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우와아….”
채윤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감탄을 흘렸다.
조성현도,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의 계곡이 펼쳐져 있다.
사람이 조금 있긴 하지만, 꽤 한산했다.
아직 휴가철은 아니니, 사람이 많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조성현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내렸다.
나올 때부터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가벼운 외투만 걸치고 나온 상태였다.
옷은 딱히 갈아입을 필요는 없고, 수건 몇 장과 간단히 먹을 간식 정도만 가지고 온 상황.
날이 엄청 더운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정도는 되어서 다행이다.
물이 많이 차가우면 잠깐만 들어갔다 나와야 했을 텐데, 다행히 적당히 시원한 정도였다.
‘딱 좋네.’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하며, 손에 있는 물을 털고 자리를 잡았다.
그는 가장 먼저 외투를 벗고는 채윤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채윤이는 얼른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보채지 않고 가만히 있긴 하지만, 시선이 자꾸만 물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채윤아.”
“으응?”
“너무 급하게 들어가지 말고, 아빠랑 같이 들어가자.”
“응.”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가 답한다.
짐을 잘 모아둔 조성현은 아이를 안아 들고 조심스럽게 물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채윤이 또래 아이들도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물 깊이나 세기는 괜찮아 보였다.
조성현의 다리가 잠기고, 그에게 안겨 있던 채윤이의 발목도 담긴다.
“시원해.”
채윤이가 기분 좋은 듯, 다리를 움직여 찰랑거렸다.
조성현은 가장 깊은 곳이 자신의 허리 정도까지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채윤이를 조심스럽게 내려 주었다.
채윤이는 몸을 부르르 한 번 떨었다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성현은 아이의 뒤를 따라 움직이며 채윤이가 물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어제 욕탕은 물이 따뜻했고, 그냥 고여 있는 물이었는데 오늘 계곡은 물살이 세진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세기는 되었다.
물이 시원하기도 하고.
돌들도 있고, 여러모로 욕탕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혹시 발이라도 헛디뎌서 넘어져 다치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아이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천천히 움직이다가, 헉 하고 소리를 내며 멈췄다.
“아빠 아빠.”
채윤이가 다급하게 조성현을 부른다.
조성현은 성큼,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채윤이와 나란히 섰다.
“왜?”
“저기 봐봐.”
채윤이가 손을 들어, 자신의 정면을 가리킨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설렘이 가득했다.
조성현은 채윤이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고, 작은 물고기들 여러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고기네?”
“너무 귀여워.”
“그러게.”
조성현이 답한다.
채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물고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작해야 손가락 하나 크기 정도 될 만한 작은 물고기들이었는데, 그게 정말 신기한 모양이다.
커다랗게 변한 채윤이의 눈은 좀처럼 작아지지 않았다.
결국 조성현은 웃음을 흘리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물에 젖은 손에, 채윤이의 머리도 젖으며 축 내려앉는다.
아이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고개를 들어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물고기가 그렇게 신기해?”
“응. 수영을 너무 잘하는 것 같아.”
“물고기니까. 대신 채윤이는 잘 걷잖아.”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가 그런가 하는 얼굴로 갸웃거린다.
아이는 다시 물고기들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물고기들은 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일정 반경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물고기들을 보면서, 채윤이는 걱정하는 얼굴이 되었다.
조성현은 아이가 걱정하는 것이 뭔지 알 것만 같아서, 웃음을 참으며 채윤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채윤아, 왜 그래?”
“… 앞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가면 물고기들이 다칠 것 같아.”
채윤이가 가려던 방향에 물고기들이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양이다.
역시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같아서, 조성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을 거야. 물고기들이 알아서 채윤이 피해 다닐걸?”
“… 진짜?”
“응. 채윤이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 잘 피해 다니잖아.”
“… 그러네.”
조성현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채윤이는 그의 말에 꽤 논리적이라고 생각을 한 것인지, 이해하고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아이는 물고기들이 양옆으로 찢어지며 자신과 부딪히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안심하면서 속도를 냈다.
열심히 발을 놀려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채윤이는, 목표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큰 돌이 있는 곳이었는데, 아이는 낑낑거리면서 돌 위에 올라섰다.
“… 아빠가 더 크네.”
아무래도, 자신이 돌 위에 서면 조성현보다 키가 커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아이를 보고, 조성현은 웃으며 채윤이를 안아 위로 들어 올렸다.
“이제 채윤이가 아빠보다 크지?”
조성현이 그렇게 말했지만, 채윤이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이가 원한 게 이런 건 아닌 모양.
결국, 아이의 표정을 보고 조성현은 슬쩍 팔을 움직여 자신의 품으로 채윤이를 끌어당겨 안았다.
“나중에는 채윤이가 아빠보다 커지지 않을까?”
“진짜?”
“음…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리겠다.”
조성현이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중에 언젠간 조성현이 늙어갈 때면, 어쩌면 채윤이가 자신보다 클 날이 오지 않을까.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말이다.
* * *
계곡에서 오래 놀 수는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날 때문이었다.
날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물이 바로 차가워져서,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봐 금방 나와야 했다.
그 ‘금방’도 두세 시간이나 논 후였고, 이미 채윤이는 지쳐 있는 상태였다.
물론 더 놀라면 놀 수 있겠지만, 조성현은 채윤이와 함께 물 밖으로 나왔다.
“추워?”
그렇게 물으니, 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하지만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면, 체온이 낮아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는 아이의 몸에 있는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숙소에 가서 샤워해야 할 것 같다.
아이를 먼저 차에 태우고, 조성현은 자신의 몸에 있는 물기도 대충 닦은 후 차에 올랐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채윤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물놀이하고 나서 피곤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
조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이는 숙소에 다 도착하고 나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조성현은 채윤이를 안고 숙소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제서야 아이가 눈을 뜬다.
“집이야…?”
“응. 숙소. 졸려?”
“조금.”
채윤이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성현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졸리면 일단 씻고 잘까?”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행히 채윤이는 씻는 걸 거부하진 않았다.
그냥 자겠다고 했으면 난감했을 텐데 말이다.
조성현은 최대한 빨리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는데, 거울에 비치는 채윤이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아무래도, 잠이 다 깬 모양이다.
“지금은 안 졸리지?”
“응. 배고파.”
물놀이하고 나서는 졸리더니, 씻고 나와서는 배고프단다.
저녁 시간이긴 해서, 배고픈 게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조성현은 결국, 씻고 나오자마자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김치찌개.
어렵지 않은 메뉴였기에, 조성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채윤이가 눈을 빛내면서 조성현이 저녁 준비하는 것을 지켜본다.
“조금만 기다려. 얼른 해줄게.”
“응.”
조성현의 말에 아이가 곧장 답한다.
채윤이는 가만히 조성현이 요리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여행에 와서 만들기 시작한 곡을 이어서 부르는 것이었다.
아이는 기분 좋은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김치찌개가 전부 준비되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식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밥은 따로 하기보단 즉석밥을 먹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전자레인지를 사용했다.
“자, 이제 먹자.”
“잘 먹겠습니다!”
채윤이는 그렇게 말을 하고 수저를 들었다.
얼른 먹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조성현은 웃으며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한 숟갈 먹었다.
간도 적당하고 둘이 먹기에 양도 딱 맞을 것 같았다.
“뜨거워. 조심히 먹어야 해.”
“아빠도 잘 불어먹어.”
“알았어.”
채윤이가 자신의 숟가락 위에 있는 김치찌개에 바람을 불어 넣더니 말한다.
아이의 말에 조성현은 웃으며 답했다.
김치찌개와 함께 먹을 반찬도 딱히 많지는 않았다.
단출하게 찌개와 밥.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식사를 끝내고.
채윤이는 소파에 앉아 자신의 작은 배를 통통 두드렸다.
조성현도 아이를 따라 자신의 배를 두드린다.
채윤이는 그걸 보고 기분 좋은 얼굴이 되었다.
아이는 슬금슬금 조성현 쪽으로 다가와, 그의 배를 두드렸다.
열심히 자신의 배에 올라타서 놀고 있는 채윤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성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미튜브를 시작하게 되면, 이런 일상들을 전부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다른 이들도 미튜브를 보면서 채윤이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근데, 조성현과 채윤이도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정말로 조성현보다 더 커졌을 때.
그때가 되면 지금의 모든 것들이 전부 추억이 되어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조성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채윤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조성현을 바라본다.
조성현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인 것 같다.
미튜브에 대해서, 말을 할 타이밍이.
그런 생각과 함께 조성현이 입을 열었다.
“채윤아.”
“응?”
“현아 언니가 지난번에, 아빠한테 물어봤었거든.”
“어떤 거?”
채윤이가 묻는다.
아이는 조성현의 배를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슬그머니 조성현의 무릎 위에 올라와서 조성현과 눈높이를 맞췄다.
조성현은 채윤이가 넘어지지 않게 잘 잡아 주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미튜브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답하자, 아이의 눈이 커지면서 되묻는다.
“아빠가?”
조성현보고 미튜브를 하자고 말했다고 오해를 한 모양.
그는 픽 웃으면서 고개를 가볍게 흘렸다.
자신 홀로 미튜브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제안이 들어왔다면, 곧바로 거절 했겠지.
조성현은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거나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다만 채윤이는 조금 다르다.
아이는 분명, ‘주인공’으로서의 재능과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채윤이랑, 아빠랑 같이.”
그가 말했고.
채윤이의 얼굴은 밝아졌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