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음악천재-149화 (149/603)

149화

아침이 밝았다.

신경화는 햇살이 드는 것을 느끼고 슬쩍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침을 맞는 기분이 달라진다.

그저 피곤한 아침이 아니라, 오늘도 눈떴구나 하며 감사로부터 시작하는 하루.

그녀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루하루가 새롭다.

그녀의 하루만 새로워서 문제지.

신경화는 부엌으로 가서 그릇에 시리얼을 담고, 우유까지 넣은 후,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익숙하게 미튜브를 틀어 아무 영상이나 틀고 시리얼을 먹으려 하는데.

띠링.

문자가 왔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시리얼을 한 스푼 먹고, 신경화는 문자를 확인했다.

옛 제자에게서 온 문자.

-우리 세연이: 교수님, 제가 지난번에 말한 애인데 이번에 졸업식 하면서 피아노 연주했더라고요. 한번 보시라고 문자 드려요.

문자를 읽고, 잠시 기억을 더듬고 나서야 정세연이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번, 정세연의 연주회에 갔을 때 들었던 그 콩쿨 때 괜찮게 봤다던 여자애겠지.

정세연의 귀도 상당히 정확한 편이었기에, 신경화는 흥미로운 눈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한 번 들어보고… 판단해야지.”

요즘 새로운 음악이 안 나오고, 다들 거기서 거기에 머무르는 모습이었기에 신경화로서는 많이 답답했다.

최근 들어서야 조금씩 클래식이 변화하려는 의지들이 보이고 있지만, 제대로 나서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제대로 클래식계를 움직일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한 상황이니까.

다들 변화하지 않은 클래식계에 질려서 떠난 사람들이다.

변하지 않는 클래식계의 사람들만 남아서 지키고 있고, 이제야 젊은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변화의 물결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게 쉽게 바뀔 리가 없다.

중심이 없으니까.

“쯧.”

현 클래식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다시 한번 짜증이 난 신경화 교수는 혀를 한 번 차고는 영상을 재생시켰다.

어린 여자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영상은 시작되었다.

길거리를 가다가 아, 너무 귀엽다고 하면서 한 번쯤 고개를 돌려 볼 만한 아이.

신경화는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세연이 그렇게 칭찬하고 자신에게 링크까지 보낼 정도니까 나쁘지는 않겠지 하면서 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생각은,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부서졌다.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따란.

가볍게 시작되는 생기 있는 피아노.

“어…?”

신경화는, 시리얼을 삼키고는 작게 소리를 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시리얼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계속해서 지켜본다.

영상 각도 때문에 아이의 손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명확하게 들리고 있었다.

아이가 어떤 곡을 연주하고 있는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영화, ‘바람의 왕국’의 OST 중 하나 아닌가.

클래식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는 사람 중 한 명인 한지혁이 작업했다고 해서 영화를 직접 본 적도 있는 신경화다.

곡을 바로 알아차렸고, 아이가 치는 연주가 원곡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편곡을 한 건가? 누가?’

수준급이다.

그냥 연주가 좋다는 게 아니었다.

아니, 물론 연주도 좋다.

아이가 지금 하는 연주는 엄청났으니까.

감정 표현도, 호흡 조절도 완벽하다.

완벽하게 자유롭고, 곡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 보였다.

일반적인 클래식 기법과는 완벽히 다른데, 동시에 클래식의 느낌이 나는 연주이기도 했다.

정세연의 연주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해서, 신경화는 그 부분에서도 조금 놀랐다.

왜 정세연이 그렇게 칭찬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정세연은 자유로운 피아노를 추구한다.

신경화는 그게 완벽한 정답이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틀에 갇혀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파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쩌면 이 아이의 피아노는….

‘세연이 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피아노일 수도 있어.’

아직 많이 미숙한 부분들도 보인다.

테크닉적으로 부족하고, 기본기가 살짝은 아쉽다.

하지만 어린 나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피아노를 연주해나갈 것을 생각하면 그 단점은 언젠가 해결될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극복해낸다면.’

분명, 영상 속 이 아이는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설마 계절을 지금 이렇게 표현해 나가는 건가.”

신경화는 곡을 계속 듣다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곡의 분위기와 감정들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너무 놀라웠다.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고, 그것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니.

표현이 엄청 풍부하거나, 압도적으로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륨감이 있다.

곡에 모자란 부분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연주도 연주고, 편곡도 편곡이고… 대단하네.’

지금 영상 속 여자아이는 분명 신동이고,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지금 현재의 모습만 본다면, 현 클래식계가 선호하지 않는 성향이라고 해도 결국 변화의 흐름을 탄다면….

‘어쩌면, 이 아이가 그 선두에 서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곡을 편곡한 이는.

클래식이 아니라 모든 음악의 전반적으로 압도적인 재능을 선보일 수 있을 거다.

‘누구지 정말. 유치원 선생님? 아니면 부모님…?’

그리고 이런저런 가설을 내세우던 신경화 교수는, 그런 것보다 역시 다른 누군가가 올린 커버 영상 같은 것을 보고 연주를 했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치원 선생님이 그런 재능이 있었으면 그냥 유치원 선생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 거고.

그렇다고 이 피아노 신동의 부모님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너무 불공평한 재능들 아닌가.

신경화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영상이 끝나고도 그녀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한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신기하네.”

계속 듣고 싶어지는 연주였다.

밀도가 높지도, 엄청난 완성도를 가진 연주도 아닌데.

근데도 계속 듣고 싶어진다.

이건 뭐랄까.

오랜만에 그냥 형식적으로 연주하는 연주가 아닌, ‘제대로 된’ 연주를 들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한 번 만나보고 싶네.”

연주자도, 그리고 이 곡의 편곡자도.

신경화가 생각했다.

* * *

조성현과 채윤이는 오전이 거의 다 가고 나서야 침대를 벗어났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채윤이는 조잘조잘 떠들었다.

“아빠, 얼른 밥 먹어.”

“아빠는 밥 열심히 먹고 있는데? 얼른 밥 먹고 뭐하게?”

“밥 빨리 먹고 어제 어, 노래 만들던 거 계속 해야지!”

채윤이가 신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어제 작곡 프로그램을 만지던 게 좋았던 모양.

조성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긴 했다.

이건 과연 채윤이가 원해서 하는 일일까, 아니면 조성현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헷갈렸으니까.

어쨌든 작곡은 조성현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였고,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었으니까.

‘뭐, 채윤이가 좋아하면 된 건가.’

아이는 만족하고 있었다.

얼른 밥을 먹고 작업을 하러 가자고 보챌 정도로 말이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식사를 끝냈다.

간단하게 식사를 끝내고 나서, 조성현과 채윤이는 서재로 가서 곡 작업에 열중했다.

사실 더 할 것도 많지 않았다.

어제 틀을 다 짜놨었으니 이제 디테일을 추가하는 작업이 전부였는데, 일종의 반복 작업이기도 하면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했다.

채윤이가 여기서 지루해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을 했는데.

“근데 아빠.”

“응?”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아아. 아아아. 이렇게 되잖아. 그러면 안 돼.”

아이는 복잡한 음악 용어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아주 단순하게 직접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하는 것으로 설명을 했다.

그런 아이의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마 조성현이 유일할 거다.

채윤이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아이가 설명하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으니까.

지금 아이는 조성현이 추가한 디테일 대로면 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나와야 하는 게 제대로 나오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조성현은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아아아. 하고 피아노 연주 뒤에다가 바이올린을 깔면 피아노가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부각 되어서 둘 다 임팩트 있게 살아날 거야.”

“…임팩트…?”

“응. 더 잘 들리는 거지.”

“어떻게?”

조성현의 설명을, 채윤이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아이는 음악에 대해서는 알지만, 아직 기본적인 지식이 약했으니까.

조성현이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조성현이 하는 건.

“채윤이가 피아노 쳐봐. 아빠가 바이올린 할게.”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을 하더니, 폴짝 조성현의 무릎에서 내려와 거실에 있는 피아노 쪽으로 향한다.

조성현은 바이올린을 들고 아이의 뒤를 따랐고.

따란. 따라란.

지이잉.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동시에 울린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채윤이는 활짝 웃었다.

“이렇게 되는 거야. 어때?”

“아빠가 최고야. 아빠는 마법사야!”

채윤이는 조성현이 자연스럽게 내놓는 것들을 연주를 하고 나서 이해를 하고는, 조성현을 마법사라고 말할 정도로 좋아했다.

조성현은 아이의 그런 말들에 기분 좋은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입에서 최고라는 말이 나오면, 아빠로서는 녹아내릴 수밖에.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채윤이가 틀을 짜고, 또 조성현과 함께 디테일을 추가해서 작곡하는 곡은 점점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 또 화요일까지.

조성현과 채윤은 월요일에 장을 보러 다녀온 것 말고는 외출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곡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었고.

채윤이가 슬슬 지쳐갈 때쯤.

곡은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다.

“다 됐다.”

오직 바이올린과 피아노로만 이루어진 곡이었다.

당연히 곡의 표현력이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성현이 원하는 것의 80퍼 정도만 표현이 됐다.

이건 다른 것의 문제는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문제였다.

조성현의 바이올린과 채윤이의 피아노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까.

곡의 정체성도 애매했다.

3분 40초짜리 곡인데, 클래식도, 대중음악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아이는 외로움을, 조성현은 위로를.

그것을 담았다.

채윤이는 곡이 완성되자, 활짝 웃었다.

아이가 조성현에게 쓴 편지와 같았다.

더 이상 차가움은 없다.

따뜻한 웃음이, 아이의 입가에 맺혀 있었다.

그렇게, 목요일 아침이 밝았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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