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음악천재-241화 (241/603)

241화

“채윤아. 저기, 학교 보인다.”

조성현은 아이와 함께 걸음을 옮기다,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학교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서 날아다니는 참새에 정신이 팔려있던 채윤이가 얼른 고개를 들어 올려 학교를 바라본다.

아이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기대감 가득한 얼굴.

동시에 조금은 걱정스럽고 긴장한 기색이 보이고 있지만… 조성현은 채윤이가 잘 해낼 것이라 믿었다.

혼자서 학교에 다니는 거면 조금 불안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영준이와 같이 다닐 테니까.

채윤이는 음악을 배우고, 영준이는 그림을 배우지만, 그래도 겹치는 과목이 많을 거다.

음악을 하고 그림을 배운다고 해서 수학이나 국어 같은 기초 과목들을 배우지 않는 건 당연히 아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필수 과목들은 당연히 커리큘럼에 포함이 되어 있고, 거기에 각자가 원하는 음악이나 미술 같은 과목이 추가되는 것뿐이다.

학비가 비싼 만큼 선생님들도 전부 능력 있는 분들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떠 있는 선생님들의 소개를 잠깐 읽어본 조성현도 작게 감탄할 정도면, 확실히 교육의 질은 보장된 셈이다.

“입학식은 아빠도 처음이라서, 기대되네.”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도 긴장한 듯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난 생, 채윤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조성현은 일하고 있었다.

졸업식에는 갔던 것 같은데, 그것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입학식, 졸업식은 물론이고 체육 대회 같은 거라도 하면 꼬박꼬박 참석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며, 조성현은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 보도를 건넜다.

횡단 보도를 건너 바로 옆에 있는 학교 정문 쪽으로 다가가는 도중.

채윤이가 멈칫거리며 조성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조성현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입학식이 시작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었다.

천천히 가도 된다.

아이는 학교 정문을 기대감과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영준이는… 어디야?”

“아, 잠시만. 아빠가 전화 한 번 해볼게.”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 영준이밖에 없으니.

낯선 환경에 들어가기 전에 익숙한 존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성현은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내, 정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미원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성현씨.

“채윤이가 영준이를 찾아서요. 혹시 어디쯤 오셨나요?”

-아… 저희 거의 다 왔어요. 코너만 돌면 학교일 텐데.

“저희 학교 정문 앞에 있거든요.”

-그래요? 아, 보인다. 그럼 저희 정문에서 내려서, 애 아빠보고 주차하고 알아서 오라고 하고 애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을까요?

“좋죠.”

조성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영준이네 차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채윤이도 영준이네 차라는 것을 확인하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차가 그들의 바로 앞에서 멈추더니 문이 열리며 영준이와 정미원이 내린다.

조성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유재균과 인사했다.

유재균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하더니, 차를 출발시킨다.

“주차하고 오라고 했어요.”

정미원이 차를 힐끗 보고 말했다.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준이, 안녕.”

“안녕하세요. 아저씨.”

영준이가 조성현에게 인사를 했지만, 아이의 시선은 채윤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채윤이도 영준이를 보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게, 반가운 건 마찬가지인 모양.

서로 연락은 가끔 했지만, 얼굴을 보는 건 거의 몇 주 만이었다.

조성현과 채윤이가 바쁘기도 했고.

채윤이의 생일에 영준이가 오고 싶어 했지만, 이번 아이의 생일은 조용히 보내기로 해서 아쉽게 그때도 만나지 못했었다.

많이 반가울 것이다.

“안녕. 채윤아.”

“응! 안녕!”

채윤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영준이도 그제야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조성현은 채윤이를 바라보는 영준이의 눈을 잠시 응시하다가, 채윤이에게로 시선을 움직이며 손을 뻗었다.

“입학식은 대강당에서 열린다는데, 일단 그쪽으로 갈까?”

“응.”

채윤이가 망설임 없이 답을 한다.

영준이가 도착하니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얼른 가자는 듯 영준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한쪽 손은 조성현과 잡고 있고, 비어있는 반대쪽 손을 내민 것.

영준이는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채윤이의 손을 보고 움찔거렸다가 조심스럽게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한 영준이의 눈길에, 조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영준이가 조심스럽게 채윤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은가 보네요.”

“네, 그런가 봐요. 저도 영준이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운데, 애들은 얼마나 반갑겠어요.”

정미원이 말하고, 조성현은 웃으며 답했다.

조금은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영준이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채윤이를 항상 위해주는 것도 그렇고.

은근슬쩍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도 귀엽다.

조성현은 잡생각을 없애고, 걸음을 옮겼다.

대강당은 본관과 다른 건물이었다.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이었는데, 조성현은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비싼 학비가 어디에 쓰이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학비가 비싼 것도 전부 이해가 된다.

정미원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일까.

“교육 환경에 돈 안 아끼는 게 눈에 보이네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음악 쪽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많으니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잘 만들어둔 것 같았다.

이미 대강당 안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가 있고. 학부모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도 따로 있었는데,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사실상 같이 앉아 있는 것과 비슷했다.

“일단, 자리 잡죠.”

“네.”

조성현은 간단히 답을 한 후, 채윤이 쪽을 돌아보았다.

아이는 대강당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입을 벌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영준이의 얼굴도 채윤이와 비슷했다.

조성현은 웃으며 손을 뻗어 아이의 눈을 가렸다.

그러자, 채윤이가 조성현의 손을 잡고 내리며 그를 바라본다.

아이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 있는 것을 본 조성현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앉아 있을까?”

“응!”

아이는 곧바로 답했다.

채윤이와 영준이와 나란히 앉히고, 조성현과 정미원은 그런 아이들 주변으로 자리를 잡았다.

얼마 되지 않아서, 유재균이 도착했다.

그는 정미원의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내셨죠?”

“뭐, 저도 개학이라서, 준비하느라 바빴죠.”

유재균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한창 바쁠 시기긴 했다.

오늘 영준이의 입학식에도 시간을 겨우 내서 참여한 것.

조성현은 유재균을 보면서, 항상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영준이의 일이면 꼬박꼬박 참석하는 유재균이었으니까.

조성현은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밝은 얼굴로 조성현을 바라본다.

“아빠.”

“응?”

“영준이가 이따 선물 주기로 했어.”

채윤이가 작게 속삭인다.

그 말에, 조성현은 흥미로운 눈으로 영준이를 바라보았다.

영준이가 변명하듯, 얼른 입을 연다.

“생일 선물도 못 줘서….”

“응. 고마워 영준아.”

자신의 눈치를 조금만 덜 봐도 괜찮을 텐데.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부드러운 얼굴로 영준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채윤이를 항상 신경 써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아이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무대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한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대한 예술 사립학교의, 교장.

성하연이었다.

그녀는 여유로운 얼굴로, 무대에 올라오더니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부족하지만 대한 예술 사립학교의 교장직을 맡고 있는 성하연입니다.”

자기 소개를 한 그녀는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공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이다.

조성현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 놀랐다.

지난번에 상담할 때와 목소리 톤이 조금 달랐다.

조금 더 자신감 넘치고 확신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성하연은 굉장히 효과적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성하연의 인사에 반응했다.

성하연은 밝은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갑고… 교장으로서 행복하네요. 저희 학교의 미래가 이렇게나 밝다니.”

성하연은 그렇게 말을 하며, 마이크를 든 채로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바로 앞에 있는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성하연을 바라본다.

성하연은 웃으며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 한 번 할까?”

그녀의 말에 남자아이는 얼른 손을 뻗어 성하연과 악수했다.

성하연은 웃으며, 학생들과 차례로 한 번씩 악수를 나눴다.

수십 명의 학생들과 한 번씩 악수를 나누는 그녀를 보며, 학부모들은 좋아했다.

교장이 직접 이렇게 학생들과 인사를 하는데 안 좋아할 이가 누가 있을까.

“안녕 채윤아. 앞으로 잘 부탁해.”

성하연은 채윤이를 기억하고 있었고, 조성현도 그 부분에서는 조금 놀랐다.

채윤이와도 인사를 나눈 성하연은, 모두와 인사를 끝낸 후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와 말을 이어나갔다.

“올해 입학하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선배님들이 특별히 준비한 환영 무대가 있어요. 무대, 보실까요?”

성하연이 그렇게 말을 하며, 무대를 손으로 슬쩍 가리키면서 뒷걸음질 치는 것으로 무대를 내려온다.

순간 모든 불이 꺼지고.

무대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난다.

대한 예술 사립학교의 재학생들이 무대를 준비하는 모양.

탁.

작은 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지며 무대를 비춘다.

무대 위에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어느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트럼펫, 드럼… 초등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성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와 같다.

조성현은, 무대를 보고는 대충 감을 잡았다.

이제 입학하는 1학년 학생들을 위한 환영 무대인 것도 맞겠지만, 이건 학부모들을 위한 무대이기도 했다.

앞으로 학생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보였으니까.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보인 조성현은 무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오케스트라와 그 한가운데 있는 피아노.

조성현은 거기까지 확인하고 미간을 좁혔다.

피아노 앞에, 익숙한 얼굴의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어?”

채윤이도 그걸 알아차린 것인지, 옆에서 아이가 작게 소리를 흘렸다.

조성현은 풀썩 웃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 더욱 반가운 얼굴이다.

내 딸은 음악천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