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의상 컨셉이 뭐라고요?
아니, 이게 뭐야.
지금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새삼 눈을 의심했다. 그만큼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이거 혹시 전부 당근인가요?”
“예. 맞아요, 당근.”
“이 넓적하게 생긴 것도요?”
“세상에는 다양한 모양의 당근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건 꽤 레어한 당근이에요.”
레어한 당근······.
레어한 당근까지는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지금 내 눈앞에는 온갖 다양한 모양의 당근 인형들과 풍선, 그 밖에도 당근과 관련된 여러 소품들이 줄지어 있는 상태였다.
‘아니, 아무리 토끼라도 해도 이렇게 당근만 넣어줄 필요는 없잖아······.’
생각지도 못한 세트장 풍경에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이 모든 것은 전에 있었던 [개인 의상 컨셉 뽑기]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총 16가지의 컨셉 중 내가 뽑은 의상 컨셉은 바로 [캐릭터]. 하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 캐릭터였다.
“캐릭터라면 무슨 캐릭터인가요?”
“요즘 한창 핫한 만화 캐릭터예요. 그 왜 분홍토끼 있잖아요. 귀여운 표정하고 있는.”
“토끼요?”
“네. 토끼요.”
요즘 한창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만화 캐릭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 만화의 주인공인 토끼였다.
캐릭터 디자인 자체도 귀여워서 특히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윽고 젊은 세대층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나 역시 몇 번 본 적 있는 캐릭터로 캐릭터 자체가 귀엽긴 귀여웠다. 그래, 캐릭터는 귀엽지.
문제는 내가 그 캐릭터 탈을 쓰게 될 경우였다.
“몸통 옷은 이거 입으시면 되고요, 모자는 이거 쓰시면 돼요. 혹시 머리에 안 맞으시면 이야기해주시고요.”
“네···감사합니다.”
“아, 저쪽에 신발도 있거든요? 발바닥 모양이요. 그것도 꼭 신으셔야 해요.”
스태프가 저쪽 한편에 놓여 있는 발 모양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큰 신발은 처음 봤다.
그 와중에 발이 잘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다행히 머리는 잘 맞네.’
그래도 가장 다행인 건 머리가 잘 맞는다는 거였다. 혹시나 크게 늘려놨던 거면 어떡해.
모자의 경우 얼굴은 가리지 않도록 캐릭터를 머리에 얹는 형태였다.
준비된 의상을 모두 착용한 뒤 거울 앞에 섰다. 음, 그래. 다행히 잘못 착용한 건 없어 보였다.
또 인형 탈인 만큼 더운 면이 없지 않아있었지만 실내 에어컨이 잘 작동하고 있는 덕분에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다 입으셨어요?”
“네.”
그리고 바로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앞으로 다양한 의상을 입은 연습생들이 보였다.
동시에 연습생들의 시선도 일제히 나를 향했다. 이게 조금, 조금 부끄럽긴 하네.
“헐. 너 라이크래빗이야?”
“응.”
인형탈 의상으로 대기실에 들어온 나를 백은찬이 마치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와, 귀엽네. 잘 어울린다, 야. 요즘 라이크래빗 인기 엄청 많잖아.”
“어, 그래···귀엽지······.”
“야, 근데 디테일이 또 있다. 꼬리 봐.”
토끼니까 당연히 꼬리가 있겠지.
이게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를 떠나서 이 큰 대기실에서 나만 이런 의상을 입고 있으려니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탓하려면 내 똥손을 탓해야지.
“근데 넌 뭐야? 마법사?”
“맞아. 할리포터.”
백은찬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눈앞으로 잠시 흔들어 보였다.
검은색 망토에 붉은색 니트와 타이 거기에 할리포터의 트레이드 마크인 안경까지.
워낙 유명한 코디이다 보니 한눈에 봐도 어떤 컨셉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거 요즘 인기 있는 그 캐릭터야?”
“캐릭터? 무슨 캐릭터인데?”
“그 왜 있잖아, 만화에 나오는.”
다른 연습생들도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는 나를 한 번씩 구경하러 왔다.
“야, 근데 좀 쪽팔리겠다.”
“그러게. 웬 인형 탈이야.”
“너도 참 골라도 이런 걸 골랐냐.”
“보는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다.”
물론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들의 컨셉은 모두 경찰, 탐정, 야구 선수 같은 것들이었다.
그 와중에는 나는 왜 혼자 토끼인 거냐.
“에이, 다들 너무 그러지 마요. 뭐든 귀여운 게 최고죠.”
백은찬이 그런 나를 애써 커버 쳤다.
눈물이 나는구나. 눈물이 나.
“오, 형 그거에요? 라이크 토끼.”
신하람 역시 나를 발견하자 곧바로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라이크 토끼가 아니라 래빗.”
“어쨌든요. 귀엽다. 나 그 캐릭터 좋아하는데.”
반면 신하람은 검은색 후디 의상에 커다란 게임용 헤드셋 하나를 목에 걸고 있었다.
“넌 뭐야?”
“저요? 저 해커요.”
“오, 해커 멋있다.”
“은찬이 형은 마법사에요?”
“엉. 할리포터.”
“와, 할리포터.”
그렇게 말하지만 신하람의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 그건 왜 없어요?”
“뭐?”
“그거요. 그거. 라이크 토끼 옆에 맨날 붙어 있는 그 당근.”
“아! 나 알아. 당근 친구 말하는 거지?”
당근 친구?
“네, 둘이 항상 세트잖아요.”
“그러게. 당근이 없네.”
당근 친구가 뭐지.
그리고 두 사람이 말하던 그 당근을 나는 세트장에 가서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세현 군! 촬영 시작할게요!”
* * *
라이크래빗과 항상 단짝처럼 붙어 있는 캐릭터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캐렌즈라는 캐릭터였다.
당근의 Carrot과 친구의 Friend를 합쳐 캐렌즈. 말 그대로 당근 친구였다.
그리고 그 캐렌즈는 당연하게도 이 세트장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거 거의 50cm는 돼 보이는데.’
대략 크기가 50cm가 되는 캐렌즈 인형이 세트장 안에 있는 의자 위로 놓여 있었다.
“그 인형은 되도록 앵글 걸리도록 해요. 이미 알겠지만, 둘이 세트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사진작가님의 요구대로 인형을 들어보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면서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노력했다.
지난번 촬영 이후 능력을 곧바로 다시 오프했기에 그때처럼 사진작가님의 생각이 들리는 일은 없었다.
“당근을 좀 더 넣어볼까.”
“소품 더 가져올까요?”
“응. 몇 개만 더 가져와.”
아니, 왜 또 당근인가요.
토끼가 당근만 먹고 사나요. 아니, 얘는 당근만 먹고 사는 애인가.
하다못해 사과···사과가 안 된다면 토마토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작가님, 더 가져왔습니다!”
“좋아! 투입해!”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수많은 당근 관련 소품들과 함께 촬영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촬영을 순조롭게 마치고 내내 머리를 누르던 탈을 마침내 벗었다.
‘기력을 다했어······.’
몸소 인형탈 알바를 직접 체험해본 느낌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탈을 옆구리에 끼고선 대기실로 향하고 있는데, 세트장 쪽으로 다가오는 안지호와 마주쳤다.
안지호는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얘는 의사 컨셉인가.
동시에 내 의상을 본 안지호가 순간적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돼지?”
“토끼야.”
“아······.”
그때서야 안지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토끼네.”
“이거 요즘 인기 캐릭턴데.”
“이상한 게 인기가 있네.”
“자세히 봐. 이거 꽤 귀엽다고.”
안지호에게 가지고 있던 인형탈을 들이 밀어 보였다. 그러자 안지호가 앞에 있던 인형탈을 다시 내 쪽으로 밀어버렸다.
“전혀.”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스텝이 부르는 소리에 안지호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곧바로 다시 촬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여운데.
원래 캐릭터라는 게 호불호가 갈리기는 한다만······.
대체적으로 라이크래빗은 호가 많은 편이었다. 귀여운 걸 안 좋아하는 모양이네.
뒤이어 세트를 보니 정말로 의사 컨셉이 맞았는지 다양한 의학 관련 소품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
나름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사진이 잘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웃기게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작가님의 보정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 이번에 IN이랑 YNET이랑 손잡고 데뷔조 서바이벌 프로그램 런칭한다고 함
└ ????? IN이 서바를 한다고?
└ ㅇㅇ 벌써 진행중이라고함
└ 뭔솔 ㅅㅂ IN이 서바를 왜해
└ 그걸 어떻게 앎?
└ ㅁㅊ 사실이야?
- IN이 서바를 한다고? 진짜임?
└ ㄴㄴ 그냥 뇌피셜임
└ ? 어디서 그러는데?
└ 피셜 나온거 없어
└ 그냥 루머같은데
- IN이 서바를 할 리가 없짘ㅋㅋ 뭐하러 서바를 함? 거기 연습생 외부 공개하는거 ㅈㄴ 싫어하자나
└ 안함 파생글 쓰지마
└ 솔직히 하면 좋겠닼ㅋㅋ IN 서바 궁금하긴 함ㅋㅋㅋㅋ
└ ㄴㄷ 연습생들 궁금함
└ 근데 하면 무조건 뜰걸
└ 그건 아님 요즘 서바 줄줄이 망하는게 몇갠데ㅋㅋㅋㅋ
- IN 엔터테인먼트 차기 남자 그룹 후보 연습생 (예상)
차선빈 (18)
배석민 (19)
윤도운 (19)
박수혁 (20)
이시카와 히로토 (19)
장 샤오쥔 (20)
└ 차선빈 ㅈㄴ 잘생겼네
└ 선빈이는 꼭 데뷔하자
└ 수혁이 귀엽다
└ 차선빈은 맨날 끌려나오네ㅋㅋ
└ 윤도운은 나갔다는 소문 있던데
└ 선빈이는 도대체 언제 데뷔하냐ㅠㅠㅠ
요 며칠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다.
IN 엔터가 새 남자 그룹 런칭을 위한 데뷔조 서바이벌을 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소란스러움은 하루 이틀이 지나자 곧 사그라들었다.
IN 엔터에서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고 소문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여전히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글이 한번 올라온 이후로 회사는 더욱 보안을 철저히 했다.
마찬가지로 연습생들에게도 이번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정보를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그리고 오늘은 마침내 그 프로그램의 세트장에 입성하는 날이었다.
바로 프로그램 1화를 찍을 특별 스튜디오였다. 스튜디오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특히 스튜디오 한가운데 있는 무대가 굉장히 화려했다.
“그럼 먼저 연습생분들 오프닝 촬영부터 시작하도록 할게요.”
촬영의 시작은 역시 오프닝 촬영이었다. 준비된 스튜디오에 연습생들이 모두 함께 입장해 한 명씩 자리에 앉는 것부터 촬영은 시작이었다.
그러면 뒤이어서 심사를 맡아주실 IN의 대표 인현민 대표님을 포함해 총 3명의 심사위원이 등장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심사 위원은 인현민 대표님 외 2명으로 차례로 이송이 보컬 트레이너, 마운 댄스 트레이너였다. 그밖에 별도의 MC는 없었다.
“자, 그럼 촬영 스탠바이 할게요!”
그렇게 기다리던 첫 촬영 녹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