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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109화 (109/603)

109화

“어머….”

남자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미안하다는 듯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조성현은 일단 채윤이를 살폈다.

아이가 혹시 상처를 입은 건 아닌지 확인한 것.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몸 자체는 멀쩡해 보였다.

조성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채윤이를 조심스럽게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솔직히 말해서, 남자 아이의 심리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콩쿨 직전이고,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고는 해도 마지막 무대를 하는데 집중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감정을 잡는 것이 수도 있고, 자기만의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어쩌면, 기도를 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고.

정말 많은 경우의 수가 있고, 조성현은 매니저 일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런 습관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아서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남자 아이도 그런 식의 습관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경쟁하는 입장에서 남자 아이는 채윤이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도 되는 일이고, 자신만의 습관이 있다면 그걸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충분히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딸이 대놓고 무시를 당했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이해가 되는 거랑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며, 조금이나마 가슴이 아픈 건 약간 다른 이야기니까.

조성현은 남자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고, 채윤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집중하고 있나 봐. 우리가 조용히 해주자. 채윤이도 연습할 때 친구들이 말 걸면 막 방해받는 느낌이 들고 그렇잖아.”

“응….”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했다.

너무 대놓고 무시를 당해서 그런지 약간 기가 죽은 것 같긴 하지만, 아이도 남자 아이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긴 했다.

결국 상황을 지켜보던 남자 아이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박한율이야.”

여성의 목소리에 채윤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남자 아이의 엄마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애는 박한율이고, 9살이야.”

채윤이는 헤에에 소리를 내며 눈을 빛냈다.

아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여성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채윤이는 7살이에요.”

“응. 채윤아. 반가워. 한율이가 원래 무대 전에는 아무하고도 말을 안 하려고 하거든. 미안해.”

“채윤이는 괜찮아요!”

아이는 금방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며 답했다.

박한율의 엄마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입에 둔 채, 입을 열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채윤아.”

그녀의 말에 채윤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조성현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박한율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아이가 조금 매정해서….”

박한율의 어머니는 박한율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던 그녀는 아 하고 작게 소리를 내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보통은 다들 엄마랑 오는데 채윤이는 아버님이랑 같이 왔네요.”

“아….”

“한율이도 아빠랑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박한율의 어머니는 부러운 듯한 시선으로 조성현과 채윤이를 돌아보았다.

조성현은 난처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말하는 기색을 봤을 때 저쪽 집안도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조성현네와 사정이 비슷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조성현은 힐끗 채윤이를 한 번 보고는 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상태라는 걸 확인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 엄마가, 세상에 없어서요.”

“아 진짜….”

조성현의 말과, 박한율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겹친다.

박한율은 짜증을 내다가 조성현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고.

그의 어머니는 당황했는지 눈이 살짝 떨렸다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들었다.

“제가 실수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은요. 아닙니다.”

그녀가 죄송할 일은 아니었다.

조성현이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말했다.

굳이 이걸 뭐 누가 잘못했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녀와의 대화는 그것을 끝으로 끊겼다.

대신 박한율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힐끗 바라보았다가, 채윤이에게 윙크를 한 번 보내주었다.

박한율이 짜증을 낸 것 때문에 조용히 해야 한다는 듯한 제스처.

채윤이는 소리 죽여 웃었다.

아이가 기분 좋아 보였으니, 조성현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준비할게요.”

직원이 대기실로 들어와 말했다.

이제, 콩쿨의 마지막 본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채윤이는 세 번째 순서였고.

그 말은 아이의 앞에 두 명의 참가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박한율이었다.

“박한율 군.”

박한율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가장 첫 번째 순서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박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아직 9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채윤이가 그냥 해맑게 웃고 있는 것과는 다른 느낌.

2년의 차이가 그리 큰 건지, 아니면 박한율이 성숙한 건지 모르겠다.

대기실에 앉아있던 박한율의 어머니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아이가 들어갔으니, 무대를 보러 가려는 모양.

대기실에 따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무대를 보려면 이동을 해야 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며 조성현과 채윤이에게 눈인사를 한 그녀는 대기실을 빠져나갔고.

그 순간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어휴.”

누군가 중얼거리고, 공감한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무래도 조성현과 채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물어보기도 애매해서, 조성현은 채윤이와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대기실이 무대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작게나마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시작한 모양.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던 조성현은, 박한율이 선택한 곡이 무슨 곡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채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성현을 돌아보았다.

박한율은, 이번에도 채윤이와 같은 곡을 선택했다.

기묘한 우연이 신기하긴 해서, 조성현은 채윤이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신기하다. 그치?”

“응. 채윤이랑 같은 곡이야.”

바흐 인벤션 8번.

박한율은 무슨 생각으로 그 곡을 선택했을까.

조성현은 눈을 감고 피아노 소리에 집중해, 연주를 들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박한율은 정말 괜찮은 피아노 연주를 했다.

지난번에 들었던 연주와 가지고 있는 결은 같았다.

아주 정석적인 연주.

지킬 것을 지키고, 해야 할 것을 하는 연주였다.

어떻게 보면 감정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거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거다.

조성현은 박한율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과 채윤이의 연주를 생각하며 비교했다.

누군가 다른 시점으로 곡을 바라보고 다르게 곡을 연주하는 걸 듣는 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채윤이를 바라보니, 아이도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는지 조성현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있었다.

연주는 금방 끝났다.

“고은비 양.”

다른 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드레스를 입은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긴장한 모습.

아이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대기실을 벗어나 무대 쪽으로 향했다.

이제, 다음으로 무대를 향하는 건 채윤이가 될 거다.

* * *

“흠… 나쁘지 않네요.”

고은비가 무대에서 내려가자마자 김선빈 교수가 한 말이다.

정세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나쁘지 않은 연주였다.

첫 번째 들은 연주가 워낙 괜찮아서 그렇지, 고은비가 첫 번째 순서였다면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거다.

정세연은 총 5개의 점수란에 하나씩 숫자를 적어나갔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자신만의 점수를 적어나가면서 대화를 했다.

“고은비도 나쁘지 않은데, 저는 역시 박한율의 연주가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강력한 우승 후보죠. 박한율은.”

“박한율에게 피아노 가르쳐주는 선생이 실비아라고 했죠?”

“네. 실비아가 작년 초부터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어요.”

심사위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정세연은 점수를 전부 쓴 후, 고개를 들었다.

실비아 가르시아.

미국 국적의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정세연 본인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정세연 자신이 이제 막 고개를 드는 새싹이라면, 실비아 가르시아는 활짝 핀 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그녀가 박한율에게 직접 레슨하고 있다니.

한 달에 차 한 대씩을 레슨비로 사용하는 급이다.

“대단하다. 진짜. 집안이 웬만큼 좋아서는 그런 짓 못 할텐데.”

“왜, 지금 JK 그룹 대표가 두 명이잖아요. 조진욱이랑 박경태.”

김선빈 교수의 말에 다른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슬쩍 말을 꺼낸다.

JK 그룹은 대표가 둘이다.

엔터테인먼트 쪽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조진욱 대표.

그리고 엔터 외 나머지 부분들을 이끌어나가는 박경태 대표.

“박한율 아빠가 박경태에요.”

“엥? 박경태 대표 아들 없지 않아요? 와이프가 몸이 그렇게 좋지 않다면서.”

“와이프 말고. 결혼 전부터 애가 있었던 거죠. 박경태 대표 결혼한 지 이제 8년이잖아요. 그리고 박한율은, 9살이고.”

그 말을 들은 정세연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박한율도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긴 했는데, 그런 사정일 줄은 몰랐던 것.

그리고 그녀는, 방금의 말을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콩쿨 우승자는, 박한율이다.

다들 몰랐던 사실을 이제 알았다는 얼굴이 아니라,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면서 동조를 하는 게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같았다.

그럼 뭐, 다들 이미 박한율을 우승자로 내정해두고 있겠지.

다른 그룹도 아니고, JK의 대표 중 한 명의 아들이라는데 어쩌겠나.

JK에서 주최하는 콩쿨인데.

아니나 다를까.

“박한율이 제일 잘하던데.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구만. 좋은 피 물려받았으니 뭐. 하하.”

김선빈 교수가 웃으며 말한다.

“저도 가장 기대 되는 건 박한율이었습니다. 피아노가 진짜 교과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더라고요.”

“박한율은 이번 콩쿨도 콩쿨인데, 미래가 정말 많이 기대가 됩니다.”

심사위원들이 웃으며 박한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김선빈 교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정세연을 바라본다.

“정세연 피아니스트는요?”

“네?”

“누가 제일 기대가 됩니까?”

정세연은, 김선빈 교수의 물음에 슬쩍 시선을 내렸다.

이건 그냥 답을 정해두고 물어보는 것 아닌가.

정세연은 이런 분위기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박한율이라고 대답을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르겠다고 답을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눈앞에 있는 프로필을 보고 빙긋 웃었다.

반가운 이름이 쓰여 있었다.

“저는, 조채윤 양이 제일 기대가 되네요.”

진심을 담아, 그녀가 답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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