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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403화 (403/603)

403화

조성현은 자신의 앞에서 옷을 둘러보고 있는 채윤이를 잠시 보았다가, 통화를 이어나갔다.

“어… 옷을 살 생각으로 오긴 했는데, 보통 이런 무대에 갈 때는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게 아닌가 봐요?”

조금 어색한 목소리로, 조성현이 물었다.

약간은 민망하긴 했다.

솔직히 백화점에 오면 뭐든 옷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오자고 한건 채윤이었지만, 조성현도 백화점에서 당연히 무대용 옷을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딱 맞는 옷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조금 더 둘러보면 될 거라고 생각 했는데… 애초에 이게 아니었나보다.

-서울 오케스트라랑 같이 하는 건데요. 그냥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기는 아쉽잖아요. 어린이 용 드레스를 백화점에서 사기 어렵기도 할 테고요.

없진 않겠지만, 연주회용 드레스를 백화점에서 찾는 것 자체가 조금 안 맞는 일이었던 것 같다.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어디에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으니, 뭐라 할 말도 없었다.

잔뜩 기대하고 백화점에 온 채윤이에게 조금 미안할 뿐이지.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초보 아빠긴 하네요.

“하하….”

신경화의 말에 조성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채윤이가 슬쩍 뒤를 돌아보면서 조성현과 눈을 마주한다.

조성현은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에 통화를 이어나갔다.

“저, 혹시… 그럼 옷을 보통 어디서 맞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이런 게 처음이라서 전혀 감이 안 오네요.”

-음… 서울에 오데트라는 샵이 있어요. 부부가 하는 곳인데, 정장도 하고 드레스도 하니까 거기 괜찮을 거예요.

신경화 교수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한다.

조성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얼른 고개를 끄덕거리며 머릿속으로 오데트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신경화 교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자로 주소 보내줄게요. 한 번 찾아가 봐요. 가격이 조금 있을 수는 있는데, 만족스러울 거예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렇게 신경써주시는데 제가 해드리는 게 많이 없네요.”

신경화 교수의 집에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가지 않고, 뭐라도 하나씩 들고가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받은 것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조성현이 아무리 은혜를 갚으려 해도, 아마 평생 갚지 못하겠지.

신경화 교수는 채윤이와 조성현에게 정말 많은 신경을 써주고, 아껴주고 있었으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신경화 교수의 레슨을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전공자도 아닌데 레슨을 받는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

신경화 교수는 그녀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주고 있었다.

채윤이의 드레스마저 신경을 써주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됐어요. 그냥 무대에서 좋은 연주만 보여주면 되는 거죠.

신경화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 했다.

조성현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무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런 대답을 원했어요. 아무튼, 옷 맞추러 가서 제 이름 말하면 좀 더 신경 써줄 거예요. 나중에 옷 나오면 저도 사진 한 번 보내주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조성현은 고개를 들어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채윤이도 대충, 백화점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옷을 맞추겠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뭐래?”

“백화점 말고, 드레스 샵이 따로 있다네. 오데트라는 곳인데, 거기 가서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안 그래도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던 아이였다.

패션에 대해서 조성현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예민한 아이다보니, 조성현이 고민하고 있던 것보다 더 깊게 생각하고 있었겠지.

답안지가 내밀어지니,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얼른 가보자!”

아이가 외친다.

조성현은 피식 웃으며 아이의 볼을 톡 하고 건드렸다가, 문자를 확인했다.

신경화 교수가 보낸 문자.

이제 슬슬 저녁시간이라서, 오늘은 이만 집에 돌아가고, 드레스 샵은 내일 가야하지 않을까 고민 하고 있었는데….

채윤이의 얼굴을 보니, 안 될 것 같았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자기 전까지 실망스러운 얼굴로 풀이 죽어 있을 테니까.

조성현은 신경화 교수가 보내준 주소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기에, 지금 출발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가자 얼른.”

조성현이 웃으며 말 했다.

* * *

살면서 조성현이 옷을 맞추기 위해 양복점이나, 드레스 샵에 올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채윤이 엄마와 식을 올릴 때 옷을 여러 드레스를 보고, 양복도 보고 그랬지만… 그때는 대여를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뭔가,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기 보다는 채윤이 엄마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움직이고 조성현은 거기에 따르는 느낌으로 함께했었고.

덕분에 조성현은 생전 처음 와보는 드레스 샵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데트라는 샵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허름해 보이는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딴판 이었다.

고급지게 꾸며져 있는 인테리어와, 수십 벌의 드레스와 양복들.

딱 봐도 예쁘고 멋지다는 말이 나올 만한 옷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예쁘다….”

채윤이가 넋을 놓고 옷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 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침을 한 방울씩 흘릴 것만 같은 얼굴로 옷들을 구경했다.

조성현은 채윤이 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거듭 감탄해야 했다.

패션이라는 걸 잘 모르는 그가 볼 때도, 아 이래서 옷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옷이 날개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저런 옷을 입은 채윤이를 상상하니, 정말로 날개달린 천사로 밖에 안 보이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조성현과 채윤이가 그렇게 넋을 놓고 옷을 구경하고 있으니, 노부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조성현의 부모님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분들.

굳이 따지면, 신경화 교수와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손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노신사가 물어온다.

조성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신경화 교수님 소개로 왔는데요. 여기, 아이랑 제가 이번에 연주회를 할 텐데… 옷을 맞추고 싶어서요.”

조성현이 차분히 설명했다.

노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조금 신기하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조성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신경화 교수님 소개로 오신 분은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오데트의 주인, 데이비드라고 합니다.”

“조성현입니다.”

노신사가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조성현은 얼른 악수를 했다.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악력이 상당했다.

이게 장인의 손인가.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긴다.

“연주회면, 개인 연주회를 열 생각이신 건가요?”

옆에 있던 노부인이 물어왔다.

조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뇨. 이번에… 서울 오케스트라랑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오케스트라랑요?”

조금 놀랐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뜬 노부인이 되물었다.

조성현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노부부는 묘한 얼굴이 되었다.

“저 아이도 같이 말이죠?”

“네. 저는 들러리고, 저희 딸이 주인공입니다.”

“드레스를 최대한 예쁘게 잘 만들어야겠네요. 이거, 얼마 안 남은 목숨 걸고 만들어봐야겠는데요?”

노부인이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조성현이 그녀의 농담에 어색하게 웃었다.

노부인은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채윤이에게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꼬마 아가씨.”

“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사에 채윤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고.

미소를 보인 노부인은, 가게 안쪽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꼬마 아가씨는 이 할머니를 따라 오면 될 것 같네요.”

“… 아빠는요?”

“아빠는 여기, 할아버지를 따라갈 거예요. 옷을 만들려면 꼬마 아가씨도, 아빠도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아야 예쁜 옷이 나오는 거니까.”

“네!”

채윤이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성현과 노부인을 번갈아보다가, 그래야 예쁜 옷이 나온다는 말에 곧장 답했다.

조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채윤이가 노부인과 함께 안쪽으로 사라지고.

조성현은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저희는 실측하기 전에, 먼저 원단들부터 살펴볼까요?”

“아, 네.”

이런 게 처음이기에 조성현은 그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단들이 수 없이 많았다.

국내 원단들부터, 해외까지.

색도, 패턴도, 정말 다양하다.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화이트 톤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물론 연주회다보니 블랙 계열의 드레스를 맞추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화이트 톤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데이비드는 차분한 목소리로 하나씩 설명을 해나갔다.

검은 계열의 드레스를 입은 채윤이도, 하얀 계열의 드레스를 입은 채윤이도 예쁠 것 같긴 한데….

확실히, 밝은 색을 입을 때 더 예뻐 보이긴 할 것 같다.

“네, 화이트 톤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손님 분께서는 검은 계열로 정장을 맞추면 될 것 같고요.”

“네, 좋습니다.”

“드레스 원단부터 살펴보자면… 로메니아 실크, 파비에 실크…”

그 뒤로도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원단들이 소개 되었다.

조성현은 말 그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버버 거리고 있는데 원단 샘플 수십 개가 지나간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데이비드는 웃음을 흘렸다.

“익숙하지 않으신가보네요.”

“조금 어렵네요.”

조성현은 솔직하게 말 했다.

“개인적으로는… 드레스 쪽은 로메니아 실크를, 손님께서는 바톤 원단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그렇게 하면 가격대가 어떻게 되나요?”

“드레스는 7, 80만 원 정도 예상을 해볼 수 있고… 손님께서 입으실 정장은 90에서 110만 원 정도로 예상할 수 있겠네요. 이것도 디자인 따라 나뉘겠지만…,”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채윤이의 드레스와 조성현 자신의 수트, 그렇게 두벌을 맞추는데 2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들어가는 것.

조성현은 내심, 이해할만한 금액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실측을 끝내고 가게 안쪽에서 나오던 채윤이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신이 나서 나오던 채윤이는, 가격을 듣고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조성현은 설명을 듣다 말고 그런 채윤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채윤이의 얼굴을 본 조성현도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우리는 거리에 나앉고 말 거야….”

아이가 말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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