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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36화 (36/603)

36화

조성현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없어서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차에 기대서 통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계산해도 커피 한 잔으로는 셈이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셈이요?”

-그쪽이 나 도와준 거잖아요. 괜히 똥 밟을 뻔했는데 그거 똥이라고 알려준 거니까. 근데 그걸 커피 한 잔으로 때우면 서예나라는 이름이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서예나가 말한다.

조성현은 그녀가 뭘 위해서 이렇게 말을 하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당장 서예나의 말은 조성현에게 무언가를 더 해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실상을 까보면 사실 완전히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서예나는 멍청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오랫동안 연예계 활동을 이어나간 가수였다.

지금까지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Pan 엔터테인먼트의 기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런 사람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이미 지나간 얘기를 다시 한번 꺼낸다?

자신의 연락처를 애써 알아내면서까지?

‘말도 안 되지.’

물론 서예나가 그냥 착하고, 마냥 사람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서예나가 아니라 유미였다면 조성현은 정말 순수하게 고마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느꼈을 거다.

하지만 서예나는 아니다.

조성현이 서예나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왜 아무런 말이 없어요? 내가 고마워하니까 기분이 좀 얼떨떨하나?

“아,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죄송합니다.”

-뭘 요구할지 눈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렸는데 딴생각은 무슨.

서예나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말을 한다.

그녀도 사람을 그리 쉽게 믿는 편은 아니었다.

연예계라는 게 그렇다.

그 누구도 쉽게 믿으면 안 되는 곳이다.

조성현은 저 멀리 보이는 유치원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딱히 뭘 요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예나씨.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걱정하는 건 아니고, 원래 은혜는 두 배로, 원수는 열 배로 갚는 게 국룰이니까. 내가 커피 한 잔으로 때우려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 같고, 나중에 또 모르잖아. 뒷말 나올지.

“…?”

조성현은 그런 국룰이 있었나 싶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서예나는 조성현이 말이 없자,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소리를 듣고 조성현이 말을 이었다.

“뒷말 안 나올 거고, 저는 커피로 충분합니다.”

이제 곧 퇴사할 텐데, 서예나와 더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냥 깔끔하게 나가는 게 조성현의 입장에서는 제일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서예나에게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 그러면 이런 건 어때요. 내 매니저 자리가 지금 비었는데, 그쪽이 내 매니저 하는 거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조성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서예나의 매니저 자리.

퇴사할 생각이 없었더라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자리였다.

서예나라는 이름이 주는 영향력은 상당하니까.

지금은 생각할 여지도 없지만.

“우 팀장님께 못 들으신 모양이네요. 저, 이번 주에 퇴사합니다.”

-엥. 갑자기 퇴사는 무슨 퇴사예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당장 토요일에 유미가 컴백했고 오늘도 스케줄 따라갔다면서.

“…그 부분은 우 팀장님께 물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슬슬 짜증이 나서, 조성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 힐끗 시간을 확인했다.

채윤이가 기다리겠다.

“죄송하지만, 예나씨. 제가 딸을 데리러 가야 해서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허… 알았어요. 내가 진짜. 살면서 이런 취급은 또 처음이네.

조성현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를 뿐.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대충 쑤셔 넣고, 조성현은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딸을 만나러.

* * *

하원하는 길.

채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조성현은 그런 아이를 보고, 픽 웃음을 흘렸다.

“채윤아.”

“네에?”

“오늘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네!”

채윤이 바로 답한다.

조성현은 유독 기분 좋아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는데?”

“영준이가 채윤이 피아노 잘 친다고 해줬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채윤이 헤헤 웃는다.

조성현은 그런 채윤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영준이가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해줬다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가?

‘하긴, 음악을 제일 좋아하니까. 그걸로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겠지.’

그 상대가 친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영준이가 음악 들을 줄 아네.”

“영준이는 나쁜 아이 아니에요.”

아이의 표현에 조성현은 웃음을 흘렸다.

“채윤아, 저녁은 뭐 먹을까?”

집에 다 와갈 때쯤, 조성현이 물었다.

딱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채윤은 고민하다가 조성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빠?”

“저녁으로 아빠 잡아먹는 거야?”

조성현이 웃으며 되묻자, 채윤이 눈이 동그랗게 되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닌데. 그러면 큰일 나요!”

채윤이 절대 안 된다는 듯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조성현이 또 한 번 웃음을 흘렸다.

아이가 어떤 의미로 말한 것인지는 잘 알겠으니까.

자신은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본 것이리라.

“아빠는 아무거나 다 괜찮은데. 집에 떡볶이 떡 있으니까 떡볶이 해 먹을까?”

“아빠가 떡볶이 해요?”

“할 수는 있지?”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설마 살면서 떡볶이 한 번 안 해봤을까.

조성현의 말에 채윤은 얼굴이 밝아졌다.

“채윤이는 좋아요!”

그렇게, 저녁 메뉴는 떡볶이로 정해졌다.

* * *

집에 돌아와서.

“채윤아. 손 먼저 씻자.”

조성현의 말에 채윤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화장실로 호다닥 달려왔다.

채윤을 슬쩍 안아 든 조성현은 채윤이 편하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내 자신도 손을 씻었다.

곧바로 그들은 떡볶이를 하기 시작했다.

떡볶이는 그리 어려운 요리가 아니었다.

집에 설탕도, 간장도, 고추장도 있는데 못 할 게 전혀 없었다.

채윤은 조성현이 떡볶이를 하는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조성현이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못 하는 건 또 아니었으니까.

능숙하진 못해도 어설프게나마 맛을 낼 수는 있었다.

“아빠.”

“응?”

“전화 왔어요?”

“응? 아냐. 그냥 확인하는 거야.”

떡볶이를 하는 동안 중간 중간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확인하던 조성현은 채윤의 말에 슬쩍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떡볶이는 금방 완성되었다.

조성현은 슬쩍 간을 확인한 후, 작은 접시에 채윤의 몫을 덜어주었다.

“채윤아, 이 정도면 됐어?”

끄덕.

고개를 끄덕거리는 채윤이는 이미 캐릭터가 그려진 포크를 들고 있었다.

얼른 먹고 싶다는 게 온몸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조성현은 웃으며 얼른 식탁에 상을 차렸다.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채윤이 신난 목소리로 외친다.

지난번에 김밥을 할 때도 느꼈지만, 채윤이는 조성현이 해주는 요리를 참 좋아했다.

‘그냥 신기해하는 걸 수도 있고.’

지금까지는 요리 같은 걸 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테니까.

집에서 밥을 먹을 때가 거의 없었을 거고, 있었을 때도 조성현이 밖에서 사 오거나, 아니면 채윤의 할머니인 이수현이 해주는 음식이었을 테니.

조성현은 떡볶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나쁘지 않은 맛이라서, 내심 만족하고 있는데.

포크로 떡을 찍어 입에 집어넣은 채윤의 얼굴이 이상했다.

조성현은 금방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채윤아, 왜. 맛이 없어?”

“마, 마싯어요.”

맛있다고 말을 하는데, 표정은 절대 맛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채윤의 당황한 얼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오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입에 있는 떡을 우물우물 씹고는 애써 삼켰다.

금방, 얼굴이 빨개진다.

조성현은 그제서야 채윤이 왜 그렇게 당황하고, 놀라는지 알아차렸다.

초보 아빠의 흔한 실수 중 하나였다.

분명 떡볶이는 맛이 없는 게 아니다.

조성현의 입맛에는 잘 맞았고, 괜찮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채윤아, 맵지? 미안해.”

7살의 어린 아이에게는 매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채윤이는 먹을 수 있어요!”

황급히, 채윤이 변명하듯 말한다.

조성현은 그런 채윤을 보면서 볼을 긁적거렸다.

누가봐도 매워하는 것 같은데.

저러다 얼굴 터지겠다.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가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 채윤에게 내밀었다.

채윤이 황급히 그것을 받아 쪽쪽 빨아 먹었다.

맵긴 정말 매웠던 모양.

“할머니가 해주는 떡볶이보다 매웠나 보다. 아빠가 미안해.”

그렇게 말을 하자 채윤이 고개를 흔든다.

“아빠가 해주는 떠뽀끼 맛있는데….”

미련 남은 눈으로, 떡볶이를 바라보며 말하는 채윤의 모습에 조성현은 풀썩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성현은 결국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딱히 대단한 건 없었다.

그냥, 위에 치즈를 좀 듬뿍 얹었을 뿐.

근본적으로 매운맛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치즈가 많이 도와줄 것이다.

“어때, 좀 괜찮아?”

“마싯서요.”

다행히, 채윤의 입맛에도 맞춰진 모양이다.

채윤이 헤헤 웃으며 떡볶이를 먹는 것을 보며, 조성현은 안심하고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날 채윤은, 떡볶이를 먹으며 요구르트를 3병이나 비웠다.

* * *

“아빠는 다 잘해.”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하고 있는데 대뜸 채윤이 다가와 말했다.

조성현은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와 그렇게 말을 하는 딸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채윤을 내려보았다.

“다 잘하는 거 아닌데. 아빠도 못 하는 거 많아.”

조성현이 말했다.

그는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훨씬 많다.

봐라, 당장 방금도 실수하지 않았던가.

채윤이가 7살 어린아이고, 당연히 떡볶이가 매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 단순한 걸 생각하질 못했다.

다 잘하기는 무슨.

“아빠는 어어,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해!”

“그래?”

조성현이 되묻자, 채윤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라, 조성현은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무리하며, 그는 고무장갑을 벗고 몸을 돌려 채윤을 안아 들었다.

“아빠가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해서 좋아?”

“응. 채윤이는 완전 좋아. 영준이도 아빠가 노래 잘한다고 했어요.”

“나중에 영준이 맛있는 거 사줘야겠네.”

“아빠는 노래 엄청 잘해요.”

계속 뭔가를 잘한다고 강조하는 걸 보며, 조성현은 채윤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냥 이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채윤의 의도는 금방 드러났다.

아이는 히히 웃으며, 슬쩍 주먹을 폈다.

작은 주먹 속에는 마찬가지로 작은 스티커 하나가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조성현의 손등에 붙였다.

“아빠는 잘하니까, 참 잘했어요 스티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참 잘했어요 스티커가, 자신의 손 등에 붙여졌다.

조성현은 그것을 받고, 진심으로 웃었다.

“우리 채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쩌지?”

큰일이다.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점점 딸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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