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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164화 (164/603)

164화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가 조성현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성현은 잠든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직도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럼 내가 엄마 보고 있고… 엄마도 나 보고 있는 거니까.’

채윤이는 그렇게 말을 했다.

별을 보고, 엄마가 저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조성현에게, 그런 아이의 말은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채윤이는 조성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생각하고 있었다.

마냥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어리디 어린아이일 수도 있다.

조성현도 그것에 대한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이, 어리다는 것 정도는 아빠로서 당연히 알고 있는 부분이다.

영준이, 그리고 미현이와 함께 있으면서 채윤이는 때때로 그들보다 어린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이건 채윤이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채윤이가 부러 조금 더 어려 보이기 위해서 어리광을 부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

조성현도 아이의 행동들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여러모로 고민하기도 했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랑을 주는 것밖에 없기에 넘겼을 뿐이다.

아이가 어린 모습을 보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아이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으니까.

바로 지금이 그때다.

채윤이의 생각은, 깊었다.

아이의 음악 또한 깊었다.

채윤이에게는 분명한 자신의 세계가 있었고, 그것은 음악으로, 또 조성현과 함께 대화할 때 가끔 드러나고는 했다.

‘특히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많이 드러나지.’

아이도 아이 나름의 고민이라는 것을 하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조성현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조성현은 아직도 채윤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는 분명, 조성현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숙했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어쩌면, 내가 필요 없을 수도 있어.’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인 조성현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아빠로서, 딸인 채윤이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이수현이 언젠가 말을 했던 것처럼 조성현은 채윤이에게 그 누구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마찬가지로 채윤이도 조성현에게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이고.

하지만, 과연 채윤이에게 ‘교육자’ 조성현이 필요할까?

혹은, ‘음악가’ 조성현이 필요할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사랑이 필요하고, 또 조성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 필요함 속에 ‘교육자’. ‘음악가’ 조성현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그냥, ‘아빠’로서의 조성현만 필요한 건 아닐까.

“별 의미 없는 생각이네.”

조성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중간에 끊었다.

풀썩 웃으며, 그가 중얼거린다.

그렇게 영양가 있는 고민은 아니다.

이렇게 열심히 생각을 해봐야 어쨌든 채윤이에게는 조성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채윤이에게 조성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조성현에게 채윤이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점점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조성현은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채윤이를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는 채윤이.

저 눈꺼풀이 지금 들려진다면 아마 조성현은 세상에서 가장 맑디맑은 눈을 마주하게 되겠지.

별빛과도 같이 빛나는 눈을.

조성현은 한참이나 아이가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슬쩍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왔다.

자정이 훌쩍 넘겨, 새벽 한 시가 거의 다 되어 가는 시간이다.

거의 2, 30분 동안 아이가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기만 했다.

조성현은 스마트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고는 어휴 하고 소리를 냈다.

그는 의자에 걸쳐둔 패딩을 대충 걸치고 카라반 밖으로 나왔다.

달칵.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한기가 몰아친다.

안에 있는 채윤이가 추울세라, 조성현은 얼른 나와서 문을 닫았다.

카라반 밖에는 간이 의자 두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니, 여전히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별이 반짝거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로 시작되는 시.

비록 계절은 다르지만, 시의 구절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어머니.’

저 하늘에 있는 별 중 하나는 분명 채윤이 엄마일 것이다.

아이가 그걸 바라니까.

조성현은 밤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직 부족한 존재였다.

채윤이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성장하지만, 조성현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그는 수많은 생각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조성현이 다시 카라반에 들어간 건,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

* * *

“윽….”

조성현은 작게 신음하며 눈을 떴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더듬더듬거리며 버튼을 찾았다.

지난밤, 깜빡 잊고 위에 있는 유리창의 뚜껑을 덮지 않고 자버렸다.

햇빛이 엄청난 기세로 들어오고 있었고, 조성현은 겨우 뚜껑을 덮은 후에야 정상적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채윤이도 조성현의 품을 파고들어 햇빛을 피하고 있다가, 뚜껑이 덮이자 그제서야 얼굴이 편안해진다.

피식 웃은 조성현은 힐끗 시선을 움직여 시간을 확인했다.

9시.

그래도 꽤 많이 잤다.

지난밤 두 시가 좀 넘어서 잤었으니, 7시간가량 동안 잔 셈.

그래도 몸이 피곤한 게 움직이기가 싫었던 그는 채윤이를 품에 안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딱히 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어나는 건 싫었기에 그는 스마트폰으로 대한 예술 사립학교를 검색했다.

진지하게 아이를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중인데, 학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결정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대한 예술 사립학교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학교 중 하나였다.

예술 사립학교인 만큼, 여러 아티스트들을 배출을 했고.

음악, 그림, 심지어 글까지.

많은 이들이 대한 예술 사립학교를 통해 기초를 다졌다.

특이한 건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이 있는데 고등과정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과정부터는 포괄적인 예술이 아니라, 보다 세부적인 형태의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게 학교측에서 이야기하는 바였는데… 어느 정도는 이해되지만, 동시에 완벽히 이해되는 말은 또 아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부분은 아니었다.

‘다른 예술 고등학교들과 여러모로 연계가 많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걱정할 필요는 없고… 결국 중요한 건 입학하느냐 마느냐인데.’

알아보니 그냥 학비가 비싼 정도가 아니었다.

학비도 학비인데, 입학할 수 있는 기준도 까다로웠다.

대한 예술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이제 고작 8살일 텐데, 그런 아이들에게 서류들을 요구한다.

아이들의 커리어에 대한 서류.

‘진짜 대단하긴 한가 본데.’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확실히 배울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여러 곳에서 보였다.

검색 결과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는데, 우웅 하고 그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하더니 문자가 왔다.

유재균에게 온 문자.

-유재균: 성현씨, 아침은 언제 먹으면 좋을까요?

채윤이가 아직 자고 있긴 하지만, 금방 일어날 것 같았다.

조성현은 바로 답장을 했다.

9시 30분.

그들은 지난 저녁 바비큐를 해 먹은 테이블에 다시 모여서 식사를 시작했다.

어제 사다 둔 빵들이 있어서 아침은 간단하게 빵과 계란, 베이컨으로 먹었다.

영준이와 채윤이는 여전히 조금 피곤한지 빵을 입에 가득 넣고 우물우물거리면서도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밥 먹고는 뭐 할까요?”

“요 근처에 케이블카 타는 곳도 있던데, 거기 한 번 가보는 건 어때요?”

“케이블카 괜찮네요.”

“그럼 밥 다 먹고, 좀 쉬다가 1시쯤 볼까요?”

“좋죠.”

조성현은 케이블카라는 말에 눈을 깜빡거리는 채윤이를 보고는 답했다.

생각해보니, 아이는 케이블카도 타본 적이 없었다.

* * *

식사를 끝내고, 조성현은 아이들과 함께 정리했다.

정리를 다 한 후 채윤이와 영준이가 토끼를 보러 간다고 해서 정미원이 아이들을 이끌고 토끼 우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차라도 한 잔씩 마실까요?”

“안 그래도 따뜻한 차가 생각나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올게요. 아, 어제 영준이가 그린 그림도 있는데 그것도 한 번 보실래요?”

“영준이가 어제 그림을 그렸어요?”

“네, 잠시만요.”

유재균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얼른 자신의 카라반으로 들어가 스케치북과 보온병을 가지고 온다.

차를 한 잔씩 따라 마시면서, 유재균은 조성현에게 영준이가 그린 그림을 자랑했다.

“애가 어릴 때부터 엄마 닮아 그림을 그리더니, 최근에는 진짜 잘 그리더라고요.”

“와… 예쁘네요.”

검은 밤하늘에, 별들이 있다.

그 밑에는 두 대의 카라반이 자리하고 있고.

조성현이 그림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7살 아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있는 그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엄청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확실히 드러나 있었다.

굉장히 감성적인 그림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실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영준이 학교에 대해서.”

유재균이 입을 열어, 말을 해나간다.

마침 조성현도 고민하고 있던 주제였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유재균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어젯밤에 영준이가 그림 그리는 걸 보면서… 확실히 마음을 정했어요.”

“…….”

“애가 꾸벅꾸벅 졸면서도 어떻게든 그림을 끝까지 그리고 싶어서 버티고 버텨서 그림을 결국 다 그리더라고요.”

“아… 피곤했을 텐데, 기특하네요.”

“그쵸. 애가 진짜 하고 싶은 게 그림 그리는 거라는 게 너무 확실하게 보여서,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더라고요. 대한 예술 사립학교, 보내려고요.”

“학비 부담되실 텐데.”

조성현이 말했다.

사실 유재균도 평범한 공무원일 뿐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선생님 월급이면 뻔한데, 당연히 부담될 수밖에 없는 학비다.

조성현이나 유재균이나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것.

정미원이 그림을 그려 가끔 용돈벌이 수준은 된다고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는데, 그건 말 그대로 용돈벌이 수준에서 그치는 것일 거다.

열심히 그림을 그려 돈을 벌어본다고 해도 영준이의 학비를 대기에는 한참 부족한 금액일 게 분명했다.

학비가 많이 부담될 텐데, 확실히 결정한 것 같아서 조성현은 부러운 것과 동시에 놀라웠다.

하지만 더 놀랄 이야기는 그 뒤에 나왔다.

“제 악기, 팔려고요.”

툭 하고 던져진 유재균의 말.

그 말에 조성현의 눈이 흔들렸다.

음악가에게 악기가 어떤 의미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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