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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음악천재-510화 (510/603)

510화

갑자기 배신이라고 말하며 먼저 가버리는 채윤이의 모습에, 조성현은 웃음을 참으며 아이의 뒤를 따랐다.

“채윤아.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몰라. 그냥 배신이야. 나도 뮤즈 언니들 보러 가고 싶은데.”

채윤이는 고개를 흔들거리면서 말했다.

삐친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조성현에게 장난을 거는 듯한 느낌.

하지만, 배신이라고 말할 만큼 조성현이 혼자 뮤즈를 만나러 간다는 말이 아이에게는 조금 충격이 된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조성현이 웃으며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랑 같이 뮤즈 언니들 보러 갈까?”

“응. 나도 갈래.”

채윤이가 얼른 고개를 돌려 조성현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이의 눈이 빛나고 있는 게, 누가 봐도 일부러 장난스럽게 삐친 척한 것 같다.

채윤이의 귀여운 장난에 조성현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기다려봐. 언니들한테 한 번 물어볼게.”

“응!”

채윤이가 얼른 물어보라는 듯 답하고.

조성현은 천천히 카트를 끌며 전화를 걸었다.

뮤즈의 리더인, 이예린.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기에, 뮤즈의 멤버들 중에서는 가장 친했다.

전화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예린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조심스러운 목소리.

조성현은 이예린의 목소리를 듣고, 픽 웃었다.

“안녕하세요. 예린씨.”

-아, 네 프로듀서님.

“갑자기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아니에요 언제든 전화하셔도 됩니다.

-(뭐야, 누구야?)

-(프로듀서님이래. 조용히 해.)

-(헐 진짜?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분명 이예린이랑 통화하고 있는데,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4명의 목소리였다.

조성현은 평소보다 요란한 뮤즈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고는 말을 이었다.

“뭐 예능 촬영하는 게 있다던데…”

-아, 네! 출연하시기로 하셨다고 아까 전달받았는데, 혹시 출연이 좀 어렵게 되신 건가요…?

-(꼭 오셔야 하는데.)

-(저희 못 본 지 엄청 오래됐는데 이번에도 안 오시면…)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채윤이도 같이 나가도 되나 싶어서요.”

뮤즈가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듣고 조성현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채윤이가 조성현을 빤히 바라보고.

-완전 환영이죠. 꼭 데리고 와주세요. 채윤이도 엄청 보고 싶어요. 근데 어, 피디님한테 한 번 물어봐야 하는데…

-(무조건 오셔도 됩니다. 제발.)

촬영 중이었는지, 피디의 목소리도 전화 너머로 들려온다.

-와도 된다네요. 갑자기 출연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바로 허락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아니에요. 저도 미튜브 촬영할 때 불쑥불쑥 촬영 괜찮냐고 물어보는데요 뭐.”

-아, 미튜브 촬영할 콘텐츠 있으면 저희는 언제든 가능하니까 기회 있으면 말씀만 해주세요!

-(영광이죠 저희는.)

여전히 들썩들썩한 뮤즈의 반응에 조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감사합니다. 방송 촬영 중이니까 얼른 끊을게요.”

-어 피디님이 통화 더 길게 해도 된다고 맘 편하게 해달라고 하시는데…

“하하. 분량은 다음 주 촬영 때 뽑는 게 어떨까요.”

-잠시만요. 작가님이 뭐 쓰시고 계신데… 아, 예고편에 쓸 거래요.

이예린의 말에 조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전서구라도 된 것처럼 말을 열심히 옮기는 게 꽤나 재미있었다.

그냥, 그림이 괜찮을 것 같아서 방송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예고편 용이면, 채윤이랑 인사 한번 하실래요?”

-헐 옆에 채윤이 있나요?

“네네. 열심히 저 바라보고 있네요.”

-바꿔주세요!

-(채윤이 안녕!)

-(오랜만이야 채윤아.)

뮤즈의 말에 조성현이 웃으며 스마트폰을 채윤이에게 내밀었다.

아이가 눈을 깜빡거리고.

“언니들이 바꿔 달래.”

그 말에 채윤이가 얼른 전화를 건네받았다.

“여보세요? 네네. 네.”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열심히 전화를 이어나가는 채윤이.

조성현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빠요.”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답하고.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채윤이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돈까스 좋아해요. 네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던 채윤이가 전화를 잘 마무리했다.

아이는 통화가 끊어지자마자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언니들이 뭐래?”

“좋아하는 거 뭐냐고 물어봤어.”

“…그래서 아빠라고 말한 거야?”

“응. 근데 좋아하는 음식 뭐냐고 물어본 거라고 해서…”

“돈까스라고 말한 거고?”

“맞아.”

채윤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이의 당당한 모습에, 조성현은 괜히 자신이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저 전화 통화가 방송에 나가는 게 채윤이는 부끄럽지도 않은 걸까.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채윤이가 뭘 좋아하냐는 질문에 곧바로 자신을 좋아한다고 답한 거니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언니들 보고 싶어?”

“응. 언니들하고 놀면 재미있어. 조금… 정신없긴 한데 그래도 학교 애들이랑 놀 때보다는 훨씬 재미있어.”

채윤이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성현은 그런 채윤이가 너무 귀여워, 웃음기 섞인 한숨을 흘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얼른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슬슬 배가 고파지고 있었으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조성현은 그동안 국제 콩쿠르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개인적으로는 바이올린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채윤이의 일상도 같았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와서는 피아노를 치고 때때로 조성현과 호흡을 맞춰서 연주해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찾아온 주말.

아이는 유독 신난 얼굴로 조성현의 앞에서 덩실거리고 있었다.

“얼른 옷부터 입자.”

잠옷 차림으로 피아노를 치던 채윤이가 조성현의 말에 얼른 피아노에서 내려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간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연주하던 걸 보면 진짜 신나긴 한 모양.

조성현은 방으로 들어가는 채윤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영준이 보는 게 그렇게 좋아?”

“음… 영준이는 착하잖아.”

채윤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을 고른다.

아이가 옷장을 열고 진지한 표정으로 옷을 고르다가, 흰색 상의와 청바지 하나를 꺼내더니 조성현에게 묻는다.

“이렇게 입고 갈까?”

“간단하게?”

“원래 심플한 게 최고라고 그랬어.”

“누가?”

“현서가. 심플하게 입는 게 제일 예뻐서 최고래.”

“채윤이는 뭘 입어도 예쁘지.”

“아빠 말은 못 믿어. 다 예쁘다고 하잖아.”

채윤이가 상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른 하얀색 상의를 꺼내면서 말했다.

조성현은 그 말에 멈칫거렸다.

맞는 말이긴 한데, 괜히 마음에 걸린다.

“…그럼 누구 말을 믿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채윤이는 고민 없이 곧바로 답을 내주었다.

문제는, 그 답이 더 마음에 걸린다는 점일까.

“영준이.”

“…”

조성현은 채윤이의 답을 듣고 쉽게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달싹거렸다.

충격이다.

아이가 자신의 말은 믿지 못하고 영준이의 말은 믿을 수 있다니.

조성현이 채윤이가 뭘 하든 예뻐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영준이도 채윤이가 뭘 입어도 예쁘다고 해주잖아.”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뭐가 달라.”

“…?”

조성현의 말에 채윤이가 의아한 듯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빠 화났어…요?”

채윤이가 눈치를 보면서 묻고.

조성현은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니, 화가 났다니. 절대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영준이랑 아빠랑 뭐가 다른지.”

“영준이는 그림 그리잖아.”

“그림 그리는 거 때문에 그런 거야?”

“응. 아빠는 대신 나랑 같이 음악을 하잖아. 아빠가 내 곡 좋다고 하면 좋은 거고. 근데 영준이가 내 곡이 좋다고 해도 안 좋을 수도 있는거지.”

채윤이가 조곤조곤 설명한다.

조성현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듯한 목소리였기에, 그 설명을 들으며 조성현은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가 웃겼던 거다.

영준이에게 질투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질투한 건가?’

조성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어린애한테 질투한 것 같아서 좀 민망한 느낌이었다.

“이제 빨리 나가. 나 옷 입을 거야.”

채윤이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하고.

조성현은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근데, 질투할 수도 있지 않나? 우리 딸인데.”

아이의 방을 빠져나가며, 조성현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금방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준비를 시작했다.

옷이야 입고 있었으니, 간단히 시계를 차고 스마트폰을 챙기는 것으로 준비 끝.

그 사이 채윤이가 옷을 입고 나왔고, 얼른 가자는 듯 현관 앞에서 조성현에게 손짓했다.

아름드리 미술관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도서관 건물에 있는 미술관이라 친숙했다.

실제로 가보는 건 처음이긴 했지만, 오다가 몇 번 본 것.

미술관 앞에 도착하니, 영준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피곤한 눈으로 하품을 하던 영준이가 조성현과 채윤이를 발견하고는 얼른 입을 다물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채윤이가 걸음을 서둘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응. 영준이도 안녕.”

영준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보통 영준이는 조성현과 채윤이가 함께 오면 조성현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는 했다.

꽤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

“오늘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좀 많은데, 그래도 엄청 붐비진 않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영준이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어머니는 어디서 일하셔?”

“관람 순서 마지막에, 반 고흐 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체험이 있거든요. 거기서 같이 그림 그리는 일 하세요.”

하긴, 시에서 운영하고 있으니 그런 작은 체험 학습 코너 같은 것도 잘 만들어 놨을 거다.

“나도 이따가 그림 그려볼래.”

“그래? 그럼 내가 알려줄게.”

채윤이가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말에 영준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진다.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게 생긴다는 점이 반가운 모양.

영준이도 신나서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차분히 설명하다 채윤이가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말 한마디에 신나서 말이 빨라지는 영준이의 모습에 조성현이 피식 웃었다.

“아 맞다. 전시회 시작부터 엄청 예쁘니까, 마음의 준비 잘해.”

영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 1층부터 미술관이기 때문에, 일단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채윤이는 입을 살짝 벌렸다.

조성현도 미소를 지었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네.’

바로 정면에, 반 고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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