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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239화 (239/603)

239화

조성현은 채윤이와 함께 작업실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가 나왔다.

채윤이는 자신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작업실이라는 말에 신이 나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행복한 감정을 발산했고.

그걸 본 조성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수현은 그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재미있어?”

작업실을 빠져나오며, 이수현이 묻는다.

어머니의 질문에 조성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수현의 눈은 진지했고, 조성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이 참, 좋더라고요. 채윤이도 많이 좋아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성현은 음악이 좋았다.

채윤이도 음악을 좋아하니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고.

이수현은 참나 하고 소리를 흘린다.

“재미있어하는 것 같긴 한데. 나는 모르겠다. 채윤이가 너무… 음악에만 빠져 있으면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힐끗 채윤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성현은 그녀가 어떤 부분을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연히 걱정될 만하다.

이수현은 조성현이 음악에, 제 일에 빠졌을 때 어떻게 됐는지 본 사람이니까.

그나마 이번 생은 지난 생의 경험으로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지난 생은 최악이었다.

조성현은 일에 빠져 채윤이를 외면했었으니.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채윤이도 음악에 빠져 세상을 외면할까 봐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진 않을 거예요.”

아이의 재능은 뛰어나다.

이수현이 걱정하는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다.

과거의 천재 음악가들이 괜히 미쳤다는 말을 들은 게 아니다.

분명, 채윤이에게도 그런 음악적 재능이 있다.

하지만, 조성현이 지금까지 보아온 채윤이는 음악에 빠져서 세상을 외면할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세상을 음악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성장시켜 나가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세상을 외면한다고? 그 말은 즉, 동시에 자신의 음악을 외면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지.’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채윤이는 괜찮을 것이다.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하게 될거다.

조성현은 채윤이에게 손을 뻗었다.

아이가 냉큼 조성현의 손을 잡고 함께 걸음을 옮긴다.

언제까지고, 그들은 함께 할 것이다.

* * *

작업실에서 나와, 이후에 간 곳은 납골당이었다.

“다녀올래?”

“같이 가요.”

이수현이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조성현은 고개를 흔들며 함께 가자 제안했다.

결국 이수현도 함께, 셋은 차에서 내려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채윤이는 이곳이 어딘지 당연히 알고 있었고, 아이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 안녕.”

채윤이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이는 엄마를 보면서도, 울음을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조성현은 가만히 자신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생각이 많아진다.

할 말은 많은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그저, 한참 동안 가만히 아이 엄마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채윤이는 옆에서 조잘조잘 떠든다.

“아빠랑 나는 잘 있었어. 이번에 아빠가 유미 언니 앨범 만들었다? 내가 많이 도와줬어.”

채윤이가 뿌듯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조성현은 아이의 말에 풀썩 웃었다.

“맞아, 채윤이가 아빠 많이 도와줬지.”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고.

채윤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한 것을 전부 자랑이라도 할 모양인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 그리고 나 상도 받았어. 어어… 한율이 오빠랑 같이했는데 한율이 오빠가 더 잘했어.”

아이가 말하는 것을 차분히 들으며, 조성현은 채윤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얼른 와서 칭찬해달라는 듯 이야기를 하는 채윤이의 목소리.

조성현은 숨을 토해내었다.

채윤이는 한참 동안이나 계속 자신의 엄마에게 이야기하다가 지쳤는지, 입을 다물었다.

“채윤아, 할머니랑 같이 음료수라도 사러 갈까?”

“… 네.”

잠시 고민을 하던 채윤이가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답을 한다.

이수현은 웃으며 채윤이를 향해 손을 뻗었고.

조성현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수현이 슬쩍 웃으며 채윤이와 함께 멀어진다.

조성현은, 자신의 아내와 단둘이 남았다.

그제서야 그는 솔직하게 입을 열 수 있었다.

“미안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미안한 거투성이네.”

돌아와서, 최선을 다해 채윤이와 함께하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

아이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했다.

아내와 가지고 있는 추억이 많지 않았다.

정확히는, 단둘이 가지고 있는 추억은… 비교적 적다.

아이를 조금 빠르게 가졌고, 덕분에 대부분의 추억들이 채윤이와 함께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마지막까지 채윤이를 자신에게 부탁했던 것일 수도 있다.

조성현은 후우 하고 숨을 토해냈다.

뜨거운 숨이 터져 나오며, 허공에 흩어진다.

“지난 생에는… 내가 진짜 너무 멍청이 같았어. 너무 후회스러운 인생… 다시 살면서 채윤이 지켜주라고 돌려보내 준거겠지.”

거기까지 말한 조성현은 입을 다물고,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삼켰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후회는 여전할 것이다.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살아가면서 채윤이를 아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더 잘할게.”

그럼 이번 생, 자신이 눈을 감을 때 그래도 후회가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티클 만큼이라도, 자신이 눈을 감고… 아내를 보러 갈 때 조금 덜 미안하게 되지 않을까.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열심히 약속 지키려고 했는데… 조금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성현은 그런 생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채윤이, 유치원 졸업했다. 졸업식에서 혼자 피아노 치면서 무대도 했어.”

그는 웃었다.

채윤이도 자신의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조성현이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가볍게 웃음을 흘린 조성현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채윤이도 말했지? 콩쿠르 나가서 최우수상 받았어. 그리고… 당신에 대한 곡도 만들었다. 지금도 가끔 같이 연주하고 그래.”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저 멀리서 채윤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조성현은 손을 앞으로 뻗어,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매만졌다.

차갑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 잘살고 있어.”

그냥, 편안했으면 좋겠다.

조성현 자신과 채윤이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자신이 갈 때까지 편안하게 쉬고 있으면 좋겠다.

“채윤이 이번에 대한 예술 사립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생활 잘 할 수 있게 내가 옆에서 채윤이 지켜줄게.”

대한 예술 사립학교에 가서도 채윤이가 행복할 수 있게.

조성현은 열심히 할 거다.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을 거다.

아이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받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아이들과 싸울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매일 행복한 순간이 한 번씩이라도 있을 수 있게.

조성현은 노력할 것이다.

“채윤이가 다 커서, 내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부족하겠지만, 최선을 다할게.”

아이가 다 성장을 해서.

정말로 조성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는 채윤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빠! 카라멜 마끼아또 사 왔어!”

뒤에서, 채윤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성현은 웃으며 몸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얼른 받으라는 듯, 조성현에게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민다.

조성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 손에 들린 카라멜 마끼아또를 받아 들었다.

“채윤아.”

“응?”

채윤이가 고개를 올려 조성현을 바라본다.

조성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

“사실 아빠 원래 카라멜 마끼아또 안 좋아했다?”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전혀 몰랐다는 얼굴.

조성현은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고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채윤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연다.

“근데 아빠는 카라멜 마끼아또만 먹는데?”

“응. 지금은 카라멜 마끼아또 잘 마시지. 카페 가서도 항상 카라멜 마끼아또만 마시고. 근데 원래 아빠는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사람이었어.”

그가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을 했다.

손에 들린 카라멜 마끼아또를 한 모금 마시고, 조성현은 힐끗 채윤이 엄마를 바라보았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채윤이 엄마가 카라멜 마끼아또를 좋아해서….”

언제부턴가, 조성현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게 몇 년이 이어지고, 습관이 되다가 결국 커피 취향이 바뀌어버렸다.

그 변화가 이번 생에도 이어진 것이다.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는 눈을 깜빡거렸다.

“엄마가 카라멜 마끼아또 좋아했어?”

“응. 맨날 그것만 마셨다니까.”

“그럼 나도 카라멜 마끼아또 마실래!”

채윤이가 말한다.

조성현은 웃으며 슬쩍 자신의 손에 들린 카라멜 마끼아또를 더 높게 들어 올려, 채윤이의 손이 닿지 않게 했다.

아직 채윤이는 커피를 마시기에는 이르다.

딱히 어려서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기보다는, 아직 카페인이 과하게 작용할 때였다.

지금 한 모금 마시면, 밤새 잠을 못 잘 수도 있으니 주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채윤이가 컸을 때.”

“한율이 오빠 나이 됐을 때?”

“음… 예린 언니 정도 나이면 허락해줄게.”

19살 20살 정도면 커피는 충분히 마셔도 되는 나이지.

물론, 그전에도 마셔도 되겠지만… 아마 19살 정도 되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삶이 될거다.

공부하든 뭘 하든.

바쁜 나날들이 이어질 테니까.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는 미간을 찡긋거렸다.

이예린이, 그녀에게는 너무 큰 존재일 거다.

당연했다.

지금 채윤이의 나이로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이예린이었으니.

아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 혼자 다 먹고 싶은 게 분명해.”

채윤이의 말에 조성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채윤이의 생일날은 미역국으로 시작해, 아이 엄마를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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