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숨긴 천재 아이돌-19화 (19/413)

19화. 새로운 안무 리더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백은찬은 지금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리더를 그만둔다고 하더니 뜬금없이 우세현을 새 리더로 추천?

이건 뭐 나 대신 리더 하라고 떠미는 것과 다를 게 뭔지. 그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까고 있네.’

어처구니없는 건 안지호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이 필요? 실력이 부족?

그러면 부족한 만큼 진작 연습 좀 하지 그랬냐. 와 같은 말을 그대로 내뱉을 뻔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아무 생각 없이 리더를 덜컥 맡긴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싶었다.

“정 그러시면 제가 한번 해볼게요.”

호구냐.

그걸 또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있는 우세현도 이해가 안 됐다.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 한마디는 해야겠다 싶을 때쯤, 차선빈이 불쑥 손을 들었다.

“저 그럼 입후보해도 되나요?”

이건 예상 못 한 전개였다.

그대로 리더 자리가 굳혀지는 건가 싶은 순간, 차선빈이 자원하고 나섰다.

뭐야, 리더 자리 생각 없는 거 아니었나.

어찌 됐든 갑작스러운 차선빈의 개입으로 리더 자리를 놓고 투표가 진행됐다.

그리고 결과는 차선빈의 승.

4 : 2 라는 결과였다.

그중 2 는 최진호와 에단이었다.

“그럼 새로운 리더는 차선빈이 하는 걸로.”

“축하해.”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이어서 차선빈이 최진호를 향해 물었다.

“제가 해도 괜찮죠, 형?”

“그럼 당연하지.”

최진호는 그 뒤로도 축하한다와 같은 형식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그럼 바로 연습 시작할까요.”

* * *

스테이지의 새로운 안무 리더는 차선빈으로 낙점되었다.

이대로 그냥 리더롤을 맡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불만이 많은 건 최진호였다.

[“쟤는 왜 갑자기 끼어들고 난리야.”]

[“그래도 이로써 내 개인 연습 시간은 확실히 늘어나겠네. 좋다.”]

역시 개인 연습 시간을 위해 리더의 자리를 놓은 게 맞았다. 그럴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 보면 차선빈이 리더를 맡아줘서 다행이었다. 나보다 나은 것은 물론이고 전 리더였던 최진호보다도 훨씬 나으니까.

‘근데 차선빈은 왜 갑자기 자원한 거지.’

분명 처음 리더를 정할 때는 리더라는 거에 그렇게 관심 없어 보였는데.

차선빈이 리더가 된 건 잘된 일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궁금했다. 혹여 상황에 밀린 건가 싶기도 하고.

물론 지금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지만, 생각을 읽기보다는 그냥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연습 중?”

“응.”

같은 날 저녁, 홀로 연습실에 있던 차선빈을 찾아갔다. 얼마나 연습한 건지 벌써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밥은 먹고 하는 건가.

“밥은?”

“조금 있다 먹으러 가려고.”

“이 시간까지 안 먹었어?”

“지금이 몇 신데?”

“6시 40분.”

“아······.”

그러자 차선빈이 고개를 돌려 시간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밥부터 먹고 해. 식당 문 닫는다.”

“그래야겠다.”

차선빈이야 항상 연습을 빡세게 하곤 했지만 왠지 오늘따라 더 그런 느낌이었다. 혹시 리더가 된 것 때문인가.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그런데.”

“뭔데?”

“원래 리더 할 생각 있었어?”

“어?”

“안무 리더 말이야. 원래는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그리고 그러한 내 질문에 차선빈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아, 그래?”

“응. 그냥해도 나쁘지 않았고.”

그런 거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네가 좀 안 내켜하는 것 같아서 그냥 내가 하겠다고 한 것도 있어.”

“뭐? 잠깐만.”

“왜?”

“그런 거라면 굳이 네가 할 필요 없어.”

다른 사람 등 떠미느니 그냥 내가 하는 게 낫지. 아, 물론 내가 하겠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했다는 말은 아니야. 나도 할만 했으니까 직접 자원한 거고. 또 너한테는 나름 고마운 것도 있으니까.”

“고마운 거?”

“응. 노래. 도와줬잖아.”

아, 그거.

지난밤, 차선빈이 방으로 찾아와 시그널 송 노래 연습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고. 비록 큰 도움은 안 됐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으로 도와줬다.

“너한테 도움 받은 것도 있는데 그냥 넘기기 뭐해서. 나도 할 수 있는 선이었고 그래서 하겠다고 한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던 차선빈의 목소리가 연습실을 차분하게 울렸다.

어쨌든 무리는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중간 평가에서 노래가 잘 넘어간 것도 다행이고.

“야, 근데.”

“응.”

“오늘 밥은 꼭 먹어야 돼. 오늘 메뉴 갈비찜이야.”

“···갈비찜이라고?”

“응.”

곧이어 차선빈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연습실 문을 나섰다. 그치. 역시 갈비찜은 놓칠 수가 없지.

그리고 그와 엇갈리게 갈비찜을 두둑하게 먹은 백은찬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쟤 어디가?”

“밥 먹으러.”

“아, 갈비찜?”

“응.”

“더 빨리 뛰어야 할 텐데······.”

그 말에서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 * *

“그때 만약 차선빈이 안 나섰다면, 내가 하겠다고 하려고 했어.”

백은찬이 화장실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안무 리더?”

“엉.”

너까지 나서려고 했냐.

하긴 그동안 같이 연습해온 게 있는데 내 춤 실력이 어떤지 모를 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이 돼냐. 널 시킨다는 게.”

그렇지. 말이 안 되긴 하지.

“스테이지라면 다들 너한테 보컬적인 도움 한 번씩은 받았을 텐데 거기에 안무 리더까지 맡긴다고? 양심 불량이야, 그건.”

“아, 그 이유였어?”

“그럼 무슨 이유인데?”

난 모두가 아는 그 이유인 줄 알았는데. 백은찬의 입에서 다른 이유가 나와서 조금 놀라던 참이었다.

나름 배려해주는 건가.

“그리고 차선빈이면 믿고 맡길만 하지. 꽤 성실한 편에다가 실력도 확실하니까.”

음. 그렇지. 확실하긴 하지.

“그나저나 앞으로 연습을 어떻게 더 빡세게···어, 안지호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안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옆에선 백은찬이 그런 안지호를 향해 신나게 손을 휘젓고 있었다.

“너도 연습하러 왔냐?”

“어.”

“오늘은 다 같이 야자하네.”

“그렇게 까였는데 연습을 안 할 순 없잖아.”

아무래도 오늘은 늦은 시간까지 연습실 불이 켜 있을 것 같았다. 다 같이 하면 같이 으쌰으쌰 할 수 있으니 더 좋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너도 아까 차선빈한테 한 표 던졌었지?”

“뭘?”

“안무 리더.”

“아.”

안지호가 알겠다는 듯이 말없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근데 그건 당연하잖아.”

“어? 그래?”

“응. 얘 춤 별로잖아.”

안지호가 정확히 나를 콕 집으며 말했다. 음. 그래. 그렇긴 하지. 왠지 오늘은 하루 종일 수긍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앞선 안지호의 말이 맞는 말이긴 하니 거기에 대해서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사자인 나보다 옆에 있던 백은찬이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무, 슨 말이야! 별로까진 아니지······.”

“뭔소리야. 그냥 별론데.”

“그, 이 정도 추면 괜찮게 추는 거지!”

“눈이 발에 달렸냐? 이게 어떻게···”

“지호야! 지호야! 오늘 저녁은 갈비찜이라네! 밥 먹었니? 어, 그래 밥은 이미 먹었구나! 그럼 또 먹어야지!”

그렇게 백은찬은 안지호를 빠르게 연습실로 등 떠밀었다. 또 먹어야 한다면서 왜 식당이 아니라 연습실로 향하는 건데.

그런 백은찬의 노력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물론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안 되겠다.

다음엔 갈비 한 점이라도 올려줘야지.

* * *

시그널 송의 연습은 리더가 바뀐 이후로 더욱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모든 건 차선빈의 눈높이식 가르침 덕분이었다.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차선빈은 가르치는 것에도 소질이 있었다.

더불어서 철저했다.

안무의 아주 사소한 틀어짐에 대해 차선빈은 누구보다도 캐치가 빨랐다.

덕분에 멤버들은 스스로도 잘 인지하지 못 하고 있던 작은 디테일적인 부분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충돌이 몇 번 있을 뻔하긴 했지만.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아?”

그건 바로 최진호의 개입 때문이었다.

“내가 볼 땐 팔 각도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뇨. 영상 보시면 이 각도가 맞아요.”

“영상은 나도 봤지. 근데···아, 아니다.”

연습 도중 최진호는 불쑥 불쑥 개입을 해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강력하게 의견을 어필한 건 아니었다.

사방에서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와 자신의 지금 위치가 어떤지 알고 있기에 그런 듯 했다.

“세현 군, 잠깐 와 볼래요?”

그렇게 안무 연습이 계속되던 어느 날.

시그널 송 프로듀서 팀에게 호출되었다.

“얘기 전달받았죠? 오늘 시그널 송 곡 녹음 들어간다는 거.”

“아, 네. 들었습니다.”

호출의 이유는 다름 아닌 곡 녹음 때문이었다.

“오늘은 각 그룹의 보컬 파트를 맡은 멤버들만 모아 녹음하려고 해요. 연습은 했죠?”

“네.”

시그널 송엔 떼창도 떼창이지만, 정해진 파트도 있었다. 오늘은 가장 많은 파트를 차지하는 보컬 부분의 녹음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현장에는 나와 같이 호출된 몇 명의 보컬 포지션 연습생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회사에서 보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연습생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안지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너만 여기 앉아 있어?”

“시끄러워서.”

시끄럽나? 그렇게 시끄럽진 않은 것 같은데. 사람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 적당히 대화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안지호의 앞선 말을 들었는지 떠들던 무리가 순간 이쪽을 쳐다봤다.

음. 그래. 눈으로 욕하고 있네.

“자, 다 모였죠? 그럼 바로 설명 들어갈게요.”

때마침 프로듀서가 들어온 덕분에 잠시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는 곧 사그라들었다.

녹음은 그다지 어려운 게 없었다. 그냥 보컬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기만 하면 됐다.

“특별히 어려운 거 없죠?”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어려운 건 녹음이 아니라 노래 자체였다.

특히나 후반부에 줄줄이 터지는 연속 고음. 더불어서 숨 쉬는 타이밍 또한 어려웠다.

부분부분 적당한 호흡 조절이 필요한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건 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음. 생각보다 음역대가 안 맞네요.”

“호흡이 조금 딸리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해볼래요?”

그래서인지 앞서 들어간 연습생은 모두 수십 번에 걸친 오랜 녹음을 해야만 했다.

“다음은 세현 군, 들어갈까요?”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녹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긴장이 됐다.

“바로 후렴 부분 가볼게요.”

음악이 나오자 나는 타이밍에 맞춰 후렴구에 들어갔다. 조용했던 녹음 부스 안에는 내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이후 흘러나오던 음악이 끊기고.

나는 조용히 앞으로 나올 프로듀서의 말을 기다렸다.

“좋네요.”

그게 프로듀서의 첫 마디였다.

“발성도 호흡도 좋고, 박자도 좋아요. 이렇게 한 번에 해내기에도 쉽지 않은데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네.”

“감사합니다.”

“잘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서 지금 조금 놀랐어요.”

꾸준히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 안무 연습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컬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그럼 계속해서 갈게요.”

그 뒤로도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몇 번 하다 보니 어느새 긴장감도 많이 사라져있었다.

프로듀서의 말처럼 녹음은 얼마 걸리지 않고 끝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녹음 부스를 나오니 이제 막 들어오려는 안지호와 문 앞에서 마주쳤다.

“다음 차례야?”

“응.”

“수고해.”

안지호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대로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안지호도 잘 하겠지. 노래 잘하니까.

그 뒤로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기 위해 곧바로 녹음실을 나왔다.

“아, 안지호 존나 재수 없지 않냐?”

그때 녹음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부터 연습생 몇 명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말하는 거 봤냐? 시끄럽다고 겁나 눈치 주는 거.”

“그러니까. 존나 거기서 말도 못하냐.”

연습생들 2, 3명 정도가 모여 있는 그곳은 전형적인 뒷담화의 현장이었다.

“생긴 것도 딱 싸가지 없게 생겼잖아.”

“하긴. 처음 볼 때부터 그럴 것 같긴 했어. 성격 있어 보이는 게 딱······”

“아이고. 미안합니다.”

일부러 대화하고 있던 이들 사이를 지나쳐 그 앞에 있던 정수기로 향했다.

다른 사람의 뒷담화는 아무래도 직접 듣고 있기 힘들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같은 방 룸메의 뒷담화는 더더욱.

그리고 그런 나를 발견한 연습생들은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그런 날 씹어댈지도 모르지만······어차피 안 들릴 테니 상관없었다.

‘안지호도 은근 보면 적이 많다니까.’

원래도 오늘 같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안지호를 안 좋게 보던 이들도 꽤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안지호의 말투 탓이 큰 것 같았다. 물론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안 좋게 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험담을 할 것까지 있나 싶었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좀 속으로 하지 싶고.

그리고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기다리던 시그널 송의 평가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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