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414화 (414/416)

내 안에 마교있다 414

송유하가 일류의 후반에 이른 날, 점심시간에 확인해 보니 소청명단을 받은 인원 대부분이 복용을 마친 상태였다.

우선, 선우린은 예상했던 대로 절정에 올랐다. 그녀는 본인 몫의 소청명단만으로도 절정에 올랐다며 매우 기뻐했다. 덕분에 남궁설도 소청명단을 복용할 수 있게 되었다.

친우들 중에서는 남군호가 절정에 올랐다. 그렇게, 기동타격조 시절의 동료들 모두가 절정고수가 되었다.

특전반에서는 주경명과 우문직이 절정에 올랐다.

사옥연과 목태월의 경우에는 소청명단 복용으로 일류의 극후반에 이르렀기에, 조만간 절정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신시 초(오후 3시) 무렵부터는 왕철양과 심산화의 부탁으로 녀석들이 약 기운을 흡수하는 과정을 지켜봐 줬다. 점심시간에 왕철양이 내게 부탁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심산화도 덩달아 부탁해온 것이다.

녀석들이 소청명단의 약 기운을 모두 흡수하기까지는 한 시진 반 남짓 걸렸다.

결과적으로 두 녀석 모두 일류의 중반으로 올라섰다.

왕철양은 일류의 중반에 턱걸이했고, 심산화는 여유롭게 넘어섰다.

공은림과 하조혁은 영약 복용 경험이 있다 보니 알아서 소청명단 복용을 마친 상태다. 참고로 두 녀석의 경지도 심산화와 비슷하다.

어쨌거나 이제는 네 명 모두 일류의 중반 이상인 만큼, 앞으로의 전투에서는 훨씬 더 안정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네 명 모두 치열한 실전을 겪어봤으니까.

저녁 식사 후에는 명호운과 청여홍을 실내 수련장으로 불러서 두 사람의 쾌류무 성취를 점검해줬다.

명호운은 잠룡관 전투지원조였기에 이번 광서, 귀주 원정에서 실전 경험을 충분히 쌓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점검해 보니 이전보다 시야가 넓어졌고 반응 속도도 훨씬 빨라져 있었다. 기본기 또한 더 탄탄해진 모습이었다.

잠룡관에서 얼마나 열심히 수련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에 쾌류창법, 쾌류보, 쾌류심결의 다음 단계에 대해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후, 효율적인 수련법을 가르쳐줬다.

청여홍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점검해 보니 그녀의 성취가 내 예상치를 훨씬 웃돌고 있었던 탓이다.

“대단하구려. 소저의 성취가 이렇게까지 상승했을 줄이야.”

아무리 봐도 청여홍 혼자 수련해서 이룰 수 있는 성취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청여홍의 얼굴에도 묘한 미소가 걸려 있는 상태다.

이에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딘가에서 용한 무공 사부라도 초빙한 것이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역시 그랬구려. 한데 무공 사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가 보오? 소저의 쾌류무 성취를 이렇게까지 끌어올렸다면 무학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분일 텐데.”

“맞아요.”

“그래서, 누구시오? 그 정도 실력자면 별호나 성함 정도는 나도 들어봤을 거라서.”

“송 공자님에겐 정말 죄송하지만 그건 비밀로 하기로 해서요.”

“비밀이라…….”

표정을 보니 뭔가 있어 보인다. 궁금하기는 한데, 여기에서 더 캐묻는 건 실례다.

청여홍이 말했다.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쾌류무의 수련을 도와주시는 것뿐, 다른 무공에 손대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상인인 그녀가 저렇게 얘기할 정도면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더 궁금한데, 지금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이후에 나는 청여홍에게도 쾌류검예와 쾌류보, 쾌류심결의 다음 단계를 설명해주고 수련법을 알려줬다.

청여홍은 휴가를 겸해서 당분간 비룡장에 머물 계획이라고 한다.

* * *

다음 날, 오전.

실내 연무장에서 남궁묵과 비무 형식의 수련을 진행하던 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우리가 비무를 멈추자 밖에서 묘청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반장님.”

“어, 들어와.”

남궁묵이 대꾸하자 묘청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요. 신입 오는 날이잖습니까.”

“아, 참.”

“육 조장이 아침 일찍 경덕진지소로 인계받으러 갔는데, 슬슬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반장님에게 온 겁니다. 반장님한테 먼저 인사시키러 올 테니.”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듣는 얘기라서 곧장 묘청상에게 물었다.

“특전반에 신입이 들어오는 겁니까?”

“어. 그렇다네. 실은 우리도 그저께 처음 알았거든. 동부지맹에서 우리 특전반 지휘부 앞으로 전서를 보내왔는데, 열어보니 신입 얘기더라고.”

“오호, 몇 명입니까?”

“한 명이래.”

“누군데요?”

특전반에 들어오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고 신분도 확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인물일 수도 있기에 물어본 것이다.

“이름은 안 적혀 있었어. 지휘관 중 한 명이 인계받으러 오라고 적혀 있더라고. 그래서 육 조장이 간 거야.”

“아.”

내가 대꾸하자 남궁묵이 말했다.

“알아봤는데, 일전에 동검대에 지원했던 잠룡관의 육 년 차 관도 중 한 명인가 봐. 훈련생 중에서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된 관도들은 따로 심화 훈련을 받았는데, 심화 훈련 이수자 중에서 상위 다섯 명에게는 은밀히 특전반 입반을 제안했었대.”

즉시 전력에 관련된 내용은 소충광한테서 들은 바 있다. 당시에 소충광은 진운령이 즉시 전력감으로 선발되지 못한 것 같다며 매우 아쉬워했었다.

남궁묵이 말을 이었다.

“그 다섯 명 중에서 딱 한 명만 특전반에 지원했다고 하더라. 뭐, 이해는 되지. 우리의 임무는 위험도가 높으니까. 그래도 고무적인 게 있다면, 그 다섯 명 중에서 최우수 관도가 우리 특전반에 자원했다는 사실 정도겠지.”

“오, 그렇습니까?”

묘청상이 묻자 남궁묵이 대꾸했다.

“어. 심화 훈련을 이수한 후에는 특전반에 입반하기 위해서 특수 전투 훈련까지 마쳤다네? 엊그제 그 훈련이 종료됐다나 봐.”

“그 정도면 기본기는 어느 정도 갖췄겠군요.”

“그래도 당분간은 우리가 집중적으로 지도해줄 필요가 있겠지. 상평이, 성락이와 같이.”

“예. 선임들과 함께 교육 계획을 세워두겠습니다.”

이후에도 대화가 한 식경가량 이어졌을 때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얼른 가서 문을 열자 육화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유겸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대꾸하면서 육화현의 뒤에 서 있는 인영을 살폈다.

특전반의 신입일 것이다.

여인이다. 용모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나와 친한 사람인 탓이다.

놀랍게도, 진운령이다.

육화현이 안으로 들어서자 진운령도 안으로 들어섰다.

진운령이 지나치며 살짝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담고 있다.

미소를 보이고 있는데도 그녀의 기도가 크게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친한 사이이니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피부가 많이 그을렸고 볼도 핼쑥해져 있다.

그간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 알 만하다.

곧 남궁묵과 묘청상 앞에 다다른 육화현이 말했다.

“우리 신입,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그러자 진운령이 육화현의 옆에 서서 죽립을 벗더니 정자세로 말했다.

“동부지맹 특수전투수행반 신입반원 진운령, 남궁 반장님과 묘 조장님을 뵈옵니다! 충!”

진운령이 마지막에 ‘충’을 외치며 오른 주먹을 가슴에 대자 남궁묵과 묘청상도 거의 동시에 주먹을 가슴에 댔다.

“충.”

남궁묵이 경례에 답한 후 주먹을 떼자 묘청상도 주먹을 뗐고, 이어서 진운령도 주먹을 뗐다.

남궁묵이 입을 열었다.

“진운령이면 내가 알기로…….”

그가 말을 늘이며 나를 바라봤다.

나와 진운령의 친분을 대강 알고 있는 눈치다. 남궁설한테서 들었을 것이다.

그에게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제 잠룡관 친우입니다. 소충광 공자, 황성락 공자와는 절친한 사이이고, 설 매, 린 매와도 친합니다.”

“응. 나도 그렇게 들어서.”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더니 진운령에게 말했다.

“심화 훈련 최우수 이수자가 특전반에 지원했다고 들어서 누군가 했는데, 운령이였구나? 반갑다.”

묘청상도 인사를 보탰다.

“반갑다, 진운령.”

진운령이 대꾸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남궁묵이 말했다.

“아, 성락이와 절친하다니 하는 말인데, 얼마 전에 성락이도 특전반에 합류했다. 상평이와 함께.”

“그렇지 않아도 오는 길에 육 조장님한테서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친한 사람이 있으면 적응하는 데도 더 도움이 되겠지.”

남궁묵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다른 반원들과도 인사를 나눠야 하니까, 오늘 저녁에는 특전반원들끼리 환영식을 하도록 하지. 일단 신시 정(오후 4시)쯤부터 모여서 반원들과 인사 나누고 얘기 좀 하다가, 이른 저녁 식사와 함께 술도 한잔하고.”

남궁묵이 그렇게 말하더니 내게 물었다.

“저녁 시간에 연회장 좀 써도 될까?”

“물론입니다.”

“술과 요리도 준비해줬으면 좋겠는데. 물론 특전반의 행사인 만큼 제반 비용은 특전반에서 낼 거야. 인건비도 포함해서.”

“비용은요, 무슨. 괜찮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런 건 확실하게 해야지. 특전반이 운영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기세가 단호하여 더 권유해봤자 소용없을 듯하다.

“하하, 알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남궁묵이 말했다.

“대략 술시 정(오후 8시) 무렵까지는 특전반원들끼리 환영식을 할 것 같아. 이후 시간에는 아무나, 오고 싶으면 와서 같이 마셔도 된다고 알려줘.”

“예.”

“유겸이가 운령이한테 듣고 싶은 얘기가 많은 모양이니 첫 대면은 이 정도로 마치지. 운령이와는 어차피 연회 때 볼 테니.”

“저뿐만 아니라 다들 진 소저를 보고 싶어 할 거라서요.”

내가 대꾸하자 남궁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서 가 봐.”

“예.”

내가 대꾸하자 진운령도 세 사람에게 인사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진운령과 함께 곧장 본채의 거실로 향했다.

이동하는 길에 이화미에게 소충광과 황성락을 본채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 두 사람이야말로 진운령의 소식을 가장 궁금해할 사람들이니까.

본채의 일 층 거실에 앉자 공은림과 심산화가 먼저 와서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두 녀석은 차를 내오겠다며 본채의 주방으로 향했다.

이어서 계단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송유하가 일 층으로 내려왔다.

진운령을 발견한 송유하가 놀라며 빠르게 다가왔다.

“운령아……!”

“유하야!”

두 친우는 금세 양손을 맞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네 소식이 너무 궁금했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사정이 좀 있었어. 그보다도 유하 너, 엄청나게 유명해졌더라? 광서 수복전이랑 귀주 수복전에서 궁술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면서?”

“유, 유명은 무슨……. 나는 그냥 지시대로 열심히 엄호한 것뿐이라서…….”

“너야 그렇게 얘기하겠지. 근데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면 너도 유명세를 체감할걸?”

“그, 그럴 리가…….”

송유하가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또다시 계단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길초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 소저……!”

“오옷! 길 공자님……!”

“우와! 이게 얼마 만이오! 그간 어떻게 지내셨던 거요?”

길초량이 빠르게 다가오며 그렇게 묻자 진운령이 대꾸했다.

“사정이 좀 있었어요. 곧 충광 오라버니하고 성락 오라버니도 이곳으로 오실 테니 다 같이 계실 때 말씀드릴게요.”

“알겠소, 알겠소.”

그리고 그 직후,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소충광과 황성락이 들어섰다.

그들은 진운령을 발견하자마자 눈이 동그래졌다.

“령 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외치자 진운령이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오라버니들! 오랜만이에요!”

“아니, 령 매! 이게 얼마 만이야!”

“어떻게 된 거야, 령 매! 훈련소 이후로 소식이 전혀 없어서 걱정했다고!”

황성락과 소충광이 차례로 그렇게 말하자 진운령이 대꾸했다.

“사정이 좀 있었어요. 일단 앉으세요.”

모두가 거실에 자리 잡고 앉자 진운령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사실, 특별한 건 없어요. 다른 육 년 차 관도들처럼 동검대에 지원했고, 열심히 훈련받았죠. 무난하게 즉시 전력으로 차출될 상황이라서, 어서 훈련을 마치고 충광 오라버니가 있는 남창지부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훈련소의 교관님들로부터 광서 수복전 관련 소식을 전해 들은 거예요.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이, 저와 친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죠.”

진운령이 말을 이었다.

“뿌듯한 한편으로, 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한 명의 무인으로서 나는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었죠. 친우들과 지인들은 모두 생사를 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그만큼 무인으로서도 성장해 가고 있을 텐데, 나는 그냥 이렇듯 안주하고 말 것인가? 그 고민이 여러 날 동안 계속됐어요.”

진운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던 중에 동부지맹 특수전투수행반에 자원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거예요. 동부지맹의 최정예 기밀 임무 수행 조직이라고만 얘기할 뿐, 그 이상의 정보는 알려주지 않더군요. 그 특수전투수행반이라는 곳이 저를 바꿀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원했죠.”

진운령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놀란 건 두 사람, 소충광과 황성락이었다.

소충광이 물었다.

“그, 그러면 지금은 특전반 소속이란 말이야?”

“불과 사흘 전까지 특수 전투 훈련을 소화하고 오는 길이에요. 신입 특전반원이죠.”

“허……!”

소충광이 놀랐다는 듯 반응하자 진운령이 황성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육 조장님을 통해 특전반원들에 대해 처음 들었어요. 반가운 이름들이 등장하더군요. 우문 공자님, 홍신 공자님, 엄 공자님 그리고 성락 오라버니까지……. 엄 공자님과 성락 오라버니도 신입이라죠?”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황성락이 대꾸하자 소충광이 진운령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대견하네, 령 매.”

진운령이 미소를 지어 보이자 소충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는 살짝 아쉽긴 해. 령 매랑 같이 남창지부에서 근무하기를 기대하고 있었거든. 물론 령 매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당연히 존중하고.”

“후훗, 감사해요.”

이번에는 송유하가 진운령에게 말했다.

“특전반이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대단하다, 운령아.”

“유하 너의 영향도 컸어. 친한 친구가 전장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자극이 되더라구.”

송유하가 민망한 듯 미소 짓자 길초량이 진운령에게 말했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구려. 진 소저의 무운을 빌겠소.”

“감사해요, 길 공자님.”

진운령이 대꾸하자 길초량이 모두에게 말했다.

“이렇듯 오랜만에 진 소저와 재회했으니 이따가 모여서 한잔?”

놈이 말을 마치며 내 눈치를 슬쩍 살피고 있다.

술 얘기라서, 내가 핀잔을 줄까 봐 저러는 것이다.

놈에게 대꾸했다.

“특전반끼리 먼저 환영식을 한다고 하오. 술시 정 무렵까지 한다고 하니, 그 후에 합류하면 될 것이오.”

“오오! 그거 좋구려. 그럼 오늘은 거나하게 한잔 빨아볼까나?”

으이그 인간아, 그저께도 밤새워서 마셨는데 벌써 또 그렇게 마시고 싶어?

오후에는 잠룡관도들을 상대로 특강을 진행했다.

한 시진 남짓 특강을 진행했을 때쯤, 이화미가 나를 찾아왔다.

“조해옥이라는 분이 공자님을 찾아오셨어요. 성함을 말씀드리면 알 거라고…….”

조해옥은 권진란의 가명이다.

“아, 지인이야.”

드디어 이 장원에 정사지간의 인물을 넘어 천마신교의 인물까지 들어오는구나. 그것도 혈영대의 부조장 출신 마두가.

물론 권진란에게는 마기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장원 사람들이 마인임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겠지만.

관도들과 양소열 등에게 양해를 구하고 본채로 향했다.

거실을 지나쳐 응접실로 들어서니 역시나 권진란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안녕하셨어요, 공자님.”

“조 여사도 안녕하셨소?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겠소.”

남들 앞에서는 ‘여사’라는 호칭을 쓰기로 미리 말을 맞췄었다.

이화미가 차를 내오겠다며 나갔고, 나는 권진란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녀가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정문에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보니 장원의 경관이 참 좋네요. 옛것을 보존한 채로 새것과 조화를 이루게끔 구성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안목이 있으시구려.”

“장원이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차분한데, 그 안에 강인한 힘을 머금고 있는 느낌이에요. 아마 주인의 분위기를 닮은 거겠죠.”

주인이란 나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대답 대신 엷게 미소만 지어 보이자 권진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지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든 안 괜찮든 이 시점에 그게 뭐가 중요하겠소. 이미 얘기가 끝난 사안인데.”

“하면 짐은 어디에 풀면 될까요?”

“이곳 본채의 일 층에 있는 방을 쓰시면 되오. 이따 안내해드릴 것이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권진란이 올 것을 예상해서 미리 왕철양과 하조혁의 방을 비워뒀다.

두 녀석에게는 서쪽 별채의 객실을 쓰게 했는데, 왕철양 녀석은 대장간에 딸린 방이 더 편하다며 그곳으로 갔다. 참고로 권진란이 쓰게 될 침실이 바로 왕철양이 쓰던 침실이다.

하조혁의 침실까지 비운 이유는, 권진란, 관산영과 같은 구역의 침실을 쓰게 되면 녀석이 더 불편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유영평과 상의하여 아예 비룡장의 본채를 증축하기로 했다. 일 층의 좌우 측면에 소형 침실을 두 개씩 더 짓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일 층의 다른 침실들과 같은 크기로 지으면 되니, 건축 자재들을 규격에 맞춰 모두 준비해둔 후에 착공하여 신속하게 완공시키기로 했다.

그 후에 왕철양과 하조혁을 다시 본채로 불러들이면 될 것이다.

권진란이 말했다.

“본채라……. 저를 가까이 두시겠다는 건, 아직 저를 못 믿는다는 뜻이시겠죠.”

“믿고 싶은 단계라고 할까.”

내 말에 권진란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요.”

참고로 권진란의 침실 양옆은 하조혁이 썼던 침실과 관산영이 쓰고 있는 침실이다.

신투의 손녀와 혈영대의 부조장 출신이 나란히 옆방을 쓴다니, 흥미로운 상황이다.

이후에 북해빙궁 사람들도 우리 장원에서 지내게 될 경우, 나는 북해빙궁 측의 고수 한 명에게 하조혁이 쓰던 방을 내어줄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신투의 손녀와 혈영대의 부조장과 북해빙궁의 고수가 나란히 침실을 쓰는 재미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층에는 신룡대원도 있고.

다음 날.

아침 식사 후에 능우희가 나를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