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은 음악천재-258화 (258/603)

258화

연주가 끝났다.

채윤이가 박수를 치고.

조성현이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만족스러운 연주였던 것인지, 채윤이의 얼굴은 밝았다.

여전히 강한 흥미를 보이면서, 가만히 버스킹 연주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조금 더 보고 가야 할 것 같은 느낌.

“감사합니다!”

연주자들이 얼른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한다.

“혹시 신청곡 있으면 언제든 해주시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기타를 들고 있던 남자가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신청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잠시 기다리던 그들은 다음 곡을 연주했다.

다음 곡은, 조성현과 채윤이도 잘 아는 팝송이었다.

여전히, 조연 세 명이 서로 어울리며 곡을 연주하는 느낌이었다.

저도 모르게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신기할 것 없는 이 조합이, 깨닫고 보니 정말 흥미롭게 느껴진다.

팝송 연주마저 끝나고.

조성현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버스킹을 하는 이들 앞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조성현은 자연스럽게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버스킹도 좋지만, 얼른 집에 가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채윤아.”

“응?”

“저기, 상자 안에 이거 집어넣고 올까?”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비장한 얼굴로 지폐를 들고, 얼른 앞으로 가서 작은 상자 안에 집어넣고 온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꼬마 아가씨. 혹시, 신청곡 같은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저희가 아는 곡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한 번 해볼게요.”

그 말에 채윤이는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조성현은 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 서서 채윤이가 무슨 곡을 신청하는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연주를 빨리하고 싶긴 했지만, 한 곡 정도 더 듣고 가는 건 무리가 아니니, 괜찮으리라.

아이는 과연 어떤 곡을 신청할까.

인어 공주의 타이틀곡? 아니면, 바람의 왕국에서 나온 곡들 중 하나?

‘예나씨나, 유미씨 곡을 신청할 수도 있고.’

채윤이에게 익숙한 곡 몇 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는데.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채윤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성현도.

또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어… 제가 연주해 보고 싶어요.”

“… 응?”

기타를 들고 있는 이가, 당황한 듯 되묻고.

조성현도 채윤이의 말에 순간 멈칫거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가 채윤이를 말리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기타리스트는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 그럼 한 번 해볼까요? 우리 귀여운 꼬마 아가씨는 어떤 악기가 궁금할까요?”

그 말에, 채윤이가 고개를 돌려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눈빛을 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뭔지는 알겠는데.

과연 지금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게 옳은 일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생각은, 채윤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자마자 사라졌다.

“아빠랑 같이 연주하고 싶어요.”

채윤이가 확실한 의지를 담은 채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의 목소리에 기타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가 동시에 귀엽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

키보드 앞에 앉아 있던 이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조성현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무리한 부탁일 수 있는데, 혹시 한 곡 정도만 아이랑 제가 연주해 볼 수 있을까요?”

“아, 원래 음악 하시는 분이세요?”

채윤이의 말에 가만히 아이를 보고 있던 기타리스트가 반응했다.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정말로 연주하고 싶은 눈빛이었다.

가능하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조금은 민폐일 수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그는 약간의 사례를 하면서라도 부탁을 하려 했는데.

“한 두 곡 정도면 저희는 상관없어요. 아이가 너무 귀엽네요.”

기타리스트는 슬쩍 다른 이들과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말했다.

괜찮다고 소통이 된 모양.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바로 수락을 해주는 그들의 모습에, 조성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떤 악기 사용하시겠어요?”

남자가 물어왔고.

그 말에 채윤이가 먼저 답했다.

“나는 피아노!”

채윤이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결국 키보드 앞에 앉아 있던 이가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여기 앉아.”

채윤이가 신이 나서 얼른 피아노 앞으로 향하고.

조성현은 정말로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물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바이올린과 기타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다.

짧은 고민이었다.

지금 가장 연주하고 싶은 악기는, 바이올린이었으니까.

“바이올린, 가능할까요?”

그 말에 바이올린을 들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악기를 내주었다.

호기심이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원래 음악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잘할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평생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 조성현과 채윤이를 지켜보았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쓸게요.”

자신의 악기를 선뜻 내어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조성현이기에.

그는 자신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준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바이올린을 받아들었다.

약간의 고양감이 몸을 감싼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 명의 음악가로서, 얼른 연주하고 싶다는 욕망이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와, 이런 건 또 처음인데.’

조성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잘 억누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바이올린을 들자마자 온몸의 신경이 바이올린에게 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현의 촉감이, 너무 기분 좋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집에서 항상 하는 것처럼, 건반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 상태가 언제 끝날지, 조성현도 모른다.

집에서는 정말 하염없이 건반을 바라보고만 있을 때가 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금방 끝이 났다.

아까 음악회가 끝났을 때부터 머리가 복잡해 보이던 채윤이였으니.

아마 그때부터 생각을 정리하던 거겠지.

“아빠.”

채윤이가 조성현을 바라본다.

“응. 무슨 곡으로 할까?”

“아까 들었던 곡.”

“…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조성현은 약간은 곤란한 얼굴을 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난이도가 있는 곡이었기에 자신이 있지는 않았다.

물론 평소에 파가니니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연습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쉽진 않은데.’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하며, 채윤이와 눈을 마주했다.

아이의 눈을 본 그는 결국 너털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저렇게 빛나는 눈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그래, 해보자.”

그가 그렇게 답하며, 활을 들어 올렸다.

채윤이가 웃으며 건반에 손을 올린다.

숨을 짧게 들이켠 후.

그들의 연주는 시작되었다.

지이잉.

따라란.

조성현의 바이올린과, 채윤이의 피아노는 그 누구도 주연을 맡지 않았다.

약속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조연이 되는 것을 자처했다.

방금 들었던 연주처럼, 조연으로만 이루어진 연주를 한 번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채윤이도, 조성현도.

아직 부족하다.

주인공으로서, 강하게 힘을 내면서 존재감을 뿜어내는 연주를 하기에는 둘 다 미숙했다.

단순히 연주를 잘한다 못한다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얼마나 자신의 음악에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스스로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은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모두에게는 고유의 음악이 있는 거고.

그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자신의 음악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다.

채윤이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자신의 음악이 완전히 정립되어 있기 힘든 상황이었다.

조성현도 비슷했다.

그의 음악 자체는 정해져 있다.

10년 동안 음악을 해왔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다른 아티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정형화된 음악 형태였다.

자신을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당장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내뿜을 수 없던 것이다.

‘누구 하나가 보조를 하면 가능하겠지만, 두 명 모두 주인공을 하겠다는 건 불가능한 거지.’

시도를 할 수는 있다.

다만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연주가 엉망진창이 될거다.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성현과 채윤이 모두 본능적으로 서로의 조연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지잉. 지이잉.

따란. 따라란.

채윤이와 조성현의 호흡은, 따로 맞출 필요 없이 정확히 딱딱 들어맞았다.

매일 같이 함께 연주하는데, 호흡이 안 맞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고양감이 몸을 감싼다.

더욱 강하게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고 싶고, 더 확실하게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

하지만 조성현은 억눌렀다.

이걸 여기서 터트리면, 그대로 곡의 균형이 무너진다.

조성현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아직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조성현이 억눌렀지만, 채윤이가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

아이는 조금 더 강하게 자신의 음악을 표현해냈고.

그에 따라서 조성현도 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다.

조금씩, 조금씩.

연주가 더 격렬해지기 시작한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집중이 조금만 덜 되면, 바로 실수할 수밖에 없는 곡.

조성현은 정말, 온 신경을 바이올린으로 몰아넣으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긴장해서 완벽하게 연주할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실수할 때마다 곡이 흔들렸다.

채윤이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연주를 멈추지 않고 더 강하게 해나갔다.

조성현은 거기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역시, 채윤이는….’

그는 연주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딸이 천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유하자면.

조연이 조금씩 조금씩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는 상황인 거다.

호흡을 맞추던 조연 또한, 그를 보조하기 위해 비중을 늘리는 거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비중이 늘어나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조연이 될 수 있겠지.

아쉽게도,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조연이 주연이 되기 직전.

곡이 끝났다.

지잉.

따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동시에 끝나고.

조성현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면서 활을 내렸다.

채윤이 또한, 건반에서 손을 내린다.

정신을 차린 조성현이 어색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거 어쩐지.

스케일이 조금 커진 것 같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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