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채윤이가 싱글벙글 웃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조부모님 댁에 가는 것에 신난 모습이었다.
“채윤아. 할머니 할아버지 보러 가니까 좋아?”
“응. 엄청 못 봤잖아.”
“그치. 너무 바빠서 밥도 같이 못 먹었으니까.”
사실, 바쁘다는 것도 핑계가 맞긴 하다.
시간을 내서 식사 한번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조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번 사는 인생이었고, 소중한 가족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부모님께 신경을 너무 못 쓰고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정말 잘 해드려야겠다 싶었다.
물론, 이렇게 결심하고도 또 비슷한 결심을 하게 될 테지만.
띵동.
벨을 눌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바로 열린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바로 출발 했는데, 차가 좀 막혔어요.”
“얼른 들어와. 밥 차려놨어.”
조성현의 어머니, 이수현이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채윤이가 얼른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섰고, 조성현도 아이와 함께 들어가 손부터 씻었다.
조재욱이 가만히 조성현과 채윤이가 나올 때까지 식탁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그들이 다 식탁에 자리를 잡자 입을 열었다.
“먹자.”
다들 배가 고팠던 탓에, 일단 식사부터 시작이 되었다.
메뉴는 김치찌개와 고등어구이.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고등어의 살을 바르며, 이수현이 묻는다.
어머니의 질문에 조성현은 입 안에 있던 밥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섭외가 들어왔어요. Pan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그럼 공식적인 거네?”
“네, 뭐. 일단 채윤이도 Pan 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로서 계약해서. 그쪽에서 매니저까지 붙여서 스케줄 소화했어요.”
“그래? 그럼 이제 채윤이 가수 되는 거야?”
“막 그런 건 아니고… 일단 지금 당장은 연습생 신분이라고 보는 게 맞죠.”
“큼. 그러면 뭐, 회사에서 돈도 받나?”
“수익 발생하면 받을 텐데, 미튜브 촬영을 할 때 나오는 수익은 거의 얼마 안 돼요.”
기껏해야 10만 원 20만 원 정도의 수익이다.
물론 그것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기대할 만한 수익은 아니었다.
미튜브 채널을 따로 운영하면서 성공적으로 수익을 얻으면 또 모를까.
그냥 일반적으로 섭외를 받아서 출연하는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수익이 크게 나오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그래도 벌써 돈을 벌고 그러는 거 아니야. 우리 채윤이가 효녀네. 벌써부터 돈도 벌고.”
“효녀죠.”
조성현이 웃으며 말을 했다.
채윤이는 그 말에 활짝 웃었다.
“너희 아빠는 효녀가 아니지.”
“응. 아빠는 불효자야.”
조성현이 채윤이에게 말한다.
그러자, 이수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거라도 알면 다행이지 뭐.”
어머니의 말에, 조성현은 풀썩 웃었다.
이수현은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너는 진짜, 채윤이한테 잘해야 한다.”
“그래야죠.”
채윤이한테는 정말 잘해야 한다.
조성현은 그 말에 너무 공감했다.
지금까지 못 했기 때문에, 앞으로라도 계속해서 잘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다.
조재욱이 슬쩍 말을 건넸다.
“그래서,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는데? 유미 앨범 작업은 다 끝났을 거 아니야.”
“지금은 서예나 앨범 작업하고 있어요.”
거기까지 말한 조성현은 씁하고 숨을 한 번 들이킨 후, 말을 이었다.
“아마 프로듀싱 말고도, 아티스트로서도 참여하게 될 것 같아요.”
“…? 그건 무슨 말이냐?”
“제가 피쳐링을 하기로 해서요. 제 목소리도 노래에 들어갈 거예요.”
“뭐야. 그럼 성현이 네가 가수가 된다는 거야?”
“막 가수로서 활동을 한다 이런 건 아니고, 이번 앨범에 그냥 참여한다 정도예요.”
“아니 그래도 서예나 같은 대단한 가수랑 같이 노래를 하게 되는 거잖아.”
“그건 맞죠.”
서예나가 대단하긴 하지.
조성현은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수현은 너무 놀란 듯, 고등어구이의 살을 바르다가 손을 멈추고 가만히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조성현이 멋쩍게 웃었다.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그거 하느라 못 온 거야?”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긴 했어요.”
서예나의 앨범 작업이 조금 급하긴 했었다.
그래서 매일 출근하면서 작업을 했던 거고.
물론 퇴근하고 나서 찾아뵈려면 뵐 수 있었던 상황이긴 했지만.
조성현이 볼을 긁적거리며 말을 하자, 이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해해야지. 바빴다는데.”
어머니의 말에 조성현은 헛기침했다.
그의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수현은 질문을 계속했다.
“아니 그러면 막 콘서트도 같이 하고 그러는 건가?”
“음…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원하면 할 수도 있을 텐데….”
사실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무대를 몇 번 같이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확률은 매우 높지만.
그게 콘서트가 될지 음악방송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나중에 콘서트 하면 엄마랑 아빠한테도 티켓 줘.”
“그럴게요.”
조성현이 바로 답했다.
그의 답을 듣고, 이후에는 조재욱이 질문을 던진다.
“그럼 앨범 발매하고 나서는 뭐 하는 건데?”
“따로 제가 할 건 없고요, 이제 저는 서예나 앨범 말고 다른 앨범 작업해야 해요.”
“어떤 거?”
“파라다이스 엔터라고, 중국에서는 좀 유명한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가 이번에 Pan 엔터하고 손잡고 진행하는 아이돌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서요. 그쪽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서예나의 앨범 작업을 얼른 끝낸 후, 파라다이스 엔터 쪽으로도 신경 쓸게 많았다.
이예린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 거의 준비가 다 된 상태라고 하던데.
그럼 사실상 조성현만 준비된다면 곧바로 앨범 진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바쁘네.”
“막 엄청 바쁘진 않을 거예요. 제가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을 거라서.”
“그럼 가끔 놀러 오고 그래.”
“그럴게요.”
조성현이 답했다.
식사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채윤이는 거실에서 조재욱의 옆에 앉아 함께 티비를 봤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조금 힘들어하던 채윤이였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좀 편하게 지낸다.
조성현은 어머니와 함께 식탁에 앉아서 그런 채윤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수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일 많아도, 채윤이한테 신경 많이 써줘야 한다.”
조성현이 아무리 채윤이에게 잘 해줘도, 이수현으로서는 조금 불안한 모양이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됐기에, 조성현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 생, 자신이 일이 바쁘다며 채윤이에게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걱정 마세요. 저, 채윤이 아빠잖아요.”
“그렇지. 네가 아빠지.”
이수현이 중얼거렸다.
결국 조성현은 그날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하다가, 결국 부모님의 집에서 채윤이와 함께 자야 했다.
* * *
일은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
채윤이는 학교를 잘 다니고 있고.
조성현도 매일 같이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또 아이가 하교하고 나서는 채윤이랑 시간을 함께 보낸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성현은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딱히 엄청나게 특별한 걸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즐겁다.
‘그래도,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긴 하네.’
채윤이와 함께 있으면서 하는 게 딱히 없으니, 조금 아쉽다.
전처럼 아이와 함께 음악회라도 가면 좋을 텐데, 요즘 채윤이는 딱히 음악회에 엄청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금 당장은 자신의 음악을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느낌이랄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따라란.
아이가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베토벤의 곡 중 하나.
듣기 좋은 소리가 났지만, 아이는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성현은 옆에서 가만히 아이를 지켜보다가, 채윤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채윤아.”
“응?”
“잘 안 돼?”
“응. 마음에 안 들어.”
“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신경화 선생님을 따라 하게 되는걸.”
바로 어제부터, 신경화 교수가 연주한 베토벤의 곡을 수도 없이 들은 채윤이와 조성현이다.
신경화 교수의 레슨을 받는 만큼, 최근 채윤이가 가장 참고를 많이 하는 연주는 신경화 교수의 연주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에게서도 신경화 교수의 피아노가 조금씩 녹아들었다.
정확히는,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은데 신경화 교수의 연주보다 더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신경화 교수의 연주를 따라 하게 되는 상황.
아무래도 채윤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며칠 동안 계속 이런 상황이다.
조성현은 부드럽게 웃음을 보이며 아이의 옆에 앉았다.
“신경화 교수님 따라 하는 건 싫어?”
“응.”
“왜?”
“그치만 그건 내 연주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이의 말이 맞다.
그저 남의 연주를 따라 하는 것일 뿐, 그게 채윤이의 연주가 되지는 않는다.
조성현이 작곡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프로듀싱은, 여러 작곡가들의 곡을 모아서 편집하는 거라고 보면 되겠지만.
작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니까.
그는 자신의 음악이 좋았고, 남이 만든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아티스트와 어울리도록 수정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자신의 음악이 되지는 않았다.
조성현은 그래서 작곡하고, 채윤이가 자신의 연주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 그런 것이리라.
지금 당장 자신의 연주를 하는 게 쉽지 않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지만.
“채윤아.”
“응.”
“지난번에, 우리 ‘바람의 왕국’ 영화 보고 나서 연주 했던 거 생각나?”
“생각나.”
“그때도 비슷하지 않았어?”
“아니야. 그건 달랐어!”
채윤이가 고개를 흔들며 주장한다.
조성현은 차분히 아이의 말을 들었다.
“그때는 연주할 수가 없었던 건데, 지금은 연주는 할 수 있는데 선생님 연주가 더 좋아서 자꾸 선생님 연주가 생각이 나는 거지.”
아이는 미간을 찡긋거리며, 차이를 설명했다.
그런 채윤이의 얼굴을 보며 조성현은 결국 풀썩 웃음을 흘렸다.
“더 열심히 연습하면 되려나?”
“모르겠어….”
조성현의 물음에,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답한다.
더 열심히 연습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분명 채윤이는 쉬지 않고 연습을 했을 거다.
하지만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거겠지.
이 부분에 있어서 정답은 없었다.
혹시 있더라도, 조성현도 모르는 정답이었고.
그가 해줄 수 있는 답은 많지 않았다.
“그럼, 아빠랑 한 번 연주해 볼까?”
그의 말에 채윤이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그날,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아이와 조성현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성현은 며칠 후.
정답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때로는, 음악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힌트를 말이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