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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42화 (42/603)

42화

조성현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채윤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유재균과 대화하느라 시선을 잠시 돌렸었다.

잠깐,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그럴 때 비명소리가 들리니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느낌과 함께 후회가 들었다.

그냥 계속 채윤이를 바라보고 있을 걸 하는 생각.

비명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채윤이 바닥에 넘어져서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영준이 서 있고, 영준의 앞에는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정말 작아서, 채윤이가 두 팔로 안아 들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채윤이나 영준이가 다칠만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조성현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신고 걸음을 옮겼다.

강아지의 주인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채윤이 넘어지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강아지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고.

조성현은 피식 웃으며 채윤에게 다가갔다.

“아빠아….”

채윤이 놀란 조성현을 올려다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런 채윤이 너무 귀여워서 조성현은 웃음을 삼켜야 했다.

“죄송해요! 꼬물이가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꼬물이가 갑자기 다가가서 아기가 놀랐나 봐요.”

젊은 여성이 서둘러 꼬물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품에 안아 들면서 말했다.

조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채윤이가 놀란 건 사실이나, 저 강아지나 주인에게는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화를 낼 것까지는 없어 보였다.

너무 당황해하는 모습에 조성현이 오히려 더 차분해지기도 했고.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렇게 간단히 답한 조성현은, 채윤이를 안아 들며 아이의 몸을 훑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다.

그냥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전부였으니, 크게 다칠 일도 없었겠지만.

“채윤아, 괜찮아?”

“채윤이는 괜찮아요. 어어… 채윤이는 안 미워해요.”

꼬물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바라보며, 채윤이 말한다.

강아지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걸, 채윤이도 아는 모양.

조성현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채윤이 혹시나 강아지에게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아이는 강아지를 안 미워한다고 언급하면서, 괜찮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했다.

뒤에서 영준의 부모님이 다가와 상황을 살폈고, 영준이와 채윤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조성현은 그들의 행동에서 묘한 여유를 느꼈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일은 어쩌면 흔한 일일 수도 있다.

조성현이야 그가 해야 했을 행동을 한 것뿐이지만, 어쩌면 그게 과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초보 아빠라서 더 예민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을 거다.

조성현은 채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가, 채윤이 헤헤 웃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많이 놀랐어?”

“강아지가 채윤이한테 뛰었어요. 채윤이는 가만히 있었는데… 어, 강아지는 채윤이랑 부딪히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결국, 채윤이가 놀란 이유는 강아지가 다칠 것 같아서 였다는 거다.

물론 놀란 마음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허세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조성현은 채윤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면서 입을 열었다.

“강아지 이름이 꼬물이인가 봐요.”

“아, 네! 맞아요. 몇 개월 전에 저희 집에 왔을 때는 진짜 꼬물꼬물 거렸었거든요.”

“꼬물이도 놀랐을 것 같은데.”

“얘는 그냥 신나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놀란 게 자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작은 강아지였지만, 목줄도 잘했고.

사실 견주에게 그리 잘못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조성현은 그렇게 웃으며 견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채윤이 꼬물이에게 간식 하나를 주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채윤의 손을 잡고 다시 돗자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조성현은 힐끗 시선을 움직여 영준이를 바라보았다.

씩씩하게 걷는 영준이를 보면서, 조성현이 입을 열었다.

“영준아.”

“…?”

“아까 고마워. 채윤이 지켜줘서. 멋지더라.”

영준이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채윤이 넘어진 것을 본 영준이 곧바로 강아지와 채윤의 앞을 가로막은 걸 봤다.

물론 꼬물이가 채윤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조성현은 영준에게 고마웠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든든한 느낌이랄까.

채윤이와 영준이 더 많이 친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친한 건 안 되겠지만.’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 * *

채윤이와 영준은 조금 더 뛰어놀다가 지쳤는지 돗자리에 누워서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 채윤을 잠시 바라보던 조성현은 슬쩍 웃었다.

“이렇게 보면, 성현씨는 진짜 채윤이를 사랑하는 게 눈에 훤히 보여요.”

“제 딸이니까요.”

“어휴. 저는 제 아들인데도 가끔 밉다니까요.”

정미원이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영준이가 슬쩍 눈을 뜨고는 자신의 엄마를 바라본다.

“알았어. 알았어.”

정미원이 웃으며 영준의 눈을 손으로 가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정미원을 한 번 바라본 영준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일련의 과정을 본 조성현은, 자신과 채윤의 관계와는 조금 다른 그들의 관계에 새로움을 느꼈다.

“채윤이도 그렇고, 성현씨도 그렇고. 둘이 정말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채윤이가 성현씨 챙겨주는 것도 너무 예쁘고. 역시 딸이 좋구나 싶더라니까요.”

“아… 제가 사실 채윤이한테 워낙 못했다가, 이제야 잘하기 시작한 거라서요. 민망하네요.”

조성현이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가 이어지다가.

“애들도 배고플 것 같은데.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반대쪽으로 30분? 40분 정도 가다 보면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나올 거예요.”

유재균의 말에 조성현과 정미원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윤을 유아석에 태우고, 조성현은 또 한 번 달렸다.

채윤은 조성현의 등에 바짝 붙어서 다 닿지 않는 팔로 조성현을 끌어 안았다.

헤헤 거리면서 웃는 게 느껴져서, 조성현도 피식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얼마나 달렸을까.

누가봐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등장했다.

즉석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곳이었고, 조성현도 그렇게 끓여 먹어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채윤이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채윤이는 무슨 라면 먹을래?”

조성현의 말에 채윤은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안 매운 거…?”

그 말에, 조성현은 설렁탕 라면을 들어 보였다.

하얀 게 안 매워 보였는지, 채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라면을 용기에 담아 끓인 후.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다.

“후우. 후.”

채윤이 라면을 들어 후후 식힌 후, 조심스럽게 입에 집어넣었다.

조성현은 채윤이 잘 먹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도 식사를 시작했다.

영준이는 식사를 하면서 힐끗 힐끗 채윤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채윤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유미의 신곡도, 조성현과 함께 피아노를 친 ‘나랑 같이 낙엽 놀이할래?’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적어도 15년, 20년은 된 옛날 노래들을 채윤이 흥얼거리고 있었다.

“와… 이 노래 진짜 오랜만인데. 채윤이는 어떻게 다 아나 봐요.”

정미원이 신기한 듯 채윤을 바라보았다.

조성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싶었는데, 유재균과 정미원은 알아서 자신들끼리 해석을 했다.

“아빠 직업이 직업인데. 들을 기회는 많았겠지.”

“아, 하긴. 그렇겠다.”

그들의 말에 조성현은 그저 어색하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하기 위해서였다.

“재균씨, 제가 좀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요.”

“아, 예. 물어보세요.”

“저희 채윤이가 피아노를 좀 치거든요.”

“피아노 좋죠.”

유재균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채윤은 자신이 언급되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근데 좀 많이 잘 치는 편이라… 혹시 채윤이 나이에 제대로 음악을 하고 싶으면, 어떤 걸 하는 게 제일 좋을까요?”

“일단… 피아노 쪽이면 일차적으로는 예중 쪽으로 목표 잡고 하시면 될 텐데.”

“예중이요?”

“네. 사실 어릴 때부터 왕도를 걷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니까요. 예중, 예고, 예대. 그렇게 나와서 대학원 과정까지 밟는 게 가장 무난하고 가장 스텐다드한 방법이죠.”

“아….”

조성현이 작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스텐다드한 방법이다.

그 말이, 조성현의 귓가에서 울렸다.

당연히 그가 생각해도 그게 제일 정상적이고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채윤이의 재능이, 무난한 재능인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채윤이의 재능은 무난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

압도적인 재능이었다.

클래식 쪽으로는 크게 관심이 없는 조성현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을 어느 정도 공부했고, 다룰 수 있는 악기도 상당히 있었다.

피아노도 다룰 수 있고, 그리 친숙하거나 하진 않지만 바이올린도 소리를 낸다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만큼, 채윤의 재능이 그냥 평범하게 잘한다는 수준의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재균이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저라면… 일단 뭘 어떻게 하던. 제 아이가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면 콩쿨을 준비시켰을 것 같아요.”

“콩쿨이요?”

“네. 콩쿨은 무조건 도움이 되니까요. 입상을 못해도 경험이 되고, 많은 무대를 겪어 볼수록 아이는 계속해서 경험을 쌓고 더 발전해 나갈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겪고 힘들어하는 애들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콩쿨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유재균이 말한다.

조성현은 그의 말에 눈을 빛냈다.

채윤이 예술 중학교에 가고, 예술 고등학교에 가서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조성현은 그게 어쩌면 채윤에게 그리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로서 너무 딸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의 소견이 있는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학교는 채윤이를 가두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

그럼 안 된다.

채윤이가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조성현이 할 일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콩쿨은 굉장히 좋은 수단이었다.

아이를 가두고 통제하지 않아도, 콩쿨을 나가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콩쿨을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채윤이 말을 걸었다.

“아빠아.”

“응, 채윤아.”

“콩쿠르가 뭐예요?”

아이가 물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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