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새로 온 연습생입니다.
삐비비빅.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볼 일을 마친 박선호 팀장이 마침내 연습실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내가 좀 늦었죠?”
“아뇨. 괜찮아요.”
약 30분간의 정적이 이윽고 깨지는 순간이었다.
“2일 차요?”
“네.”
“아······.”
이 사람도 어제 막 연습생이 된 사람이었구나. 그러니까 진짜 어제.
2일 차면 이제 막 연습생이 된 나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앞선 대답들과 같은 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러셨구나······.”
그 뒤로 정적. 정적. 정적.
팀장님이 오실 때까지 연습실 내부는 침묵 그 자체였다.
“어, 지호 군도 있었네.”
“안녕하세요.”
“둘이 인사는 했어요?”
팀장님이 돌아오신 이후에 또다시 안지호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팀장님의 갑작스러운 소개 타임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입사 동기나 마찬가지네? 지호 군도 어제 막 들어왔으니까. 나이도 아마 동갑이었죠?”
그리고 잘 지내라는 팀장님의 말에 안지호도 나도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다른 연습생들이 연습실로 들어오면서 팀장님과 나는 연습실을 나오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 뒤로도 투어는 계속됐다.
회사가 워낙 넓은 탓에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내일부터 바로 레슨 들어갈 거예요. 레슨 내용은 보컬, 댄스를 기본으로 제 2외국어 등 꽤 다양할 거고.”
뒤이어 레슨 스케줄이 적힌 프린트물을 받았다. 시간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세현 군의 경우는 학생이니까 방과 후 레슨 스케줄부터 따라가면 돼요. 여기 적혀 있는 대로 4시부터.”
오전 레슨의 경우 주로 성인이 된 연습생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아주 가끔 예외적인 경우로 미성년자 연습생도 참여하곤 하는데 그러한 경우는 대부분이 학교를 그만둔 경우였다.
“회사에서는 되도록 자퇴는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연습생 본인이 자퇴를 원하는 경우도 있어요. 연습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거죠.”
상당히 리스크가 큰 선택이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러고 보니 형도 자퇴를 고민한 적이 있었지. 물론 그건 데뷔 후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이런 사례가 많은 건 아니니까. 아무튼 내일 시간 맞춰서 제 3연습실로 와요. 보아하니 첫 번째 수업이 댄스네.”
“네, 알겠습니다.”
첫 번째 수업이 댄스 트레이닝이라니.
벌써부터 조금씩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그날 저녁, 피곤했던 건지 평소보다 숙면을 했고 개운한 몸으로 연습에 나설 수 있었다.
* * *
도착한 제 3연습실에는 이미 수많은 타 연습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모두 초면이었다.
아, 한 사람만 빼고.
그 한 사람은 안지호였다.
그리고 안지호와는 우연히 연습실 앞 엘리베이터에서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동갑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서로 존댓말을 유지했다. 먼저 놓기도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만큼 온종일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기 바빴다.
마치 새롭게 학교에 전학 온 전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 전학생을 보는 시선을 다양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다만, 전학생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전학생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의 경쟁 상대이기에 새로운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나이는 몇 살이야?”
“뭐로 들어왔어?”
“춤은 좀 춰요?”
생각보다 많은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원래 이렇게 누가 새로 들어오면 질문을 많이 하는 건가.
“오디션에선 뭐 했어?”
“저 노래 불렀어요.”
“노래? 무슨 노래?”
“인터니티의 예지몽이요.”
그러자 다른 연습생들이 더욱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한번 불러봐.”
“네? 지금요?”
“응. 노래로 들어온 거잖아. 궁금하다.”
이렇게 많은 연습생들 앞에서 단독으로 노래라. 마치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대충 보아도 눈앞으로 10명은 족히 있었다.
‘이 상황에서 빼기도 그러니······.’
일단 짧게 불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반주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는 대충 두 소절 정도 불렀다.
정말로 누가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했다.
그리고 노래를 마치자 즉각 반응이 왔다.
“너 보기보다 노래 잘하네.”
앞에서 듣던 연습생 중 한 명이 말했다.
보기보다······.
나 노래 못 하게 생겼나.
“노래는 따로 배웠어?”
“아뇨. 그렇진 않았어요.”
“오.”
뒤이어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연습생이 이번엔 안지호를 향해 말했다.
“야, 지호야. 너 춤으로 들어왔다고 했었나?”
“네, 뭐.”
“그럼 너도 한번 보여줘라.”
“왜요?”
“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앞서 물었던 연습생이 순간 당황했다. 동시에 분위기가 찬물 끼얹듯 가라앉았다.
“어, 그야 궁금하니까······.”
“아, 네.”
그렇게 답하면서도 안지호는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귀찮아하는 모습이었다.
“야, 안지···”
“자, 이제 레슨 시작할게요.”
앞선 연습생이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안지호를 부르려던 찰나 때마침 트레이닝 선생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레슨이 시작되자 모여 있던 연습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앞선 연습생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그에 비해 안지호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 건가. 저거.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댄스 트레이닝은 기본 동작 안무를 익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팔 뻗기, 웨이브, 턴 등 다양한 동작들이 있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여기서는 팔을 좀 더 일자로 뻗어줘야 해요. 그리고 동시에 턴을 해주면서 웨이브 한 번.”
기본 동작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를 따라갔다 싶으면 바로 다음 단계가 나오고 또 단계가 올라갈수록 복합적인 안무들이 나왔다.
한 마디로 겁나 어려웠다.
“세현 군은 좀 더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는데.”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중간에 있던 나를 콕 집으시며 말했다.
“벌써부터 숨차면 안 돼요. 우리 아직 많이 남았어요.”
“네······.”
더불어서 모자란 체력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냥 안무만 따라 할 때는 몰랐는데······.’
춤이라고 하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라 걸 연습 첫 날 새삼 다시 느꼈다. 더불어서 내가 체력 거지라는 것도.
“지호 군은 꽤 능숙하네. 평소에 춤 좀 쳐봤어요?”
그 한마디에 연습생 모두의 시선이 연습실 뒤편에 있던 안지호에게로 향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말대로 안지호는 정말로 안무에 능숙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웠고 연속 동작도 매끄러웠다.
“오, 역시 전 RA 연습생이네.”
근처에 있던 연습생 중 한 명이 안지호를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RA? RA라면 그 RA를 말하는 건가?’
흔히 RA라 하면 하나밖에 없었다.
같은 3대 엔터인 RA 엔터테인먼트.
‘안지호가 원래 RA 엔터 연습생이었나?’
앞선 말에 어떠한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었다.
연습생이 회사를 옮기는 일은 종종 빈번하게 일어난다. 물론 한 회사에 오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옮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데뷔조 탈락 혹은 무산, 퇴출, 혹은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 등등. 어떠한 이유든 좋지 않은 이유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나저나 RA에서 IN으로 이동이면······.’
대형기획사에서 대형기획사로의 이동이다. 이런 경우가 많이 있던가. 보통은 대형에서 중소, 중소에서 대형으로 이동하곤 하니까.
“자, 다음 동작 바로 들어갈게요.”
다음 안무 역시 여전히 어려웠다. 전보다 더욱 어려워진 동작에 나는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안무를 익혔다.
* * *
연습은 매일 매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덕분에 저녁도 회사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보통 저녁 식사는 연습생들끼리 배달해 먹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 내에 있는 사내 식당에서 해결하는 때가 많았다.
나의 경우 거의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밥을 먹어주는 이가 없었다.
처음에 몇 번 다른 이들한테 함께 식사를 권해보고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거절뿐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다. 밥이야 뭐 혼자 먹어도 맛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메뉴는 치즈 돈까스였다. 그리고 당연히 혼밥이었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자체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배식을 받은 후 대충 보이는 자리에서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뜬금없이 누군가 앞자리에 앉았다.
“안뇽.”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연습생이었다.
“혼밥?”
“네.”
“와, 나도 혼밥인데. 같이 혼밥하자.”
남자 연습생이 태연하게 수저를 들며 말했다. 아니, 같이 혼밥하는 건 뭐야. 애초에 같이 먹으면 혼밥이 아니지 않나.
“너 고 2지? 너랑 나랑 동갑. 그러니까 존대 안 해도 돼.”
“아, 그래.”
어떻게 안 건지 벌써 내 나이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습실에서 얼핏 본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치즈 돈까스가 엄청 맛있거든. 그래서 다른 거 시켜먹자고 하는 거 뿌리치고 달려왔잖아, 또.”
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열심히 돈까스를 잘랐다.
“근데 자주 안 나와.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인데 가끔은 아예 건너뛰는 일도 있어.”
이제는 어느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돈까스가 나오기를 엄청 기다렸던 모양이다.
“내 거 좀 먹을래?”
“오, 땡큐. 내가 원래 사양을 안 해.”
“안 그래도 사양 필요 없어.”
그리고 앞에 있던 식판에 돈까스 몇 개를 얹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소문이 쫙 퍼졌어. 이 시기에 누가 또 들어왔다고.”
“이 시기?”
“엉.”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데?”
“어떤 시기긴. 폭풍 전야의 시기지.”
남자 연습생이 들고 있던 포크를 잠시 내려놓았다.
“지금이 IN이 딱 신인을 내놓으려고 하는 시기거든. 남자 신인 그룹.”
“아.”
그래서 폭풍 전야라고 했던 거군.
새로운 그룹이 나올 때가 가장 경쟁이 심화될 시기니까. 그만큼 예민해질 테고.
“근데 데뷔조 같은 건 이미 따로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직 정해진 게 없다더라. 그 와중에 회사에서는 몇 달 전에 연습생들을 한꺼번에 정리했고. 그러니 난리인 거지.”
그래도 보통 거론되는 후보들은 있지 않나? 위에서 생각해둔 조합 같은 것도 있을 테고.
“아무튼 그런 시기에 새 연습생들이 들어오니까 더 난리인 거지. 경쟁자가 늘어난 셈이니까.”
기존 연습생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상황일 게 보였다. 그래서 더 관심들을 가졌던 건가. 일종의 탐색 차.
“와, 진짜 존맛.”
앞에 있던 식판이 어느새 다 비워져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다 좋은데 여긴 돈까스 양이 너무 적어. 네가 준 거 아니었으면 양도 안 찰 뻔했다.”
“다행이네.”
내가 보기엔 일반 돈까스 크기랑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만.
“그럼 이제 중요한 일도 끝냈으니···”
“중요한 일?”
“엉. 돈까스 먹는 일.”
응. 그래. 돈까스 먹는 일 중요하지.
“중요한 일도 끝냈으니 통성명이나 할까?”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한 채였다.
“백은찬이야. 이름이 분명 우세현이었지?”
“어. 맞아.”
“야, 근데 세현아.”
그 순간 백은찬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진지해졌다.
“콜라 한 잔 콜?”
* * *
드넓은 회의실과 그 가운데 있는 원형 테이블. 그리고 중간 중간에 놓여있는 의자.
오늘 이곳에서는 중요 안건에 대한 회의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모인 사람은 IN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를 포함한 고위층 임원들. 그리고 관련 부서의 직원들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202X년 IN 엔터테인먼트 신인 남자그룹 런칭 건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