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채윤이가 서예나의 다리를 끌어안고 토닥여준 사건은, 금방 마무리가 되었다.
일단 뭐, 아이가 그렇게 한 건데 성인인 서예나가 뭐라 화를 내는 것도 웃긴 상황이었고.
애초에 그녀는 그저 황당했을 뿐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서예나가 아무리 막 나가는 성격이고 화를 자주 낸다고는 해도 어린 아이가 자신을 끌어안았다고 화를 낼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조성현은 살짝 난처한 상황이 되긴 했다.
채윤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조성현은 이야기가 달랐다.
“모르겠어?”
우경수의 물음에, 조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요.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채윤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는 우경수의 말에, 조성현은 그렇게 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정말로 그도 몰랐고, 함께 당황했었으니까.
조성현은 힐끗 시선을 움직여 채윤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지금은 해맑게 웃으며 서예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예나도 보기 드문 미소를 보이며 채윤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팀장님.”
“응?”
“나 얘랑 편의점 다녀와도 괜찮죠? 젤리 좋아한다 해서.”
“아, 젤리는 저한테 있어요.”
서예나의 말에 조성현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그는 채윤이와 이동을 할 때면 항상 품에 들고 다니는 젤리 봉지를 꺼내서 서예나에게 주었다.
곰돌이 모양 젤리가 10개 남짓 들어 있는 작은 젤리 봉지를 보면서 채윤이 활짝 웃었다.
저녁 식사 전에는 되도록 젤리를 주지 않고 있는데, 안 주면 서예나가 정말 편의점에 가서 한가득 사줄 기세여서 주는 게 좋아 보였다.
채윤이와 서예나를 편의점에 보내느니, 눈앞에 두는게 마음이 놓일 것이다.
서예나는 흠 하고 소리를 내면서 조성현에게서 젤리를 받아 들고는 그것을 뜯어 채윤이에게 하나씩 주기 시작했다.
우경수 팀장은 그걸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조성현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하긴 그동안 서예나를 옆에서 지켜본 인물인데,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조성현은 어색하게 웃어주며, 슬쩍 최현준을 바라보았다.
최현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최현준이 자기 입으로 진실을 말하게 할까.’
그냥 조성현이 캐묻는다고 해서 진실을 말할 최현준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으면 우경수에게 먼저 말을 했겠지.
최현준은 정말 끝까지 발뺌을 할 인물이었다.
스스로 입을 열게 하던가, 아니면 증거를 찾던가.
둘 중 하나인데, 아마 증거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을까.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멀리서 박중원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는 우경수의 전화를 받고, 가수 1팀 사무실에서 가수 2팀 사무실로 온 것이었다.
박중원은 조성현을 보자마자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어째 회사를 다닐 때보다 퇴사를 하고 나서 더 뭔가 사건 사고가 많은 것 같다?”
“…그러게요.”
조성현은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을 했다.
지난 생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일을 했고, 작곡가로서 소속되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고, 진짜 일에만 집중해서 다른 뭔가를 보지 않았다.
근데, 이번 생.
지난 생에 잃었던 것들을 다시 되찾고 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니 더 많은 일들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하고도 자주 엮이게 되고.
지난 생의 삶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지만.
“됐고, 그래서 무슨 일이야. 갑자기 뭐 성현이 딸이 사고 쳤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응 그건 이미 마무리했고, 온 김에 이번에 서예나씨 디지털 싱글 앨범 준비하는 거나 듣고 가.”
“…….”
우경수의 말에 박중원은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수 1팀과 2팀이 담당하는 아티스트들이 다르긴 하지만, 완전히 하는 일이 다른 것도 아니니 당연히 서로 교류를 자주 하고는 했다.
특히, 팀장 차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우경수 팀장과 박중원은 친분도 있으니 서로 준비하는 것들을 들어보고 평가하는 것도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큰일인 양 불러내서 갑자기 들어보라고 하니까 황당했을 뿐.
“한 번 들어보고 가죠. 그럼.”
박중원은 미간을 좁히고는 말했다.
우경수가 픽 웃으며 또 한 번 곡을 재생시켰다.
조성현은 이미 들은 곡을 다시 한번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시간을 한 번 확인 하고는 다시 최현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판만 깔리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그 판을 자신이 깔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
괜히 복잡해지는 것은 싫었다.
채윤이와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도 싫고.
오늘 저녁을 미룬 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 신경을 쓰는 건 귀찮았다.
악연을 정리하고 싶은 건 맞지만, 어쨌든 그런 것들보다는 채윤이가 더 중요했으니까.
‘그냥 우경수 팀장한테 슬쩍 말하고 넘어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곡이 끝났다.
박중원은 묘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난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박 팀장이 들어도 그렇지?”
박중원이 들어도 곡이 나쁘지 않았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우경수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서예나는 별로 곡이 안 맞는다, 내키지 않는다고 하지, 그 와중에 채윤이가 갑자기 곡을 듣자마자 울먹거리면서 서예나보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지… 괜히 머리가 복잡했는데 좀 정리가 되는 기분이리라.
하지만 우경수 팀장의 얼굴은 다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응, 예나씨.”
“저 이 곡 안 할래요.”
담담하게 내뱉어진 서예나의 폭탄선언.
박중원은 아, 하며 작게 인상을 찡그렸다.
괜히 복잡한 타이밍에 와서 얽혔다는 표정이다.
조성현은 서예나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채윤이랑 같이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젤리를 나눠먹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서예나는 곡을 안 하겠다는 선언을 한 걸까.
시선을 움직여 채윤이를 바라보니.
아이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우경수 팀장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예나씨….”
“솔직히 팀장님, 나 데뷔 때부터 하고 싶은 거 한 적 없잖아. 나도 이제 하기 싫은 건 안 하겠다는 건데.”
“최 매니저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내 말도 있고, 원하는 대로 성현씨 말도 들어봤잖아. 근데 뭐가 문제에요.”
우경수 팀장이 물었고.
서예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불만 가득한 얼굴.
깽판을 부리고 싶은데, 우경수 팀장이라 차마 못 부리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마, 최현준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난리가 났겠지.
서예나가 그리 얌전한 성격은 아니니까.
“…몰라. 나 아무튼 안 할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최현준을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가 몸을 돌렸다.
서예나는 회의실을 나가버렸고.
조성현과 박중원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한 얼굴을 해보였다.
우경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예나의 뒤를 따라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남은 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고 있는 채윤이와.
조성현, 박중원, 그리고 최현준 뿐이었다.
최현준은 무슨 생각인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최현준의 말에 박중원 팀장이 손을 휘휘 흔들며 다녀오라는 듯한 제스쳐를 해 보였다.
최현준마저 나가고.
박중원은 어휴 하고 소리를 냈다.
“남의 팀 회의실에서 이게 뭐하는 건지.”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서예나씨가 곡이 마음에 안 드나봐요.”
조성현이 답했다.
솔직히, 그는 서예나가 왜 곡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지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보컬에서부터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컨셉적으로는 잘 맞는 곡이었다.
‘그럼, 채윤이는 왜 예나씨에게 그런 행동을 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채윤이의 음악적 재능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고, 자신이 느끼지 못한 것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아빠, 아아….”
조성현은 자신에게 젤리를 내미는 채윤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젤리를 하나 받아먹고.
“채윤아.”
“네에?”
“아까 예나씨 곡 듣는데 느낌이 어땠어?”
“움… 불쌍했어요.”
“예나씨가?”
“응.”
조성현은 ‘불쌍’했다고 표현하는 그 말에, 조금 놀라서 되물었다.
그는 곡을 들으며 불쌍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
컨셉과 서예나의 진심은 조금 다르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다.
채윤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정말로 서예나가 불쌍했다는 듯.
서예나가 들었으면 아마,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로 아이를 쳐다봤을 거다.
“왜 불쌍했는데?”
“왜냐면, 언니는 무서운데 안 무섭다고 막 거짓말 쳤어요.”
“그래?”
어떤 걸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
조성현도 비슷하게 느꼈으니까.
컨셉은 자신감 넘치고, 전부 들어와 다 상대해줄 테니 까라는 느낌의 힘 있는 컨셉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보컬은, 최대한 그것을 ‘연기’ 할 뿐.
진심으로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내면은 지쳤고, 이제는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채윤이는 무서우면 어어, 아빠가 와서 지켜주고. 영준이도 있는데… 언니는 아무도 없었어.”
아이가 손짓을 하면서 말한다.
최대한 설명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조성현은 이 와중에 등장한 영준이라는 이름에 멈칫거렸으나,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불쌍했어?”
“응. 채윤이 옆에는 아빠가 있는데. 언니는 아무도 없어. 그러면 슬픈데.”
조성현은 그 말에, 미간을 좁혔다.
채윤이가 의도하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지난 생의 자신이 채윤이를 홀로 두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이는 혼자 고립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윤이는 서예나에게 공감하고 그녀를 안아 준 것이리라.
“…채윤아.”
“응?”
“그럼, 예나씨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채윤이는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아이가 답한다.
조성현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아빠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도와줘…?”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채윤이의 뜻은 명확했다.
그녀는 자신이 서예나를 도와주기를 원한다.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일인지, 잘 알기에.
조성현은, 풀썩 웃었다.
“우리 딸. 예쁘네.”
“헤…?”
채윤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조성현의 손길이 기분이 좋은지 헤헤 웃으며 조성현의 손에 볼을 비볐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조성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서예나는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컨셉대로 진행하고 싶지 않아 한다.
진심을 노래하고 싶어 하고 있었고.
원래의 미래대로라면 그녀는 몇 년 후에나 그런 게 가능해진다.
그래도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었을 때 서예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중들이 당황하긴 했어도, 실패는 없었던 것.
최현준이 강하게 밀고 있는 곡.
거짓이 가득한 곡.
우경수 팀장과 서예나의 관계.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채윤이가 자신이 서예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까지.
“형.”
“응?”
“우경수 팀장은 아마 예나씨한테 이거 그대로 진행하자고 설득하겠죠?”
“그렇겠지.”
“아마 예나씨도 마지못해 하게 될 거고요.”
“응. 우 팀장이 서예나 컨트롤은 잘하니까.”
박중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한다.
조성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만약, 이 곡이… 문제가 있는 곡이라면요?”
그 말에, 박중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