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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247화 (247/603)

247화

“우리 아빠가 한국 예술 대학교 교수라니까?”

박준호가 다시 한번 말을 한다.

왜 감탄하지 않느냐는 듯,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채윤이에게 말을 하고.

채윤이는 그런 박준호의 말에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빠인 조성현과, 영준이가 알려준 적이 없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채윤이는 애써 고개를 끄덕거렸다.

“멋지다.”

그게 채윤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박준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

그러던 박준호는, 이내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아, 너 한국 예술 대학교가 어딘지 모르는구나?”

박준호가 그럼 그렇지 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고, 채윤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도 한국 예술 대학교가 어딘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냐, 알아. 신경화 선생님이 있는 곳이잖아.”

피아노를 진짜 잘 치는, 심지어 바이올린까지 할 수 있는 신경화 선생님이 다니는 곳이 바로 한국 예술 대학교라는 건 채윤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렴, 조성현과 함께 가보기도 했는데 모를 리가 있나.

“어? 맞아. 신경화 교수님이 직접 우리 아빠를 추천해서 우리 아빠도 한국 예술 대학교 교수야.”

“추천했다고?”

“응. 뽑았다고.”

채윤이가 되묻자, 자랑스러운 얼굴로, 박준호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면 신경화 선생님이 너희 아빠를 가르쳐 주는 거야?”

“아니, 가르쳐 주는 건 아니고. 같이 일하는 거지!”

박준호는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채윤이가 조금 답답했는지, 인상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채윤이는 박준호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다만, 박준호의 아빠를 잘 몰랐을 뿐이다.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시 고민하다가 채윤이는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구나. 신경화 선생님이랑 같이 일하면 피아노 엄청 잘 치겠다.”

“우리 아빠는 바이올린 가르치기는 하는데… 근데 너는 왜 자꾸 신경화 교수님한테 선생님이라고 불러? 우리 아빠도 맨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데.”

박준호는 이상한 눈으로 채윤이를 바라보았고.

채윤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건가?

“선생님이잖아.”

“신경화 교수님이 왜 선생님이야. 교수님은 교수님이지.”

“……?”

그치만, 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걸.

채윤이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굳이 박준호와 말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박준호는 또 혼자 무언가를 깨달아버렸다.

“아, 너 혹시 교수님이 특별 수업으로 우리 학교에 온다는 거 듣고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야?”

“…….”

“특별 수업을 하신다고 해도 교수님은 교수님이야. 그러니까 신경화 교수님 왔을 때 말조심해야 해.”

박준호가 말했고, 채윤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경화에게 직접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었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박준호는 채윤이가 듣든 말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채윤이가 애써 박준호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박아린.

예전에 캠핑장에서 만난 적도 있던 언니다.

채윤이가 반가운 얼굴로 박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얼른 박준호를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안녕 채윤아.”

“안녕하세요. 언니!”

“야,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박준호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말투로 채윤이에게 핀잔을 준다.

자꾸만 자신에게 무어라 하는 박준호가, 채윤이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걸 알아차린 것일까.

박아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세요. 대신, 밖에서 만나면 언니라고 불러주는 걸로.”

그녀는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했고, 채윤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선생님.”

채윤이는 얌전히 답했고.

박아린은 채윤이의 볼을 가볍게 톡 건드리고는 말을 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들었어?”

“…….”

그녀의 말에 채윤이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고.

박아린은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름표를 꾸며서, 사물함에 붙이기로 했어.”

“아…!”

“열심히 이름표를 꾸며볼까?”

박아린이 그렇게 말하며 미리 준비되어 있던 종이를 채윤이와 박준호의 앞에 한 장씩 내려놓았다.

그렇게, 채윤이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 * *

조성현은 일찍 퇴근했다.

남들과 같이 저녁 6시에 퇴근을 할 수는 없었다.

채윤이의 학교가 3시에 끝이 나니, 조성현으로서는 당연한 셈.

등교를 시키고, 회사에 와서 일하다가 점심식사 후 3시에 바로 퇴근을 하는 거다.

결국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안 되는 셈이었기에 스케줄 상 약간 아슬아슬하긴 했다.

‘일하는 시간 동안 진짜 집중해서 하고… 점심 거르기도 해야지.’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거나, 거르는 날도 분명 있어야 할 거다.

프로듀싱이라는 게 원래 널널할 때는 널널하고, 빡셀 때는 빡센 직업이라서 그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채윤이가 없었다면 야근을 하는 경우도 생겼을 텐데, 아이 때문이라도 조성현은 야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조성현은 걸음을 서둘렀다.

이제 3시가 거의 다 된 시간.

서둘러 가야지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결국 그가 학교에 도착한 것은 3시 5분 경이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일찍 출발해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나 둘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어린아이들을 보고, 조성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조성현은 아이들이 나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채윤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채윤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성현은 채윤이를 보며 손을 흔들었고.

채윤이도 조성현을 발견하자마자 얼른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왔다.

아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조성현은 힐끗 채윤이와 나란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남자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새 새로 친구를 사귄 것일까.

영준이도, 하윤이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조성현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남자아이는 자신의 부모님을 발견한 것인지, 채윤이에게 무어라 말을 하더니 몸을 돌렸다.

채윤이는 고개를 간단히 끄덕거리고는 다시 조성현에게로 향해온다.

마지막에 달해서는 거의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조성현은 몸을 숙이며 팔을 벌렸다.

와락.

채윤이가 조성현에게 안겨 오고.

조성현은 웃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빠!”

“응, 채윤아. 학교 어땠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조성현이 물었다.

채윤이는 맑은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좋았어.”

“그래?”

“응. 재미있었어. 아린 언니… 말고 선생님도 잘 해줬어.”

박아린을 언니라고 부르려다가 멈칫거린 채윤이, 얼른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정정한다.

역시, 박아린이 있으니 조금 안심이 된다.

“아까 그 남자애는 누구야? 친구?”

“응. 근데 좀 이상해.”

“이상해? 뭐가?”

“막 나보고 자꾸 뭐라고 해.”

“… 뭐라고 한다고?”

채윤이의 말에 조성현을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기껏해야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일 텐데, 자신의 아이에게 뭐라고 했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성현은 성급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첫 만남에 실수를 할 수 있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지금은 채윤이를 그렇게 챙기는 영준이도, 처음에는 실수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다 채윤이를 위하려다가 했던 실수였던 것이니, 조성현은 일단 채윤이에게 자세히 사정을 듣고 판단하려 했다.

“막 나보고 자기 아빠가 한국 예술 대학교 교수라고 하더니 신경화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했어.”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한다.

조성현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말만 듣고도 대충 상황이 연상 된다.

요즘은 애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직업과 사는 집까지 신경을 쓴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인 건지, 아니면 방금 그 남자애가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역시 그냥 귀여운 수준이었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어린아이다.

채윤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서 아빠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단순히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는 거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린아이의 귀여운 행동이라고 보면 되는 거다.

“채윤아.”

“응?”

아이가 조성현과 눈을 마주한다.

“채윤이가 신경화 교수님한테 레슨 받은 건 말해줬어?”

“아니.”

채윤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답했다.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이야기를 안 한 것일까.

모르겠지만, 아마 채윤이가 신경화 교수의 집에 갔었다는 것을 말해줬다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핀잔을 주진 않았을 거다.

‘대신, 더 귀찮아지긴 했겠지.’

그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채윤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을 하는 게 좋은 거야?”

“아니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나중에 신경화 선생님이 특별 수업을 하시러 오시기도 하시니까. 그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응. 신경화 선생님이 오실 때, 쟤 아빠도 같이 오실 거래.”

“그래?”

“나한테 자랑 엄청 했어. 자기 아빠가 신경화 교수님이랑 친하다고.”

채윤이의 말에 조성현이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힐끗,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과 나란히 걷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체는 너무 좋다.

조성현도 채윤이가 어디 가서 자신에 대해 자랑하고 다니면 민망하면서도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채윤이에게 핀잔을 준 것 자체는 썩 마음에 드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행동도 아니었다.

귀엽게 넘어갈 수 있는 거고, 굳이 따지면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거라고 볼 수 있기도 하고.

다만, 궁금하긴 했다.

신경화 교수가 특별 수업을 나와서 채윤이와 함께 이야기할 때.

저 남자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것 같았다.

조성현은 이내 고개를 돌려 채윤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채윤아, 저 남자애 이름이 뭐라고?”

“어….”

잠시 끙끙거리며 고민을 하던 채윤이는, 작게 한숨을 흘렸다.

“까먹었어….”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고.

조성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아이의 등교 첫날이 지나갔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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