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박혜윤 기자.
그녀는 평소 신경화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클래식 쪽을 전문으로 소식을 전하는 기자였다.
때때로 대중음악에 대한 기사도 쓰긴 하지만, 보통은 클래식 시장에 관심을 두는 편.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나름 진지한 편이고, 그렇기에 신경화 교수가 박혜윤과는 인터뷰를 허락해주었다.
보통 이렇게 연주회까지 오거나 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이번 서울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는 올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관심 가는 연주회였고… 사실, 엄청난 콜라보 아닌가.
서울 오케스트라와, 신경화 교수가 함께한다니.
신경화 교수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기자로서 꼭 가야 한다고 회사에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온 참이었다.
그녀는 연주회에 와서, 시작하자마자 연신 감탄을 흘려야 했다.
클래식 시장에 대해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 몇 년이다.
20대 초반, 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난 후로부터 20대 후반까지 항상 클래식 쪽만 파고 들었으니까.
당연히 수많은 연주를 들었고, 많은 연주자를 만나왔지만… 박혜윤은 신경화 교수와 같은 연주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연주는 항상 우아하다.
한 마리의 백조라는 표현이 완벽히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로서 함께 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수에 홀로 도도하게 자신을 뽐내는 백조처럼.
신경화 교수는 그렇게 연주했다.
그녀가 무대에서 물러가고.
남은 순서는 이제 하나.
서울 오케스트라에서 준비한 ‘스페셜 무대’ 뿐이다.
멍하니 신경화 교수의 무대를 감상하던 박혜윤 기자의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
‘누굴까.’
연주자가 누군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
초등학생이 연주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지만, 설마 그렇겠는가.
박혜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믿지 않았다.
다만, 기대는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신경화 교수가 스페셜 무대만큼은 자신도 관객으로서 감상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녀가 그렇게 말할 연주자가 과연 누구일까.
그런 호기심도 들었고, 어떤 연주를 선보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웬 남자와,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왔을 때 그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뭐야…?”
박혜윤은 저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놀라서 중얼거리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 중 적어도 3분의 1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놀라서 중얼거린다.
루머가 있긴 있었다.
초등학생이 연주할 거라는 루머.
근데, 그게 진짜였다고?
‘말도 안 되는 건데 그건.’
박혜윤이 속으로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서울 오케스트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지금까지 이렇게 꼭꼭 숨겨왔는지 잘 알겠다.
남자와 어린아이가 무대 중앙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다.
그 순간 박혜윤은 그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부녀다.
‘음악천재 부녀… 라는 말을 좀 듣긴 했는데.’
서울 오케스트라와 함께,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사실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서 기분이 너무 묘했다.
신경화 교수가 관심 가지고 있는 연주자라서 조금 알아보다가 잠깐 본 정도였을 뿐이었는데.
그런 이가, 정식으로 연주자로서 무대에 서다니.
신경화 교수가 자신이 관객으로서 듣고 싶다고 말한 것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서울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자체에 조금 실망 했을 수도 있을 정도다.
채윤이와 조성현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연주자였으니까.
당혹스러움이 조금 물러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나이에, 얼마나 대단하면 신경화 교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셨을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런 생각으로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응시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미친…!’
박혜윤 기자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진다.
신경화 교수가 호수 한가운데 홀로 도도하고 우아하게 있는 백조라면.
채윤이를 볼 때는….
한 줄기의 조명이 채윤이를 비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저 빛나기만 하면 이상했을 텐데, 세상과 녹아들기 위해서 조성현이라는 연주자가 힘쓰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신의 은총이라도 받은 것일까.
세상이 채윤이라는 연주자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저리 빛이 날 수 있을까.
커피를 대여섯 잔 마신 것 마냥 심장이 두근거렸다.
밝은 여름 햇살이, 구름을 뚫고 채윤이를 비춘다.
그런 채윤이의 바로 뒤에서, 조성현이 부드럽게 빛과 세상을 연결하며 조화를 만들어낸다.
마치, 명암을 표현하듯.
스스로가 어둠이 되어 빛을 부각시킨다.
아니, ‘빛’이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어둠이 된다.
조성현은 분명, 빛이 나고 있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빛과 같은 존재였다.
박혜윤의 두 눈에, 채윤이와 조성현이 가득 담겼다.
분명 거리는 한참 떨어져 있고, 고작해야 손톱 정도 크기로 보여야 정상이겠지만.
지금 박혜윤의 두 눈에는 조성현과 채윤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진짜, 불공평하네.”
신이 공평했다면, 채윤이와 조성현에게 저런 재능을 선사했을 리가 없다.
박혜윤이 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혼란스럽다.
이게 초등학생의 연주가 맞는지 의심스럽고, 두 부녀가 이렇게까지 연주를 할 수 있는 게 현실이 맞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
박혜윤은 이 연주를 너무 잘 듣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었다.
과연 사람들은 이 연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전혀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뒤집어지겠네.’
클래식 판이, 오랜만에 요란해지겠다.
* * *
무대가 끝났다.
조성현과 채윤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대를 내려왔다.
여전히 손끝이 떨리며, 묘한 흥분감과 고양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채윤이도 마찬가지인지, 넋을 놓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고생 많으셨어요. 선배님.”
장현아가 서둘러 다가오며 조성현과 채윤이에게 물을 한 병씩 내민다.
채윤이의 물병에는 특별히, 빨대도 꽂혀 있다.
조성현은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시원한 물이 들어가니, 머리가 그나마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장현아는 물 다음으로는 작은 수건을 조성현에게 내밀었다.
조성현은 수건을 들고 채윤이 쪽을 돌아보았지만, 그 전에 장현아가 먼저 움직여 채윤이의 목과 이마 부근에 난 땀을 닦아 주었다.
조성현은 피식 웃으며, 언제 났는지 모를 땀을 닦았다.
그냥 쓱쓱 닦으면 메이크업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리며 땀을 닦고 있으니.
박중원과 신경화가 다가왔다.
진현수는 서울 오케스트라와 함께 마지막 앵콜 곡을 연주하고 있는 상황.
백스테이지에서, 신경화는 조성현과 채윤이를 향해 다가오며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너무 좋았네요.”
신경화 교수의 말에 채윤이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는 듯, 아이가 조성현에게 몸을 기대어 온다.
조성현은 바이올린을 옆에 있는 장현아에게 넘겨주고는, 채윤이를 안아 들었다.
채윤이가 팔을 들어 조성현의 목을 감싸 안는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렇게 좋은 기회도 마련해주시고… 덕분에 정말 귀한 경험 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고맙죠. 좋은 연주 들었고, 클래식계의 신성이랑 친하다고 자랑할 수 있기도 한 거니까요.”
“클래식계의 신성이요?”
조성현이 웃으면서 되물었다.
무대를 한 번 하기는 했지만, 클래식계의 신성이라니.
너무 거창한 칭호 아닐까?
물론 조성현이야 채윤이를 많이 사랑하고, 채윤이의 연주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 확률은 높지 않을 테니까.
“아, 신성들이라고 해야 하나요?”
조성현의 되물음에, 신경화가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그냥 조성현과 채윤이를 놀리려는 생각에 말한 게 아니었다.
신경화 교수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신성이 뭐예요?”
채윤이는 신성이 뭔지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다.
“샛별이랑 같은 말이야. 새로 등장한 별이라는 뜻.”
조성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하지만, 채윤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옆에 있던 장현아가 살짝 끼어들었다.
“인어공주 같다는 의미로 말씀해주신 거야.”
그렇게 말을 하자, 채윤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부끄럽다는 듯 웃음을 보인 아이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신경화 교수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인어공주가 언급될 정도의 칭찬이라는걸 그제서야 알아들은 것이다.
아이의 반응에 신경화 교수가 웃었다.
“오늘 어떻게, 무대도 무사히 잘 마무리 했는데… 뒷풀이라도 할까요?”
“아….”
그녀가 제안했고, 조성현은 잠시 고민했다.
평소라면 그녀의 제안을 절대 거절 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뭔가 묘했다.
무대 위에서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은 그냥 그 여운에 계속해서 잠겨 있고 싶은 느낌.
조용히, 방금 경험한 무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그는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눈을 마주하자마자, 채윤이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조성현은 깨닫고, 죄송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머리가 복잡해서요.”
그가 거절하자, 신경화는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다 이해한다는 듯 신경화 교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대는 금방 마무리되었고, 조성현과 채윤이는 진현수 지휘자를 포함한 서울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자리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채윤이가 조성현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 꾸벅꾸벅 존다.
많이 긴장하고 있다가, 긴장이 풀린 모양.
조용히 가고 있는데, 장현아가 적막을 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제가 지난번에 그런 말 했잖아요.”
“어떤 말이요?”
조성현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움직이며 되물었다.
장현아가 정면을 바라본 채로 말을 이어나간다.
“모차르트, 베토벤, 파가니니 같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그 곁에 있고 싶다고.”
“… 그랬죠.”
“오늘, 진짜로 그렇게 되겠구나 하고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어요.”
“…….”
그녀의 말에, 조성현은 무어라 답할 수 없었다.
장현아는 핸들을 꺾으며 말을 이었다.
“제2의 모차르트, 베토벤, 파가니니가 아니라… 조채윤, 조성현이라는 이름을 그 정도로 알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과한 칭찬 아닌가요?”
조성현이 가볍게 웃으며,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장현아는 여전히 진지한 눈빛이었다.
“선배님.”
“네 현아씨.”
“오늘, 무대 보는데… 채윤이랑 선배님 중심으로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제대로 모르는 제가 들었을 때도 그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어요.”
장현아의 말에 조성현은 그저 침묵했다.
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으니까.
그저.
조금 공감하긴 했다.
오늘의 채윤이는, 빛이었다.
무대 위를 밝혀주는 빛.
조성현이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무대를 환히 밝혔던 빛은 지금, 그의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창밖의 해가, 서서히 저물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