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이렇게 진행하면 딱 되겠다. 일정도 맞을 거고.”
“채윤이 방학 전에 최대한 끝내고 싶었는데, 쉽진 않네요.”
박중원의 말에 조성현이 후 하고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채윤이가 방학하기 전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을 전부 다 끝내고 방학 때에는 채윤이와 놀기만 하고 싶었는데, 역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을 조성현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조성현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른 직원들이 작업 속도가 느리면 전체적으로 지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른 직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싶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협력사에서 지체되는 일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딜레이가 되다 보면 열심히 서둘러봐야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어쩌겠냐. 그래도 앨범 완성도가 중요한걸.”
박중원이 씁 하고 숨을 들이켜고는 답했다.
그의 말에 조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윤이와 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을 맡았으면 제대로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채윤이가 방학하고 나서도 남은 일을 조금 해야 하겠지만, 그래봐야 며칠 정도만 추가로 일을 하는 거다.
그 정도 일을 하는 거에 비하면 완성도는 꽤 높아진 상황.
박중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었고, 조성현도 아쉽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옆에서 최우진이 말을 건다.
조성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갑자기 무슨 프로듀서님. 평소 하던 대로 형이라고 불러 네가 프로듀서님이라고 부르니까 이상하다.”
“어쨌든, 고마워요 형. 덕분에 저희 컴백 잘 될 것 같아요.”
“차트에 이름 올려야지.”
“목표는, 20위권입니다.”
“와, 진짜 20위권 들기만 해라. 그럼 내가 소고기 쏜다.”
최우진의 말에 박중원이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음원차트 20위권 안에 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는 이였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조성현은 픽 웃었다.
정말로 20위권에 든다면, 소고기가 대수인가.
먹고 싶은 거 전부 다 사주겠지.
“기대할게요.”
조성현은 박중원을 바라보며 말했고, 박중원은 의외라는 듯 조성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야, 자신 있어?”
“곡에는 항상 자신 있었지. 곡 완성도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거면 20위권에는 들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조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나쁘지 않게 나온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박중원은 조성현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꽤 기대해도 되겠네. 알았어. 마케팅도 제대로 힘줘봐야겠다.”
박중원은 그렇게 말하며 조성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최우진이 서둘러 박중원의 뒤를 따라 나간다.
조성현도 가볍게 웃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회의실을 빠져나가자마자, 장현아가 조성현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성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 *
“해외 팬이요?”
조성현은 장현아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면서 되물었다.
부서를 빠져나오자마자 들은 말이, 꽤나 의외였기 때문.
“네. 슬슬 해외에서 유입이 되는 모양이에요.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달리는 댓글들 중에 영어 댓글이 꽤 많이 늘었거든요.”
“요즘 영어 댓글이 자주 보이긴 하던데…”
“응원한다고, 편지까지 보내주시고 그러세요. 온스타그램 DM으로 직접 쓴 손편지 사진까지 왔었거든요.”
“정말요?”
“보여드릴게요. 잠시만요.”
장현아가 항상 들고 다니는 태블릿을 펼쳐서,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영어로 쓰여있는 편지였는데, 조성현이 영어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읽는 데 무리는 없었다.
캐나다에 사는 팬이 써준 편지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채윤이를 찬양하는 글이었다.
음악적으로도 너무 완벽한 아이라며, 항상 응원하겠다는 말로 편지는 끝이 났다.
“팬레터인 거네요.”
“그렇죠. 실비아 가르시아 피아니스트가 SNS에 채윤이랑 선배님 관련해서 포스팅 한 이후부터 확실히 해외 팬 유입이 늘었어요.”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어요.”
한율이와는 채윤이를 데리러 갈 때 자주 보기는 하는데, 실비아는 못 본 지 꽤 됐다.
나중에 볼일이 있으면 감사 인사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았다.
“해외에서도 채윤이랑 선배님을 좋아해 주시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확실히, 신기하긴 하다.
하지만 동시에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조성현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음악은, 신의 언어라는 믿음.
말이 안 통한다는 건, 음악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으니까요.”
“… 맞죠.”
조성현의 말에 장현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꽤 강력했던 것일까.
장현아는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성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장현아의 시선을 마주하던 조성현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장현아가 입을 연다.
“선배님.”
“네, 현아씨.”
“음악에 국경이 없으면 말이에요.”
“네.”
“언젠가 선배님하고 채윤이의 음악이 해외에서도 연주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거겠죠? 이번에 서울 오케스트라랑 같이 연주 했던 것처럼. 뭐… 뉴욕 필하모닉이랑 같이 연주한다던가.”
장현아가, 꿈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꿈에 젖은 게 아니었다.
그녀의 눈 속에는 진지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장현아는 정말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죠. 채윤이잖아요.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아이인데요 뭘.”
자신의 딸이니까.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아이니까.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조성현이 그렇게 답했다.
그의 답에 장현아가 웃었다.
“그러네요. 채윤이니까요.”
장현아도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조채윤’이라는 이름에 어쩌면 마법이라도 담겨 있는 거 아닐까.
아무리 비현실적인 일이라도.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 * *
점점, 방학이 가까워지고.
당장 이틀 후가 방학식이 있는 날이 되어버렸다.
이때부터는, 아이들은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방학이라는 환상에 빠져 다들 흥분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채윤이는 꽤 평온했다.
물론 속으로는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고, 현서나 영준이와도 방학 때 뭐 하고 놀지 열심히 계획을 세웠지만.
그 외에는 겉으로 행동하는 게 바뀌진 않았다.
항상 그렇듯,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피아노부터 건드리는 모습.
피아노를 치다가 조성현에게 영화를 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보통은 다즐링에서 나온 영화였다.
조성현도 다즐링에서 만든 영화를 보며 음악적 영감을 받은 적이 자주 있었으니 연주를 하다가 대뜸 영화를 틀어달라는 채윤이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채윤아.”
“으응?”
아이는 오늘도 영화를 보다가, 조성현의 부름에 반 박자 늦게 답했다.
조성현은 그런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항상 같은 일상을 보내는 채윤이를 보고 있자니, 참 신기했다.
“음악이 그렇게 좋아?”
“응. 재미있잖아. 아빠는 안 좋아?”
“아빠도 좋지. 근데 채윤이는 아빠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아냐!”
아이가 놀라서 부정했다.
채윤이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부정을 하니, 조성현도 놀라서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빠가 제일 좋아.”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채윤이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아이의 말에 조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말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
“아니, 아빠보다 음악이 좋다는 게 아니라… 아빠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보다, 채윤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게 더 큰 것 같다는 거였어.”
“아…!”
채윤이는 자신이 잘 못 이해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조금 민망한지, 조성현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빠도 음악 엄청 좋아하잖아.”
“그게 느껴져?”
“응.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했잖아.”
“예전에? 언제?”
“나 유치원 다닐 때.”
채윤이가 말한다.
아이의 말에, 조성현은 채윤이가 언제를 말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돌아오기 전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때는 채윤이보다는… 일에 더 집중하던 시기였으니까.
채윤이에게는 그냥, 음악을 더 좋아했던 걸로 보였나 보다.
‘아니, 그렇게 보인 게 아니라 정말로 그랬던 걸 수도 있지.’
조성현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미안해. 그때는….”
“그래도 나는 좋아.”
“응?”
“나도 음악이 좋았는데, 아빠한테 말 못 했었잖아. 지금은 같이 노래도 만들고… 너무 좋아. 행복해.”
채윤이가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얼굴이었기에, 조성현은 안심했다.
지금 아이는 행복해하고 있구나.
방학이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일상이 너무 행복해서 그런 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조성현은 웃을 수 있었다.
동시에, 방학 때 아이와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채윤아.”
“응.”
“지난번에 아빠랑 같이 엄마 보러 가기로 했잖아.”
“맞아.”
“엄마 보러 갔다 와서 같이 곡하나 만들어볼까?”
“곡?”
“응. 엄마를 위한 곡. 우리를 위한 곡.”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니, 채윤이가 눈을 반짝거린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훤히 보였다.
“워터파크 다녀와서도 같이 곡 만들고 싶어.”
“그럼 신나는 곡이 만들어지겠네.”
“응! 방학 때 놀러 다니면서 곡 하나씩 같이 만들면 되겠다. 일기 쓰는 것처럼!”
봇물이 터지듯, 채윤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한다.
방학 때 어디를 가고 싶은지, 먹고 싶은 건 뭔지… 그게 꽤 다양해서, 조성현은 조금 당황했다.
아무래도 아이는 일상이 너무 행복해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뿐.
방학 때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좋아. 그럼 놀러 갔다 올 때마다 곡을 하나씩 만들어보자. 그렇게 되면… 곡이 열 몇 개는 나오겠는데?”
“그러면… 새로운 앨범?”
“열 몇 개면 앨범 하나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좋아. 방학 때 우리 두 번째 앨범을 만들어보자.”
채윤이가 아이들과 함께 방학 때 놀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조성현과 채윤이만의 방학 계획이 세워졌다.
두 번째 앨범 제작.
그게 조성현과 채윤이의 방학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에 화답하듯, 기적이 일어났다.
방학식 날.
조성현은 이른 아침부터 장현아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네 현아씨.”
-얼른 음원차트 확인해보세요!
“… 지금요?”
-‘딸기’가 음원차트 92위예요!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