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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197화 (197/603)

197화

서울, 대한 예술 사립학교.

대한 예술 사립학교는 보통 신청서에 대한 결과 발표를 조금 늦게 하고는 한다.

하지만, 올해는 평소보다 조금 더 늦은 상황이었다.

“미술 쪽은 일단 결정이 끝났다는 거죠?”

“예. 저희는 후보 다 뽑았습니다.”

“그쪽도 기대되는 후보가 있다면서요?”

“예. 아직 조금 미숙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기본기가 다져져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교장의 말에, 미술부 선생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을 했다.

대한 예술 사립학교의 교장, 성하연은 흐음 하고 소리를 내며 책상 위 놓여 있는 신청서들을 내려다보았다.

대한 예술 사립학교는 여러 예술 분야를 다룬다.

대표적으로는 미술과 음악이지만, 그것도 속으로 파고들면 수많은 갈래가 있었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아이들도 많고.

또 실제로 만들지 않고 그저 그림을 설명하고, 음악을 설명하는 이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큐레이터, 평론가 등등 아이들이 후에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 예술 사립학교는 학생 모두에게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대한 예술 사립학교와 성하연, 그녀가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역시 학생들을 뽑는 부분이었다.

학생 한 명이 학급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으니까.

“음악 쪽은….”

“고민하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성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감이 말을 한다.

교감이 이렇게 나설 때는 항상 확실히 재능 있는 아이가 있을 때뿐이라는 것을 잘 아는 성하연은 고개를 돌려 교감을 바라보았다.

미술과 음악은 항상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예산이 풍족하다 하지만, 어쨌든 한정이 되어 있고 한정된 자원은 항상 서로 경쟁하게 만드니까.

최근은 미술 쪽으로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 있게 나서며 말을 꺼낸 교감이었으니, 성하연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재능 있는 아이인가요?”

“예. 확실히 재능 있습니다. 경험도 있고요. 콩쿨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근데, 고민을 하는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요?”

성하연은 차분히 물었다.

교감은, 힐끗 미술부 선생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입을 열었다.

“장학금 지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이라니. 말이 안 됩니다. 저희도 지금 강지은 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주고 있는 마당에…”

“미술부 아이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녀도 되고, 저희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지은이는 이미 완성된 인재이니…”

“저희도, 이미 완성된 음악인이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교감의 말에, 미술부 선생은 미간을 찡긋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반박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한정된 예산을 공유해야 하는 사이긴 하지만.

어쨌든 둘 다 교육자였다.

교감의 말이 맞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고, 그렇기에 수긍했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교감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자신이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나요?”

성하연이 교감을 바라보며 물었다.

“반액 장학금과 더불어… 여러 무대와 콩쿨에 대한 최우선 지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액 장학금이야 큰 문제는 아닐 텐데, 무대와 콩쿨은… 저희가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최대한 지원을 해준다면,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기회는 결국 아무리 대한 예술 사립학교라고 해도 한정된 기회였고.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학생의 몫이었다.

“최우선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학생은, 충분히 재능 있으니까요.”

“흠… 알았습니다. 그럼 일단 올해까지는 반액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건 확정으로 가고, 다른 지원도 최우선으로 고려해보자 정도로 마무리하죠. 그 이후는… 차차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도 괜찮을 것 같군요.”

성하연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을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말에, 자리에 있던 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이미 결정이 그렇게 났으면, 뒤집기는 힘들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근데, 궁금하군요.”

“…….”

“교감이 그렇게까지 크게 관심을 보이고, 지원해주고 싶어 하는 학생이라… 이름이 뭡니까?”

성하연이 묻는다.

그것에 답을 하는데, 교감은 망설이지 않았다.

“조채윤입니다.”

“지켜봐야겠네요. 알았어요. 그럼 최종적으로 결론이 났으니 이제 학생들에게 개별 연락을….”

그렇게 말을 하는데.

우우웅.

성하연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평소였다면 그저 스마트폰을 뒤집고 말을 이어나갔을 그녀였지만, 성하연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이 전화를 무시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잠시만, 전화부터 받고 하죠.”

성하연은 그렇게 말을 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하연아. 나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다.

성하연은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의 전화였으니까.

“네,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별건 아니고…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이요?”

신경화 교수의 말에 성하연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자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내가 매년 후원하는 거 있잖아.

“아, 네. 교수님. 후원금은 아이들에게 잘 쓰이고 있습니다. 내역은….”

신경화 교수는 후배 양성에 강한 의지가 있고, 그 의지는 실질적인 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한 예술 사립학교에 매년 그녀는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었다.

-아니, 내역이 궁금한 건 아니고.

“그럼 어떤 부분이…?”

성하연도 신경화 교수에게는 조심스러웠다.

-올해부터 조금씩 더 할 테니까, 이번에 너희 학교 지원한 애 한 명. 장학금 받으면서 다닐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 뭐, 특별 장학금이다 뭐다 해서 그냥 명분은 알아서 만들어주고.

“네네. 어렵지 않습니다. 학생 이름만 말씀해 주시면….”

-조채윤.

“…….”

말을 이어나가려던 성하연은, 신경화 교수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그대로 굳었다.

분명, 방금 들었던 이름 같은데 왜 신경화의 입에서 다시 나오지?

-어려우면 그냥 부담 없이 말하고.

“아뇨, 어렵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가 반액 장학금 지원을 하려고 논의 끝내둔 상태이니.”

-그럼 잘됐네. 전액 장학금으로 바꿔줘. 그리고 그 뭐냐.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너희 학교 가서 특강 같은 거 하는 건 어때?

“여, 영광이죠. 교수님. 오신다면야 저희가….”

성하연이 빠르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신경화와의 통화가 끝났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하연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런 반응일지, 궁금한 것이다.

결국, 교감이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누구신데….”

“… 신경화 교수님.”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아 하고 소리를 내며 이해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문맥상,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성하연은 정신이 없어서 눈을 깜빡거렸다.

‘조채윤… 도대체 누구길래.’

신경화 교수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연락했을까.

아무래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성현은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채윤이에게 피아노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신경화는 틈틈이 조성현에게도 조언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는 조성현에게 엄청난 깨달음들을 안겨다 주었다.

음악적으로도, 또 채윤이의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말이다.

“채윤이는 굳이 따지자면, 음악적 센스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고 있는 거예요.”

“네.”

“근데 지금 아버님이 채윤이에게 해준 건, 그 센스에 대한 부분이 많죠. 이럴 땐 이렇게 한다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온다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하면 더 살릴 수 있는지를 실전적으로 길러준 겁니다.”

“아….”

신경화는 조성현이 채윤이에게 어떤 식의 음악적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히 분석해냈다.

그녀는 조성현이 채윤이에게 가르친 것은 ‘음악’ 그 자체라기보단, 음악의 활용법을 가르쳐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채윤이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감각은 뛰어나요. 활용법도 뛰어나죠. 하지만 문제점은 기본기입니다.”

“예.”

“단어 10개를 가지고 문장 수십 개를 만들어내는 활용법이, 과연 단어 100개가 주어지면 얼마나 더 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요?”

“…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문장을 만들겠네요.”

“저는 채윤이에게 단어들을 가르쳐줄 겁니다. 아버님은, 지금처럼만 해주세요.”

“… 알겠습니다.”

신경화의 말에, 조성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채윤이의 음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움.

그리고 그 자유로움이라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론 자유롭게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활용 실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쨌든 단어들이 있어야 문장을 만들어 낼 것 아닌가.

구구절절 신경화의 말이 맞았다.

여러모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어쨌든 조성현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신경화 교수의 말처럼. ‘지금처럼만’ 하는 것.

조성현은 채윤이가 신경화 교수를 만나고 왔다고 해서 무언가 특별하게 삶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저 항상 하던 대로만 지냈고.

그렇게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평일이 다가왔다.

원래 수요일에 출근하기로 했었는데.

월요일 아침부터 조성현과 채윤은 출근 준비를 했다.

“채윤아. 오늘 작곡가님들하고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음… 인사 잘하고 조용히 있어야 해?”

“하하. 그래도 채윤이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도 돼.”

“응!”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을 했다.

오늘은 ‘어두운 달빛 아래 꽃 한 송이’를 만나기로 했다.

곡에 대해서 의논도 하고, 수정 방향성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 하는 날.

그냥 음악 작업이었다면 집에서 했을 테지만, 미팅을 집에서 할 수는 없었기에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자, 가자.”

준비를 끝내고.

조성현과 채윤은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회사에 출근했을 때.

생각지 못했던 이들이 조성현과 채윤을 반겼다.

“아, 어서 오세요. 선배님.”

장현아가 밝게 웃으며 말하고.

조성현은 그녀의 인사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며 작업실을 돌아보았다.

Pan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신에게 배정해 준 작업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두 대의 카메라가 그들을 비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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