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415
“어서 와.”
내가 자리를 권하자 능우희가 내 집무 탁자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아침은 먹었고?”
“네. 선배님은 드셨어요?”
“응.”
대꾸해준 후에 물었다.
“장원은 어때? 지낼 만해?”
“송풍장에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의 기대감은 있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환경이나 여건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요?”
“다행이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능우희가 말했다.
“어머니께서 은밀히 연락해오셨어요. 선배님을 뵙고자 하세요. 되도록 보는 눈이 없는 어두운 시각에 조용히 대화하기를 원하세요. 오늘 저녁 이후로는 언제든 괜찮다고 하셨어요.”
천마신교의 정보망에 잡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고 싶은 모양이다.
전에 능우희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북해빙궁의 인원들은 중원에 있는 몇 군데의 은신처로 흩어져서 숨어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와 송풍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인원들도 있다고 했으니 남창과 포양호 인근에도 은신처가 있을 것이다. 빙궁주가 현재 그곳에 있는 모양이다.
능우희에게 대꾸했다.
“이왕이면 빨리 뵙고, 협력할 건지 말지도 빨리 결론짓는 편이 서로에게 좋겠지. 나는 오늘 밤도 괜찮아.”
“아, 네. 그럼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어디에서 뵙지?”
“선상에서 만나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시간이 정해지면 이쪽 나루터로 선배님을 모시러 왔다가, 배를 타고 천천히 호수를 돌아다니면서 대화를 나눈 후에 다시 이쪽 나루터에 모셔다드리는 방식으로.”
“그런 식이면 대화가 어딘가로 새어 나갈 일은 없겠네.”
“시간은 언제쯤이 편하시겠어요?”
“해시 초(밤 9시)쯤으로 할까?”
“무난할 것 같아요.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말을 마친 능우희가 내게 인사한 뒤 서재를 벗어났다.
이후에는 제갈수광을 찾아가서 능우희와 나눴던 대화를 전했다.
나 외에 능우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제갈수광뿐이다. 내가 그전에 얘기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북해빙궁이 송풍장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해줬었다.
어쨌거나 빙궁주와 대면하는 자리에 같이 갈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알아서 잘하고 오라는 대답을 들었다.
혼자 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솔직히 그게 편하기도 하고.
참고로 제갈수광은 요새 가장의 역할에 매우 충실한 상태다. 오전에 잠룡관도들을 상대로 실전 조직력을 훈련시키고 있는데, 그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제갈길을 보며 지내는 중이다.
오후에는 잠룡관도들을 상대로 특강을 진행한 후,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 후, 서재에서 홀로 운기조식을 취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해시 초에 가까워져 있었다.
죽립을 챙겨 쓰고 조용히 본채를 벗어나서 나루터로 향했다.
나루터에 도착하니 능우희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선배님.]
[응, 일찍 나왔네?]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후배도 어머님을 뵙는 건 오랜만이겠네?]
[네. 빨리 뵙고 싶어요.]
이후에도 전음으로 잡담을 나누다가 일 각가량 지났을 때쯤, 호수 쪽에서 배 한 척이 희미한 불빛을 단 채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력을 돋워보니 소형 유람선이었다.
이윽고 근처까지 다가온 배가 나루터에 바짝 대지 않은 채 이 장 남짓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이후 선실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죽립을 쓴 사내인데, 체구가 건장하다.
사내의 모습을 확인한 능우희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아는 사이인 것이다.
곧 두 사람 사이에서 짧은 전음이 오가는 듯하더니 능우희가 내게 전음을 보내왔다.
[오르시죠, 선배님. 제가 먼저 갈게요.]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능우희가 배를 향해 도약했고, 이어서 나도 도약했다.
배에 오르자 사내가 손바닥을 펴서 문 안쪽을 가리켰다.
정중한 자세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
이에 능우희가 먼저 안으로 들어섰고, 나도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사내도 안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선실의 입구 근처에는 두꺼운 천 재질의 막이 처져 있어,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막의 중앙으로 다가가서 한쪽을 젖히자, 막의 안쪽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사내가 말했다.
“안으로.”
중후한 목소리다.
죽립을 한 손으로 살짝 잡으며 그를 향해 한 차례 고개를 숙여줬다. 그러면서 확인해 보니 굳세어 보이는 용모에, 나이는 사십 대 중반쯤인 중년인이었다. 잘 정리된 턱수염이 인상적이다.
선실의 중앙에는 널찍한 탁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옆에 두 여인이 서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용모는 둘 다 삼십 대 후반쯤이다.
“어머니! 이모!”
능우희가 반갑게 외치며 두 여인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두 여인이 환한 표정으로 능우희를 반겼다.
“우리 딸, 왔어?”
“세상에 희아! 이게 얼마 만이니!”
능우희를 ‘우리 딸’이라고 부른 여인이 바로 빙궁주일 텐데, 실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다. 저 나이에 저 정도 미모면 한창때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미모를 뽐냈을 것이다.
나는 면구를 쓰지 않은 능우희의 용모를 알고 있는데, 그녀가 누구를 닮아서 미모가 그렇게 뛰어난 건지 알 것 같다.
다른 여인은 능우희의 본래 용모와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아마도 혈연은 아닌 듯하고, 친분 관계상 이모로 칭하는 듯하다.
능우희가 차례로 두 여인에게 안겼다가 떨어지더니 나를 일별하며 말했다.
“소개할게요. 이분이 바로 창천비룡 송유겸 선배님이세요.”
능우희가 소개하기 전부터 두 여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내게 시선을 주고 있었는데, 능우희가 소개하자마자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인사하기 위해 죽립을 벗었다.
두 여인의 눈동자가 살짝 커지는 게 보인다. 아마도 내 용모 때문일 것이다.
능우희가 이어서 나를 보며 말했다.
“선배님, 이분이 바로 빙궁주시자 제 어머니고, 이분은 외당의 당주세요. 외당은 빙궁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에요. 어려서부터 저를 많이 보살펴주셔서 제가 이모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리고 뒤에 계신 분은 검당의 당주이신 기 숙부세요. 검당은 빙궁의 무력을 총괄하는 조직이고요.”
능우희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빙궁주가 내게 말했다.
“반가워요, 창천비룡 소협. 능설영이에요.”
능우희와 성이 같다. 모계 성을 쓰는 건가 싶다. 정확한 사정은 물어봐야 알겠지만,
왠지 빙궁주라고 하면 차갑고 냉랭한 인상일 것만 같은 선입견이 드는데, 능설영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다. 단아한 용모에 온화한 인상이다.
능설영을 향해 정중히 예를 취했다.
“강호말학 송유겸이 빙궁주님을 뵙습니다.”
“말학이라는 소개가 이렇게 안 어울리는 경우도 있군요.”
“아하하…….”
내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능설영의 옆에 있는 외당주라는 여인이 내게 인사했다.
“너무너무 반가워요, 창천비룡 소협. 나는 주은란이라고 해요.”
“아, 주 당주님이시군요. 저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주은란에게 인사한 후에는 뒤쪽에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나서 반갑소, 창천비룡 소협. 나는 기철우라 하오.”
이에 나는 뒤돌아서 중년 사내를 향해서도 인사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기 당주님.”
대강의 인사가 마무리되자 빙궁주 능설영이 말했다.
“일단 앉을까요?”
손바닥으로 본인의 탁자 오른편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내가 그쪽으로 가서 앉자 능우희가 내 옆에 앉았다.
능설영이 상석에 앉았고, 주은란과 기철우가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력을 돋워 자세히 살펴봤는데, 세 사람 모두 면구 따위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다. 아마도 능우희가 미리 언질을 준 듯하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설영이 말했다.
“창천비룡 소협의 대단한 역량에 관해 얘기하기에 앞서, 그 용모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대단한 미공자라고 듣기는 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네요. 아까 소협이 죽립을 벗는 순간 이곳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주은란도 옆에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면이다 보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유도하고자 내 용모 얘기를 꺼낸 느낌이다.
“과찬이십니다. 궁주님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기품 있으시고 우아하십니다.”
“어머나, 후홋.”
능설영의 반응을 확인한 직후 주은란을 향해서도 한마디 해줬다.
“주 당주님께서도 만만치 않으시고요.”
주은란의 인물도 좋은 편이지만 능설영의 미모에 비할 바는 아니다. 능설영 쪽이 워낙 압도적인 탓이다.
그런데도 분위기를 봐서 같이 언급한 것이다.
이런 내 의도를 능설영과 주은란 둘 다 알 테고.
주은란이 대꾸했다.
“호호홋, 창천비룡 소협께서 내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군요. 그래도 반딧불 빛과 보름달 빛이 어찌 비슷할 수 있겠어요. 물론, 기분은 좋네요.”
이에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두 여인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제 호칭은 그냥 ‘송 공자’ 정도로 해주시면 될 듯합니다.”
그러자 주은란이 내게 물었다.
“왜 그렇지요? 창천비룡이라는 별호, 멋진 데다가 소협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 별호는 제게 너무 과분한 데다가 듣기도, 부르기도 거추장스럽습니다. 소협이라는 호칭은 더더욱 안 어울립니다. 저는 스스로 의협심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능설영, 주은란, 기철우의 표정에서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읽힌다.
“온 백도의 칭송이 자자한 창천비룡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주은란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기철우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소협이 광서와 귀주 수복전에 참여한 것 자체가 광의에서는 협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소? 소협에게는 무림맹의 명령을 들어야 할 의무가 없었잖소. 그렇다면 소협의 선택이었다는 건데, 결국 그곳을 도우려는 마음이 작용한 것 아니겠소?”
“물론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광서 지원을 당연시하다 보니 저만 빠질 수가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게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전장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헛……!”
기철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웃긴 상황이기는 하다.
저들은 어떻게든 나를 의협심 있는 사람으로 포장해주려는 중인데, 정작 당사자인 내가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주은란이 말했다.
“창천비룡은 판에 박힌 여느 백도의 후기지수들과는 다르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군요. 그 멋진 별호로 불리는 것도, 소협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까지도, 다 마다하다니. 누구나 불리고 싶어 하는 별호고, 호칭일 텐데.”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능우희가 능설영 등에게 말했다.
“제가 보니 송 선배님 주변에는 정말로 선배님을 별호로 부르는 분들이 없었어요. 소협이라는 호칭을 쓰는 분도 없었구요. 알아보니 송 선배님은 잠룡관도 시절부터 이미 별호로 불리거나 소협이라고 불리는 걸 꺼렸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능설영, 주은란, 기철우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이윽고 능설영이 내게 말했다.
“그럼 이후부터는 원하시는 대로 송 공자님이라고 부를게요.”
“아, ‘송 공자님’ 말고 그냥 ‘송 공자’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뇨. 그것만큼은 양보할 생각 없어요. 송 공자님이 그 정도의 존중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뜻을 굽힐 기세가 아니다.
내가 포기했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을 때쯤, 중년 여인이 들어오더니 다과를 차려놓고 나갔다.
능설영의 권유에 따라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자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왜 송 공자님과 만나려고 한 건지는 이미 희아한테서 들으셨다고 알고 있어요.”
“예.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빙궁이 겪었던 안타까운 일에 대해서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마워요.”
엷은 미소와 함께 그렇게 대꾸한 능설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는 송 공자님과 직접 만나면 대화도 많이 나눠보고, 심사숙고한 후에 우리의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었어요. 빙궁의 명운과 직결되는 일이다 보니 우리도 최대한 신중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희아로부터 서신을 받아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송 공자님에 대해 어찌나 극찬을 해놨던지.”
이에 내가 고개를 돌려 능우희를 바라보자 그녀가 민망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걸 바탕으로, 사실대로 적었을 뿐이에요.”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작게 한숨을 쉬어 보였다.
능설영이 내게 말했다.
“어차피 송 공자님도 내용은 다 아시니, 길게 얘기할 것 없이 본론을 말씀드리죠. 북해를 되찾기 전까지, 우리 빙궁은 송풍장과 손잡고 싶어요.”
그녀가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빙궁은 현재 어려운 처지에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송풍장의 도움을 바라고 손잡으려는 건 아니에요. 적과 맞서서 같이 싸울 동료가 되기를 원할 뿐이에요. 전장에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송풍장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빙궁의 정예들이 합류하면 전력이 훨씬 강해질 테니까.
그게 곧 전장에서 우리가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능설영에게 대꾸했다.
“제갈 교관님과 상의해봤는데, 빙궁과 협력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오.”
빙궁 측 인원들 모두,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능설영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겠군요. 아, 송풍장은 조직력을 매우 중시한다는 송 공자님의 말씀, 전해 들었어요. 연합하게 되면 최대한 서둘러서 조직력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도.”
그녀에게 대꾸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희와 함께할 전력을 저희 장원으로 보내셔야 할 듯합니다. 훈련을 위해서든 동료애를 쌓기 위해서든, 같이 지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테니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숙소를 준비해야 할 텐데, 인원은 대강 몇 명쯤 되겠습니까?”
“송풍장의 전력은 소수 최정예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 수준에 맞게 보내야겠죠. 최정예 스무 명 정도가 어떨까 싶어요. 빙혼대원들로, 모두 절정 이상이에요.”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헛! 절정고수 스무 명이라니…….”
말하는 투를 보니 빙혼대라는 조직이 아마도 빙궁의 최정예 전투 조직인 모양이다.
능설영이 말했다.
“절정고수라고 해도 송 공자님의 눈에 차지는 않을 거예요. 다들 수련도 열심히 하고 훈련도 열심히 했지만, 실전 경험은 충분치 않거든요. 일전에 빙궁에서 벌였던 전투가 가장 큰 실전 경험이었다고 봐야 해요.”
“아하.”
“그러니 송 공자님이 잘 단련시켜주세요.”
“아하핫, 단련시키다니요. 같이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
내 말에 능설영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 숙소만 충분하다면 우리도 송풍장에 머물까 해요. 송풍장의 입장에서는 장원 전체의 전력이 더 강화되는 거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는 거고.”
“숙소는 많습니다.”
내가 흔쾌히 대꾸하자 이번에는 주은란이 말했다.
“인원이 제법 많아요. 궁주님이 송풍장에 머물게 되실 경우, 자체 경비 전력과 경호 전력도 움직여야 하고, 그 외에 일부 일꾼들도 같이 움직여야 해서요. 그 인원만 해도 최소 스무 명 남짓일 거예요. 송풍장에는 현재 많은 손님이 머물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숙소에 여유가 있을지…….”
“가능합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정가장의 별채들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우립이 얼마든지 이용해도 된다고 했었다.
정가장의 별채 쪽은 북적거리지 않아서, 빙궁 측 인원들이 지내기에도 적절할 것이다.
능설영이 말했다.
“아, 우리가 머무는 비용은 매월 정산해 드릴 거예요.”
“예? 그 무슨 서운한 말씀이십니까.”
“기거할 수 있는 장소를 내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그 이상의 민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주은란과 기철우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들에게 말했다.
“민폐라니요? 비용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송풍장을 동료도 제대로 못 챙기는 야박한 무리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거, 송 공자님도 아시잖아요.”
“하면, 나중에 저와 친우들이 빙궁에 찾아가도 궁주님께 비용을 내고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까?”
“그, 그럴 리가요.”
이에 내가 씩 웃어 보이자 능설영이 졌다는 듯 미소 지었다.
능설영이 말했다.
“송 공자님의 배려에 감사드려요. 빙궁은 결코, 송 공자님과 송풍장의 호의를 잊지 않을 거예요.”
“그저, 귀한 손님이자 동료가 편히 머물 수 있게끔 배려하는 정도입니다.”
그러자 능설영이 미소 짓더니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후에도 우리는 더 편한 분위기에서 다과를 즐기며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능우희와 나는 자시 초(밤 11시)가 되어서야 다시 송풍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저녁, 빙궁의 인원들이 나루터를 통해 정가장의 별채로 입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