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7화 (17/413)

17화. 잠은 죽어서 자자.

“원, 투, 쓰리-포.”

안무 리더로 최진호가 뽑히게 된 이후 최진호를 중심으로 안무 연습이 진행되었다.

최진호 역시 춤 실력이 괜찮아서 안무 연습을 리드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 같이 안무를 맞춰보면서 잘 안 되거나 하는 부분이 있다면 최진호가 곧 이를 교정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안무를 습득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단체로 연습하는 것 이외에도 따로 틈틈이 더 연습해야만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밥을 거를 순 없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이 식당으로 와야 한다는 프로그램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밥을 거르는 일은 없었으나 잠은 줄여야만 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잠죽자인가.’

잠죽자.

‘잠은 죽어서 자자’의 줄임말이었다.

한마디로 잠 잘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하라는 유명 어록이었다. 예전에 이 말 진짜 많이 봤었는데.

데뷔 초 형 관련 댓글에 꼭 한 번씩 나오곤 했던 것이었다. 이 잠죽자라는 말이.

그런데 이제 내가 이걸 직접 실행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세현이 그동안 그래도 좀 늘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며칠을 연습하고 나니 나름의 성과가 조금씩 눈에 보이고 있었다.

처음 연습할 때보다는 확실히 좋아진 게 눈에 보였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했지만.

“연습 더 하고 갈 거야?”

“응. 너 먼저 가.”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는 일이 많았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연습실에 있던 연습생들도 하나둘씩 숙소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연습실에 줄곧 상주해있던 스텝들도 시간이 지나자 카메라를 두고 늦은 퇴근을 했다.

어느새 시간은 밤 10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때까지 연습실에 남아있는 건 이제 백은찬과 나뿐이었다.

백은찬은 자기도 아직 연습이 부족하다면서 늦은 시간까지 남아 같이 연습을 했다.

“벌써 10시인데. 뭐 언제까지 하려고?”

“30분만 더 하다가다 갈게.”

“30분? 그럼 그냥 나도 그때까지 할게. 매니저 형도 두 번 왔다 갔다 하시면 힘드시니까.”

오우, 사실은 30분이 아니라 한 시간은 더 하다 가고 싶었는데.

대충 말한다고 말한 건데 어쩌다 보니 30분만 연습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내일 일정도 있고 백은찬의 말대로 매니저 형에게도 미안하니까.

숙소로 가는 길에도 영상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불어서 가사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안무도 안무지만 노래도 확실히 해야 했다.

“이 시간까지 연습하다 온 거야?”

숙소로 돌아가니 거실에 있던 도운이 형이 백은찬과 나를 반겼다.

“네. 근데 이 시간에는 차가 안 밀려서 좋더라고요. 엄청 빨리 왔어요.”

“진짜? 얼마나 안 밀리는데?”

“평소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어요. 저희가 10시 30분쯤에 출발했거든요.”

“10시 30분? 진짜 빨리 왔네.”

어느새 두 사람은 차가 그동안 얼마나 밀렸느니 지금은 안 밀려서 좋다느니 하는 교통 체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회사에서 숙소까지 가는데 한없이 막히는 구간이 있긴 하지. 스튜디오에서는 가까우나 회사와는 그래도 조금 거리가 있었다.

“야, 세현. 넌 뭐 안 먹어?”

“난 됐어.”

내일도 촬영과 동시에 연습이 잡혀있기에 먹는 것보다 씻고 자는 걸 택했다. 빨리 자고 일어나서 연습해야지.

반면, 백은찬은 배가 고팠는지 곧바로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리고 방으로 향하려는데 그 순간 옆에 보이는 방의 방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차선빈이 나왔다.

“지금까지 연습?”

“어. 방금 막 왔어.”

이에 차선빈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대충 그렇구나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근데······”

“야, 니들도 하나씩 먹어.”

그때 백은찬이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걸 나와 차선빈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비타민 젤리.”

아. 그렇군.

언젠가 부엌 한편에 비타민 젤리가 쌓여있는 걸 본 적이 있다.

협찬이라고 했었나. 촬영하면서 힘들 때 먹으라면서 제작진 측에서 놔두고 갔던 걸로 기억한다.

“도운이 형, 형도 먹을래요?”

“난 아까 먹었는데.”

“그럼 하나 더 먹어요.”

“그래. 하나 줘.”

윤도운도 흔쾌히 비타민 젤리를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이거 꽤 맛있는데. 원래 다 이렇게 맛있는 건가.

“어? 이거 하나 남았다.”

“벌써 다 먹었어?”

“아니. 처음부터 몇 개 없었어. 이미 뜯어져 있었거든.”

이미 맛있는 게 소문이 났던 모양이네. 나도 내일부터는 챙겨 먹어볼까.

그때 반대편 문이 열리면서 최진호가 밖으로 나왔다.

“뭐야, 여기서 다들 뭐해?”

“잠깐 간식 타임이요. 형도 드실래요?”

그러자 최진호가 백은찬이 들고 있던 물건을 잠깐 쳐다보는 듯 싶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난 됐어.”

“어, 이거 맛있는데?”

“알아.”

그리고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하나 남았지?”

“엉.”

“너 먹을 거야?”

“왜? 너 먹을래? 난 방금 몇 개 먹었어.”

“어. 나 줘.”

남은 거 해치워버려야지.

“아, 혹시 너도 더 먹고 싶어?”

혹시 모르니 옆에 있던 차선빈에게도 물어봤다.

“아니. 난 됐어.”

다행히 거절이 돌아왔다. 아니, 다행이 아니지. 다행은 무슨 다행.

근데 아까 차선빈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나.

아무튼 그렇게 얻은 비타민 젤리를 손에 든 채 나는 방으로 향했다.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아직까지 안지호가 깨어있는 모양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방 안은 아직 환했고 안지호는 2층 침대에 누워 폰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방 안으로 들어온 나를 발견하고는 여전히 폰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왔냐?”

“어. 아직 안 잤네.”

“시간이 몇 신데. 벌써 잘 리가.”

지금 11시 넘었는데.

안지호와 방을 쓰는 동안 하나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는데 안지호는 12시만 되면 칼 같이 곯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시각이 11시 29분이니까···앞으로 약 30분 후면 취침에 들어갈 듯했다.

“아, 너 이거 먹을래?”

그러다가 문득 가지고 온 젤리가 떠올랐다. 내가 먹으려고 가지고 온 거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 권해봤다.

맛있는 건 원래 널리 널리 알려야 하는 법이니까.

“아니. 안 먹어.”

“이거 그냥 젤리 아니고 비타민 젤리야.”

“젤리면 젤리고 비타민이면 비타민이지, 비타민 젤리는 뭐야?”

“나도 잘 모르지만 요즘엔 이렇게들 나온다고 하던데.”

그냥 젤리가 아닌 비타민 젤리라는 말에 안지호는 조금 고민을 하는 듯해보였다.

“고민되면 일단 한번 먹어봐.”

“······.”

대답은 없었지만 일단 주고 봤다. 딱히 거절하지도 않는 게 역시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어때? 맛있지?”

“아직 씹지도 않았어.”

“아, 그래. 미안.”

먹는 걸 계속 보고 있기도 그래서 일단 나도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세면도구를 어디에 넣어뒀더라.

“야, 근데.”

“어?”

“이거 이름이 뭐라고?”

역시 맛있는 게 맞는 모양이다.

근데 이름은 나도 모르는데.

똑똑똑.

그때 방문 밖에서부터 짧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들어오면서 노크라는 걸 할 사람은 우리 숙소에 한 명 밖에 없었다.

“어, 차선빈. 왜?”

“부탁 하나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부탁?”

“응.”

“나한테?”

“응.”

부탁? 무슨 부탁이지?

“뭔데?”

그리고 차선빈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 * *

다음 날도 역시 시그널 송 미션 연습을 위해서 회사에 출근했다.

안무도 안무지만, 오늘은 노래를 연습해야만 했다. 안무만큼 노래도 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노래가 어렵고 전체적으로 음역대가 높은 탓에 안무를 하면서 노래까지 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서 평소엔 안무와 별도로 연습하지 않고 되도록 춤을 추면서 연습하려 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보컬 연습실이······.’

보컬 연습실을 예약하려 연습실 현황을 살펴보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따라 연습실이 풀로 차 있었다.

아니, 오늘 무슨 날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사실 오늘은 보컬 연습의 날로 정해지고 그랬다던가.

그간 보컬룸이 이렇게까지 꽉 찬 적은 이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어, 그래도 한 곳 비어있네.”

엑스표가 그려진 다수의 보컬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딱 한 곳, 비어 있는 방이 딱 한 곳 있었다.

‘404호실.’

여기로 예약해야겠다.

그리고 그곳을 막 예약하려던 찰나 그 옆에 있던 405호실의 엑스 표시가 사라졌다.

동시에 안에서부터 사람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신하람.”

“어, 형.”

신하람이었다.

뒤이어 나를 발견한 신하람이 곧장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형도 보컬 연습하려고요?”

“응.”

“이번 시그널 송 겁나 어렵지 않아요?”

“응. 엄청.”

“헐. 형한테도 어려워요? 아, 그럼 진짜 어려운 게 맞네.”

뭔가 내가 지금 엄청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근데 넌 이제 가려고?”

“네. 형은 이제부터 연습이죠?”

“응.”

“그럼 제가 쓰던 곳 써요. 오늘따라 보컬룸에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곧장 405호실을 예약했다. 이제 남아 있는 보컬룸은 아까와 같이 404호실 하나뿐이었다.

“아, 젤리 먹을래?”

“비타민 젤리 그거요? 그거 저도 하나 있어요.”

신하람이 주머니에 있던 젤리통을 꺼내 보였다.

“협찬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깔려있더라고요. 우리 숙소에도 엄청 많아요.”

음. 그래. 그랬군.

가지고 있던 젤리통을 그대로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근데 형.”

“어, 왜?”

“혹시 404호실 예약하려고 했던 건 아니죠?”

“응. 맞는데?”

“헐.”

그 순간 신하람이 진심이냐는 얼굴을 했다. 뭐지, 404호실 쓰면 안 되는 곳이었던가.

“왜? 거기 사용하면 안 되는 곳이야?”

“형 그거 몰라요?”

“뭘?”

“왜 우리 회사에 유명한 보컬룸 하나 있잖아요.”

유명한 보컬룸······.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다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어쩌다 보니 잊고 있었네.

근데 어째서 그 보컬룸이 유명한 건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몰랐다.

“유명한 보컬룸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긴 한데 거기가 왜 유명한 건데?”

“아, 형 역시 모르는구나. 거기 그거 나오잖아요.”

“그거?”

“네. 귀신이요.”

“뭐?”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뭐가 나온다고?

“귀신이요. 그 보컬룸에 귀신 나오잖아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