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오늘도 채윤이를 등교시킨 후.
조성현은 회사로 출근했다.
집이나 카페에서도 충분히 작업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작업실에서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니까.
작업 환경이 확실하게 준비되어 있는 곳에서 하는 게 제일이다.
가끔은 밖에 나가 창작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창작보다는 정리하는 타이밍이었으니까.
미니 앨범을 곡을 준비하는 건 사실 혼자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까지 생각한다면 벅찬 것도 사실.
다른 걸 다 떠나서, 능력이 안 된다.
조성현은 자신의 능력을 굉장히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음악에 있어서 얼마나 재능 있는지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객관적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금 당장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판단이 가능했다.
‘다른 건 어찌어찌 해결은 가능하지.’
작곡과 프로듀싱은 조성현이 원래 해오던 일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조성현과 채윤이의 곡이고, 앨범인 만큼 조성현보다 이번 앨범에 수록될 곡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당연히 조성현은 이번 앨범을 되도록 자신이 최대한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그래도, 그의 원함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앨범의 준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간섭하려 하면 얼마든지 나설 수 있었으나, 조성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업무도 아니었을뿐더러, 장현아를 향한 믿음도 확실했기 때문.
‘그래도 역시… 보컬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데.’
앨범 작업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었고.
음악적으로 다른 부분은 조성현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보컬은 그가 해결할 수 없었다.
자신의 보컬도 물론 사용을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니까.
채윤이는 곡, ‘딸기’에 대한 보컬을 자신이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그 말은 다른 보컬을 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마땅한 보컬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장현아도 크게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조성현 자신이 이 아티스트와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면, 장현아가 그 아티스트와 컨택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현아씨가 먼저 나서서 어떤 보컬이 좋을지 의견을 내는 건 힘들지.’
그녀는 음악에 있어서 일반인들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아는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전문가는 아니었다.
조성현만큼 앨범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매니저가 아니라 프로듀서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똑똑.
누군가 그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장현아라고 생각해서, 조성현은 몸을 돌렸다.
“네, 들어오세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장현아가 아니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아, 유미씨.”
유미가 오랜만에 조성현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 오랜만은 아닌가.’
얼마 전에도 콘서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온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 오랜만은 또 아니다.
오히려 서예나와 못 만난지 꽤 됐지.
“점심 시간인데. 밥 먹었어요?”
“아직요. 유미씨는요?”
“저도 아직이요. 같이 먹을래요? 구내식당 오늘 메뉴 보쌈이래요.”
“보쌈 맛있겠네요. 가요.”
크게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출출한 건 사실이었기에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바로 답했다.
유미는 조성현의 답에 활짝 웃으면서 얼른 가자는 듯 몸을 돌렸다.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길.
조성현은 유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작업실에 저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 오늘 팀장님 보러 나왔다가 오빠 출근했다는 거 들었어요.”
“팀장님이면, 박중원 팀장님이요?”
“네. 콘서트 준비랑, 예능 때문에요.”
그 말에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능을 출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는 걸 듣긴 했었다.
“안 그래도 현아씨한테 예능 관련해서 듣긴 했는데. 나가시려고요?”
“팀장님은 저 편한 대로 하면 된다고 하고, 장 매니저는 나가면 좋지 않겠냐고 하긴 하던데. 아직 고민 중이에요.”
유미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말한다.
여전히 고민 중에 있는 모양.
조성현으로서는 나가는 것도 좋은 판단 같았기에, 그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저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해요. 여러모로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어요?”
“그래요?”
유미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조성현을 바라본다.
그녀가 자신의 담당 아티스트였던 시절이 떠올라, 조성현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개인적으로는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딱히 예능에 노출을 안 했었으니까… 새로운 도전이 되기도 할 거고. 지난번 앨범 비하인드 시리즈 덕분에 미튜브도 아직까지 인기가 오르고 있잖아요.”
“… 그렇긴 해요. 미튜브가 생각보다 커져서 안 그래도 부담되는데 그거 때문에 예능 나가는 것도 부담되더라고요. 소통이 빠르니까.”
대중들과 소통이 빠르다는 것은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과 같은 일이었다.
인지도도 그렇고, 코어 팬을 확보하기도 참 좋은 것이 소통이지만.
반대로 아티스트를 가장 상처 입힐 수 있는 것들도 소통이었다.
언어 폭력이라는 것은 결국 소통을 하면서 이뤄지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유미는 미튜브가 잘 되어가면서 점점 활동에 있어서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오빠처럼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근데 다른 마음 한 켠에서는 굳이 나가야 하나? 미튜브로도 충분히 소통 되고 있는 상황이고 콘서트도 크게 문제없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유미가 말한다.
조성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 또한 비공식적으로 데뷔를 해보고, 또 미튜브를 하고 있다 보니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자신이 며칠 전까지 하던 고민이 아닌가.
앨범을 내고 싶고, 그게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부담과 걱정 때문에 계속해서 망설이게 된 거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 거다.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긴 했지만, 어쨌든 조성현은 빠르게 결정 내리고 싶지 않아서 대답을 회피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그는 확실하게 결정을 내렸고.
덕분에 유미의 고민에 있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유미씨 말도 맞긴 해요. 내가 부담이 되는데 굳이 나갈 필요가 있나. 사실 전혀 없잖아요.”
“…….”
조성현이 말을 시작하자, 유미가 특유의 맑은 눈을 들어 그를 응시한다.
그녀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조성현이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도, 한번 해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예능이잖아요. 듣기로는 관찰 예능이라고 하던데. 물론 전부 다 리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유미라는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조성현은 유미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유미 본인보다 그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매니저로서, 또 그녀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으로서.
조성현은 유미를 아주 잘 알 수밖에 없었고, 예능적으로도 그녀가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미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말 매력 있는 사람이잖아요. 대중들도 유미씨의 매력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될 거고. 유미씨의 음악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조성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고.
유미의 표정은 오묘하게 변했다.
그녀는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조성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박중원이었다.
그는 조금 놀란 눈으로 유미와 조성현을 돌아보았다.
“뭐야. 둘이 왜 같이 나와.”
“밥 먹으려고. 형은?”
“나는 이제 막 먹고 사무실 올라가려고 했지. 어쩐지 유미씨가 너 출근 했냐고 묻더니만. 같이 밥 먹으려고 했구나.”
“예능 때문이에요.”
답한 것은 조성현이 아니라 유미였다.
유미의 말에 박중원은 아하고 소리를 냈다.
“성현이가 흐름 잘 읽으니까. 조언 잘 구해봐요. 저는 유미씨가 무슨 선택을 내리든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하겠습니다.”
박중원이 웃으며 말했고.
그의 말에 유미가 가벼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이미 결정했어요.”
“며칠만 더 고민 해보겠다고 하시더니. 성현이가 벌써 좋은 조언 해줬나 봐요.”
“아주 주옥같은 조언을 해주셨죠.”
장난스럽게 ‘주옥’을 발음하는 그녀의 모습에 조성현이 웃음을 흘렸다.
“출연할게요.”
조성현이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마음을 정했다.
예능에 나가기로.
박중원은 힐끗 조성현을 한 번 바라보았다.
조성현은 별생각이 없다는 듯 그냥 가만히 있었고.
박중원은 그런 조성현을 잠시 보았다가 픽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좋네요. 그럼 현아씨한테도 전달할게요. 우리 현아씨가 바쁘겠네. 매니저 일하랴, 방송 출연하랴.”
관찰 예능이었고, 매니저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이었기에 박중원은 장현아가 바빠지겠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유미는 슬쩍 박중원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 부분도 이야기 한 번 해야 할 것 같은데. 밥 먹고 연락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박중원은 유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연히 옆에 있던 조성현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박중원과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회사가 식당은 진짜 관리 잘하는 것 같아요.”
“연습생들도 와서 먹을 테니까, 관리 잘해야죠. 연습생들이 회사의 미래인데.”
조성현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유미도 맞는 말이라며 답하고는 식사를 해나간다.
밥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는 사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 옛날이야기였다.
“오빠가 진짜 저 애기 때 완전 잘 케어해줘서 여기까지 왔어요. 아 나레기 많이 컸다. 콘서트까지 열고 예능도 고민하면서 나가고. 원래는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던 게 예능인데.”
유미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히히 웃는다.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저도 경험 많지 않았을 시절이라서 실수한 게 많았죠.”
“그러니까. 그때는 인간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조성현이 조금 당황해서 되묻자.
유미가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연다.
“지금은 아빠미가 있죠. 좋은 아빠의 표본. 조성현.”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헛기침하는 유미를, 조성현이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오빠.”
“네, 유미씨.”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유미가 말을 꺼낸다.
조성현도 덩달아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프로듀서, 작곡가, 미튜버… 다 좋은데요.”
거기까지 말 한 유미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듣고.
‘채윤이가 좋아하겠네.’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