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진현수는 눈을 깜빡거리며 신경화를 바라보았다.
말했던 것처럼, 신경화의 몸값은 비쌌다.
비단 금액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오케스트라 측에서 양보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최대한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신경화와 식사를 하러 나온 게 맞았다.
친구 사이였고, 신경화 교수가 비상식적인 인물은 아니었으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조건들을 내밀 거라고 예상을 했기 때문.
하지만 이건 정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진현수는 신경화가 기껏해야 음악 시장 전반적으로 연주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 있어서 힘을 쓴다.
혹은 그와 비슷한 조건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같이 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는데 연주회 티켓을 제공 해준다든지 하는 것들.
그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경화가 한 말은 정말 의외였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기에, 진현수는 신경화 교수에게 다시 물어봐야 했다.
“내가 지금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일단 네가 오케이 하게 되면. 특별 무대를 하나 더 편성해서… 연주자를 한 명 더 무대에 세우고 싶다는 거지?”
“응. 그렇지. 내가 메인으로 진행하는 건 받아들일 테니까, 대신 뭐 짧게라도 무대 하나 만들어줘.”
“… 신인 연주자에게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준다… 뭐 그런 느낌인 거야?”
진현수가 물었다.
신경화 교수가 워낙 음악계 전반적으로 후대 양성이나, 연주자들의 전체적인 대우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보니, 진현수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끼는 후배 연주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하는구나.
딱 그 정도.
신경화 교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그런 느낌이지. 가능할까?”
“글쎄. 이 부분은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긴 하네. 워낙… 스케일이 있는 조건이니까.”
무대를 하나 더 늘려달라는 건, 사실상 연주회의 구성을 바꿔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냥 특별 무대로 곡 하나를 더 끼워 넣으면 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진현수의 성격상 그런 걸 허락할 리 없었다.
모든 것은 어우러져야 한다.
특별 무대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고, 모든 무대는 하나의 연주회로 끝맺음 되어야 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확실히 실력 있는 연주자여야 했다.
그 연주자가 바이올리니스트인지, 피아니스트인지, 아니면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지도 중요하고.
“일단, 너는 이 조건 안 받아들여지면 연주 안 하는 거야?”
“뭐… 그건 아니지. 그렇게까지 강하게 이야기할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연주자에게도. 그리고 서울 오케스트라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한 번 물어보는 거야. 가능하면 좋겠다 싶으니까.”
“그래?”
“응. 아마 너한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음악이 정말… 새롭게 보일 테니까.”
신경화 교수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후후 웃더니 메뉴판을 들어 올렸다.
“이제 뭐 좀 시키자. 배고프다.”
“아, 그래.”
진현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메뉴판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들의 대화는 음식을 시키고 나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정확히는, 진현수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졌다고 봐야겠지.
“어떤 악기 연주하는 연주자야?”
“피아노.”
“피아노면… 무리는 없을 것 같고. 커리어는?”
특색 있는 악기였으면 구성에 있어서 고민해야 했으니, 무리가 될 수 있겠지만….
피아노는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
되도록 신경화가 내민 조건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그렇게 물었는데.
돌아온 답에 진현수는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없어.”
“……?”
신경화 교수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뭐가 문제가 되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음색에 진현수가 당황해서 신경화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경화 교수가 오히려 묻는다.
“왜 그런 눈빛이야. 신인 연주자라고 말했잖아.”
“아니, 아무리 신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뭔가 커리어가 있을 거 아니야. 그냥 이제 막 대학 졸업했어. 이런 건 아닐 테니까.”
진현수의 말에 신경화 교수가 큭큭 거리며 웃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정말 진심으로 웃고 있는 신경화 교수의 말에 진현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 교수님. 뭐가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같이 좀 웃자.”
진현수가 그렇게 말을 하니, 신경화 교수는 애써 웃음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그래, 뭐. 네 말대로 커리어가 전혀 없는 건 아닌데… 없다고 봐도 괜찮아. 일단 학력은… 이게 좀 문제긴 한데. 유치원은 일단 졸업했어.”
“… 응?”
“지난번에 JK 그룹에서 주최한 콩쿨에 나가서 최우수상 하나 받았고.”
“… 농담이지?”
진현수의 표정이 조금 굳는다.
유치원을 졸업했다는 말에,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싶은 얼굴이었는데.
JK 그룹에서 주최한 콩쿨에서 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현수가 알기로, JK 그룹에서 주최한 연주회는 어린아이들만 참가했었으니까.
신경화 교수가 이야기하는 그 ‘신인 연주자’가 초등학생이라는 것을 방금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신경화는 그저 가만히, 진현수를 응시했고.
진현수는 신경화 교수가 자신과 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진현수는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랜 친구가, 자신보고 초등학생과 함께 특별 무대를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과 서울 오케스트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하면서.
‘그것도, 진심으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현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진현수를 보면서, 신경화 교수는 잔잔한 미소를 보였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내가 나중에 연주하는 거 보여줄게.”
신경화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굳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지금 이렇게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진현수도, 결국 연주를 보게 되면 납득을 하게 되리라.
그때 진현수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되었다.
* * *
조성현과 채윤이는 민하영과 함께 녹음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민하영이 앨범에 전체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루 녹음을 하는 것으로 민하영과 함께 하는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후반 작업인데, 사실 이 부분이 조금은 어렵다.
조성현이 생각하는 건, 채윤이의 보컬과 민하영의 보컬을 적절히 섞어서 곡에 녹여내는 것이었는데… 그 부분이 아마 까다로울 것이다.
누군가 피쳐링을 하거나 아니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보컬을 합쳐서 하나의 보컬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개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기에 당연히 까다로울 수 있었지만… 보컬을 섞는 기법이 그리 드문 방법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엄청 자주 있는 일도 아니긴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끔 쓰이기도 한다.
보컬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영화 음악 같은 경우.
유명한 아티스트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드는 경우, 보통 실제 있었던 곡들을 사용해서 영화를 제작한다.
그러다 보니 그 보컬에 있어서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원곡의 보컬과, 배우의 보컬을 섞어서 사용했다.
아니면,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더빙을 하는 이는 전문 성우가 맡고, 노래는 그 성우와 다른 가수의 보컬을 섞어서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케이스들이 있었으니 조성현은 그런 것들을 참고하며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성현이 곡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채윤이도 바로 옆 작업실에서 자신의 곡을 작업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작업을 하고 있던 조성현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가 잘 있나 확인을 하기 위해, 그는 채윤이의 작업실로 향했다.
조성현은, 약간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는 처음 채윤이의 곡을 듣고 난 후 그다음으로는 아이의 곡에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채윤이의 곡을 존중해주려 한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도 아이의 곡이 완성되면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의 곡을 듣지 않으려고 자제를 했는데…
이제 슬슬 신경화 교수와 약속한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르면 오늘, 아니면 내일 완성이 될 상황.
채윤이의 곡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을지 너무 궁금했다.
조성현은 조심스럽게, 채윤이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작은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달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린 문틈 사이로 채윤이의 한쪽 눈이 보인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다가 조성현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아빠 안녕!”
“응. 채윤이도 안녕.”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채윤이의 모습에 조성현이 웃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채윤이가 웃으면서 버둥거린다.
내려가고 싶어 하는 아이의 행동에, 조성현은 얼른 다시 채윤이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채윤이가 피아노 앞으로 잰걸음으로 다가간다.
“곡은 얼마나 작업했어?”
“거의 다 끝났어.”
“그래?”
“응. 완전 거의 다 했어. 근데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채윤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을 한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할 때 아이는 눈살을 찡긋거렸는데, 확실히 곡이 뜻대로 풀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채윤이는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과장 된 한숨.
곡이 완벽히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직접 작곡을 한 곡이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들기에 나올 수 있는 리액션이었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렇게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니라 그냥 미간을 좁히고 가만히 건반을 노려다 보았겠지.
조성현은 가볍게 웃으며 채윤이를 바라보았고, 채윤이는 고개를 돌려 조성현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아빠.”
“응 채윤아.”
“한 번 들어볼래?”
“… 좋아. 한 번 들어보자. 우리 채윤이가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
조성현이 그렇게 말을 했고.
채윤이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건반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이의 연주가 시작된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연주를 들으며, 주먹을 쥐었다.
이제는, 신경화 교수에게 들려줄 준비가 됐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