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오물오물.
채윤이의 작은 입에 맞춰서 김밥을 작게 만들어야 했는데, 실수했다.
근데 그 실수가 오히려 조성현에게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왔다.
김밥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오물오물거리고 있는 채윤이를 보자니, 정말로 넋이 나가는 느낌이었다.
귀엽다.
자신의 딸이지만, 정말로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채윤아.”
“에베?”
김밥을 씹다가, 조성현의 부름에 채윤은 입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 조성현은 미소를 보였다.
“맛있어?”
그렇게 물으니, 채윤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입에 있는 김밥을 두 번에 나눠서 삼킨 채윤이는 입을 열었다.
“채윤이는 완전 맛있어요!”
“다행이네. 맛없으면 할머니 불렀어야 하는데.”
“아빠는 맛있어요?”
“응. 엄청 맛있네. 채윤이랑 같이 만들어서 그런가. 더 맛있는 것 같아.”
“헤헤….”
채윤이 기분 좋은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조성현도 김밥을 하나 입에 집어넣고는 슬쩍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연락을 확인했다.
특별한 연락은 없었다.
내일은 토요일.
연예계 쪽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딱히 밤낮이 없고 주말도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쉬는 날이 있지만…정말 제대로 쉴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조성현이 로드가 아니라서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 그가 로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더라면 그는 아마 돌아오는 날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오늘 퇴근 전, 박중원에게 주말은 주말답게 쉴 거라고 선언했었고 박중원도 조성현이 정말 마음만 먹으면 다 때려치우고 인수인계 전에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안 부르겠다면서 손을 휘휘 흔들었었다.
돌아온 후, 처음 맞는 주말.
조성현은 이 소중한 시간을 채윤이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는 지난 생,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했었고.
그만큼 채윤이와 함께 시간을 쓰지 못했었지만 이번 생은 많이 다를 것이다.
“채윤아.”
“네에?”
자신이 부르자, 아이는 김밥을 입에 집어넣으려다가 말고 고개를 돌렸다.
“먹어, 먹어.”
김밥을 들고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채윤이의 모습에 조성현은 웃으며 먹으라며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채윤이 김밥을 열심히 입에 집어넣는다.
커다란 김밥을 우물우물 씹기 시작하는 채윤이의 눈이 보기 좋게 휘었다.
아직 채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아이는, 진심으로 귀여웠다.
잠시 자신의 딸이 김밥을 먹는 것을 감상하던 조성현은, 결국 입을 열었다.
“내일은…아빠랑 같이 놀러 갈까? 오랜만에.”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정말 오랜만인지, 아니면 처음인지 모르겠으니까.
“헤에?!”
놀러 가자는 말에 눈이 동그래지는 채윤이.
채윤은 엄청난 것을 들어버린 것 마냥 입을 벌렸다.
“논너가묘?”
채윤이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김밥을 입에 한가득 먹고 있었기에 똑바로 들리진 않았다.
조성현은 낮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슬쩍 엉키려던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 조금씩 풀어진다.
“김밥 삼키고.”
그 말에 채윤이 얼른 김밥을 삼키고, 앞에 놓인 물까지 한 모금 마신다.
“놀러 가요? 아빠랑 가치?”
“응. 같이 놀러 가자. 어디 갈까?”
어디로 가야 할까.
놀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딸과 놀러 가본 적이 없으니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물어보는 게 최선을 것 같아서, 조성현은 망설이지 않고 채윤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우으음… 채윤이는 모르겠는데….”
채윤이는 앞에 김밥을 놔두고 열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잘 먹던 김밥까지 먹지 않고 고민을 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놀러 가고 싶었던 모양.
조성현과 함께 놀러 가는 게 채윤이로서는 굉장히 드문 일일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놀러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조성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딱히 놀러 가고 싶은 곳이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집에서 같이 노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렇게 묻자, 채윤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너무 많아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며, 시무룩한 얼굴을 해 보인다.
시무룩 해하는 표정마저도 귀여워서, 조성현은 웃음을 터트리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입을 열었다.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다 가면 되지.”
“다?”
“응. 다 가보자. 이번 주에도 가고, 다음 주에도, 다다음 주에도 가면 되잖아.”
“헤에에….”
채윤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꿈이라도 꾸듯, 눈은 반짝거리는데 얼굴은 멍한 느낌이었다.
“채윤아?”
“채윤이는 어어, 물고기도 보고 싶고, 토끼도 보고 싶고… 어…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채윤이를 부르자, 아이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빠르게 말했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쿠아리움도, 동물원도, 놀이공원도 가면 된다.
이번 주말에 다 가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천천히.
‘채윤이랑 노는 게 중요한 거지, 도장 깨기를 하는 건 아니니까.’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하며, 아직도 가고 싶은 곳들을 말하고 있는 채윤에게 입을 열었다.
“채윤아.”
“네에?”
“그럼, 내일은 물고기 보러 아쿠아리움에 가볼까?”
“채윤이는 좋아요!”
아이는 신난 목소리로 답했다.
* * *
아쿠아리움.
조성현도 굉장히 오랜만에 가는 것이었기에 조금 설렌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아쿠아리움.
지하철을 타면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 조성현과 채윤은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채윤이도 그렇지만, 조성현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지하철 타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채윤의 손을 잡고 열차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아요…”
채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성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의 말처럼, 사람이 많았다.
“주말이라 그런가 봐. 넘어지지 않도록 아빠 손 꼭 잡아.”
“네에.”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 손가락에 힘을 주어 손을 잡았다.
이내 지하철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채윤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비틀거렸다.
조성현은 황급히 팔에 힘을 줘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채윤은 놀란 것인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두 손으로 조성현의 팔을 잡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멈출 때마다 채윤은 비틀거리며 조성현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적응한 것일까?
채윤이 조성현의 손을 잡는 힘이 풀어졌고, 결국에는 두 손 모두 조성현의 손을 잡고 있지 않았다.
“채윤아. 손잡아야지?”
조성현은 손을 빼버린 채윤에게 고개를 돌리며 손을 뻗었다.
채윤은 밝게 웃고 있었다.
“이것 봐라요. 채윤이 균형 잘 잡아요.”
웃으면서 안 넘어지려고 애쓰는 아이를 보며, 조성현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신난 모습이었다.
“그러다 넘어져. 얼른 손잡아야지.”
조성현이 다시 말하며 손을 뻗었고, 채윤이는 살짝 고민하는 듯 보였다.
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조금 더 장난치고 싶다는 생각에 갈등이 생겼다.
그 갈등은 길지 않았다.
덜컹.
지하철이 역에 멈추면서 덜컹거렸고, 채윤은 결국 넘어졌다.
강하게 넘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성현도 놀라서 얼른 채윤을 일으켰다.
“괜찮아?”
“채윤이는 괜찮아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성현의 팔을 꼬옥 붙잡았다.
결국 넘어지고 나서야 다시 손을 잡는 채윤이를 보면서 조성현은 웃기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다치진 않았어?”
“괜찮은데… 손잡아야 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아쿠아리움이 있는 역에 도착할 때까지 조성현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 * *
“물고기다!”
채윤이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쿠아리움 입구부터 물고기가 있었고 채윤이는 그게 신기한지 수족관 바로 앞에서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을 구경했다.
“아이 한 명이랑 성인 한 명이요.”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말에 조성현은 티켓을 주머니에 넣으며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수족관이 보였다.
“우와아….”
채윤이 입을 벌리고 감탄을 흘렸다.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서, 조성현은 기분 좋은 얼굴로 수족관 가까이 다가갔다.
이름 모를 커다란 물고기가 다니는 것을 채윤이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채윤이는 천천히 움직였다.
다음 수족관으로 가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구경했고.
조성현도 그녀와 함께 이동했다.
“채윤아. 저것 봐. 니모다.”
조성현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유명한 흰동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채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니모…?”
“응. 니모.”
자연스럽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조성현은, 위화감에 멈칫거렸다.
채윤은 니모가 뭔지 모르는 듯 보였으니까.
흰동가리 하면 니모를 떠올리는 게 당연했던 조성현이기에, 채윤이 니모를 모른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니모 모르는구나….”
“저거는 물고기인데… 니모 아닌데…”
채윤이 힐끗 조성현을 보면서 말한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조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빠와 딸의 세대 차이는 이후에도 드러났다.
“우와 스퀴드넛이다!”
“스퀴드넛?”
여러 동물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며, 채윤이 말했다.
조성현은 채윤이 말하는 캐릭터들을 전혀 몰랐고, 채윤은 조성현이 모른다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는 스퀴드넛 몰라요?”
“응. 아빠는 잘 모르겠네.”
“스퀴드넛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채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조성현은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그가 말하기 전, 채윤이 또 한 번 감탄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커다란 물고기예요. 아빠!”
아쿠아리움의 메인 수족관이 보였다.
상어도 있고, 가오리도 있다.
큼직큼직한 물고기들도 있었고.
“엄청 크네. 채윤이 만하다.”
“사, 상어다….”
앞으로 달려나가려던 채윤이 멈칫거리며 조성현의 손을 꽉 잡았다.
상어를 이제 발견한 모양.
아이는 조성현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 상어….”
채윤이 커다란 수족관을 가리키며 말한다.
조성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자신을 꽉 잡고 있는 작은 손.
약간 겁먹은 듯한 얼굴.
어떻게 좀 해달라는 듯한 눈.
그 모든 것들이 귀여웠다.
“아빠아….”
채윤이 슬쩍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나 조성현의 다리에 얼굴을 가린다.
그제서야 조성현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 채윤아. 괜찮아. 저기 있는 상어들은 착한 상어들이야.”
“착해요…?”
“응. 엄청 착한 상어들이야.”
“채윤이 안 잡아먹어요?”
아이가 그렇게 물어보며 슬쩍 다리에서 빠져나와 수족관을 바라보았다.
어쩜 이리 귀여울 수 있을까.
조성현은 저도 모르게 채윤을 안아 들었다.
“헤엑?”
채윤이 놀라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금방 조성현의 품에 안겼다.
조금 안심이 되는지, 채윤이 빼꼼 얼굴을 내밀어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좋은 일이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