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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295화 (295/603)

295화

조성현은 채윤이의 ‘피아노 치고 싶다’라는 말에 빠르게 머리를 굴려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펜션에 피아노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주변에 피아노가 설치된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집에 다녀올 수도 없는 법이고.

“오늘 내일은 아빠랑 같이 곡 만들기 할까?”

“피아노 말고?”

“응. 여기에는 피아노가 없네. 대신 아빠가 노트북 들고 왔어.”

“좋아.”

채윤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했다.

피아노가 없으니 피아노를 못 친다는 것을, 아이가 모를 리가 없다.

피아노를 며칠 동안 못 친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칠 아이도 아니고.

다만, 조금은 아쉬울 뿐이다.

그 아쉬움을, 조성현은 다른 음악으로 달래주려는 것이었다.

채윤이는 욕실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아아 하며 울림을 확인하더니 웃음을 흘렸다.

이내, 아이는 조성현의 무릎에서 벗어나 열심히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조성현은 혹여나 아이가 위험할까, 채윤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행히 채윤이는 수영에 소질이 없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일단 적어도 물을 겁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채윤이는 얼굴을 물에 담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만 머리카락을 귀찮아했다.

아이는 조성현의 오른편에서 출발해서, 욕탕을 한 바퀴 돌고 왼편으로 왔다.

채윤이의 머리가 조성현의 팔에 닿는다.

아이는 푸후 하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조성현은 아이의 앞을 가린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재미있어?”

“응. 아빠도 수영할래?”

“아빠가 여기서 수영하면 큰일 날걸?”

조성현이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욕탕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조성현이 수영을 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다.

채윤이는 조성현과 욕탕을 번갈아서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아빠는 앉아 있어.”

아이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물장난을 계속 쳤다.

처음에는 아이가 혹시 위험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채윤이가 물속에서 너무 잘 놀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걱정이 사라진 그 자리에, 장난기가 발동한다.

세상의 모든 아빠라면 공감할 수 있는 장난기일 거다.

문득문득, 아이를 골리고 싶은 마음.

혹은, 아이에게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

조성현도 아빠로서, 때때로 그런 충동이 들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이가 히히 거리면서 열심히 발장구치며 조성현 쪽으로 다가온다.

조성현은 슬쩍 손을 들어, 채윤이에게 물을 뿌렸다.

채윤이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조성현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의 웃음이 욕실을 울린다.

채윤이는 조성현이 웃음을 흘리자, 자신도 키득키득 웃고는 두 손으로 물을 퍼서 조성현에게 뿌렸다.

촤악.

조성현의 정면으로 물이 뿌려지고.

웃고 있던 그는 채윤이가 자신에게 물을 뿌리자, 미소를 보이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빠. 수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물뿌리는 건 반칙이야.”

채윤이는 조성현에게 물을 뿌려놓고,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약간은 뿌듯해 보이는 얼굴이기도 하다.

자신이 조성현에게 물을 뿌렸다는 것이 기쁜 듯한 모습.

조성현은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채윤이의 얼굴이 조금 변한다.

약간은 불안한 표정.

“지금은 그럼 갑자기 물뿌리는 거 아니니까 반칙 아니지?”

조성현이 그렇게 묻자, 채윤이는 어버버 거리면서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아이에게 조성현은 슬쩍 손을 움직여 물을 뿌렸다.

채윤이는 힉 하고 소리를 내더니 얼른 몸을 물에 담갔다.

자기 딴에는 피한다고 한 것일 텐데, 조성현이 뿌린 물을 전부 다 맞은 후에 잠겼다.

채윤이는 금방 다시 나오더니, 열심히 머리를 흔들었다.

젖은 머리로 조성현에게 물을 뿌리려는 의도였지만, 채윤이만 지칠 뿐이었다.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조성현에게 다가왔다.

조성현은 웃으며 아이에게 팔을 벌렸다.

그리고.

촤악.

채윤이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얼른 조성현에게 물을 뿌렸다.

조성현이 멈칫하면서 채윤이를 바라보자.

“항복!”

채윤이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면서 외친다.

조성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물을 뿌린 후에, 항복을 외칠 생각을 한 게 너무 귀엽지 않은가.

채윤이가 항복을 외쳤기에, 조성현은 결국 물을 뿌리지 않고, 얌전히 아이를 안아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물에서 놀았을까, 슬슬 채윤이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아이라도, 물에서 놀면 평소보다 빠르게 지치기 마련이다.

채윤이도 마찬가지였고, 조성현은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딸을 기르는 부모라면 공감하겠지만, 아이를 씻기는 것도 문제지만 딸아이는 씻고 나서도 해야 할 것이 많다.

“자, 앞에 앉아.”

조성현이 채윤이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앞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두고, 채윤이를 앉혔다.

아이의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머리카락들을 뒤로 빼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준다.

너무 뜨거워도, 차가워도 안 되는 작업이었다.

머릿결이 상하는 것을 채윤이는 잘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매일 같이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고 빗겨주는 조성현은 아이의 머릿결에 꽤나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막 머리에 영양제 같은걸 서너 개 뿌리고 바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헤어 세럼 정도는 발라주는 편이다.

열심히 머리를 말리다가, 세럼을 발라주고 조금 더 말려 준 후 마무리를 한다.

아이가 여기서 조금만 더 머리가 기르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슬슬 미용실 가긴 해야 하는데….’

조성현이야 한 두 달에 한 번씩 가서 그냥 스타일 유지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채윤이는 경우가 많이 달랐다.

그가 돌아와서 지금까지, 채윤이는 미용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머리를 계속 길렀고, 처음에는 단발이었다가 이제는 슬슬 장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슬슬 미용실에 가서, 자르든 아니면 다듬어주든 하긴 해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머리까지 전부 말린 후.

조성현은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채윤이는 조성현이 노트북을 꺼내 들자 눈을 반짝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작업하는 거야?”

“응.”

“예나 언니 노래?”

“아니, 예나 언니 거는 다 끝냈고. 지금 하려는 건 아빠가 혼자 한 번 만들어보고 있는 거.”

조성현은 간단히 말하고 노트북을 펼쳐, 지금까지 작업을 해왔던 곡을 재생시켰다.

채윤이에게는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보다, 그냥 한 번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는 조성현이 작업을 하고 있던 곡을 가만히 들었다.

채윤이는 중간중간 미간을 찡긋거리기도 하고, 흥미로운 얼굴로 노트북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때?”

“뭔가 신기해.”

“그래?”

“응. 아빠가 저번에 말해준 것 같은 느낌이야.”

“말해준 거? 어떤 거?”

“우음… 주인공?”

채윤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말한다.

아이도 조성현이 말한 것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주인공이라는 단어에, 조성현은 아이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채윤이와 함께 연주하며, 둘 다 주인공으로서 성장해서 연주하면 완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음식으로 주인공에 대한 비유를 하기도 했었고.

조성현은 재미있다는 듯,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 곡을 그런 식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곡을 어떻게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채윤이는 진짜 천재네.”

“아빠가 더 천재야!”

불쑥 던져진 칭찬에도, 채윤이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조성현은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곡을 만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음식으로 한 번 비유해보자면, 조성현은 라면에다가 재료를 때려 넣는 느낌으로 곡을 마무리했다.

해물을 넣던, 차돌을 넣든 뭘 하든.

라면은 라면이니까.

조성현이 마무리를 하려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떠한 음악에서 무슨 음악적 요소를 가지고 와서 넣던, 이건 조성현의 음악인 거다.

채윤이는 조성현이 곡을 마무리 하고 있는 동안,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니, 조성현은 아이가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탁탁.

계속 들리는 작은 소리에 조성현은 힐끗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조성현은 채윤이가 손가락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까딱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앞에 피아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채윤이의 머릿속에서는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을 거다.

어쩌면, 채윤이도 조성현이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을 수도 있겠지.

조성현은 작업하던 것을 멈추고 채윤이의 손가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채윤이만큼 천재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성현도 음악적으로 어디 가서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는 편이다.

채윤이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성현이기에.

그는 아이가 어떤 곡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조금이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아이가 상상으로 연주를 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정확히 어떤 음이 울린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느낌의 연주일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다는 거다.

아마, 다른 이들은 그런 조성현을 보고 그것 또한 천재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

채윤이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중간중간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손가락을 멈추지는 않았다.

쭉 연주하고, 혹은 다시 한번 연주하기도 하면서.

아이는 자신이 최근 고민하던 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갔다.

조성현은 그런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일단 첫째.

아이에게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게 조성현과의 경험일 수도 있고, 그와의 경험이 아니라 밖에서 일어나는 전혀 다른 경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겪은 경험을 정리해주고, 함께 음악을 해줄 동반자가 필요하다.

그건 조성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였다.

‘경험은 내가 완전히 다 해결할 수는 없긴 하지.’

살면서 겪는 경험은 정말 다양하니까.

그리고 조성현은, 아이의 그 다양한 경험 중에 미튜브에 대한 경험도 있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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