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조성현은 채윤이가 어묵 꼬치를 또 한 입 먹는 것을 보고, 슬쩍 이수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조성현에게 전화가 온 걸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전화 너머로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성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뭐랄까.
살짝 어색한 말투였다.
“네, 안녕하세요.”
-조성현씨 번호 맞을까요?
“네. 제가 조성현입니다.”
조성현은 순간, 보이스피싱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약간은 어색한 발음이었고, 모르는 번호였으니까.
하지만, 보이스피싱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자연스럽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대가 말을 이어나갔다.
-안녕하세요.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의 세라입니다.
“… 누구시라고요?”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의 세라라고 합니다.
상대가 다시 한번 자기소개한다.
조성현은 씁 하고 숨을 들이켰다.
웬만한 일로 당황하지 않는 조성현이지만, 대뜸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라라면….
‘미래에는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의 완전 중심이 되는 사람이다.’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아니지만, 대표는 사실 바지사장이고, 세라가 다 조종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은 아무래도, 한국에 와 있는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을 추론할 수 있었다.
“설마….”
최현준과 미팅을 한 것도 세라인가?
Pan 엔터 쪽과 미팅한 것도 세라인 거고?
‘생각보다 거물이 껴 있었네.’
파라다이스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올 수 있는 최고의 패가 왔다.
조성현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후, 진정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했다.
무슨 일로 세라가 자신에게 전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라던지 무시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진 않았다.
“안녕하세요. 세라… 지부장님.”
상대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아서, 조성현은 잠시 망설였다.
세라는 이후 파라다이스 엔터의 한국 지부장을 맡았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회사를 이끌어나간다.
그녀가 언제부터 한국 지부장을 맡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렇게 부르는 게 조성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혹시 아직 지부장이 아니더라도….’
직위를 낮게 부르는 것보다는 높게 부르는 게 더 좋을 테니까.
상대방의 나이가 헷갈리면 어리게 잡고, 직위가 헷갈리면 높게 잡는 거라는 생활의 지혜를, 조성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에, 상대방은 조금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머. 이거, 평가를 상향조정 해야 하는 걸까요?
“……?”
-신기하네요. 바로 몇 시간 전에 한국 지부장이 된 건 어떻게 알고 지부장이라고 불러주신 건지. 역시 그냥 평범한 프로듀서는 아니었군요?
세라의 말에, 조성현은 묘한 얼굴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몰라서 그냥 지부장이라고 부른 건데, 불과 몇 시간 전에 지부장으로 임명을 받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세라는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했지만, 조성현은 그 오해를 바로잡아주지는 않았다.
굳이 바로잡아줄 필요 없는 오해이기도 했고, 일단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용건으로 전화를 했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전직 매니저, 현직 프로듀서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을까요?”
조성현은 가볍게 농담 식으로 말을 하며 상대의 말을 넘기고, 질문을 던졌다.
-Pan 엔터의 대표님이 조성현씨를 추천하더라고요. 저희가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책임 프로듀서로 함께 해주실 수 있을까 싶어서요.
“…….”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파라다이스 엔터 쪽에서 전화가 온 것도 정신이 없는데, 거기서 갑자기 장판석 대표의 이름이 등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장판석 대표가 따로 보상하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이게 보상인가?
나중에 따로 장판석 대표에게 물어보던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일단,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겠지.
“너무 갑작스럽네요. 제가 아직 지금 진행하고 있는 앨범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시간도 필요하고 여러모로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성현은 덜컥 수락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정확히 파악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갑자기 수락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떻게 수락을 하겠는가.
‘아직 파라다이스 엔터랑 Pan 엔터가 손을 잡은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른다.’
세라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미팅이 좋게 끝난 것 같긴 하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답도 하면 안 된다.
-제가 조금 마음이 급했네요. 죄송합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네, 저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시간도 끌어야 했고, 아무래도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았으니.
통화는 일단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조성현은 후우 하고 한숨을 흘렸다.
오뎅 꼬치를 다 먹고,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찍고 있던 채윤이는 조성현이 한숨을 내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야?”
“아빠도 잘 모르는 사람이야.”
“에?”
“아빠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길래, 일단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아하.”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조성현의 말을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행복한 얼굴로 튀김을 입에 집어넣었다.
조성현은 그런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가, 휴지를 뽑아 아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빨간 떡볶이 소스가 묻어나온다.
“아빠도 얼른 먹어!”
“응. 뭐가 제일 맛있어?”
“고구마튀김!”
채윤이가 얼른 먹어보라는 듯, 한입 크기로 잘린 고구마튀김을 조성현의 접시에 내려놓는다.
조성현은 웃으며 아이가 방금 준 고구마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입에 집어넣었다.
익숙한 맛.
“맛있네.”
“그치? 나중에 유미 언니랑 예나 언니랑도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자!”
“그래. 같이 가면 좋지.”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먼저 유미와 서예나가 친해져야겠고.
또 함께 가줘야겠지만….
‘채윤이가 말하면 거절할 것 같진 않으니, 뭐.’
유미나 서예나, 둘 다 바쁜 몸이긴 했지만 보통 채윤이가 이야기하는 건 잘 들어주고는 했다.
웃긴 말이지만, 그녀들이 채윤이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닌가 싶은 상황들이 있기도 했었고.
아이의 부탁이라면 떡볶이 정도는 같이 먹어주지 않을까?
조성현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떡볶이를 한입 먹었다.
식사는 이어졌다.
* * *
다음날, 조성현은 일단 회사로 출근했다.
오늘은 채윤이와 함께였다.
작업실에서 곡을 다듬고 있는데.
똑똑.
“네, 들어오세요.”
“나야.”
조성현의 말에, 박중원이 바로 들어온다.
그의 목소리에 조성현은 몸을 돌렸고, 무릎에 앉아 있던 채윤이도 함께 몸이 돌아간다.
“오늘은 좀 잤냐?”
“잘 잤죠. 형은?”
“나도 뭐, 어제 대표님 호출받고 잠깐 나갔다 온 거 말고는 계속 쉬었지.”
“다행이네.”
“… 근데 채윤이는 왜 그래?”
“……?”
조성현은 박중원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내려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박중원을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 채윤아, 왜 그래?”
“우리 아빠 괴롭히면 안 돼요.”
“엉? 삼촌이 아빠를 왜 괴롭혀. 아빠가 삼촌이 아빠 괴롭혔다고 막 그랬어?”
박중원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얼른 물었다.
채윤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빠는 착해서 그런 말 안 해요.”
“어… 너희 아빠가 사실 그렇게 착한 것도 아니긴 한데. 아무튼 삼촌이 아빠 괴롭힌 거 아니야. 사실 아빠가 삼촌 괴롭히는 건데.”
박중원이 억울하다는 듯 말을 하자, 채윤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내가 잘못한 거야?”
“음, 그런 것 같은데요?”
조성현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박중원이 한숨을 흘린다.
그는 결국 큼 하고 소리를 낸 후에, 입을 열었다.
“알았어. 삼촌이 그럼 나중에 채윤이랑 아빠한테 맛있는 거 사줄게.”
“진짜?”
“응. 진짜. 맛있는 거.”
“약속하는 거예요?”
“약속.”
“그럼, 삼촌 나쁜 사람 아니야!”
채윤이가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을 했고, 조성현은 피식 웃었다.
“채윤이랑 약속한 건 어기면 안 되는 거예요.”
“알아. 안 그래도 밥 사주려고 했으니까, 걱정 마라. 하루 종일 나랑 같이 붙어 다니면서 일했는데. 일당은 못 주더라도 비싼 거 사줘야지.”
“…….”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자신이 원해서 일한 것이니 따로 보상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밥 한 끼 얻어먹는 거야 부담스럽지는 않은 일이었기에, 그는 무어라 반대하진 않았다.
박중원은 작업실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녹음 일정은 언제부터 소화할 수 있을까?”
“저보다는 유미씨가 중요하죠.”
“유미씨는 금요일부터는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현아씨가 집중적으로 케어하고 있어서 상태는 좋아.”
“목 관리도 계속 해야 하는데.”
“어, 하고 있어. 그리고… 오늘은 예나씨랑 만난다고 하더라.”
“그래요?”
“둘이 무슨 이야기 할는지는 몰라도,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고 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업을 것 같고.”
“현아씨도 같이 만나는 건가?”
“응, 식사 같이하는 건데. 현아씨랑 우 팀장이 법카 들고 가기로 했어.”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같이 있는 게 좋겠지.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잠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의자의 팔걸이를 건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형.”
“응?”
“대표님하고 파라다이스 엔터하고 미팅은 어떻게 끝났는지 정확히 모르죠?”
“어제 대표님하고 이야기할 때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아직 결론이 안 났다고 하던데.”
“그래?”
“그래도 확실한 건, 최현준이가 끼어들 틈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기는 했으니. 최현준이랑 파라다이스가 계속 붙어먹을 것 같진 않아.”
박중원이 말한다.
조성현은 미간을 찡긋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박중원이 눈을 깜빡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최현준이가 또 뭐 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파라다이스 측에서 연락 왔었어요.”
“뭐라고?”
“진행하려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책임 프로듀서로 함께 할 생각 없냐고.”
“뭐?”
“그래서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해둔 상태인데.”
“그래서, 만나기로 했어?”
박중원의 물음에,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만나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날짜를 잡긴 했다.
“언제?”
박중원이 또 한 번 물었고.
조성현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게 문제다.
“오늘이요.”
그가 답했고, 박중원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