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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126화 (126/603)

126화

채윤이는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와, 그대로 조성현에게 와서 안겼다.

“아빠아….”

“응, 채윤아.”

“졸려요.”

눈이 초롱초롱한 게, 그리 졸려 보이진 않았다.

아직 잘 시간도 아니었고.

근데 왜 졸리다고 할까.

약간 무기력해 보이는 느낌이긴 했기에, 조성현은 채윤이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인어공주랑 놀고 있을래?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오늘은 일찍 자자.”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조성현은 채윤이를 안아 들고 피아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 인어공주 인형을 들어 채윤이에게 안겨주었다.

채윤이가 인어공주 인형을 받아들고 조성현의 품에서 그것을 꼬옥 안았다.

조성현은 채윤이를 다시 소파에 올려놓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채윤이가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인어공주에게 무어라 말을 걸며 노는 걸 뒤로 하고, 조성현은 저녁 준비를 했다.

약간 이르긴 했지만, 일단 밥을 먹고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일찍 자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뭐.

조성현은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에서 야채를 꺼냈다.

‘오므라이스라도 해볼까.’

음식 준비를 하면서, 그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채윤이가 피아노를 치지 못해서 조성현의 머리도 덩달아 복잡해졌다.

일단 영화, ‘바람의 왕국’ 때문인 것은 확실했는데.

뭐가 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채윤이가 충격을 받을 만한 요소들은 넘쳐났으니까.

일단, 채윤이는 영화관을 처음 가보는 것이었고.

거기서 영화관 특유의 웅장한 사운드를 처음 들었다.

처음 들은 게 ‘바람의 왕국’의 음악이었고, 그 중 ‘같이 낙엽놀이 할래?’도 끼어 있었던 상황.

채윤이가 이제껏 연습해왔던 곡이 ‘같이 낙엽놀이 할래?’ 였던 만큼, 충격을 받을 여지는 충분했다.

조성현 역시 영화를 다시 보며, 기분 좋은 여운에 빠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채윤이는 그 이상, 인 것 같단 말이지.’

자신이 연주하는 ‘같이 낙엽놀이 할래?’와 영화에서 봤던 곡이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두 시간짜리 뮤직 비디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영화 사운드를 듣고 와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조성현은 음식 준비를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채윤이 쪽을 힐끗 힐끗 바라보며 살폈다.

아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는 훨씬 편해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조성현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

저러면 정말로 음악에 있어서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되는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성현이 파악하지 못한 영역까지 채윤이는 파악했을 수도 있고.

너무 완성도 있는 음악을 듣고 나서 자신의 음악이 볼품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 거다.

조성현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가, 애써 웃었다.

어느새 저녁 준비가 다 됐다.

“채윤아, 밥 먹자.”

그는 걱정이 되지만, 일단 아이의 앞에서는 그것을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굳이 조성현까지 아이를 걱정하면서 약간 가라앉은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조성현은 일단, 아이의 앞에서는 밝은 모습을 보였다.

채윤이가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밥?”

“응. 오므라이스 했어.”

오므라이스랑 같이 먹을 수 있게 치킨 텐더도 같이 했다.

조성현은 아이의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주었고, 채윤이는 그것을 보고 히히 웃었다.

“채윤이도 할래!”

아이가 웃는 것을 보고, 조성현도 내심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다.

일단 다행히 계속 시무룩한 모습은 아니니까.

단순히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을 뿌리는 것뿐인데도, 아이는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헤헤 웃으면서 케첩 통을 건네받은 채윤이는 열심히 조성현의 오므라이스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삐뚤빼뚤한 하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비대칭이기까지 해서, 그리는 과정을 보지 않았다면 저게 뭔지 몇 번은 고민해봤어야 할 그림.

조성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있었던 고민과 걱정이 전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위해서 하트를 그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망쳤어….”

채윤이는 자신이 그린 하트와 조성현이 그린 하트를 비교해서 보더니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조성현은 아이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아니야. 채윤아. 엄청 잘했는데?”

“하트 하려고 했는데.”

“아빠한테 하트 그려주려고 했지?”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채윤아. 잘 먹을게.”

그가 그렇게 말하자, 채윤이의 얼굴이 다시 베시시 핀다.

금방 기분 좋은 얼굴이 된 채윤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오므라이스를 먹기 시작했다.

조성현도 식사했고, 식사 자리에서 나온 것들은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나, 조성현이 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또 유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 * *

채윤이는 일찍 잤고, 결국 일찍 일어났다.

조성현도 아이를 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덩달아 일찍 눈을 뜰 수 있었다.

조금 여유 있게 아침을 맞이한 채윤이와 조성현은 오랜만에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 있었다.

채윤이가 조성현의 볼을 쿡쿡 찔렀다.

조성현은 아이의 볼을 가볍게 누르며 채윤이가 자신에게 하는 것을 따라 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르 하고 웃음을 흘린다.

“아빠 완전 웃겨.”

채윤이가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으로 조성현의 볼을 눌러 그의 입 모양을 이상하게 만들고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 하고 건드렸다.

“이제 준비할까?”

“응!”

그의 말에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성현도 아이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열심히 외출 준비를 하고, 그들은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빠.”

“응?”

“눈은 언제 와요?”

채윤이가 묻는다.

조성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하늘은, 눈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기예보도 눈이 온다는 말은 없었고.

“글쎄. 눈 보고 싶어?”

“눈 오면 유미 언니가 같이 놀아준다고 했는데.”

“얼른 눈이 와야겠네.”

“맞아.”

조성현은 채윤이의 답에 웃었다.

벌써 저 멀리 유치원이 보이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채윤아.”

조성현은 아이를 등원시킨 후, 카페로 향했다.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가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아직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는 느낌이었고, 아마 어제 채윤이가 피아노를 쳤더라면 조성현도 바이올린을 꺼내서 함께 연주했었을 거다.

조성현은 스스로가 가지는 음악에 대한 갈망이 한 단계 더 높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안 그러면 이렇게 손이 근질거리지는 않겠지.

바이올린을 조금 더 공부해서 조금 더 잘 연주하고 싶었다.

채윤이의 피아노는 나날이 늘고 성장하고 있는데 조성현의 바이올린은 그대로인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나중에 따로 시간 내서 연습해야지.”

집안일을 하고, 서예나의 앨범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 슬슬 시간을 내서 연습해야 할 것 같았다.

채윤이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조성현은 자신의 바이올린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는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고 익숙하게 안경을 썼다.

악보를 꺼내서, 악보를 읽고 여러 가지 바이올린 영상을 찾아본다.

두어 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조성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뭐해요?

묘한 분위기의 목소리가 울린다.

평소보다 훨씬 더 무게 있고, 날카롭지 않은 목소리에 조성현은 힐끗 전화 상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서예나.

그녀가 맞다.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공부? 뭐, 자격증 같은 거라도 따요?

“아뇨. 그냥 음악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조성현의 말에, 서예나가 아 하고 소리를 낸다.

-하긴, 그 정도 실력이면 따로 공부했겠지.

“…무슨 일로 전화하신 겁니까?”

아무 용건 없이 전화했을 것 같진 않은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서예나의 스케줄이 있는 거였으면 우경수 팀장에게 전화가 왔을 텐데 서예나가 직접 전화한 거면 스케줄은 아닌 것 같았다.

-뭐 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나. 그냥 전화 해봤어요.

“…….”

조성현은 미묘한 얼굴을 했다.

아무 용건 없이 전화를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서예나와 조성현이 그런 사이인가?

조성현의 침묵에, 서예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전화해줬으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뭔가 방해하지 말고 얼른 끊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지?

서예나의 말에 조성현은 가볍게 웃었다.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진짜 무슨 일은 없나 싶어서 그런 거예요.”

조성현이 그렇게 말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정도.

서예나의 앨범이 수요일 6시에 발매가 되니, 이제 대충, 54시간 정도 남았다.

아티스트들이 가장 불안해할 만한 상황이었고, 아무 용건 없이 전화해도 그냥 최대한 받아주는 게 최선인 시간이다.

실제로 박중원도 조성현에게 앨범 발매 1주일 전후는 아티스트가 하고 싶다는 거 최대한 해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가장 예민한 시기니까.

“좀 어떠세요?”

-뭐가요.

“앨범 발매 얼마 안 남았잖아요.”

-뭐 대단하다고. 앨범 발매한 게 처음도 아니고.

서예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조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짜 아무렇지 않았으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우경수 팀장에게는 이미 한 차례 전화하지 않았을까?

이 시기의 아티스트에게는 여러모로 기댈 부분이 필요했다.

-그 웃음 뭐지? 나 서예나예요.

“네, 예나씨. 예나씨가 서예나씨인 거 잘 압니다.”

조성현이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서예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 하고 소리를 냈지만,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이 깨진 건 서예나에 의해서였다.

-…그쪽은 어떤데요?

“저요?”

-자기가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은 처음일 텐데. 긴장 안 돼요?

“…그러게요.”

딱히 긴장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예나가 잘할 거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서예나의 말을 들으니 현실감이 훅 하고 파고들었다.

이건 그냥 단순히 서예나의 앨범이 아니다.

조성현이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어떻게 보면 조성현의 작품이기도 한 앨범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은, 긴장되네.’

조성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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