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날이 좋았다.
조성현은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에 저도 모르게 눈을 찡긋거렸다.
채윤이도 햇빛 공격을 받았는지 조성현에게 달라붙으며 얼굴을 묻는다.
“날씨 엄청 맑네요.”
“그러게요.”
운전석에서 말을 거는 장현아의 목소리에 조성현이 간단히 답했다.
“어떠세요?”
“뭐가요?”
그녀의 질문에, 조성현이 되물었다.
뭐가 어떠냐고 묻는지 알 수 없었던 것.
“촬영하는 거요. 유 퀴즈 인 더 하우스 촬영도 했고 미튜브 촬영도 항상 하지만, 그래도 CF 촬영은 처음이시잖아요. 좀 긴장되진 않으세요?”
장현아가 물었다.
오늘은 장현아, 한아름과 함께 동물원에 가는 길이었다.
CF 촬영 관련 미팅이 있었기 때문.
이번에는 정만수 회장을 만나는 것은 아니고, CF 촬영 감독과 만나서 연출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정확히 어떤 장면이 나올지 파악해야 했으니까.
콘티가 대략적으로 나왔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CF 촬영 장소인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같이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걱정은 조금 있긴 했다.
“아직까지는 그냥 그렇네요. 갑자기 이상한 것만 안 시켰으면 좋겠는데….”
“이상한 거요?”
“막, 뭐. 춤이라던가. 그런 거요.”
조성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CF 마다 컨셉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연출 방법도, 씬도 많이 달라진다.
음료 광고인데 뜬금없이 격한 춤이 등장한다거나, 창문 광고인데 창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장면들만 나오기도 하는 CF의 세상이기에, 조성현은 약간의 불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장현아는 춤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거렸다.
“저 선배님 춤추는 거 궁금하긴 한데. 잘 추세요?”
“…잘 추진 못하죠.”
“어… 그것도 막 아이돌들에 비해서 잘 추지 못하고 뭐 그런 건 아니죠? 저 예전에 선배님 노래 못 하는 줄 알고 있다가 뒤통수 맞았었잖아요.”
장현아의 말에 조성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전이라면 딱히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름 할 수 있다고 답을 하고 다니긴 한다.
보컬도 어느 정도 트레이닝을 해서,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춤은 정말 진심으로 잘 못 추는 편이었다.
“아니, 춤은 진짜로 잘 못 춰요. 예전에는 줄넘기도 못 할 정도로 몸치였어요.”
“헐… 진짜요?”
“운동도, 제가 손이나 팔로 하는 건 나름대로 자신 있는데 다리 써야 하는 건 진짜 자신 없거든요. 춤도 딱 상체 정도만 잘 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씬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가서 제가 조용히 감독님께 춤 씬 추가해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장현아가 슬쩍 백미러를 통해 조성현과 눈을 마주치면서 말한다.
그의 반응을 살피며 장난을 던진 것.
“어 그거 매니저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에요.”
“실격인가요.”
“경고요.”
조성현도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감독이 누구라고 했죠?”
“박연철 감독이요.”
문득 감독의 이름이 궁금해져 물은 질문에, 장현아가 곧바로 답했다.
박연철 감독.
뭔가 이름이 익숙하진 않았다.
연예계에 계속 일하면서 일 잘하는 감독의 이름은 자주 들어봤을 텐데 익숙하지 않은 걸 보면… 커리어가 그리 길게 유지되지는 않았던 모양.
‘아니면 나랑 전혀 접점이 없었던 감독이거나. 그런 거겠지.’
조성현이 뭐, 연예계 인사들을 전부 알고 지냈던 건 아니니 말이다.
조성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역시 날이 맑았다.
불안할 정도로 말이다.
* * *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차하자마자, 김 비서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넨다.
오늘 정만수 회장은 없지만 김 비서가 함께할 모양.
“안녕하세요!”
채윤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김 비서에게 인사를 건네고.
김 비서가 미소를 지었다.
“감독님하고 스텝들은 안쪽에 계세요.”
“저희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안쪽도 아직 의견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서….”
조성현의 말에 김 비서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렇게 답하는 그녀의 표정이 오묘해서, 조성현은 의아한 얼굴로 김 비서를 바라보았다.
김 비서가 고개를 흔들며, 손짓한다.
“일단 들어가시죠.”
들어가서 보면 알게 될 거라는 듯 말하는 그녀의 행동에 조성현은 채윤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동물원 안쪽, 직원들이 이용하는 공간.
오늘은 CF 촬영 미팅을 위한 스텝들과 박연철 감독이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열띤 토론을 진행 중이었다.
“마차를 새끼 돼지가 끌면 그림이 재미있잖아. 귀엽고. 독특한 공주 컨셉으로 진행하는 거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새끼 돼지들 데려다가 마차 끄는 씬 찍는 건 좀 어색하지 않을까요? 그냥 무난하게 조랑말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강아지들이 마차 끄는 것도 귀엽긴 해요. 새끼 돼지보다는 강아지가 더 무난하면서도 귀엽지 않을까요?”
마차를 타는 씬이 있는 모양이다.
어떤 동물이 마차를 끄는 걸 촬영할지 고민을 하는 모양.
그들은 얼마나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지, 조성현과 채윤이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국.
“박 감독님,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만. 이쪽은 출연하기로 한 ‘왕’ 역의 조성현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성현씨. 박연철이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박연철 감독은 고개를 들어 조성현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손을 내미는 박연철 감독의 손을 마주 잡고 조성현은 악수했다.
그의 뒤에 있던 장현아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박연철 감독이 앉은 채로 손을 내밀었기 때문.
“안녕하세요. 조채윤입니다! 공주예요.”
채윤이가 고개를 숙이면서 발랄하게 인사를 건넨다.
박연철은 허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이야 듣던 대로 귀엽긴 하구나.”
“감사합니다.”
채윤이가 감사 인사를 하고.
박연철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채윤이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는 뒤로 반걸음 물러나며 박연철의 손을 피하려 했고, 조성현도 어느새 아이의 앞쪽으로 슬쩍 몸을 움직여 박연철의 손이 움직이기 불편하게 한 상태였다.
“아이가 머리 쓰다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하하.”
박연철이 무안함을 없애려는 듯 부러 큰 웃음을 흘렸다.
조성현은 살짝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이야기한 후 자리에 앉았다.
“컨셉이 저희 입장에서는 중간에 수정이 된 거라 약간 갑작스러웠거든요. 준비가 조금은 미흡할 수 있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박연철 감독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스텝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조성현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희도 CF 촬영은 처음이라서, 실수를 많이 할 것 같은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 시선을 움직여 박연철 감독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박연철 감독이 손을 들어 짝 하고 박수를 친다.
“자 그럼 간단히 콘티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채윤양하고 성현씨가 공주, 왕으로서 왕국을 통치하는 설정이니까 그거에 맞춰서 왕궁 마차를 등장시키려고 해요.”
“네네.”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까부터 마차 이야기를 하고 있더니, 애초에 마차가 메인 컨셉이었던 모양이다.
“기본적으로는 마차를 통해 등장하고, 동물들이 환호하는 느낌으로. 갈 텐데… 왜, 다즐링에서 나온 ‘킹 오브 라이언’에서 아기 사자가 태어났을 때 동물들이 다 모여서 환호했던 것처럼요.”
“아, 이해했습니다.”
“동선은… 여기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나가서 동물원 내부 돌아다니면서 보여드리면서 설명해드릴게요.”
박연철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드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성현은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채윤이를 안아 들었다.
뭔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박연철 감독이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배려가 없어 보인달까.
장현아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박연철 감독과 스텝들이 앞장서서 외부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슬쩍 조성현 쪽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선배님, 뭔가 느낌이 쎄한데 저만 그래요?”
“뭐, 콘티 생각하느라 정신이 좀 없으신 모양이에요.”
조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답했다.
장현아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후 하고 숨을 토해냈다.
“아니 근데 처음 만났을 때 앉아서 악수 청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갑자기 자기 말하다가 바로 일어나버리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네요.”
이렇게 대놓고 누군가를 적대하듯 이야기를 하는 장현아의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오늘 미팅 잘 끝내고 촬영한 다음에는 안 볼 사이니까요. 너무 신경은 쓰지 마세요. 저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머리만 아파요.”
조성현은 장현아에게 그렇게 말을 하며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채윤이는 박연철 감독의 조금은 배려 없는 행동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박연철 감독은 스텝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촬영 동선과 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마차 행진을 이용해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일단 시각적으로 왕과 공주라는 걸 바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조성현도 마차 아이디어는 찬성이었다.
막 무능력한 감독은 아닌 것 같았기에, 조성현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묵묵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박연철 감독이 품에서 슬쩍, 담뱃갑을 꺼냈다.
조성현은 그걸 보고도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
담배를 피웠던 사람으로서, 습관적으로 꺼내게 되는 걸 이해 할 수 있었기에.
하지만 박연철 감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라이터까지 품에서 꺼내 불을 붙였다.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조성현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김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 건지, 눈을 깜빡거리면서 박연철 감독을 바라보았다.
조성현은 품에 안고 있던 채윤이를 내려놓고는 박연철 감독과 반대편으로 가도록 유도했다.
“박 감독님. 동물원은 전체 금연입니다.”
김 비서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나선다.
그녀의 말에, 박 감독이 손에 들린 담배를 보았다가 아 하고 소리를 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결국 담배를 한 모금 더 한 후에 꽁초를 손으로 튕겨 땅에 던졌다.
탁.
작은 소리와 함께 꽁초가 날아간다.
그리고 그 꽁초는.
“…….”
채윤이의 발 앞에서 멈췄다.
조성현의 표정이 굳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