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프로필 촬영은 처음이라
연습생 2개월 차.
갑작스럽게 회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포맷은 늘 그렇듯 여타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 비슷했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없지만 1~3차까지 총 3번의 경연을 하고 시청자 투표로 회마다 탈락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아직까지 예정된 건 3차지만, 어쩌면 더 추가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었다.
또한, 최종 데뷔조 멤버 역시 투표로 결정된다. 살아남은 인원 중 투표 순위가 높은 상위 6명이 최종적으로 IN 엔터의 신인 남자 그룹의 멤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들었을 때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난 어떻게 뽑히게 된 거지.’라는 의문이었다.
현재 회사에 소속되어있는 남자 연습생만 해도 자그마치 40여 명. 평균 연습 기간은 대부분이 1년 이상이었다.
그에 비해 난 연습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몇 개월 차였다.
함께 출연하게 된 연습생 중에서 단연코 연습 기간이 가장 짧았다.
물론 안지호도 나와 같이 연습 기간이 짧지만, 안지호의 경우 RA에서 얼마나 연습 생활을 했는지 모르니 예외였다.
‘아, 혹시 형 때문인가.’
출연 연습생이 유명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홍보할 목적.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유력했다. 아니, 거의 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의미에서 조금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 잘못해서 망하기라도 하면 괜히 또 형이 욕먹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렇다고 가족인 걸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어떻게든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답은 하나뿐이다.
그냥 잘해야지 뭐.
애초에 이러한 상황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다.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데뷔를 하게 된다면 이런 저런 말이 나올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자 답은 같았다.
결국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연습한 걸 보여주면 됐다.
노래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래, 노래를 열심히 부르자.
그리고 춤은······.
계속 열심히 연습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모님에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겸사겸사 형에게도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는 문자를 보냈다.
덧붙여서 회사 연습생이 됐다는 이야기도 함께. 지난번에 말하는 것을 까먹은 탓이었다.
음, 그런데 지금 캐나다 시간으로 몇 시지? 보내고 나니 생각났다. 시차가.
‘몰라, 알아서 보겠지.’
[형, 나 기획사 들어갔어. 근데 이번에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나가게 됨]
대충 이렇게 보내면 알겠지.
그리고 그렇게 별 생각 없이 화면을 종료시켰다.
* * *
며칠 후,
프로필 사진 촬영 날짜가 잡혔다.
이번에 촬영할 프로필 사진은 프로그램 홈페이지 업로드용이었다. 동시에 투표창에서도 쓰일 사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엄청 중요한 사진이라는 거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에서 첫인상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나 초반에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땐 대게 프로필 사진 만으로 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반드시 신경 써서 촬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방문하게 된 촬영 현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16명의 연습생이 모두 한 대기실을 쓰게 되었다. 거기에 메이크업 스텝 등 인원을 추가하면 대략 20명이 족히 넘는 인원이 한 방을 사용하고 있는 거였다.
“산소가 부족해······.”
백은찬이 대기실 구석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채로 말했다.
“물 마실래?”
“물 말고 거기 음료수 좀······.”
그 말에 탁자 위에 있던 제로 콜라 하나를 건넸다. 그러자 백은찬이 마치 회복 포션을 얻은 것처럼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하, 생명수야. 생명수.”
“너무 많이 마시면 안 좋을걸.”
“괜찮아. 제로 콜라잖아. 이 제로가 포인트야.”
그렇게 말한 백은찬은 곧바로 콜라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단체 사진 촬영 진행할게요.”
시작은 단체 촬영이었다. 16명의 연습생이 준비된 단체복을 입고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촬영했다.
촬영 대형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내 자리는 대형에서 가장 끝자리에 해당됐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끝에서 세 번째 정도. 그리고 가장 가운데, 흔히 말하는 센터에는 차선빈이 자리했다.
차선빈은 흔히 말하는 회사 에이스였다.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춤 실력, 거기에 수준 높은 랩까지 구사했다. 한마디로 준비된 인재 느낌.
무엇보다 차선빈은 IN에서 9년을 연습한 장기 연습생이었다. 얼핏 듣기로는 9살 때쯤 처음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회사에서 차선빈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직원이든 연습생이든 혹은 아티스트든 상관없이.
“자, 지금 표정 좋아요. 다들 너무 굳지 마시고 조금씩 움직여주세요.”
차선빈의 옆으로는 나란히 에단, 윤도운, 최진호 등이 있었다.
이 조합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도 꽤 익숙한 조합이었다.
모두 연습생 사이에서도 데뷔가 가장 유력하다고 여겨지는 이들로 소문에 의하면 데뷔 문턱까지 갔다가 일련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미는 조합이라는 건 확실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구도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하지만 내 자리는 여전히 프레임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위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사진이 못 나온 것 같지는 않다는 거였다.
“자, 그럼 개인 촬영은 사전에 알려드린 순서대로 바로 진행할게요.”
단체 촬영 다음은 개인 프로필 촬영이었다. 촬영 순서는 이미 사전에 공지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순서가 되면 한 명씩 나가 촬영을 하면 됐다.
어느새 의상을 갈아입은 백은찬이 옆자리로 와 앉았다. 백은찬은 연 노란색 맨투맨에 검은색 힙색을 메고 있었다.
“넌 몇 번째야?”
“13번째.”
내 순서는 16명 중 13번째였다. 꽤 뒷순서로 그만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직 한참 남았구만. 이거 먹을래?”
“아니. 넌 몇 번째인데?”
“난 7번째. 나름 중간?”
부럽다. 한 자릿수라니.
촬영은 한 사람당 대략 20분 정도가 걸릴 거라 예상됐는데, 그 말은 곧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최소 240분이 걸린다는 얘기였다. 다시 말해 4시간이었다.
4시간이라니 마치 대학교 우주 공강 같은 시간이네. 아직 대학에 가본 적은 없지만 벌써부터 체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형, 세현이 형.”
그렇게 차례를 기다리며 조용히 폰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같은 연습생인 신하람이었다.
나보다는 한 살 어린.
“남은 사람들 얼른 의상 갈아입으래요.”
“아, 그래. 고마워.”
어느새 대기실 안 인원이 꽤 줄어있었다. 진짜로 아까보다 산소가 좀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무슨 게임해요?”
“게임? 게임 안 했는데.”
“아, 게임 하는 거 아니었어요? 난 또 하고 있는 줄 알았네. 형, 지난번에 우리의 마블하고 있길래 그건 줄 알았어요.”
순간 놀랐다.
우리의 마블 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지난번 레슨 때 우연히 봤어요. 보려고 본 건 아닌데 그냥 화면이 보이더라고요.”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물어보는 표정이길래요.”
내가 표정에 티가 나던 타입이던가.
“티는 안 났는데 그냥 제가 원래 감이 좋아요.”
“너 혹시 무슨 능력 있고 그런 건 아니지?”
“무슨 능력이요?”
“아냐. 그냥 하는 소리였어.”
내가 그런 능력이 있어서 하는 소리였어.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실재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몸소 체험하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능력을 오프 한지 얼마나 지났지?’
요새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날짜를 세어보지를 못했다. 좀 된 것 같기는 한데.
“근데 형.”
“어, 왜?”
“형은 몇 번째예요?”
“나? 13번째.”
그러자 신하람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보다 낫네요. 전 14번째에요.”
“비슷하네.”
지금이 아마 9번째일 테니까···앞으로 3명 정도 더 남은 상태였다.
‘슬슬 의상을 갈아입을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신하람이 또다시 나를 불러왔다.
“형, 의상 다 갈아입으면 같이 게임해요.”
“어? 너도 그 게임 해?”
“네.”
의외였다.
왜냐면 그 게임 요즘엔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제가 원래 옛날 게임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신하람이 화면에 집중한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옛날 게임 아니거든.
순간 욱할 뻔했다.
* * *
생각해보니 능력을 오프하고 난 뒤 시간이 꽤 흘렀다. 능력을 끈 이후 한 번도 켠 적이 없었지.
그동안 워낙 이런저런 일이 많은 탓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날짜를 계산해보니 이때쯤 한번 켤 시기가 된 것 같았다.
‘오늘은 마침 무대에 오를 일도 없으니······.’
괜히 잊어먹기 전에 날짜를 리셋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오늘 이후로는 아무래도 더 바빠질 것 같았으니까.
무엇보다 무대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사진촬영일 뿐이니 크게 상관이 없지 싶었다.
[현재 상태 : ON.]
“어······.”
순간 머리가 멍했다.
뭐지. 너무 오랜만에 켜서 그런가.
하지만 그 멍한 느낌은 이내 곧 사라졌다.
‘일시적인 현상인가.’
역시 그때 저승사자한테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하는 건데. 앞으로는 너무 오래 꺼두지 않도록 해야겠다.
“좋아요~네, 좋아요!”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세트장 안에 울려댔다.
세트장 안 벽에는 알록달록한 풍선들이 걸려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마카롱과 케이크 같은 디저트 소품들이 가득했다.
나는 민트색 맨투맨을 입고 분홍색 캡모자를 쓰게 되었는데, 모자를 뒤로 살짝 얹어 세팅한 헤어가 망가지지 않도록 했다.
“방금 표정 굉장히 좋았어요. 한 번만 더 해볼래요?”
“네.”
“좋다!”
다행히 개인 촬영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사실 촬영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방금 킨 능력 덕분이기도 했다.
[“음, 뭔가 포즈를 좀 바꿨으면 좋겠는데.”]
“자세를 좀 바꿀까요?”
“그래요. 좀 더 다양하게 하면 좋겠어요.”
[“얼굴 각도를 조금 더 내리는 게······.”]
“그래요, 세현 군. 지금 각도 딱 좋아요!”
오랜만의 능력을 켠 영향일까.
의도하지도 않았음에도 사진작가님의 생각이 저절로 흘러들어왔다. 흔히 말하는 부작용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에 작가님이 원하는 구도나 느낌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와, 이리 와서 한번 봐 봐요. 눈빛이 진짜 좋아.”
그 뒤로 사진작가님과 함께 앞서 찍은 사진들을 몇 개 모니터링 했다.
“몸 쓰는 것도 자연스럽고 표정도 하나하나 살아있어. 사진 많이 찍어봤어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래? 그럼 앞으로 더 잘 찍겠네. 재능 있어요.”
카메라가 좋았던 게 아닐까요.
내가 잘한다기보다는 세트장이나 헤어 메이크업 빨이 잘 먹힌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사진 자체의 분위기는 좋았다. 화사하면서도 알록달록하고. 역시 좋은 장비는 다른가 보다.
“앞으로 그럼 몇 장만 더 찍어볼게요.”
“네.”
그리고 구도를 조금 바꿔 몇 번 더 촬영했다. 가만히 앉아 촬영하는 것뿐인데도 생각보다 체력을 요했다.
다행히 촬영 하는 동안은 처음 능력을 켰을 때와 같은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자, 세현 군은 끝!”
“수고하셨습니다.”
뒤이어 작가님과 주변 스태프분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난 뒤 그대로 세트를 나왔다.
이제 이대로 퇴근인가.
이후 촬영은 예정된 게 없었다.
대기실로 돌아가 의상을 갈아입고 그대로 집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그래,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잠시만요, 세현 군.”
“네?”
대기실로 돌아가려던 중에 여성 스태프 한 명이 급하게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스태프 옆으로 카메라를 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이거 하나만 뽑아주세요.”
여성 스태프가 그대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를 보며 스태프는 빠르게 설명을 해주었다.
“개인 사진 촬영을 하나 더 할 건데 이번엔 개인마다 의상 컨셉을 달리해서 찍을 생각이에요. 그리고 어떤 컨셉을 할지 뽑기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해요.”
한마디로 다음 촬영 때 할 의상 컨셉을 뽑기를 통해 직접 뽑으라는 이야기였다.
정해진 컨셉은 인원수대로 총 16가지.
의사부터 시작해 경찰, 도둑, 마피아, 마법사, 뱀파이어 등 다양했다.
“그냥 뽑기만 하면 되는 거죠?”
“네. 상자 안에 볼 하나만 잡으면 돼요.”
예시로 들은 컨셉들을 들어보면 대부분 괜찮은 컨셉인 것 같았다. 그러니 뭘 뽑아도 평타는 되겠지.
그대로 상자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아, 그거 뽑으면 좋은데. 왜 그게 안 나오지.”]
그거?
순간적으로 스텝의 생각이 들렸다.
이후 나는 상자 안에서 굴러다니는 볼 중에서 적당히 잡히는 걸 하나 뽑았다.
잡힌 볼은 파란색 투명볼이었다.
“안에 어떤 컨셉인지 적혀 있어요. 꺼내서 확인하시고 카메라에도 한번 보여주세요.”
곧바로 쪽지를 꺼내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쪽지에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