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유미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채윤이가 이 곡을 안다고?
어떻게 알지?
빠르게 생각을 하니, 어쩌면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조성현이 Pan 엔터테인먼트의 직원으로서 이 곡을 들어봤을 것이고.
그럼 조성현이 들을 때 채윤이도 들어봤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으니까.
이해하면서, 유미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채윤이 움찔한다.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채윤이는 욕심쟁이 아니야….”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채윤이의 말에, 유미는 눈을 깜빡거리며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채윤이의 손이 조성현의 카라멜 마끼아또를 향해 뻗어있었다.
짧막한 팔은 카라멜 마끼아또에 닿지는 않았지만, 채윤이는 괜히 찔렸던 모양.
“맙소사….”
유미는 조성현이 가끔 말하는 ‘맙소사’를 중얼거리며 웃었다.
어떻게 세상에 저렇게 귀여운 생물이 존재할 수 있지?
유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채윤아.”
“네에?”
“채윤이 이 곡 들어본 적 있어?”
그 말에 채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미가 웃으며 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조성현과 함께 들은 게 맞는 모양.
“근데, 채윤이는 다른 게 더 좋아.”
“응?”
유미는 채윤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다른 게 더 좋다는 건 무슨 말일까.
“그거 말고, 다른 거. 어떤 건데?”
“우으음….”
채윤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밝아진다.
아이는 금방 입을 열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유미는 그것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방금들은 노래랑 비슷해.’
하지만, ‘이빨빠진고양이’의 곡은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유미는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등이 서늘함을 느꼈다.
만약, ‘이빨빠진고양이’의 곡을 자신의 이번 앨범에 수록했었다면?
결국에는 문제가 터졌을 거다.
‘오빠가 엄청 큰 도움 준거네.’
조성현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자신의 앨범에 곡이 수록되지 않도록 막은 것이리라.
팀원 중에서 ‘이빨빠진고양이’의 곡이 유미의 앨범에 수록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은 조성현밖에 없다고 들었으니까.
“채윤아.”
“네에?”
“우리가 아빠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아빠를 도와요?”
“응. 저기 저 사람 보이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채윤이를 보며, 유미는 말을 이어나갔다.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거든. 채윤이 아빠를 괴롭히고 있어. 봐봐. 아빠도 화나 보이지?”
“…….”
채윤의 얼굴이 묘하게 변한다.
아이는 유미를 돌아보았다.
유미는 채윤의 표정이 차가운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해맑게 웃고 있었던 채윤이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이런 얼굴이라니.
“가서 아빠 도와줄까?”
“채윤이는 잘할 수 있어요.”
아이의 말에, 유미는 성큼 앞으로 나서서 회의실의 문을 열고 나겠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그녀보다 더 먼저 나가는 이가 있었다.
채윤이 짧은 다리로 도도도 뛰어나가더니 ‘이빨빠진고양이’의 앞으로 갔다.
“너! 멍청이!”
아이가 말했고.
또 한 번의 정적이 흘렀다.
* * *
조성현은 갑자기 튀어나와 ‘이빨빠진고양이’에게 멍청이라고 말하는 채윤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귀엽다.”
정적을 깬 것은 서예나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조성현은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채윤을 안아 들었다.
“채윤아.”
“멍청이가 아빠 괴롭혔어요?”
조성현은 채윤이가 말하는 멍청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았기에, 기분이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표현이 멍청이였다.
일기장에도 쓰였던 있는 표현.
실제로 채윤이 멍청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건 조성현도 처음이었다.
“아냐. 채윤아. 아빠 괜찮아.”
조성현은 흥분한 듯한 채윤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그리고 시선을 움직여 유미를 바라보았다.
유미도 당황했는지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 진짜 이게 무슨 상황이냐. 걔, 네 딸이야? 부녀가 아주 쌍으로 미쳤네. 아빠는 나를 도둑놈으로 몰더니, 딸은 날 멍청이라고 부르고.”
“…….”
조성현은 이를 악물며 ‘이빨빠진고양이’를 노려보았다.
채윤이를 안고 있지만 않았어도, 조성현은 닥치라고 외쳤을 것이었다.
‘이빨빠진고양이’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처음 보는 어른한테 대뜸 멍청이라고 하면서 삿대질을 하나? 야, 너.”
“이성주씨.”
박중원이 힐끗 조성현을 보았다가 나섰다.
하지만 ‘이빨빠진고양이’는 그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채윤이라고 했던가? 너희 엄마가 가정교육 그렇게 시켰어? 처음 보는 어른한테 욕부터 하라고?”
그 말에, 조성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정말로, 채윤이 품에 안겨 있지만 않았어도 당장 달려가 주먹부터 휘둘렀을 정도로 분노가 치솟았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마시죠. 이성주씨.”
조성현은 품 안에 안겨 있는 채윤이의 온기를 느끼며 겨우 자신의 화를 꾹 눌렀다.
겨우 억눌렀지만, 그래도 새어 나오는 분노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조성현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유미가 나섰다.
“채윤이가 이 곡을 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냐고. 회사에서 오다가다 들을 수도 있는 건 당연한 거고. 저 새끼가 집에서 들었을 수도 있는 거고!”
‘이빨빠진고양이’도 짜증이 난 것인지 화를 내며 말했다.
유미는 인상을 찡긋거렸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박중원과 우경수, 서예나도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누가 잘못을 했건 계속 욕을 하고 소리치는 ‘이빨빠진고양이’의 행동이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어린 애가 곡을 알아봐야 얼마나….”
“채윤이는 알아요!”
조성현의 품에 안겨 있던 채윤이 말했다.
아이는 씨익씨익 거리며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멍청이! 따라쟁이!”
채윤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고.
조성현은 슬쩍 손을 움직여 채윤이의 손을 잡았다.
화가 났고, 또 상대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손가락질이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조심스럽게 채윤이의 손가락을 접으면서 조막만 한 손을 감싸 쥐고 채윤이의 팔을 내린다.
“채윤이가 곡을 흥얼거리더라고요. 이 곡 듣자마자, 안다면서. 근데 분명 ‘이빨빠진고양이’의 곡은 아니었거든요.”
유미가 말한다.
말을 마친 그녀가 채윤이에게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치 채윤아?”
“응!”
채윤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이의 입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백히 ‘이빨빠진고양이’의 곡과 비슷했으나, 달랐다.
‘이빨빠진고양이’의 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음악 쪽으로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비슷한 느낌인데.”
박중원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애기가 뭘 안다고….”
‘이빨빠진고양이’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으나,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하지만.
“뭘 안다고 편곡까지 하겠어요. 기초는 같고, 표현 방식이 다른 곡인데. 이걸 애가 즉석에서 편곡했다고 하지는 않을 거고.”
서예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도 변했다.
박중원이, 흐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입을 열었다.
“채윤아.”
“네에…?”
박중원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채윤이 조심스럽게 답한다.
“그거, 피아노로도 칠 수 있어?”
“채윤이는 할 수 있어요!”
채윤이 자신 있게 외쳤다.
* * *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인만큼 연습실이 준비되어 있었고, 피아노 또한 있는 게 당연했다.
이동하면서, ‘이빨빠진고양이’는 계속해서 황당하다는 듯, 혹은 짜증스러운 듯 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거의 증거가 나온 상황.
누가 봐도 ‘이빨빠진고양이’는 당황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애가 비슷하게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저렇게 당황하지 않았을 거다.
원곡을 알고 있으니까 당황한 것.
조성현은 자신의 옆에 슬쩍 다가온 우경수를 힐끗 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유미씨랑 같이 카페에 있는데, 마주쳤어요.”
“아… 진짜. 황당하네. 표절인 거 확실하죠? 이랬는데 표절 아니면 더 황당한 거야.”
우경수의 말에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표절인 건 당연하다.
미래에도 그렇게 밝혀지고, 지금 이 순간.
명백히 밝혀질 테니까.
조성현이 바로 ‘이빨빠진고양이’에게 증거를 내밀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이빨빠진고양이’의 곡이 표절이라는 건 당연히 알았고, 지난번에 원곡을 찾아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장 그 원곡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조성현은 기다렸다.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그 원곡을 다시 찾기 위해 사운드 클라우드를 뒤적거리면서.
채윤이가 피아노 앞에 다가갈 때까지 조성현은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사운드 클라우드를 돌아보았다.
“하,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7살짜리가 뭘 안다고. 어이가 없네. 이러고도 내가 계속 Pan 엔터랑 계약할 것 같아요?”
박중원이 그의 말에 무어라 답을 하려 했지만, 그 전에 먼저 채윤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를 시작했다.
좀 전에 흥얼거린 것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피아노 연주.
조성현은 그 와중에 예전에 들었던 곡을 치는 채윤이에게 다시 한번 감탄했다.
원곡과 정확히 똑같이 연주되는 피아노를 듣고, ‘이빨빠진고양이’의 얼굴은 굳어졌다.
“시, 시발. 설마 이거 가지고 표절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7살짜리가 연주하는 곡 듣고. 어?”
당황해서 욕설을 내뱉었다가 빠르게 수습하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하는 ‘이빨빠진고양이’.
그는 채윤의 연주를 멈추려는 듯 성큼 한 걸음 다가갔고, 조성현은 곧바로 움직여 ‘이빨빠진고양이’를 막았다.
‘이빨빠진고양이’는 비틀거리며 옆으로 밀려났고.
조성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조용히 스마트폰의 버튼을 눌렀다.
채윤이 당황해 연주가 멈춰있던 사이, 조성현이 재생시킨 원곡이 흘러나왔다.
“쓰레기네.”
서예나가 혐오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걸로, 끝났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