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조성현은 미간을 찡긋거리며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미튜브에서 영상이 하나 재생되고 있고, 그 속에 있는 주인공은 분명….
‘채윤이가 맞아.’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채윤이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드레스를 입고 열심히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채윤이.
가정 통신문에 미튜브에 올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조성현은 그냥 졸업식의 전체 영상이 올라가기만 하는 줄 알았다.
이런 식으로 채윤이의 영상이 따로 올라가거나, 또 이게 박중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퍼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조성현은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일단… 채윤이의 졸업식 연주 영상이 퍼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건가.”
조성현은 중얼거리며 영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너무 예쁘다.
채윤이는 항상 귀엽고 예쁘지만, 아이가 무언가에 열중해 있을 때는 평소보다 더 귀엽고, 더 예쁘다.
아이는 무언가에 한없이 진지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채윤이가 진지해진 대상은 피아노였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아빠로서 다시 한번 아이가 잘 커 준 것에 감사하게 된다.
조성현은 후우 하고 숨을 내뱉고는, 영상이 끝나자 슬쩍 스크롤을 내렸다.
조회 수와 추천, 비추천, 그리고 댓글들이 표시된다.
조회 수. 12,821
추천 수. 386
비추천 수. 4
댓글 또한 수십 개가 달려 있었다.
-강서울: 진짜 세상에서 제일 뽀짝해. 솜뭉치 하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연주가 너무 예뻐서 미치겠다. 너무 사랑스러워.
-마늘소금: 저거 피아노 근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뭔가 미묘하게 익숙하지 않아. 뭐지?
-틴타: ‘바람의 왕국’에서 나온 OST 연주하는 것 같은데. 원곡이랑 좀 다르다. 애기가 너무 예쁜데 피아노도 엄청 잘 치네.
-검술매니아: 이래서 아빠들이 딸바보가 되는가 싶다. 저 애기 아빠는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연주를 매일 들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달슬: 애기 일로 와 언니가 안아줄게. ㅠㅠ 너무 귀여워서 어쩌니.
귀엽다는 댓글, 예쁘다는 댓글, 피아노를 잘 친다는 댓글….
공통점은, 채윤이에 대해서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댓글들을 전부 읽었다.
나쁜 댓글은 없었다.
다들 채윤이를 좋게 봐주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채윤이가 연주하는 곡을 궁금해하거나.
다행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댓글을 다 읽은 조성현은 결국, 박중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서, 박중원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세요?
“어, 형. 뭐 하세요?”
-나 유미 씨 스케줄.
“형이 직접 케어하는 거예요?”
장현아가 있으니 박중원이 직접 유미를 케어할 일이 많이 없을 텐데, 유미 스케줄을 하고 있다니 조금 놀랍다.
-미튜브 쪽으로는 현아씨가 거의 전담하는데, 그 외에는 나도 많이 케어하지. 이번에 성적 계속 좋잖아. 다음 앨범 준비도 서두르고 있고. 근데 너 진짜….
박중원의 말에, 조성현은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끊었다.
“아무튼, 문자 봤어요.”
-… 응. 그거 아무리 봐도 채윤이던데. 어떻게 된 거야?
조성현이 일부러 자신의 말을 끊은 것을 파악하고, 박중원은 순순히 주제를 돌렸다.
“채윤이가 이번에 졸업식에서 무대를 했는데, 그 영상인 것 같아요.”
-졸업식? 아, 어쩐지 배경이 뭐 콩쿨이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어.
“형은 어쩌다가 이거 영상 보게 된 건데요?”
-나 그냥 이슈들 찾아보다가 그랬지. SNS에서 퍼지고 있어. 인형이 피아노 친다. 뭐다 해서.
“… 졸업식 연주 영상이 이렇게 퍼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치 뭐, 유미랑 같이 촬영한 영상이 이렇게 퍼졌으면 얼마나 좋아.
“… 그때보다 더 빠르게 퍼지고 있어요?”
-비슷한데, 그거는 유미씨 인지도도 있으니까 그렇게 된 거잖아. 아마 지금처럼 퍼졌으면 지금 유미씨 첫 영상, 조회 수 두 배는 됐을걸.
박중원이 말한다.
조성현은 미간을 찡긋거렸다.
사람들이 채윤이의 영상을 보고, 연주를 들으며 좋아해 주는 것은 당연히 좋다.
아이보고 귀엽다고, 또 예쁘다고 아껴주는 것도 너무 좋다.
하지만 채윤이의 아빠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쏠리는 관심이 커지면 많아질수록,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도 많아진다는 것을 조성현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막긴 늦었죠?”
-늦었지. 회사에서 나서면 더 퍼지는 거야 좀 늦출 수는 있어도, 회사가 나설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죠.”
채윤이가 Pan 엔터테인먼트 소속도 아니고, 회사가 나설 이유가 전혀 없다.
조성현은 쯧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고마워요. 알려줘서.”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내가 밥 한 번 살게.
“법카로요?”
-법카로, 제대로 산다.
박중원의 말에 조성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법카로 밥을 제대로 산다는 말은, 영업하겠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아마, 유미의 프로듀서 직을 다시 한번 이야기 꺼내 보려는 것이겠지.
지난번에 외부 프로듀서를 알아본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걸까.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박중원과 전화를 마무리하고, 조성현은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일단 채윤이의 영상이 퍼지는 것은 이미 막을 수 없고,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지, 악플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조성현은 어떻게 해서든 퍼지는 것을 막았을 거다.
항상,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채윤이니까.’
자신의 아이다.
재능있고, 누굴 닮았는지 너무 예쁘고.
업계에서는 이런 아이를 가리켜 말한다.
‘스타성’이 있다고.
채윤이는 분명 스타성이 있고, 엄청난 재능도 가지고 있다.
21세기.
수많은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고, 아주 작은 일도 큰일로 만들어지는 세상.
당연히 지금 이 시대에서, 채윤이는 작은 자극만 있어도 펑 하고 터질 수 있다.
언젠가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몇 번씩이나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뻔했다.
유미의 뮤직비디오에, 또 홍대 버스킹과 미튜브 영상에 등장하면서 채윤이는 많은 일을 해냈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때 터질 수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터지지 않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폭발한 거다.
영상의 조회 수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은 1만이 조금 넘겼지만, 올라가는 속도를 보았을 때 오늘 안에 2만은 분명히 넘을 거다.
그리고 조성현은, 아직 대비되지 않았다.
채윤이는 대비가 되어 있던가?
‘절대 안 되어 있지.’
아이는 그저 순수하게 음악이 좋을 뿐이다.
대비가 안 되어 있는 게 당연하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좋겠지만, 조성현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은 연예 기획사에 순식간에 퍼질 거고… 아마 수 많은 연락이 오게 되겠지.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흘러갈지는 조성현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세상이, 채윤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되고 있든.
채윤이는 그저 채윤이의 삶을 살고 있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이었고, 조성현은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그냥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너무 늦게 일어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못하겠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가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오면 좋을 것 같아서, 조성현은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채윤아. 뭐해?”
그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채윤이가 몸을 돌리더니 조성현과 눈을 마주치고는 헤헤 웃는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앞에 있는 가방을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왜 갑자기 가방을 싸고 있지?
“채윤아, 우리 이제 유치원 안 가는데.”
“유치원 가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럼?”
“내일 놀러 가니까.”
채윤이의 말에, 조성현은 그제서야 아이가 왜 짐을 싸고 있는지 깨닫고 가볍게 웃었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다.
영준이네와 함께 글램핑을 가기로 한 날.
짐을 많이 챙길 필요는 없지만, 2박 3일로 가는 것인 만큼 세면도구나 옷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전부 챙겨야 했다.
“채윤이 옷 챙기고 있는 거야?”
“응.”
“아빠가 챙겼는데.”
“… 그럴 리 없어.”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는 덜컥하고 몸을 멈추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아이의 반응에 조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늘 아빠가 먼저 일어났잖아. 미리 채윤이 짐이랑 아빠 짐이랑 다 싸놨지.”
“진짜?”
“응. 진짜.”
“왜 채윤이한테 말 안 해줬어?”
“채윤이가 자고 있었으니까?”
조성현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실 짐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필요한 장비들은 전부 글램핑장에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고, 옷들만 챙겨 가면 되는 건데 굳이 짐을 많이 챙길 필요는 없지 않겠다.
겨울이라 두꺼운 옷들을 챙겨야 해서 부피가 조금 있지만, 가방이 여러 개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채윤이도 짐 가지고 가고 싶어?”
“응.”
처음 가는 캠핑이니, 채윤이도 많이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자기도 직접 짐을 싸고 싶어 하는 모습에, 조성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채윤이가 가지고 가고 싶은 거 챙기면 되지 않을까? 인어공주 같은 거.”
“헤에….”
인어공주는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거실로 후다닥 달려 나간다.
피아노 위에 놓여 있던 인어공주 인형을 들고 온 채윤이는 조심스럽게 가방에 집어넣었다.
인어공주의 꼬리가 조금 삐져나온다.
채윤이는 고민하다가, 꼬리를 꾸욱 눌러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인어공주는 가방에 어떻게든 잘 들어갔고, 채윤이는 잠시 가방 속에 든 인어공주를 보다가 어디론가 또 달려 나갔다.
“채윤아, 어디가?”
“간식!”
캠핑에 가서 먹을 간식을 챙기고 싶은 모양이다.
아이는 잠시 뒤에 나타났다.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초코바도 있고, 과자도 있다.
채윤이는 열심히 인어공주가 들어가고 남은 가방 안 공간에 간식을 집어넣고는 지퍼를 닫았다.
“다 됐다.”
“다 했어?”
“응.”
“내일 그러면 채윤이가 가방 들고 가는 거지?”
“맞아.”
채윤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면서 답을 한다.
조성현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은?”
“… 몰라.”
오늘은 뭐할지 물어보니, 채윤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모른다고 답했다.
조성현은 빙긋 웃었다.
“아빠랑 같이 데이트나 할까? 밖에 나가서 공원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이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좋아!”
채윤이가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조성현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집 근처 공원으로 가는 길.
“어?”
채윤이가 갑자기 탄성을 흘린다.
조성현은 얼굴에 차가운 감촉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