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4화 (4/413)

04화. 소원을 말해봐

“죄송하지만, 저 그런데 관심 없어요.”

“응?”

“사이비 종교요.”

“사이비 종교?”

“네.”

난데없이 사자(使者)를 믿냐니.

이건 십중팔구 사이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초면인 사람한테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곧이어 남자를 향해 다시금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걸음을 옮겼다. 이런 건 보통 단칼에 거절한 뒤, 마치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 마냥 앞만 보고 가는 게 가장 좋았다.

신종 수법인가. 요즘은 경찰 제복까지 입고 저러네. 참, 정성이다.

슉─

“잠깐, 이렇게 가면 안 되지.”

“···어?”

방금 뭐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에 있던 사람이 마치 순간 이동을 한 마냥 눈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분명 뒤에 있었는데······.”

“아, 이거? 이건 사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 능력이야. 흔히들 순간 이동이라고 하지.”

“그거 참 편하겠네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편하지. 굳이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되고. 거리도 내 마음대로 조절돼.”

남자가 자랑하듯이 말했다. 근데 또 자랑할 만 해. 순간 이동은 등하교, 출퇴근을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이니까.

“어때? 이제 좀 믿어져?”

“뭘요?”

“내가 사자라는 거.”

여전히 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이렇게 남자의 능력을 직접 보고 나니 아까와는 다르게 설마 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

“아직 못 믿겠다는 얼굴인데?”

“뭐, 네, 그렇죠.”

“그럼 이건 어때?”

휙!

“아······.”

남자의 손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푸른빛의 불꽃이 그의 손안에서 소리 없이 일렁였다.

“자, 그럼 묘기는 여기서 마치고.”

동시에 남자가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손 안에 있던 불꽃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검증은 나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소원을 말할 마음이 생겼나?”

그의 말대로 검증은 이미 충분했다. 평범한 사람이 순간 이동을 하고 손에서 불꽃이 나올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혹시 소원에 다른 대가가 따르는 건 아니죠?”

“대가?”

“사자잖아요. 저승사자. 그러니 수명을 담보로 한다거나 할 수도 있잖아요.”

이에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런 거 전혀 없어. 순전히 고마운 마음에 들어준다는 거야. 앞서 말한 대로 감사 표시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감사 표시라고 하는데 저한테 뭘 감사한다는 거예요?”

“아, 그걸 아직 말 안 했구나. 그거야, 그거. 낮에 모자 쓴 남자를 잡게 도와준 일.”

역시 그 남자를 잡은 게 맞았군.

“그 남자가 누군데요? 저승사자가 쫓는 걸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테고.”

“맞아.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지. 쉽게 말해서 그건 인간의 탈을 쓴 사령(死令)이었어.”

저승사자에 이어서 귀신이라.

들으면서도 아직도 이게 현실이 맞는지 헷갈렸다.

“그놈은 사령 중에서도 조금 까다로운 놈이었어. 인간의 몸을 옮겨 다니며 탈을 바꿀 수가 있었거든. 그래서 쫓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고.”

그런데 내가 그 사령의 위치를 알려준 덕에 사령이 몸을 또 한 번 몸을 바꾸기 직전, 가까스로 잡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틀 밤낮으로 쫓던 놈이었는데 결국에 잡아서 어찌나 기쁘던지. 덕분에 이제 야근과도 안녕이야!”

남자는 정말로 기뻐 보였다.

축하드립니다. 박수 짝짝.

저승사자에게도 야근은 고된 일인가 보다.

“그래서 평소엔 답례 같은 건 전혀 안 하지만, 오늘만은 특별히 인심 써서 하려고.”

“음, 그럼 아무거나 다 되는 건가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그럼 돈으로 주세요.”

“안 돼.”

남자가 즉답했다.

아니, 저승사자 양반. 이게 무슨 소리야.

“인간의 돈은 못 만들어 내거든.”

“쓸모가 없네요.”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돈은 안 된다니.

그럼 뭘 말해야 하나.

“그럼 수명 연장 같은 건요?”

“그것도 못 해. 난 신이 아니라 인간의 수명에는 관여할 수 없거든.”

이것도 안 되는 거냐.

사실 이건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 로또 번호는요.”

“아, 로또 안 돼.”

“순간 이동 능력이요.”

“인간의 육체로는 순간 이동이 불가해.”

“그럼 도대체 되는 게 뭔데요?”

“너야말로 좀 되는 걸 말해라!”

열을 받은 건지 저승사자는 대뜸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답답한 건 이쪽인데요.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넌 이미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 여기 언어로 아마 독심술이었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어찌 된 건지 저승사자는 이미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 이름도 이미 알고 있었지. 능력을 아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좋은 능력을 이미 갖고 있잖아. 능력이 하나 있으면 됐지, 두 개나 필요한가. 의외로 욕심이 많네.”

그 순간 저승사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했다.

좋은 능력이라.

좋은 능력인 건가.

그러다 보니 때마침 소원 하나가 떠올랐다.

“소원 말인데요.”

“응. 정했어?”

“능력 없애는 거 가능해요?”

“응?”

“제가 가진 능력이요. 이거 없애는 건 가능하냐고요.”

* * *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것만 늘었다.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걸 듣게 되고.

무대 위에 서는 것조차 힘든 마당에 차라리 없는 게 삶이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했었다.

능력만 없어진다면 무대 위에서 편하게 노래할 수 있을 테니까.

만약 능력을 없앨 수 있다면 기꺼이 없애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가능하죠? 없애는 건.”

다른 건 다 안 되더라도 이건 되겠지. 앞선 소원들과 다르게 뭘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막상 없앤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뛰었다.

“아니, 못 해.”

“······.”

혹시 이거 저승사자가 아니라 사기꾼 아니야?

“안타깝게도 그런 큰일은 못 해.”

“아니, 왜 못 하는데요?”

“이게 말이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나름 그 정해진 운명선을 건드는 일이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거 뭐 되는 게 없네.

“대신 이건 할 수 있어.”

“뭐요?”

“ON/OFF 기능.”

온오프 기능?

“능력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지만 네 의지에 따라 능력을 온오프 시키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어.”

“한마디로 껐다 켰다가 가능하다고요?”

“그렇지.”

능력의 온오프 기능이라니.

전등도 아니고.

터무니없는 소리긴 했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거 나름대로 나쁠 건 없다 싶었다.

“한번 오프(off)시킨 이후 다음 온(on)은 아무 때나 원할 때 가능해요?”

“당근. 원한다면 어제라도 가능해.”

“기약 없이 쭉 오프(off)시키는 건요?”

“그건 안 돼. 적어도 100일에 한 번은 꼭 정기적으로 다시 스위치를 올려야 해.”

“만약 그렇게 안 한다면요?”

이러한 나의 질문에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안 한다면 아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뭐든 흐름을 거스르는 일을 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 법이거든.”

“결국은 꼭 다시 능력을 사용하라는 말이네요.”

“그렇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그걸로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고 싶은데요. 그럼 그 온오프 기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데요?”

“간단해. 필요한 건 네 의지뿐이야. 네가 오프(off)하기를 원한다면 저절로 오프될 거야.”

간단하고 좋네.

“그럼 그걸로 할게요. 소원.”

“좋아. 접수하지. 다만, 무르거나 그런 건 불가능해. 원한다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줄게.”

“아뇨. 괜찮아요. 생각은 충분히 했어요.”

“오케이. 그럼 바로 실행하지.”

다시 한 번 심장이 뛰었다.

바랬던 것을 이룬다는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 한편에 있던 불안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 그리고 특별히 추가 기능을 하나 더 붙여주지.”

어? 추가 기능?

“나중에 꼭 고마워하라고.”

뒤이어 뭔가를 물을 새도 없이 찬란한 빛이 그대로 나를 덮쳤다.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땐 텅 빈 거리만이 홀로 나를 반길 뿐이었다.

* * *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이 현실이 맞나 싶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확인해봐야 해.’

저승사자가 말한 게 진짜인지 아닌지.

사자의 말에 따르면 의지에 의해서 온오프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냥 생각만 하면 되나?’

구체적으로 말해준 게 없다 보니 감이 잘 안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자세히 물어보는 건데.

그렇다고 다시 사자를 소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근데 또 막상 하려니 약간 오글거리네.

이어서 심호흡을 한번 했다.

‘off.’

그러자 눈앞으로 조그마한 창이 하나 나타났다.

[현재 상태 : OFF.]

‘이게 뭐지? 상태창?’

하지만 얼마 안 돼 눈앞에 있던 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순히 ON/OFF 상황만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건가.

아까 추가 기능 어쩌고 하더니 이게 사자가 말한 그 추가 기능인 듯했다.

확실히 편리하긴 하네. 지금 현재 내 능력의 상태가 어떤지 한 번에 알 수 있으니까.

다음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만나면 감사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만날 일이 있으려나.

“저 왔어요.”

“어, 이제 왔니?”

집 현관으로 들어서자 거실에 계시던 엄마가 곧장 나를 반겼다.

“좀 늦었네? 밥은?”

“애들이랑 먹었어요.”

그리고 습관처럼 방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한번 확인해볼까 싶었다. 제대로 OFF가 된 게 맞는지.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오늘만은 엄마의 생각을 한번 읽어보려 했다.

“······.”

“응? 거기서 뭐 하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탁할 거 있으면 바로 꺼내놔.”

“네.”

탁.

들리지 않는다.

엄마의 생각이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졌다.

* * *

“야, 마이크랑 앰프 다 잘 챙겨왔지?”

“당연하지. 야, 야! 그거 아니야!”

“이건 어디에 둘까?”

“아, 이승준 뭐하냐고. 그만 쳐먹고 빨리 움직여.”

시간이 흘러 야외 버스킹날이 되었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다. 그야말로 버스킹 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미리 봐둔 자리에 앰프를 설치하고 마이크와 기타 장비들을 세팅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다.

“근데 사람들이 많이 봐줄까?”

박준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봐야지. 그리고 한두 분뿐이라고 해도 난 만족이야.”

“우세현 이 자식은 보면 참 욕심이 없어.”

“그래, 이왕이면 목표를 크게 잡자. 한 10명 정도로!”

아니, 10명도 그다지 많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우리가 연습한 곡을 완곡하는데 의미를 두자.”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내 말에 화답하듯 부원들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공연은 나에게 굉장히 특별한 공연이었다.

첫 야외 버스킹 공연이라는 것도 있지만, 능력을 없애고 난 뒤 처음으로 하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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