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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151화 (151/603)

151화

채윤이는 누가 봐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실비아 가르시아가 눈앞에 나타나서 놀란 것이 1차, 그리고 실비아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청한 것이 2차 당황 포인트다.

그리고 아이가 가장 당황할 만한 포인트는 역시.

“인사하는 거야. 채윤이도 자기 소개하면 돼.”

“어? 어…!”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것에 있었다.

채윤이는 음악에 있어서는 분명 천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 있어서 월등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영어는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 전부다.

실비아 가르시아가 자기소개를 하는건 분위기상 알아들을 수 있었겠지만, 영어로 채윤이가 자기소개할 정도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조채윤입니다!”

결국, 아이는 실비아의 손을 잡으면서 몸을 꾸벅 숙여 인사했다.

실비아는 귀엽다는 듯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채윤이를 당황하게 할 생각으로 인사를 건넨 것이 당연히 아니었기에, 고개를 돌려 박한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줄래?”

실비아가 박한율에게 말을 하자, 박한율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채윤이에게 설명을 한다.

“괜찮아요! 안 놀랐어요.”

그리고 채윤이의 답까지 열심히 통역해준 박한율.

실비아는 싱긋 웃음을 보인 후, 여태껏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조성현과도 눈을 맞췄다.

채윤이에게 했던 것처럼,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실비아 가르시아입니다.”

“조성현입니다. 채윤이 아빠예요.”

실비아의 영어에도, 조성현은 여유를 잃지 않으며 답했다.

영어 회화가 100퍼센트 가능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조성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몇 년이고 매니저 경력이 몇 년인데 간단한 회화도 못 하겠는가.

아티스트가 월드투어라도 하게 되면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아티스트 케어해야 하는데, 그런걸 하다보면 영어는 늘 수밖에 없었다.

“너무 닮아서, 아빠랑 딸인 거 바로 알아봤어요.”

실비아는 조성현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편안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조성현도 영어를 못하면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조금 힘들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닮아서 다행이네요.”

채윤이가 자신을 닮았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었다.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아이였으니.

“한율이에게 안 그래도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번 콩쿨에서 채윤이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죠?”

실비아가 묻는다.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열심히 연습하더니 결국 최우수상을 수상하더라고요.”

“한율이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엄청 대단한 피아노였다고 하던데. 궁금하네요.”

“하하. 한율이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한율이 피아노가 워낙 좋아야죠.”

조성현이야 당연히 채윤이의 피아노를 좋아하지만, 심사위원들과 훨씬 더 잘 맞을 만한 피아노를 치는 건 박한율이었다.

채윤이의 피아노는 점수를 받기에 그리 유리하지는 않았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채윤이의 피아노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채윤이도 정말 좋아할 것 같네요.”

조성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채윤이를 돌아보았다.

박한율이 채윤이에게 실비아의 말을 통역해주고 있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채윤이에게 무어라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채윤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진짜 나중에 자신의 피아노를 들어주는 건가 싶었던 모양.

조성현도 내심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실비아 가르시아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고, 직접 피아노를 들었던 만큼 더 조성현은 그녀의 피아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채윤이의 피아노를 듣고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했다.

동시에, 채윤이가 실비아 가르시아의 조언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부탁을 하면 되겠지.’

오늘만 날은 아닐 테니까.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날인데, 아직 파티장의 분위기도 제대로 읽지 못한 상황에서 대뜸 저기 피아노가 있으니 연주를 한 번 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시간도 없었다.

실비아 가르시아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은 상당히 많았고, 가만히 조성현과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실비아 가르시아가 조금 있다가 떠나고, 조성현과 채윤은 안소현과 박한율의 안내를 받으면서 파티장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채윤이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피아노였다.

피아노, 특히 그랜드 피아노를 워낙 좋아하는 채윤이다 보니 악기들이 있는 쪽에 시선이 많이 머물렀다.

파티 장 한쪽에 있는 음식을 간단히 먹으면서 안소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런 조성현의 눈에 익숙한 또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말 익숙한 사람.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싶은 사람이다.

“어?”

채윤이도 박한율과 이야기를 하다가, 조성현이 발견한 사람을 발견했는지 작게 소리를 냈다.

이내, 상대도 곧 조성현과 채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작게 소리를 낸 이는, 천천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안소현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조성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없는 데가 없네요.”

“저도 예상 못 했습니다. 서예나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조성현이 서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그냥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한 것 치고는 너무 스케일이 크지 않나?

실비아 가르시아야 일단 박한율의 레슨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까 이해가 되는데… 서예나는 도대체 어떻게 온 걸까.

아니, 못 올 곳에 온 건 또 아니긴 했다.

서예나는 성공한 아티스트였고, 당연히 돈 있는 이들과 친분이 있을 수 있지.

“초대받아서 왔죠. 그쪽은요?”

“저도 초대받아서 왔습니다. 여기, 한율이랑 소현씨가 초대해주셔서요.”

“나중에 회사에서 볼 수는 있어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 의외네.”

서예나도 조성현을 이 자리에서 봤다는 게 신기한지,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박한율, 채윤이와도 인사를 했다.

“채윤아, 안녕.”

“안녕하세요. 언니.”

“아이고 예쁘다.”

서예나는 채윤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싱긋 웃었다.

“아시는 사이신가 봐요.”

“아, 네. 직장… 동료였어요.”

옆에서 안소현이 물어왔고,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직장 동료였다는 말이 좀 애매해서 다시 말을 할까 싶었는데,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서예나가 대신 설명한다.

“제 이번 앨범, 조성현씨가 프로듀싱 해준 거예요.”

“아, 프로듀서셨구나. 어쩐지… 음악쪽으로 한율이랑 이야기하는 거 보면서 아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싶었거든요.”

“완전히 프로듀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데….”

“뭐가 애매해요. 일은 완벽하게 하면서.”

조성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하는데, 서예나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에 조성현은 피식 웃었다.

일을 못 하진 않았었지.

그래도 서예나가 오니까 분위기는 조금 더 편해졌다.

박한율의 초대로 오기는 했지만, 사실 조성현이 여기서 친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안소현과 만난 것도 이제 세 번째다.

친하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사이.

하지만 그래도 서예나와는 친하다고 말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예나씨 새로운 앨범은 어떻게 하기로 하셨어요? 바로 앨범 들어가고 싶다고 하셨었잖아요.”

“일단 스탑했죠. 회사에서 너무 컨트롤을 많이 하려고 해서, 프로듀서 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해놨어요.”

“…….”

“이거 뭐 그쪽한테 부담 주고 그러는 게 아니고 진짜 프로듀서 구하고 있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마요.”

“네, 신경 안 쓰겠습니다.”

“너무 하시네.”

서예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가볍게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조성현의 성향을, 그녀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

신경 안 쓰겠다고 말하는 게, 진짜로 신경을 안 쓸 거라는 뜻은 아니라는 걸, 이미 아는 거다.

“여기까지 와서 일 이야기 하는 건 좀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 해요.”

“그러죠.”

서예나의 말에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래도 명색이 파티인데, 일 이야기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 이야기가 아니면 할 이야기는 몇 개 없었다.

결국, 아이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된다.

박한율에 대해서 잠시 말이 나왔다가, 이후에는 또 채윤이에 대한 것들로 이야기가 채워졌다.

“채윤이가 피아노 진짜 잘 치긴 하더라고요. 유미 뮤비 찍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치는 것 같던데.”

“그때보다는… 성장했죠.”

채윤이는 유미의 뮤비를 촬영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했다.

불과 몇 개월이지만, 채윤이의 성장은 압도적이었다.

콩쿨을 끝내고 나서도, 아이는 조금씩 성장을 하는 중이었고 피아노에 대해서 더욱더 알아가는 중이었다.

‘콩쿨 때보다야 발전하는 속도가 조금은 느려진 것 같지만….’

그건 단순히 채윤이가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조성현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피아노에 집중한다면,

빠르게 성장하게 되겠지.

거기에 좋은 선생이 붙는다면….

‘완벽할 거고.’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이에게 언제나 최고를 주고 싶은 게 아빠의 마음이었고, 조성현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은 최고가 아니었다.

나중에 정말 기회가 된다면, 실비아 가르시아에게 채윤이의 피아노를 들려주고 싶다.

“아, 맞다. 예나씨.”

“네?”

“나중에 곡 하나 들어보실래요?”

“곡? 무슨 곡이요? 설마… 몰래 프로듀싱 하고 있던 곡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채윤이랑 같이 만들어본 곡이 있는데, 약간 고민하고 있는 게 있거든요.”

“그쪽이 혼자 만든 것도 아니고, 채윤이랑 같이 만들었다고요?”

“네 채윤이가 틀을 짜고, 저는 거기에 조금만 손을 보탰어요.”

“… 나중에 파일 보내줘요. 한 번 들어볼게요. 무슨 곡일지 궁금하긴 하네.”

서예나가 흥미를 보이며 말을 했다.

조성현은 고맙다면서 가볍게 웃음을 보였다.

약간 고민이 되기는 했다.

곡 자체가 완성되기는 했는데, 이걸 가지고 어떤 식으로 선보일지.

그냥 미튜브에 올리면 될까, 아니면 개인 소장을 할까.

원래는 서예나에게 들려주지 않았을 곡이지만, 우연히 만난김에 한 번 들어봐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서예나의 허락이 떨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실비아 가르시아가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를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

이제, 실비아의 연주를 들을 시간이 된 모양이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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