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8화 (18/413)

18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보컬 룸에 귀신이 나와······?”

“네. 모르고 있었어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회사 보컬 룸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리는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얘기였다.

“이거 엄청 유명한 얘긴데.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요?”

나는 연습생이 아니었던 건가. 하하.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뭐가 나온다는 건데?”

“정확히 뭐가 나온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무슨 소리가 들린다, 뭐가 움직인다, 창밖으로 뭐가 서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죠, 뭐.”

“정말 딱 일반적인 괴담 소문이네.”

“맞아요. 어떻게 보면 그냥 소문이긴 해요. 근데 워낙 직접 경험한 당사자들이 많아서요.”

신하람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방금 전 발언은 꽤나 오싹한 발언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한이 형은 귀신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던데요.”

헉.

“근데 뭐 잘못 본 걸 수도 있죠. 솔직히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요?”

그 말에 순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신하람이 나를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설마 형도 귀신이 있다고 믿어요?”

“어······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없어요, 없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없겠지······.”

하지만 난 신하람처럼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난 사자(使者)를 직접 만난 적도 있으니까.

‘더불어서 귀신 같으면서도 귀신 안 같은 무언가랑도 만난 적이 있었지. 물론 그건 표면적으로는 사람이긴 했지만······.’

저 옛날 우연히 마주쳤던 남자의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떠올랐다.

실제로 귀신이 있다는 걸 알고 저승사자까지 존재한다는 걸 알기에 귀신이 있다는 말을 그저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404호실은···되도록 안 가야겠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장소도 기억하기 쉽네. 404호실. 앞으로 주의해야지.

* * *

어느새 중간 평가날이 되었다.

중간 평가는 항상 연습하던 대형 연습실에서 스테이지와 백스테이지의 모든 인원이 함께 치를 예정이었다.

중간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개개인으로 평가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중간 평가는 각 그룹별 단체 무대에 대한 평가였다.

“연습 제대로 한 거 맞아?”

평가를 보던 댄스 트레이너 입에서 가장 처음 나온 말은 그거였다.

“아니, 어떻게 스텝들이 하나도 안 맞아?”

“스테이지 그룹이라서 기대했는데 기대에 영 미치질 못하네요.”

평가는 그야말로 혹평의 혹평이었다.

“보니까 춤 좀 추는 연습생들이 꽤 있는데 왜 결과가 이렇지? 연습 많이 안 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문제가 아니지. 이 상태로는 무대도 못 올라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평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밖에는.

“물론 잘한 사람도 있어.”

그 순간 나를 보던 트레이너와 눈이 마주쳤다.

“세현이. 세현이가 그나마 이 곡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조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만족스럽지가 않아.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연습해야 할 것 같아.”

앞에 있는 두 트레이너는 계속해서 허탈한 듯 실망감을 내비쳤다.

“다음 백스테이지 그룹 볼게요.”

그렇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백스테이지 그룹의 중간 평가가 시작됐다.

백스테이지의 안무는 전체적으로 합이 잘 맞았다. 사전에 각도까지 미리 맞춘 건지 동작 하나하나가 칼같이 정확했다.

“여기는 그래도 연습을 좀 했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굳어져 있던 댄스 트레이너의 얼굴이 어느새 조금 누그러져있었다.

“안무도 다들 딱딱 맞고. 합도 괜찮고. 여기가 진짜 스테이지 그룹 같은데?”

“다들 열심히 한 게 눈에 보여요.”

“이대로만 하면 다들 올라가겠다.”

이를 듣고 있던 백스테이지 그룹의 멤버들의 표정 역시 한껏 밝아져 있었다.

중간 평가가 끝난 이후 그룹별로 다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카메라도 함께였다.

혹평을 들은 직후가 그런지 다들 전반적으로 표정이 좋지 못했고 그만큼 분위기도 다운되어 있었다. 하긴 이때 분위기가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만.

“우리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 앞으로 연습 시간도 더 늘려 봐요.”

중간 평가에서 혹평을 받은 만큼 앞으로는 더 많이 모여서 연습 시간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다들 쳐진 분위기였지만, 그중에서도 최진호는 특히 더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너무 쳐지지는 맙시다. 밝은 곡인 만큼 텐션을 더 올려야죠.”

내 나름대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려 보려 말했다.

분위기가 처지면 그만큼 다들 날카로워질 테고 그래서는 팀원들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 단체 무대에서 좋을 게 없다.

“맞아요. 우리 한 번 다시 해봐요.”

“그럼 지금 바로 연습 들어갈까?”

다행히 멤버들은 금방 다시 텐션을 올렸다. 물론 다들 아직 중간 평가의 여파가 남아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연습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 *

오늘도 역시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1차 미션 평가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매일 매일이 연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능력을 켰다.

일단 오늘은 무대에 오를 일도 없을뿐더러 지난번 이후로 한 번도 능력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텀이 길지 않도록 조절하려고 하긴 하는데,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 오늘도 연습을 시작해볼까?”

그리고 언제나처럼 연습실에 모여 연습을 시작하려 하는데, 뜬금없이 최진호가 멤버들을 불렀다.

“얘들아. 나 할 말 있어.”

“어, 뭔데요?”

“잠깐 모여 봐.”

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뭔가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우리 리더 말이야. 바꾸는 게 어떨까 싶어.”

“네? 리더를 바꾸자고요?”

“응.”

최진호는 지금 본인의 입으로 리더를 자진 사퇴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 다 열심히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제와 같은 평을 받은 게···나로서는 조금 충격이야.”

“그래서?”

“우리 이런 평가를 받은 건 어느 정도 내 책임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나 말고 다른 멤버가 리더를 맡는 게 어떨까 싶은데.”

아무도 예상못한 뜬금없는 선포였다.

동시에 다른 멤버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애써 오른 분위기도 한순간에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갑자기 그만둔다고?

“진호, 무슨 소리야. 잘해왔잖아.”

“맞아. 잘 이끌어왔어.”

에단과 히로토가 그런 최진호를 애써 말리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호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연습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혹시 개인 연습에 조금 더 힘쓰고 싶어 하는 건가. 그룹별로 연습을 하곤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번 미션은 철저한 개인전이다.

비록 무대는 모든 연습생이 함께 서지만 기본 베이스는 개인 평가였다. 그러기 위해 따로 개인 평가 영상도 찍는 거고.

리더는 연습을 주도하고 때로는 다른 이들을 봐주기도 했다. 그만큼 개인 연습을 할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테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지만 사실 최진호는 그저 위기감을 느꼈을 뿐일지도 몰랐다.

‘그 조급함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돌연 리더를 그만둔다니. 이거야말로 책임감이 없는 거 아닌가.

하물며 그럴듯한 말로 리더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최대한 밉보이지 않을 만한 이유를 대면서.

“형, 그렇지만 이건······”

“그래서 말인데 나 대신 세현이가 리더를 하면 어떨까?”

그리고 잠깐의 사이.

갑작스레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 * *

“세현이?”

“응. 세현이가 하면 좋을 것 같아.”

이보다 뜬금없는 말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어느새 난 새로운 안무 리더 후보에 올라가 있었다.

“세현이 열심히 하잖아. 매번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유일하게 칭찬도 받고 말이야.”

유일하게 칭찬?

그 대목에서 뭔가 거슬리는 걸 느꼈다.

[“혼자 잘한다 칭찬까지 받으니 얼마나 좋아. 나도 리더 따위 안 하고 연습만 했음 그딴 평은 안 들었을 텐데.”]

[“이 자식도 고생 좀 한 번 해봐야지.”]

아, 역시.

이렇게 떠넘기는 이유가 있었다.

중간 평가 때 나 혼자 칭찬을 받은 그 일 때문인가.

“그러니까 난 꼭 리더를 세현이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트레이너 쌤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지금 곡을 가장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너니까.”

[“난 이제 하기 싫기도 하고.”]

너무도 다른 한 사람의 두 목소리였다.

“세현이도 괜찮지.”

에단이 그런 최진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벌써 동조자가 나오네. 혹시 미리 말이라도 맞춘 건가. 이렇게 된 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형, 아니에요. 전 아직 리더를 맡기엔 많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형은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요.”

일단 거절부터 하고 봤다.

하지만 최진호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를 받아쳤다.

“아니야. 내 생각엔 나보다는 네가 어울려. 너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형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 아직 그렇게 큰 역할을 맡기엔 부족해요.”

“아니, 내가 볼 땐······”

“게다가 아시다시피 제가 춤은 아직 노력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이에 대해 최진호는 답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사실이긴 하니까.

[“아, 이 새끼. 완강하네. 혹시 뭔가 눈치 깠나?”]

그리고 그런 내 태도에 최진호 역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리더를 해도 상관이 없긴 했다.

상관은 없지만 내가 연습을 주도할 만큼 춤 실력이 탁월한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이건 다른 애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문제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난 이제 자신이 없다. 괜히 너희한테 피해만 주는 거 같아.”

하지만 최진호는 끝까지 의견을 밀고 나갔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거절하기가 곤란해진다.

이 이상 거절했다가는 나 역시 리더가 하기 싫어 최진호에게 계속 리더를 유지할 것을 강요하는 꼴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받아들이고 볼 수밖에.

부족하지만 이렇게 된 거 되는 데까지 해본다는 생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면 제가 한번 해볼게요.”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아, 해방이다.”]

최진호는 굉장히 미안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안무 리더라니.

생각지도 못한 직책이었다.

동시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고.

나 역시 내 대신 다른 사람을 추천한다 말할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추천 받은 사람은 또 무슨 죄인가.

리더라는 자리가 쉽지 않은 자리라는 걸 이미 아는 만큼 또 다른 이에게 이를 떠넘기기가 그랬다.

그래서 일단 받아들이긴 했지만, 벌써부터 어떻게 진행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기.”

그런데 그때,

중간에 있던 차선빈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도 그럼 입후보해도 돼요?”

생각지도 못 하게 차선빈이 리더를 자원하고 나섰다. 이에 최진호가 잔뜩 당황한 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 너 리더 하고 싶어?”

“네.”

그러자 백은찬이 빠르게 이어 말했다.

“어, 그럼 우리 투표로 정할까요?”

“그래요. 투표로 정하죠.”

안지호가 곧 동조했다.

이때까지 조용히 듣기만 하던 안지호가 처음으로 말문을 연 순간이었다.

“어···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여기저기서 동조하고 나서자 오진호 역시 이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럼 바로 투표 들어갈게요.”

그렇게 리더의 자리를 놓고 투표가 다시 한 번 더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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