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다행히 조성현은 전날 밤, 일찍 잠들 수 있었다.
주말임에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채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조성현은 홀로 일어나 거실 소파에 나와 앉았다.
꽤나 긴장된다.
손에 땀이 나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분명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만큼 기대감도 함께하고 있었지만, 앨범이 전부 공개되고 평가가 확실히 나오기 전까지 이 상태는 유지될 것이다.
조성현은 최대한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려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피아노를 바라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그는 손을 움직여 피아노를 연주해나갔다.
조성현의 손끝에 ‘비하인드’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마나 연주했을까.
해가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채윤이가 슬슬 일어나겠구나 싶어서 아침 준비를 하려는데.
우우웅.
조성현의 스마트폰이 길게 진동했다.
그는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하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 여보세요?”
-형. 저예요.
“응. 우진아.”
최우진.
조성현이 처음 프로듀싱을 맡았던 서예나의 앨범에서 작곡가로서 함께 하고.
이후에는 데뷔 조에 뽑혀서 열심히 연습생으로서 살다가 드디어 이번에 데뷔를 했다.
회사에서 내부적으로 그룹 이름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결국 ‘헤임달’이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내려서 데뷔를 하게 됐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신인.
바쁠 것 같아서 문자로 데뷔 축하만 해주고 따로 전화는 안 했었다.
음원 성적도 최고 순위 70위까지 찍어서 막 데뷔한 신인 아이돌 치고 준수한 성적을 냈다.
-오늘이죠?
“응.”
-정식 데뷔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데뷔는 데뷔니까. 미리 축하해요.
“고맙다. 너도 다시 한번 데뷔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통화를 해나가는데, 전화 너머로 요란하게 축하를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성현이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아, 죄송해요 형. 다른 멤버들도 형 데뷔하는 거 축하한다고 전해 달라요.
“감사합니다. 다들 데뷔 축하하고, 음방 잘 봤어요.”
-형 저희 음방도 봤어요?
“봐야지. 다음 주에는 경쟁할 텐데.”
-에이, 경쟁이라뇨. 우리는 그냥 바로 밀려날 텐데.
최우진의 말에 조성현이 가볍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막 데뷔한 최우진의 그룹 ‘헤임달’이 서예나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긴 했다.
그래도 음방에서 만날 확률은 꽤 높았기에, 경쟁상대라는 건 사실이었다.
“그때 보자.”
-네 형. 오늘 파티한다면서요. 못 가서 죄송해요.
“됐어. 이제 막 데뷔해서 열심히 돌아다니는 신인이 올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활동 열심히 하고. 오늘 음악정점 무대 하지?”
-어, 뭐야. 형 우리 스케줄도 파악하고 있어요?
“나 원래 매니저였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성현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는 프로듀서이기도 하고, 동시에 전직 매니저다.
소속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다른 회사 소속 아티스트들의 스케줄도 알아볼 수 있다.
조성현의 말에 최우진이 아 맞네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튼, 저희 이제 샵 도착해서… 어. 팀장님이 바꿔 달래요.
“응.”
그가 답을 하기 무섭게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바뀐다.
-나야.
“어, 형.”
박중원의 목소리에 조성현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가 헤임달을 케어하고 있다는 것도 이미 조성현은 알고 있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이다.
그냥 아무 로드한테 맡길 리는 없는 데다가 다른 매니저들은 다 스케줄이 있는 상황.
장현아라면 헤임달을 충분히 케어 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유미의 콘서트 준비에, 조성현과 채윤이의 미튜브 준비까지.
할 게 많았다.
오늘은 조성현과 함께하기로 했고.
결국 남는 인원은 박중원밖에 없었으니, 그가 헤임달과 함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못 가서 미안하고, 대신 첫 음방 할 때는 나도 같이… 못 가려나.
“못 오지. 어떻게 와.”
-하긴. 그렇네.
조성현의 말에, 박중원이 이해하며 답한다.
박중원이 음방 스케줄에 함께 해준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서예나가 메인이고 이번 컴백 초반 스케줄들은 우경수 팀장이 함께할 테다.
거기에 팀장급 인원 한 명이 추가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굳이 매니저가 한 명 더 필요하다면, 조성현의 케어를 위해 장현아가 함께 가면 함께 갔지, 박중원이 함께하기에는 힘들었다.
-뭐, 활동 중에 한 번 정도는 같이 갈 수 있겠지.
“같이 안 가도 되니까. 헤임달 케어나 잘 해주십셔.”
-어. 나중에 밥 사라. 데뷔 기념으로.
“맛난 거로 제대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유미씨도 불러서 같이 먹어야겠네.”
박중원과 유미에게는 정말 밥을 사긴 해야 한다.
지난 생, 끝까지 자신을 도와주려 했던 박중원에게 밥을 사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자신이 매니저 일을 그만둘 때 밥을 사줬던 유미였기에, 조성현은 자신이 처음으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하는 기념으로 유미에게 밥을 사고 싶긴 했다.
-그래. 알았어. 나 이제 가본다.
“응. 고생해.”
전화를 마무리하니, 채윤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안방에서 나온다.
“아빠아…?”
“응. 채윤아. 일어났어? 좀만 기다려 밥해줄게.”
조성현이 서둘러 움직였다.
* * *
결혼 날 같다.
서예나가 예약을 해둔 파티룸으로 향하면서, 조성현은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잘 차려입고 오라고 해서 결국 수트를 입고, 채윤이도 예쁜 옷을 골라 입었다.
뭘 입어도 예쁜 채윤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눈에 들어오는 복장.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오고, 너무 정신이 없었다.
뜬금없이 결혼 날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파티룸에 도착을 하니 서예나와 우경수 팀장이 먼저 와 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몇몇 보인다.
유미도 오기로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고.
“어서 와요.”
“컴백 축하드려요.”
“와, 감사합니다. 그쪽도 데뷔 축하해요.”
“… 감사합니다.”
조성현은 서예나와 인사를 나눴다.
서예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조성현을 놀리다가 결국 그만두고, 채윤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채윤이가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다.
“채윤이 아빠 오늘 가수 되는데. 채윤이는 언제쯤 데뷔하려나?”
“오늘 미튜브 공개하기로 했어요!”
서예나의 말에, 채윤이가 답한다.
아이의 답에 서예나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맞다. 미튜브 오픈하기로 했지. 와 진짜 정신없겠다. 뭐, 청심환이라도 가져다줄까요?”
서예나가 조성현을 돌아보며 묻는다.
조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청심환은 괜찮을 것 같네요.”
솔직히 좀, 긴장되긴 하는데.
이 긴장을 억지로 풀기보다는 데뷔 직전의 긴장까지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답했고, 서예나는 가만히 조성현을 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이제 데뷔하는 신인 아티스트의 심정을 이해하겠네요.”
“그러게요. 다시 매니저 시절로 돌아가면, 진짜 신경 많이 써줘야겠어요.”
그렇다고 그가 매니저 시절에 아티스트를 신경 써주지 않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 다시 매니저가 된다면 그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쓰며 케어할 것 같았다.
데뷔 직전의 아티스트는, 개복치다.
툭 치면 쓰러지는 존재.
데뷔 직전, 아티스트의 멘탈 케어를 정말 신경 써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로 중요한 건지 확실하게 알았다.
조성현이야 그나마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바로 옆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하고.
미튜브로 조금씩 얼굴을 드러낸 적이 있었으니 긴장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진짜로 처음 대중에게 자신을 공개하는 신인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존경하겠습니다. 예나씨.”
“푸핫. 그래요. 많이 존경하세요.”
조성현의 말에, 서예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파티룸을 빌렸고, 음식도 여러 가지가 나왔다.
직원들이 먼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점점 풀어졌다.
서예나는 음식을 바로 앞에 두고도 음료만 마실 뿐, 뭘 먹지는 않았다.
여전히 식단 관리하는 것이다.
바로 옆에 우경수 팀장이 붙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녀가 없었더라도 서예나는 알아서 식단 관리를 잘했을 거다.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살아온 경험이 있으니까.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데, 유미가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저 빼고 다들 도착하셨네요.”
유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들면서 사과를 하고.
조성현과 서예나는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어. 편히 놀자.”
서예나는 그렇게 말을 하며 유미의 손을 슬쩍 잡아끌어 파티룸 한쪽에 있는 노래방 기계 앞으로 데리고 갔다.
띄울 셈인지, 서예나가 웃으면서 유미에게 무어라 말한다.
조성현은 서예나와 유미 쪽으로 다가가다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좀 미안하면, 첫 타자로 노래 부르자.”
그런 서예나의 말에 유미는 거절하지 않았다.
둘 다 가수다.
딱히 어디 가서 노래 부르자는 제안을 거절할 인물들이 아니었다.
결국 유미는 슬쩍 기계를 조작했다.
그녀의 선곡은, 서예나의 곡이었다.
서예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첫 번째 곡으로 자신의 곡을 고른 이유를, 알아 차린 거다.
컴백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할 테고, 동시에… 유미가 지금 고른 곡은 차트는 물론이고 음방 1위도 휩쓸었던 곡이기에.
이번에도 그러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다들, 주목!”
유미가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애초에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들 입을 다물고 유미를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기에.
중간중간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순간인 거.
-나도 잘 알고 있어.
유미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딱히 엄청 힘을 주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슬슬 경험이 쌓여가고, 여러 무대를 서봤기에 지인들끼리 하는 작은 파티에서 긴장하거나 노래를 못 부를 그녀가 아니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후렴구까지 끝내고, 유미는 잠깐의 반주 시간 동안 입을 열었다.
“컴백 축하드리고, 데뷔도 축하드려요!”
그녀의 말에 서예나가 픽 웃더니 노래방 기계 옆에 있던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2절부터는 그녀가 직접 부르기 시작한다.
당연히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이후에는 조성현과 채윤이도 함께 했다.
직원들 대표로는 장현아가 나서서 노래를 부르니 이후로 한 명씩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 이제 다들 조용!”
유미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그녀의 말에 다들 순식간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어린 얼굴들.
조성현도 유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왜 조용히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10, 9, 8….”
잠시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유미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그 카운트 다운에 모두가 작게 카운트 다운을 하거나 긴장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조성현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려 했는데.
옆에 있던 채윤이가 조성현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니, 채윤이가 히히 웃는다.
유미의 카운트 다운은 계속되고 있었다.
“3, 2, 1….”
그리고,
0.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