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딸기 한 팩을 씻어서 내놨는데, 순식간에 한 팩이 사라졌다.
채윤이도 열심히 먹고, 영준이도 딸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는지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딸기를 하나씩 주워 먹었다.
그러다 보니 딸기는 언제 쌓여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조성현은 빈 접시를 더듬거리는 채윤이를 보고 픽 웃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접시를 치웠다.
채윤이는 딸기가 잡히지 않아서 이상했는지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비어있는 접시를 보고는 절망 어린 눈이 되었다.
아이의 눈을 본 조성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따가 밥 먹고 또 먹자.”
“… 응.”
채윤이가 조금 실망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한다.
그래도 아이는 금방 밝아진 얼굴로 영준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장현아는 딸기를 주워 먹다가 이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업무를 보는 중이었고, 한아름만이 남아서 그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빈 접시를 치운 후, 밖으로 향했다.
잠깐 나가려고 했던 건데 채윤이가 귀신같이 그를 따라왔다.
“아빠, 어디가?”
채윤이가 묻는다.
“밭에서 배추 따오려고.”
“배추?”
“응. 맛있는 거 해 먹게.”
“나도 갈래.”
채윤이가 말한다.
영준이도 스케치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한아름이야 당연히 따라 나오고 있었고.
결국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 나가려고 했던 게 아이들을 다 끌고 나가게 되는 일이 되었지만, 바뀌는 건 크게 없었다.
“채윤아, 다른 거 밟지 않도록 조심해.”
“응!”
“영준이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네.”
조성현은 채윤이와 영준이를 힐끗 보면서 말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명랑하게 답했다.
배추를 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성현이 배추를 따본 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했던 것처럼 그는 지난 생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주인공은 그냥 식칼을 하나 들고 툭 하고 쳐서 배추를 땄는데, 조성현도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이었다.
식칼을 하나 들고나온 그는 최대한 작은 배추를 찾았다.
아이들을 포함해서, 사람 다섯이 먹을 배추였다.
클 필요가 전혀 없었기에 그는 일부러 작은 배추를 고르는 것이었다.
다들 크기가 비슷비슷해서,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조성현은 배추 밑동에 칼을 박고 살짝 힘을 주어 배추를 당겼다.
툭 하고 배추가 떨어져나온다.
“와!”
그 모습이 신기했던 것인지, 채윤이가 소리를 냈다.
한아름이 배추와 채윤이를 번갈아 촬영했다.
“자, 이제 들어가자.”
“벌써?”
아이는 방금 나왔는데 바로 들어가는 게 아쉬운지, 그렇게 물었다.
조성현이 피식 웃었다.
“채윤이랑 영준이는 밖에서 놀고 있을래? 아빠는 들어가서 배추 손질 할 건데.”
“… 아냐 나도 들어가서 구경할래.”
채윤이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다가 답했다.
영준이의 선택은, 볼 것도 없었다.
아이는 당연스럽게 채윤이를 따라왔고, 조성현은 결국 영준이와 채윤이를 데리고 음식을 준비했다.
배추를 가지고 만들 만한 음식은 생각보다 많았다.
조성현이 생각하고 있는 건, 배추전과 배춧국.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도 아니었고, 많은 식재료와 큰 노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골랐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일단 배추를 씻고 다듬는 일이었다.
채윤이와 영준이가 기웃거리며 조성현이 배추를 다듬는 것을 보았다.
조성현은 배추를 꼼꼼하게 씻은 후, 한 장씩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하려는 배추전과 배춧국은 배추를 통으로 쓰는 게 아니라, 한 장씩 뜯어서 사용하는 음식이었기 때문.
가만히 구경하던 채윤이가 낑낑거리며 의자를 끌고 오더니, 조성현이 뜯어낸 배춧잎을 한 장씩 정리해서 쌓았다.
“고마워 채윤아.”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가 기분 좋은 듯 헤헤 웃었다.
배추를 한 장씩 따서 잘 정리해둔 후 조성현은 전을 할 반죽을 준비했다.
부침가루가 있었기에, 그냥 물이랑 섞으면 되는 거라 간단했다.
“나는 뭐할까?”
옆에서 채윤이가 묻는다.
어느새 영준이도 조성현을 도와줄 생각인지 의자를 끌고 와서 준비하고 있었다.
조성현은 그런 아이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딱히 도움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귀엽다.
그는 숟가락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배추가 지금은 평평하지 않잖아. 이걸 이렇게.”
조성현이 숟가락으로 배춧잎 하나를 두드렸다.
배춧잎이 점점 평평해진다.
“이렇게 펴주면 되는거야. 할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어.”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추전을 하려면 배추가 평평하게 잘 펴져 있어야 잘 구워진다.
넓적한 것으로 두드리면 훨씬 더 편하게 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쓸만한 게 딱히 없었다.
조성현이 직접 하는 것이었다면 칼 면으로 쳤겠지만…
‘애들한테 칼을 들게 할 수는 없으니까.’
조성현이 속으로 생각하며 방금 편 배춧잎 한 장을 반죽에 담갔다.
그는 옆에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충분히 팬이 달궈진 것을 확인한 후, 아이들이 평평하게 펴둔 배춧잎을 한 장씩 반죽에 넣었다가 굽기 시작한다.
배춧잎들은 금방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열 장 정도 구워졌을까.
채윤이와 영준이는 배춧잎을 평평하게 펴는 것도 잊고 조성현이 굽는 배추전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촬영하던 한아름이 작게 웃었고, 조성현은 한아름의 웃음에 아이들을 바라보았다가 자신 쪽을 보고 있는 채윤이와 영준이를 발견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침을 뚝뚝 흘리 것 같은 눈빛에, 조성현은 다 구운 전이 담겨 있는 접시를 식탁에 올렸다.
“한 개씩만 먹고 있어. 알았지?”
“응. 한 개씩….”
채윤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으로 향했다.
“영준이도 가서 한 개만 먹어.”
“… 네.”
숟가락을 들고 잠시 자신의 앞에 있는 배춧잎들을 바라보던 영준이가 결국 배추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식탁으로 향한다.
조성현은 아이들을 위해 전을 찍어 먹을 간장을 만들어 놓아주고는 다시 전을 구웠다.
다음으로는 배춧국이다.
배춧국도 어렵지 않았다.
돼지고기와 된장을 이용해서 금방 국을 끓인 조성현은 어느샌가 업무를 끝내고 나와서 조성현이 요리하는 것을 보고 있던 장현아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아름씨도 먹어요.”
“아, 저는 조금만 더 촬영하다가 먹을게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아름을 향해 말을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식사 장면을 촬영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하며, 그녀는 열심히 식사 장면을 촬영했다.
절반 정도 먹었을까.
그제서야 한아름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함께 식사했다.
“와, 배추전 진짜 맛있네요. 어려운 것도 아닌데 엄청 맛있다….”
한아름이 작게 감탄을 하고 말한다.
장현아가 웃었다.
“역시 아버지의 손맛.”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옆에서 채윤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가 만든 건 다 맛있어요.”
아이까지 가담해서 칭찬하는 것을 듣고, 조성현이 픽 웃었다.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요리를 한 입장에서 기분 좋은 일이 없을 거다.
다만, 조금 민망하긴 했다.
딱히 그가 한 게 없었으니까.
배추전이야 그냥 배추를 구운 것뿐이고, 배춧국도 크게 어려울 게 아닌 음식이다.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는데 그걸 자신이 했다고 맛있다고 하니,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배추가 맛있는 거예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조성현이 그렇게 말하고 식사를 마쳤다.
오늘 설거지는 장현아가 했다.
“이거라도 해야죠. 매니저가 자꾸 밥이나 얻어먹고.”
“아침은 현아씨가 했잖아요.”
“에이, 그게 뭐한 건가요. 그냥 빵만 구운 건데.”
조성현도 그냥 배추를 구운 것뿐이라서, 다를 건 별로 없지만 장현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열심히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조성현은 장현아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이들을 위해 딸기를 씻었다.
하루종일 하는 게 먹고 씻고 먹을 준비를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또 그게 여행의 매력 아니겠는가.
‘집에 있을 때도 항상 그렇다는 게 함정이지만.’
조성현은 속으로 생각을 하며 딸기가 담긴 접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이제 조금 선선해진 날을 즐기고 있었다.
작은 벤치에 앉아서, 영준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고 채윤이는 옆에서 그런 영준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한아름이 그 모습을 촬영하며 미소를 보였다.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한아름의 모습에 조성현은 가볍게 웃었다가 채윤이와 영준이에게 딸기를 내밀었다.
“딸기다.”
채윤이는 아까 잔뜩 먹어 놓고선, 그건 기억이 안 나는지 딸기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옆에 서서, 저물어가고 있는 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조성현은 조용히, 시골의 평온함을 느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
벌레들이 찌르르 우는 소리.
영준이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소리도 들린다.
시골의 소리는 도시의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도시에서는 그저 차들이 굴러가는 소리와, 경적 울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시골에서는 딱딱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딸기 같다.”
채윤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이의 눈에는 붉게 물든 하늘이 딸기의 색과 비슷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글쎄.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조성현은 그저 웃었다.
후웅.
바람이 불었다.
집 마당 바로밖에 있는 나무에 바람이 스친다.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소리를 만들었다.
조성현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듣기 꽤나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레 우는 소리가 조금만 더 시끄러웠다면 소음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딱 적당하다.
조성현은 그 소리에 맞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작은 흥얼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채윤이가 항상 하듯, 조성현도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이와 둘이 왔더라면 자주 그랬을 텐데, 다른 이들도 있어서 굳이 노래를 흥얼거리진 않았던 조성현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람을 느끼고,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왔다.
조성현이 만들어내는 작은 흥얼거림에, 바람 소리와 벌레 우는 소리가 화답하듯 어우러졌다.
채윤이가 즐거운 웃음을 터트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이가 만들어내는 노래와, 조성현의 노래가 더해졌다.
그 모습을, 한아름이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카메라에 이 모습이 담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