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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277화 (277/603)

277화

조성현과 서예나, 우경수 팀장의 회의가 막 끝났을 무렵, 대한 예술 사립 학교.

채윤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식판을 열심히 비우고 있었다.

오늘 메뉴는 콩나물국과, 갈비찜이었다.

갈비찜과 밥은 다 먹었는데 콩나물국이 조금 남았다.

채윤이는 얼른 수저를 움직여 콩나물국을 입에 집어넣었다.

아이의 옆에 앉아 있던 박준호가 채윤이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진짜야?”

“뭐가?”

밥을 먹는 내내 자꾸만 눈치를 보고 있어서 조금 답답했던 채윤이는, 고개를 돌려 박준호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시선에 박준호가 멈칫거리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식판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어제 신경화 교수님네 집에 갔다면서.”

“응. 어떻게 알았어?”

“아빠한테 들었어. 신경화 교수님이 어제 너 보러 간다고 자랑하셨다고 하던데.”

“맞아. 신경화 선생님 집 가서 돌체 오빠랑도 놀고 세연 언니한테 피아노도 배웠어.”

채윤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그러자, 박준호가 눈을 깜빡거렸다.

“돌체?”

“고양이야. 귀여워.”

“세연이라는 사람은 누군데?”

“세연 언니 몰라? 엄청 유명하다고 했는데.”

“유명하다고?”

박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이름에 손을 멈췄다.

바이올린을 배우다 보니,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잘 외우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설마 정세연 피아니스트 말하는 거야?”

“맞을걸.”

채윤이는 수저로 콩나물국을 먹다가, 결국 답답했던 것인지 두 손으로 콩나물국이 담긴 국그릇을 들고 마셨다.

박준호는 그런 채윤이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박준호였지만, 그래도 알건 다 아는 나이였다.

아빠가 클래식계에서 일하고, 심지어 신경화 교수와 함께 한국 예술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니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신경화 교수님에게 개인 레슨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믿지 못했고.

그녀가 실제로 학교에 찾아와서 채윤이와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믿을 수 있었다.

채윤이가 실제로 신경화 교수의 집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었지만.

박준호는 채윤이가 방금 한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신경화 교수의 집에 초대돼서 개인 레슨을 받은 것도 받은 건데, 심지어 신경화 교수뿐만 아니라 정세연 피아니스트에게도 레슨을 받았다고?

“나랑 사는 세상이 다르잖아….”

박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면 자신만 손해다.

지금까지 채윤이가 거짓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데, 그게 대단한 것일 뿐이다.

비록 채윤이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정세연 피아니스트가 직접 레슨해 준 거야?”

“응. 신경화 선생님이 바빠서.”

“바쁜데 집에 초대했다고?”

박준호가 물었다.

채윤이는 마지막 남은 콩나물 한 가닥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집어넣었다.

아이는 미간을 찡긋거렸다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안 바쁜 것 같았는데, 우리 아빠한테 바이올린 알려주느라 바빠졌어. 그래서 세연 언니가 대신 피아노 가르쳐준 거고.”

채윤이가 차분히 설명했다.

솔직히, 아이로서는 조금 귀찮기도 했다.

박준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채윤이었고, 아이는 그저 눈앞에 있는 식판을 다 비웠으니 얼른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 음악실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보통 선생님과 함께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허락을 받으면 음악실 정도는 갈 수 있었다.

채윤이는 음악실에 가서 피아노를 치는 걸 좋아했기에, 박준호와 대화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그냥 얼른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아빠랑 같이 연주한 곡 연습하고 싶은데.’

얘는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걸까.

채윤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박준호를 바라보았다.

박준호는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항상 자신을 볼 때마다 이런 얼굴이어서, 채윤이는 박준호가 조금 어려 보였다.

‘영준이나 한율이 오빠랑은 너무 달라….’

동갑인 영준이는 박준호보다 훨씬 더 오빠 같은 느낌인데, 박준호는 볼 때마다 왜 이런 건지 모르겠다.

박준호를 볼 때마다 채윤이는 자신이 아직도 유치원을 다니는 건지 헷갈렸다.

아이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준호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 아빠한테 바이올린 레슨을? 신경화 교수님이?”

“응. 나는 이제 밥 다 먹었어. 너도 이제 다 먹어야 할걸?”

박준호의 물음에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박준호의 식판이 아직 다 비워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제 박준호를 떨쳐버리고 음악실을 가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채윤이의 말에 박준호는 그저 멍하니 식판을 들고 멀어지는 채윤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나랑 사는 세상이 달라.”

박준호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신경화 교수였다.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신경화 교수님이 채윤이에게는 피아노 레슨을, 그리고 채윤이의 아버지에게는 바이올린 레슨을 해준다니.

너무 부러웠다.

자신도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신경화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기에 더 부러웠다.

한편, 박준호가 식사를 끝내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채윤이는 음악실로 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의 음악실은 한가해서 좋다.

좋은 악기를 자신이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할 생각에 신이 나서, 채윤이는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아이보다 더 먼저 도착해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채윤이도 잘 알고 있는 남자아이.

“어? 한율 오빠?”

아이가 연주하고 있던 박한율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박한율은 연주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곧바로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채윤이를 발견한 한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너도 연습하러 왔어?”

“연습? 나는 그냥 연주하러 온 건데.”

“그래?”

“응. 오빠는 연습해?”

“콩쿨 준비 때문에. 너는 따로 콩쿨 준비하는 거 없어?”

“없는데….”

박한율의 말에, 채윤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답했다.

콩쿨을 한 번 경험 해본 채윤이었기에,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에 콩쿨은 그리 쉽게 볼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긴 했는데.’

다른 이들의 피아노를 구경하고, 자신의 피아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좋았었다.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는 그리 즐겁지 않았지만.

“그럼 나랑 같이 콩쿨 나갈래?”

채윤이가 콩쿨을 준비하는 게 없다고 답하는 것을 들은 박한율이 얼른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채윤이는 고민에 잠겼다.

콩쿨을 할 때 즐겁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다.

아니, 사실 콩쿨을 할 때보다 끝나고 나서가 힘들었다.

자신이 상을 탄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자신 때문에 상을 못 탄 아이들도 있었을 테니까.

거기에다, 가장 큰 이유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콩쿨을 하게 되면 최소 두세 달 정도는 콩쿨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그럼 다른 것들은 전혀 하지 못하게 될거다.

채윤이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아빠랑도 자주 놀고, 편하게 다른 것도 하는 게 제일 좋다.

“모르겠어.”

“응?”

바로 나가겠다고 답할 줄 알았는데, 채윤이가 모르겠다고 답하자 한율이는 조금 당황했다.

피아노가 싫어서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설마 자신과 같이 나가는 게 싫어서 모르겠다고 하는 걸까.

“콩쿨 하면 힘들잖아.”

“그렇긴 하지.”

“아빠랑 이야기해 볼래.”

“그래, 그럼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같이 나가고 싶어지면 말해.”

“응.”

채윤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답한다.

그런 아이는 힐끗 한율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빠.”

“응?”

“나랑 같이 피아노 칠래? 콩쿨 준비하느라 바쁘면 혼자 해도 괜찮고.”

“아냐, 안 바빠. 같이 하자. 무슨 곡 할까?”

“파가니니!”

채윤이가 밝은 얼굴로 얼른 답했다.

박한율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음악실은 두 아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로 가득 찼다.

* * *

서예나, 우경수 팀장과 하는 회의는 끝났지만 조성현은 퇴근하지 않았다.

채윤이의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회사에서 작업을 하고 갈 생각이었고, 방금 회의 한 대로 곡을 조금씩 수정을 하고 있었다.

슬슬 채윤이의 하교 시간이 가까워져서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 소리에 조성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네, 들어오세요.”

그가 말을 하자마자 문이 열리면서 빼꼼, 얼굴이 하나 내밀어진다.

장현아였다.

조성현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어서 오세요. 현아씨.”

“네, 선배님. 오늘 회의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잘 끝났나요?”

“너무 잘 끝났죠. 회의 있었던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도 왔는데, 선배님이 안 계셔서 물어봤거든요.”

“아하. 문자라도 하시지.”

“엄청 급한 건 아니었어요.”

장현아가 손을 흔들면서 말한다.

조성현은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는 듯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현아는 그런 조성현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별건 아니고, 처음에는 거절할까 하다가 이건 그래도 선배님하고 상의해야 할 부분 같아서요.”

“네, 편하게 말하세요.”

“채윤이, 미튜브에 출연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몇 번 출연한 적 있으니, 그리 거부감 있진 않아요. 채윤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안 하면 되는 거니까요.”

조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조금 가벼운 목소리로 답했다.

채윤이는 유미의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미튜브에 출연한 경험이 꽤 많았다.

조성현과 함께 출연한 경우도 있었으니, 미튜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편이었다.

지난번에 채윤이가 직접 미튜브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었고.

‘물론 막 진지하게 뭔가 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채윤이도 미튜브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아하 하고 소리를 낸 장현아는, 볼을 긁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건데요? 유미씨가 또 미튜브 출연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히 출연할 수 있을 거다.

유미를 워낙 좋아하는 채윤이었으니.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장현아를 바라보았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그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답이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다른 쪽에서 공식적으로 섭외가 들어왔어요. ”

장현아가 말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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