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성하연은 교장실에 있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톡톡.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가볍게 울린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가만히 서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결국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상대는 얼마 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어, 하연아.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온다.
신경화 교수.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동시에 활동하며, 후배 양성에 정말 힘쓰고 있는 그녀다.
그런 신경화 교수의 뜻과 성 하연의 뜻은 많은 경우 일치했기에, 그들은 이렇게 친분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성하연이 지금 이 자리에 올라와 있을 수 있는 것도 신경화 교수가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신경화 교수는 성하연에게 은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존재.
개인적으로 레슨까지 해주기로 한 상대.
말하는 것을 보면… 레슨비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
도리어 장학금까지 자신이 대주고 싶어 할 정도의 상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지. 너는?
“덕분에 저도 안녕하네요. 학생들하고도 잘 만나고요.”
성하연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학생들하고도 잘 만났다.
정확히는, 조채윤 학생하고.
그 보호자인 조성현과도 만났고, 덕분에 성하연은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만나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더 큰 의문이 덮쳐왔다.
그녀가 아는 신경화 교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재능 있는 이가 있다면 신경화 교수는 항상 열심히 도와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일정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근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신경화 교수는 수많은 선을 넘어, 벽들을 깨부수고 조채윤이라는 아이를 돕고 있었다.
-채윤이 때문에?
“… 네.”
성하연은 앞에 신경화 교수가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조채윤, 그리고 조성현.
그 두 이름이 자꾸만 거슬렸으니까.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인간적인 호기심도 생기고, 신경화 교수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만나 봤으니까, 알 텐데. 애가 얼마나 순수한지.
“맑더라고요.”
특히 그 눈이, 너무나도 맑았다.
마냥 깨끗하게 보이는 두 눈은, 시종일관 자신의 아버지인 조성현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다.
-애가… 아빠를 참 좋아해.
“그래 보이긴 했어요. 확실히.”
-평소에는 아빠 옆에 딱 붙어 있다가도… 음악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몰입해.
“…….”
-그런 와중에 아빠가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글쎄요.”
-채윤이 아빠는 바이올린은 하는데, 그 둘의 케미가 정말… 압도적이야. 천재와 천재가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단숨에 알 수 있지.
신경화는 작게 감탄을 흘리며 말을 했다.
성하연은 허하고 숨을 토해내었다.
신경화 교수가 이렇게까지 칭찬을 할 정도면, 정말 대단한 수준의 연주는 맞을 거다.
아니, 애초에 졸업식 연주 영상을 자신도 봤으니… 괜찮은 수준이라는 건 이미 성하연도 알고 있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연주를 잘하나 봐요.”
-잘한다 못한다의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힘들어. 당장 채윤이나 조성현씨 보면… 그보다 더 잘하는 피아니스트랑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수십 수백 명일 테니까.
“그럼 왜…?”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건지.
장학금까지, 또 직접 레슨을 해주고 지속적으로 스케줄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신경을 쓰는 건지.
궁금하다.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고 있잖아. 연주하는 거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는 기분이야. 그게 음악이 해야 할 일이고.
“…….”
성하연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남들보다 더 많은 음악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녀가 피아니스트인 것도, 또 바이올리니스트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음악가가 아니다.
교육자.
그게 성하연이고, 음악가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듣고, 이해할 수는 있었으나 자신이 다른 음악가들처럼 공감할 수는 없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선택한 이유와 같다고 보면 된다.
“그 정도라고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선택한 이유와 같다고?
신경화 교수는 음악에 목숨을 걸었다.
근데, 그것과 같은 이유라니.
그 정도로 대단한가?
교육자로서, 성하연은 계속해서 기대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래서 그렇게 편애하시는 거예요?”
약간의 질투도 느꼈다.
우스운 말이긴 하지만.
그녀도 어릴 적에는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다.
지금은 포기하고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편애라니. 재능에 맞게 대해주는 것뿐이지. 아무리 많은 물을 줘도 전부 소화해서 쑥쑥 크는 식물이 있으면, 열심히 물을 줘야 하지 않겠어?
“…….”
-편애는, 대한 예술 사립학교가 박한율이라는 아이에게 들이는 노력과 관심을 편애라고 봐야겠지.
신경화 교수가 말했다.
성하연은 그녀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박한율.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고, 학교 측에서도 기대하는 아이였다.
여러모로 학교가 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고.
‘후원금도, 압도적이고.’
박한율의 아버지 쪽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은 엄청나다.
항상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하연조차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에 그녀는 답할 수 없었다.
-편애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신경화 교수가 말했다.
“… 네. 교수님.”
성하연은 결국 그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겨난다.
학교에서도, 외부에서도 천재라고 불릴 재능을 가지고.
지금까지 착실히 학교측의 지원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자금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온 박한율.
신경화 교수가 직접 케어하고 싶어 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재능과 환경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 조채윤.
그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 * *
오늘 녹음할 곡은 ‘눈사람’이었다.
곡 자체도 완성이 되었고, 애초에 작곡가도 조성현이었기에 녹음하는 것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작사에는 Pan 엔터테인먼트와 자주 일한 작사가와 함께 유미가 직접 참여하기도 해서, 기본적으로 유미와 잘 맞지 않을 수가 없는 곡이었다.
“언제쯤 끝날 것 같아?”
“일단 한 번 들어보고, 완성도 높으면 일찍 끝나고 아니면 늦게 끝나겠죠.”
“알았어. 나 중간에 사라지면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할 거 있으면 현아씨랑 이야기해.”
“예예. 알았습니다. 걱정 마요.”
조성현은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박중원은 약간 불안해하는 기색이었다.
유미와 서예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느껴지는 모양.
조성현도 약간은 긴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가 과하지는 않았다.
언제든 편집할 수 있고, 회사 입맛대로 진행해도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카메라가 함께 있는 자리다.
서예나는 프로였고, 카메라가 함께 하고 있으면 최대한 자제할 게 분명했다.
유미도 조심할 테고.
서예나가 훨씬 선배이고 그녀가 도와주고 있다고 봐도 좋은 상황인 만큼, 괜히 건드리지는 않을 거다.
“시작할게요.”
-네.
조성현의 말에,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가 있는 유미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을 한다.
녹음이 평화롭게, 또 완성도 있게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조성현은 엔지니어에게 슬쩍 신호를 보냈다.
유미의 헤드셋에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던 유미가 입을 열었다.
-차가운 날이었어. 그날은….
잔잔하게, 유미의 노래가 시작된다.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조성현은 일단 그대로 진행했다.
아직 제대로 목이 풀리지 않은 상황이다.
몇 번씩 불러봐야 감도 잡고, 잘 부를 수 있으리라.
곡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은 아니었으니, 조성현은 유미가 금방 감을 잡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채윤이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행복했었던 그때 그 기억을….
노래가 이어지며, 유미는 천천히 감정을 끌어냈다.
그녀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조성현과 눈을 마주했다.
조성현은 차분한 눈빛으로 유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냈다.
유미는 노래를 이어나가다가, 힐끗 시선을 어딘가로 두었다.
그 순간 그녀의 감정은 흔들렸다.
-아, 죄송해요.
자신이 흔들린걸 스스로도 느끼고, 유미가 먼저 입을 열어 녹음을 멈춘다.
조성현은 손을 가볍게 들었다.
“괜찮아요. 유미씨. 천천히 시간 들여서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채윤이가 기분 좋은 듯 조성현의 손에 볼을 비빈다.
조성현은 힐끗, 유미의 시선이 닿았던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서예나가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서예나를 보자마자 감정이 흔들린 것.
그걸 서예나도 알았는지,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 쉽지 않은데 이거.’
상황이 참, 오묘하게 됐다.
조성현은 속으로만 말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다시 가볼게요.”
-넵.
유미는 다시 진지한 눈빛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또 얼마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여기 조금 힘드네요.
다시.
-여기 끊어서 한 번만 해봐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다시.
-아….
유미는 곡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서예나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유미가 집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
뭔가 다른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거고….
‘곡이 문제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럴 확률은 매우 낮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다.
결국, 조성현이 입을 열었다.
“유미씨, 너무 조급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차분하게 몰입하면서 진행하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네, 오빠.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죄송할 일이 아닌데 왜 죄송해하세요.”
조성현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녹음하면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이걸 가지고 죄송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조성현이야 곡이 잘 녹음만 된다면 전혀 상관없었고, 우경수 팀장이나 장현아, 박중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서예나가 조금은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녀도 녹음 시스템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은 같은 아티스트로서 충분히 이해해 줄 거다.
라고, 조성현은 생각했다.
계속 차가운 분위기로 있던 서예나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서예나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 있다가, 슬쩍 조성현의 옆으로 다가와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야, 너 나와 봐.”
그녀가 말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