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조성현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카메라맨만 고생이었다.
조성현과 채윤이는 정말 다른 것을 하지 않고 작업에만 집중했으니까.
달칵.
탁, 타각.
띠리링.
마우스 움직이는 소리, 키보드 소리, 전자음…
그런 소리들이 울리는 것 빼고는 조성현과 채윤이의 대화도 차단되었다.
작업 초반에는 채윤이가 조성현의 무릎에 앉아서 가끔 대화도 하고, 즐거워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채윤이가 조성현의 무릎에서 내려와 작업실 한쪽에 있는 작은 소파에 앉아서 혼자 무언가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
이미 그게 두 시간째였다.
결국, 카메라맨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미 촬영할 수 있는 부분은 전부 촬영했다.
여기서 더 있어 봐야 다양한 그림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조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저….”
“아, 네.”
옆에서 직접 말을 걸어오니, 음악 작업에 집중하고 있던 조성현이라도 모를 수가 없다.
그가 살짝 놀란 듯 멈칫거렸다가 고개를 돌려 카메라맨을 바라보았다.
“촬영은 다 한 것 같아서,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집중하느라….”
“아니에요. 저는 장 매니저님한테 연락 한 번 하고 퇴근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조성현은 그렇게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렇게 카메라맨이 장비를 챙겨서 작업실을 빠져나가고.
조성현은 자신이 작업하던 것을 바라보며 숨을 토해내었다.
일단, 틀은 어느 정도 만들어졌다.
틀을 만드는 거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기본적인 틀이 잡혔다는 건 그래도 조성현이 그나마 뮤즈 멤버들의 성향을 파악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어느 정도 큰 산을 넘은 것이긴 하지만, 단순히 곡만 봤을 때는 진행도가 그리 빠른 건 아니었다.
조성현은 기본적으로 곡을 만들 때 틀을 짜고, 거기에 맞춰서 아티스트들에게 어울리는 악상들을 넣는다.
이후, 곡을 깎아내듯 여러 음들을 걸러내고.
마무리하면서 전체적으로 조금 더 곡을 매끄럽게 한 후 가이드 보컬 녹음을 들어가는 게 일반적으로 조성현이 곡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게 보통 1차 완성.
가이드 보컬을 듣고 약간의 수정이나, 다듬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친 후 아티스트에게 결과물을 보내주고.
본 녹음 후 다시 한번 다듬고 마무리를 하면 그게 최종 완성.
그런 과정들을 거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일단 2주 안에 두 곡을 만들어 달라는 게 세라의 요청이었으니, 두 개의 곡을 1차 완성까지는 해놔야 하는 상황.
어려울 건 없지만, 조성현으로서는 약간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민하영의 보컬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자꾸 들고.
다른 멤버들도 있고.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 게 가장 균형 잡힌 모습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도 있다.
조성현이 지금까지 작업한 곡은 전부 한 명의 아티스트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었지만 뮤즈의 곡은 다섯 명의 아티스트를 한 번에 신경 쓰면서 균형을 잡아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다.
‘더 빡세게 해야겠네.’
더 오래 작업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의미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조성현은.
꼬르륵.
자신의 배에서 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채윤이와 함께 토스트를 한 조각 먹은 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다.
점심은 서예나와 함께 늦게라도 먹으려다가, 포기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작업에만 집중하느라 먹을 겨를이 없었던 것.
조성현은 시간을 확인했고, 이미 8시가 다 되어 가는 걸 보고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채윤이도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원래 보통 7시쯤 밥을 먹는데, 이미 저녁 시간이 많이 늦은 것.
“채윤아.”
조성현이 결국 아이를 불렀다.
이제 슬슬 작업을 정리하고 퇴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의 부름에도 채윤이는 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나 싶어, 조성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작업실을 훑었다.
채윤이는 소파에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끄적거리고 있었다.
아이도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조성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
결국 조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채윤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아이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으니, 그제서야 채윤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조성현을 돌아본다.
“배 안 고파?”
“… 고파.”
안 고프다는 듯 고개를 저으려던 아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한다.
채윤이도 작업하느라 배고픈 걸 잊고 있다가 이제야 허기를 느끼는 것 같다.
조성현은 피식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뭐 하고 있었어?”
“나도 작곡.”
“아빠도 보여줄까?”
“응. 나 잘했어.”
채윤이는 뿌듯한 얼굴로, 얼른 자신이 끄적거리고 있던 것을 조성현에게 보여준다.
세라는 꽤나 꼼꼼한 스타일이어서 작업실에 유용한 것들을 꽤 많이 가져다 놓았다.
채윤이의 작업실은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꾸며놨지만, 조성현의 작업실은 정말 실용적인 느낌.
덕분에 오선지와 펜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와서 작곡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쓰던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조성현은, 하나의 곡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조성현보다 빠른 속도다.
이건 둘의 작업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조성현은 틀을 만들고 많은 것들을 추가해서 곡을 깎아 나가듯 작업한다면, 채윤이는 틀을 만들 것 없이 거의 즉석에서 바로바로 곡을 뽑아내듯 만든다.
작업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채윤이의 곡은 군데군데 텅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나긴 했다.
톡톡 튀고, 정말 좋은 곡이지만 완성도 부분에 있어서 막 대단하다고 말할 만한 건 아닌 건데.
반대로 조성현의 곡은 딱 들어도 아 곡에 신경을 꽤나 썼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음악적 재능의 차이라기보단, 말 그대로 성향의 차이였다.
“재미있네. 하영 언니 생각하면서 쓴 곡이야?”
민하영과도 어울릴 수 있는 곡이었기에, 조성현은 그렇게 물었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곡을 쓴 적이 있던 채윤이었고.
그때보다 더 디테일한 부분을 잘 잡아서, 확실히 성장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니.”
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답했다.
“그러면?”
“나 생각하면서 만들었어.”
“아. 유치원 때의 채윤이?”
“응.”
채윤이가 맑은 얼굴로 답한다.
조성현은, 흠 하고 소리를 내고는 곡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초반에는 조금 어둡다가 후반 갈수록 밝아진다.
민하영을 보고 그때 생각이 난 것인지, 유치원 때의 채윤이부터 시작해, 지금의 채윤이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는 것 같은 곡이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다음에 다시 와서 마무리할까?”
“… 네.”
“밥 맛있는 거 먹자. 밖에서 먹고 들어갈까?”
“좋아요.”
채윤이도 배가 고팠던 것인지, 밝은 얼굴로 답한다.
조성현은 아이의 앞에 있던 오선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의 스마트폰이 울리고.
조성현은 힐끗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
“네, 현아씨.”
-아 선배님. 저는 이제 일 끝냈는데, 정우씨가 이제 퇴근한다고 연락 와서요. 선배님은 어떻게 하시려나 싶어서 전화했어요.
장현아의 말에, 조성현은 바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저희도 퇴근하려고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밥 먹고 들어갈 거라서….”
-아, 선배님도 아직 식사 안 하셨구나. 음….
장현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생각을 하는 듯 입을 다문다.
조성현은 채윤이를 한 번 보았다가 입을 뗐다.
“현아씨도 식사 안 했으면 같이 밥 먹고 퇴근할까요?”
장현아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낌새여서, 조성현은 먼저 제안했다.
어차피 밥을 먹고 들어가려 했었으니, 같이 먹는 게 어려운 일은 전혀 아니었다.
-그럴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얼른 갈게요.
“천천히 오세요. 저희 1층 내려가 있을게요.”
조성현은 그렇게 답하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어차피 Pan 엔터테인먼트와 여기가 그리 멀지도 않다.
차타고 10분이면 올 테니, 느긋하게 정리하고 나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듯싶었다.
“채윤아, 밥 뭐 먹고 싶어?”
“우음… 아무거나.”
채윤이는 고민하다가, 결국 모르겠다는 듯 답했다.
조성현은 아이가 작업한 오선지를 한쪽에 잘 내려놓고, 채윤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현아 언니한테 한 번 물어볼까?”
“응.”
채윤이가 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한다.
조성현과 채윤이는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올라탄 엘리베이터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이제 퇴근 하세요?”
“아, 세라씨.”
엘리베이터에 타 있던 세라가 조금 놀랐다는 듯 조성현과 채윤이를 번갈아 본다.
조성현이라면 그럴 만한데, 채윤이가 같이 있어서 더 놀란 것 같다.
“저녁 식사 시간은 꼬박꼬박 지킨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늦었나 보네요.”
“작업에 집중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그렇게 답하던 조성현은, 멈칫거리면서 세라를 바라보았다.
“근데, 저녁 시간은 꼬박꼬박 지킨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채윤이도 있으니 웬만하면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누가 해줬을까.
조성현의 질문에, 세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희 파라다이스 엔터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한 세라는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농담이고, 예린이한테 들었어요. 사실 애들이 지난번에 성현씨 만나고 나서 엄청 긴장해가지고 그나마 성현씨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예린이를 들들 볶았거든요. 그때 저도 옆에 있어서, 좀 들었죠.”
세라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 세라를 만났을 때보다는 편해지긴 해서 대화가 매끄러웠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을 텐데.”
“예린이도 딱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애들이 프로듀서 보고 긴장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거죠.”
세라의 말에 조성현이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그녀의 말이 맞긴 하다.
뮤즈는 아직 연습생이고, 프로듀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모든 감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기는 느낌이다.
“내일도 출근하세요?”
“그럴 것 같네요.”
“그럼 내일은 애들 지금까지 연습한 커버 곡 부르는 거 한 번 들어봐요. 2주마다 한 번씩 공연하는데, 내일이 공연 날이라.”
“아, 알겠습니다.”
공연이라는 표현이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라는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발음이 살짝 어색했는데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니 따로 연습도 많이 한 모양.
그래도 여전히 대화할 때 단어 사용에 있어서 약간의 어색함이 따라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라와 대화를 마무리하고, 잠깐 기다리자 장현아의 차가 도착했다.
조성현은 채윤이를 먼저 태운 뒤, 아이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장현아가 힐끗, 백미러를 통해 채윤이와 조성현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딱히 뭐 먹고 싶은 건 없는데. 현아씨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음… 그러면 초밥?”
“좋죠. 초밥.”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니, 장현아가 차를 출발시킨다.
그리고 조성현은 장현아의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언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심각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됐던, 심각한 일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