고, 잠룡관도들과도 마셨다. 검풍대, 해천대의 무인들과도 마시고, 친우들과도 마셨다.

잠시 바람을 좀 쐴 겸 해서 밖으로 나와보니 자정 무렵이었다.

비룡장 내원에 있는 정원의 구석으로 걸어가서 긴 의자에 앉자 관산영이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관산영은 내가 자리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녔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이곳 사람들이 낯설 테니, 그녀로서는 내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옆에 앉은 관산영이 말했다.

“술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잘 마시더라고?”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오. 마실 만한 상황이면 마시는 편이오. 오늘은 여러모로 특별한 날이다 보니 더 많이 마시는 거고.”

“아하.”

그녀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그 좋아하는 술을 찔끔찔끔 마시느라 답답하겠구려.”

“좀 참아야지, 뭐. 낯선 사람이 술 잔뜩 마시는 모습 보여 봐야 첫인상만 나빠질 테니.”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말했다.

“첫날부터 많은 사람과 어울리느라 정신없으시겠소.”

“그렇긴 한데, 차라리 이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 처음부터 이렇듯 모두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일부터는 덜 어색할 테니까. 그래서 이름도 열심히 외우는 중이고.”

잘하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줬을 때쯤, 우리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운천흠이었다.

이에 내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관산영도 따라서 일어섰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운천흠이 말했다.

“허허, 그냥 앉아 있어도 되네. 머리 좀 식힐 겸 바람 쐬러 나왔다가 이쪽에서 대화 소리가 들리길래 잠시 와본 것뿐이니.”

그에게 대꾸했다.

“아닙니다. 맹주님. 앉으시죠.”

“나는 정말로 앉지 않아도 괜찮은데, 내가 고집부려봐야 송 공자만 더 불편하겠지.”

“하핫, 잘 아시는군요.”

내가 대꾸하자 운천흠이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가 하늘을 보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더니 말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곳이군.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이 북적임이, 이토록 정겹고 편안하게 느껴진 게 얼마 만인지.”

노인들로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식구들처럼 정겹게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본맹도 사람 사는 곳이겠으나, 거대 조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경직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그런 곳에서 지내 온 운천흠이니, 이렇듯 많은 이들이 정겹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리웠을 법도 하다.

“은퇴하면 나도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

“나중에 은퇴하시면 이곳에도 종종 들러주십시오. 언제든 편하게 머무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허헛, 그래야겠어. 이곳은 뱃길로 오가기도 편하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로 그렇게 대꾸한 운천흠의 시선이 관산영에게 머물렀다.

관산영이 시선을 살짝 낮췄을 때쯤, 운천흠이 갑자기 기운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의 막이 우리 세 사람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음성이 새어 나가는 걸 막는 용도의 막이다.

곧 운천흠이 조용한 목소리로 관산영에게 말했다.

“내 경지쯤 되면 소저가 풍기는 특유의 기도가 누구의 기도와 같은 종류인지 알 수 있다오. 고로 나는 소저가 누군지도 대강 예측하고 있소.”

관산영의 눈이 급속도로 커지는 가운데 운천흠이 말을 이었다.

“소저에게 어떤 계획과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소. 그러나 여기에 있는 송 공자는, 이 운 아무개가 아주아주아주 아끼는 후배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소.”

‘아주’라는 말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썼다.

“따라서, 소저에게 혹여 그릇된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거든 지금이라도 그 의도, 접으시오. 만약 소저로 인해 송 공자에게 모종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소저뿐만 아니라 소저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이 운 아무개의 분노를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니.”

운천흠이 평온한 어조로 말을 마쳤다.

문득 사부님이 떠오른다.

사부님의 경고도 늘 저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이 화내며 경고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부님은 그저 나른한 어조로, 때로는 자상하게 느껴지는 어조로 경고의 말을 건네곤 하셨었다. 천마신교라고 해도 딴생각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인 탓이다.

당시에 나는 사부님의 그러한 경고를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곤 했었다.

그리고 그 경고를 들은 당사자들은 모두,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벌벌 떨었었다. 그 후에는 다들 즉시 엎드려 이마를 땅에 찧어가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다시금 충성을 맹세하곤 했었다.

이 순간, 관산영도 덜덜덜 떨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울 정도로.

운천흠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보아하니 송 공자도 이 소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예,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운천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신투의 제자겠지?”

“손녀더군요.”

“손녀어? 관의척에게는 혈육이 없을 텐데?”

운천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관산영을 일별했다.

관산영은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운천흠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운천흠에게 대꾸했다.

“신투가 남긴 기록물들을 통해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마 면구 안의 얼굴만 봐도 신투의 손녀라는 사실을 더는 의심하지 않으실 겁니다.”

“허어……! 그렇단 말인가.”

놀란 기색으로 그렇게 반응한 운천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신투의 손녀임을 아는 데도 사업 동료라? 아, 정말로 사업 동료인지부터 물어야 하려나……?”

무림맹주 앞에서 감춰봐야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사업 동료는 아닙니다.”

“역시 그랬군.”

“여러 사정이 있어서 한동안 이곳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데 낯선 사람을 아무나 장원에 들일 수는 없으니 적당히 사업 동료라고 둘러댄 겁니다. 아, 맹주님 앞에서 거짓을 고하고 싶지는 않기에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것이니…….”

“무슨 말인지 알겠네. 고맙네. 함구하지. 한데…….”

잠시 말을 줄였던 운천흠이 전음을 보내왔다.

[신투의 손녀를 이렇듯 장원에 머무르게 해도 괜찮은 건가? 무공 경지가 상당한 걸 보니 신투의 진전을 제대로 이어받은 듯한데.]

관산영의 정체를 알게 된 이상, 맹주로서는 당연히 염려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믿어볼 만하다는 게 제 최종 결론이었습니다. 단면만 보고 판단한 게 아니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신중하게 내린 결론임을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흐음…….]

침음을 내며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운천흠이 이윽고 전음을 보내왔다.

[그 정도로까지 얘기하니 내 더는 언급하지 않겠네. 송 공자가 섣불리 그런 결정을 내렸으리라고 생각지 않으니.]

내가 대답 대신 미소를 보이자 운천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관산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천흠과 내가 전음으로 대화하는 사이, 관산영도 어느 정도는 정신을 추스른 모습이었다.

운천흠이 말했다.

“송 공자가 소저를 감싸는구려. 그러니 나도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소. 그저, 이 운 아무개가 소저에게 악감정을 품을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그러자 관산영이 호흡을 고르더니 운천흠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맹주께서 저를 의심하시는 건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그 점에 대해 제가 결백을 호소해도 의미는 없겠지요. 증명할 길이 없으니까요.”

관산영이 조심스럽게 운천흠의 시선을 마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저는, 현재의 천하제일인과 미래의 천하제일인으로부터 동시에 분노를 사며 살 정도로 미련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당황스럽다.

내 앞에서 꺼낸 적이 있었던 미래의 천하제일인 얘기를 맹주 앞에서도 꺼내다니.

서둘러 관산영에게 말했다.

“아니, 무, 무슨 그런 소릴…….”

“미안. 얘기하다 보니 동생을 곤란하게 만들었네.”

내게 대꾸한 관산영이 운천흠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운천흠도 상당히 놀란 상태다.

“저도 잠시나마 송 동생과 전력으로 겨뤄봤기에 압니다. 이십 대 초중반에 저 정도 경지에 오른 무인은 강호사를 통틀어도 드물다는 사실, 맹주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그래서 미래의 천하제일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관산영이 말을 마쳤다.

운천흠은 한동안 묵묵히 관산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침묵을 깨고 운천흠이 말했다.

“소저의 결백이 증명되려면 아마도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오. 한두 해만 보고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관산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운천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가 되었든 소저의 진심이 확인되면, 그때는 이 운 아무개가 소저에게 정중히 사과하겠소. 약속건대, 말로만 사과하고 대충 끝내지 않을 것이오.”

그 말에 관산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 맹주께서 제게 사과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맹주라도, 상대가 누구든, 사과할 일은 사과해야 옳소.”

운천흠이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는 다시 마시러 가야겠군. 정말 오랜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마시는 자리이니 최대한 즐겨야지. 오늘 안 마시면 언제 또 술을 입에 댈 수 있을지 기약도 없고.”

“같이 들어가시지요.”

이에 우리는 다시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거의 모든 인원이 끝까지 남아서 먹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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