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화. 누구 동생이라고요?
오디션에 붙었다.
오디션을 본지 대략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IN 엔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고요?”
- 네. 그러니 다음 주부터 회사로 나오면 돼요.
통화를 끊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오디션에 합격하다니. 그것도 대형기획사다.
일단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렸다. 부모님 역시 합격 소식을 듣자 마찬가지로 놀라워하셨다.
“진짜로 합격했다고?”
“네! 오늘 연락받았어요.”
“그래, 축하한다. 축하해!”
처음엔 놀라워하시던 부모님도 곧 축하한다며 나의 합격을 함께 기뻐해 주셨다.
물론 속으로는 걱정하실 것도 알았다. 나를 위해 애써 표현하지는 않으시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능력이 오프되서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더라면 조금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합격 소식은 부모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아직 알릴 수 없었다. 되도록 비밀에 부쳐달라는 게 IN 엔터의 요구였다.
그러니 아직은 주변 이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어떻게, 형한테는 말했니?”
“아뇨. 아직요.”
형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캐나다와 한국 사이에는 무려 10시간이 넘는 시차가 있었다.
그쪽은 아직 새벽이거나 이른 아침일 듯 싶었다. 그냥 톡을 넣고 볼까.
“엄마가 먼저 말할까?”
“아뇨. 제가 직접 말할게요.”
사실 시차도 시차지만, 과연 형이 이 소식을 반길지가 문제였다.
예전부터 형이 늘 상 흘러가듯 말하던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연예인 하지 마라’였다.
내가 연예인이란 직업에 관심을 보일 때마다 항상 보는 것보다 힘든 게 훨씬 더 많은 직업이라면서 다른 길을 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해가 안 돼서 맨날 한 귀로 흘리고 그랬었는데.
아마 좋은 반응은 나오지 않을 듯싶지만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무엇보다 엄마랑 아버지의 허락은 확실히 받았으니까.
‘일단 말하고 봐야지. 당장 데뷔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 그렇게 크게 반응할까.’
그런데 그때, 폰 배터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충전부터 해야겠다.”
톡은 충전하고 나서 보내야지.
하지만 그런 계획이 무색하게 폰에 충전기를 꽂자마자 곧 나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 * *
“팀장님. 오늘 새로운 연습생들 들어온다고 하셨죠?”
신인개발팀 트레이닝 파트의 정지아가 박선호 팀장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어, 맞아.”
“연습생이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네요. 한번 물갈이된 이후로.”
“그렇지.”
IN 엔터는 몇 달 전 소속 연습생들을 한 번에 대방출했다. 현재 차기 데뷔조를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IN 엔터는 올해 새로운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의 데뷔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연습생들을 회사 내부에서 선별하는 과정에 있었다.
“지금 시기에 들어온 연습생이라면 실력이 꽤나 괜찮나 봐요.”
“어? 지아 씨 아직 오디션 영상 못 봤어?”
“그거야 당연히 봤죠. 하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실력이 꽤 괜찮아.”
“노래는 확실히 잘하던데요.”
정지아가 오디션 영상을 회상하며 말했다.
“이름이 세현이었죠? 우세현.”
“맞아. 그 친구 너무 괜찮아. 그날 온 지원자 중에서 노래가 제일 좋았어.”
“팀장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너무 궁금한데요?”
“그 친구, 춤 선도 꽤 괜찮더라고요.”
옆에 있던 서민아 역시 대화에 참여했다.
“아, 그 루트 안무 춘 거 말이죠? 영상에서 봤어요. 막 잘한다 정도까지는 아닌데 나쁘지 않았어요.”
“뭐, 그 정도라도 추는 게 어디야. 춤이 아예 안 되는 애들도 산더미인 마당에.”
노래를 잘하면 춤이 안 되고.
춤이 되면 노래가 떨어지고.
이런 식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흔히 말하는 올라운더.
노래와 춤을 모두 잘하는 이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그 친구 혹시 루트 팬인가?”
“왜요?”
“왠지 안무의 디테일적인 부분까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요즘 루트 모르는 사람이 있나. 게다가 그 곡은 원래 유명한 곡이잖아. 커버도 많이들 하고.”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친김에 박선호는 다시 한번 더 세현의 오디션 영상을 확인했다.
“그런데 말이야.”
“네?”
“이 친구, 누구랑 좀 닮지 않았어?”
그가 자신이 보던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다른 두 사람도 눈앞의 영상을 확인해보았다.
“네? 누구요?”
“아, 그걸 모르겠어. 처음 봤을 때부터 누구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누군지를 모르겠네.”
“음···그 배우 누구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DR 엔터의 그 멤버 아니에요? 그 왜, 얼굴 하얗고 잘생긴 멤버 있잖아요.”
아닌데. 다 아닌 것 같은데.
느끼기에 앞서 말한 이들은 아니었다.
“음, 분명 누구랑 닮았는데······.”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 * *
“예? 형?”
“네.”
“자,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루트의 우도현이 세현 군의 친형이라는 거죠?”
“네. 맞아요.”
“허······.”
그러자 박선호 팀장이 꽤나 놀란 듯 힘없이 웃어 보였다.
오늘은 계약을 위해 신인개발팀을 방문했다. 미성년자이기에 부모님 중 한 분과 동행해달라는 말에 엄마를 모시고 왔다.
그리고 계약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의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전혀 몰랐네. 아, 근데 누구 좀 닮은 거 같다고 내내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게 설마 우도현일 줄은······.”
“형이랑 제가 좀 안 닮긴 했죠. 어렸을 적부터 주변에서 안 닮았다고 많이들 그랬어요.”
“확실히 형제라고 말 안 하면 전혀 모르겠네.”
박선호 팀장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어릴 때부터 듣던 말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미 익숙해져서.
“근데 좀 닮은 것도 같아요. 분위기 같은 거. 그러니까 안 닮은 듯 닮은?”
그게 안 닮았다는 거 아닌가요.
안 닮은 듯 닮은 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형제가 나란히 이렇게 인물이 좋으니 부모님께서는 흐뭇하시겠어요.”
“아뇨, 뭘 그렇게까지.”
엄마는 애써 손을 저었지만,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계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는 엄마가 계약 관련 조항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덕이었다. 나 역시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걸리는 사항 같은 건 없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약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세현 군.”
“네.”
“계약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세요.”
무슨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선호 팀장의 얼굴을 보니 가벼운 질문은 아닌 듯 했다.
“혹시 학폭, 그러니까 학교 폭력이나 왕따. 그런 것과 관련된 사항은 없죠?”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에 관한 질문이었다.
최근에 연예계 학폭 관련 이슈가 쏟아지는 추세다 보니 기획사에서도 사전에 연습생들에게 확인을 하는 모양이었다.
“네. 없습니다.”
“그럼 혹시 SNS는 해요?”
“아뇨. 없어요.”
“아, 정말요? 요즘 친구들은 다 하나씩은 있던데. 세현 군은 관심이 없나 봐요.”
“네. 뭐······.”
SNS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지라. 지금은 그냥 아예 없다시피 하고 살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일단 다행이네요.”
박선호 팀장이 안도하며 말했다.
“세현 군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이것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말이 오가다 보니. 회사 측에서 계약 전에 본인에게 한 번씩 확인하고 있어요.”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확인해볼 수 있다 생각하기에.
그렇지만 이러면 했어도 안 했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위와 같은 의구심을 잠시 제쳐두었다. 지금은 계약에 집중해야 했기에.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마침내 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은 잘 마쳤고요. 연습은 바로 내일부터 나오면 됩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곧 팀장이 급하게 나를 붙잡아왔다.
“아, 가기 전에 세현 군은 오늘 회사 한 번 둘러보면 어떨까 싶은데.”
“회사요?”
“응. 이것저것 설명해줄게요. 회사가 넓어서 구조를 익히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얼떨결에 사내 투어를 하게 됐다. 엄마는 카페에서 기다리겠다면서 먼저 자리를 떠나셨다.
이후 팀장님을 따라 연습실에 가는 법부터 시작해 각 층 화장실과 피트니스 룸 위치 등을 확인했다. 예상보다 회사 내부는 훨씬 더 미로 같았다.
“그리고 여기가 지하 연습실인데······”
“팀장님.”
그때, 직원 한 명이 급하게 박선호 팀장에게로 다가왔다.
“어, 무슨 일이야?”
“이거 잠시 확인 한 번 해주셔야겠는데요.”
보아하니 꽤 급한 건인 것 같았다.
“세현 군. 미안한데 잠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금방 올 테니 잠깐만 연습실 안에서 기다릴래요?”
“네. 그럴게요.”
이후 팀장님은 찾아온 직원과 함께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지하에 있는 대형연습실은 다른 시설과 마찬가지로 지문 인식을 통해 관계자만 입장할 수 있는 구조였다.
흰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드넓은 연습실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인테리어 구조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 누가 있나······.’
그렇게 연습실을 둘러보고 있던 와중에 저편 너머로 누군가 홀로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회사 연습생인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티스트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일단 먼저 인사를 하러 갔다.
아무래도 이쪽은 오늘 처음 온 신입이니까.
연습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는 남자 연습생 한 명이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때서야 나의 존재를 인식한 남자 연습생이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귀에 있던 이어팟을 빼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뒤이어 다시 찾아온 침묵.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자 남자 연습생은 말없이 앉아있던 소파에 다시 몸을 기댔다.
나 역시 자리를 찾아 앉았다. 팀장님 금방 오시겠지. 연습실 내부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결국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하고 앉아있던 연습생에게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안지호입니다.”
“아, 네. 우세현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18살이요.”
“아, 동갑이시네요.”
“네.”
남자 연습생이 감흥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 점점 더 어색해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나은가.
그 뒤로는 아무 말 없이 팀장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팀장님은 생각보다 더 늦으셨다. 설마 까먹으신 건 아니겠지.
“그 IN 엔터에는 좀 특이한 보컬 연습실이 있다던데 혹시 아세요?”
끝내 또다시 입을 열고야 말았다.
떠오르는 말을 일단 해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뒤이어 잠깐의 텀이 있는 듯 싶더니 끝내 대답이 돌아왔다.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구내식당은 어디······”
“몰라요.”
딱 봐도 대답하기 귀찮아하는 모양새였다. 음, 그래. 이제 눈치껏 조용히 있어야지.
“저기요.”
그런 생각을 하기 무색하게 이번엔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질문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아, 제가 초면에 너무 많이 물었죠.”
역시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그랬다.
“그것도 그런데 나한테 물어도 소용없어요.”
“네?”
“나도 여기 온 지 이틀밖에 안 됐거든요.”
뒤이어 그는 줄곧 기대어 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도 이 회사 연습생 된 지 이제 2일 차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